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 - 빈센트 반 고흐 전기, 혹은 그를 찾는 여행의 기록
프레데릭 파작 지음, 김병욱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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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고 그의 그림에 대한 열정과 가난한 삶의 고통이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주로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글이었는데, 살아있는 고흐가 느껴져 감동적이었다. 그것을 계기로 간절한 마음에 이 책과 만나게 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읽게 된다. 그의 삶의 일부만 알 수 있는 편지글과 달리, 온전히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알 수 있는 기회라서 기대가 컸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화가인 프레데릭 파작의 고흐에 대한 전기이며 프랑스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우선 책 속에는 그림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그림으로 예술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마음의 여유와 더불어 고흐의 열정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어릴 적 빈센트는 어떤 아이였을까.

‘말을 잘 듣지 않는 자손심이 강한 아이’였다. 역시 예술가의 자질이 보인다. 화를 내어도 눈에 띄게 크게 터뜨렸고 외로운 아이였다. 틈만 나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히스가 무성한 들판이나 시냇가에서 풍뎅이를 잡기도 하는 등 자연에서 큰 위안을 삼았다. 그의 어머니는 아이들이 좋은 교육을 받기를 바랐고, 데생과 수채화를 가르쳤다. 딸들은 피아노를 배우며, 온 가족이 손에 악보를 들고 노래를 했다. 화목한 가정의 정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하지만, 따뜻함이 느껴지는 사랑하는 가족의 모습은 딱 여기까지였다. 부모님은 열한 살 빈센트를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느 기숙학교의 건물 계단에 내려놓고 가버린다. 비 내리는 날 그 도로를 따라 멀어져가던 부모님의 뒷모습을 영원히 잊지 못하게 된다. 물웅덩이에 비친 자동차의 노란 빛. 회한의 색깔이 되었다. 기숙학교 이전은 천진함과 헌신적인 어머니와 주의 깊은 아버지의 애정, 가족의 따뜻한 화목이었다면, 기숙학교 이후는 온통 ‘고독’이었다.


 빈센트 특유의 남과 어울리지 못하는 우울한 성격은 학교에 적응하기도 힘들었다. 놀림을 받기 일쑤였다. 결국은 열다섯 살에 학교를 완전히 떠나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빈센트는 무신론자임을 선언하면서 가족과 갈등이 시작된다. 뭔가 일을 해야 하는데 무엇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어떤 일이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부모님은 화랑을 운영하는 그의 삼촌의 힘을 빌려 구필 화랑 헤이그 지점으로 보낸다. 판매원으로서 훌륭한 실적을 보이며 잘 적응하는 듯 보인다. 그러는 동안 그림에 대한 그의 관심은 날이 갈수록 커진다. 그러던 중 런던 지점으로 전근을 통보받고, 군복무 문제 등(병역의무는 대체복무로 해방된다.) 이 나오면서 상황이 복잡하게 된다. 런던을 떠나 파리로 파견되고, 갑자기 프랑스인 목사 미망인의 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아내가 돼 달라고 간청을 하지만, 거절을 당하고 굴욕감에 깊은 절망에 빠진다.


 이때 통찰력 있는 테오는 데생 화가나 화가가 되라고 형을 격려한다. 하지만, 목사가 되겠다고 한다. 성직에 종사하는 아버지를 경멸하면서도. 기숙학교에 격리된 트라우마로 인해 ‘사랑’을 받고 싶다는 애착이 자리한 것일까. 수습 선교사 자리를 얻지만 신경질적인 태도, 화술부족 등 여러 이유를 들어 부적합 판정을 받는다. 다시 신학을 공부하겠다고 시작했지만, 결국은 열다섯 달 만에 부모님 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내 인생 최악의 시기였다”(P50)고 말 한다.


 끊임없이 ‘실패자’라는 생각으로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방황을 하던 빈센트는 아브라함 피터르선 목사와의 만남으로 그의 삶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다. 끈기를 갖고 계속 그림을 그리라고 빈센트를 격려한다. 비로소 예술가의 소명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빈센트는 자신을 학대한다. 소나기에도 쏟아지는 눈 속에서도 맨발에 누더기를 걸친 채 때에 전 시커먼 얼굴로 황야를 돌아다닌다. 먹거리는 빵껍질에 얼어터진 사과만 허용한다. 모두 미치광이 취급한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아마도 자신의 열정을 실험해 본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이 절대 고독으로 이어지고, 성격으로 형성된 것은 아닐까. 일을 안정적으로 할 수 없으니, 돈이 없고 굶주림과 노숙 끊임없이 떠도는 생활은 어느새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이미 가족에게 그는 “도무지 감당 안 되는 수상쩍은 인물”이 되어 있었다. 그의 예술적 야망을 달갑지 않게 생각한 부모님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된다.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하자 퀴엠으로 도망친다. 그림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을 발산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울분이 그의 온 몸을 타고 흘렀다. 그 광기어린 표정이나 모습을 보통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를 말할 때 흔히 ‘광기’를 떠올리지만, 그 이전에 자연에 가까운 순수함이 있었다. 그는 다가오는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었으며, 항상 초조했다. 갚아야 할 부채와 완수해야 할 과업을 고민했다. 어떤 학파의 환심이나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솔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가난하고 추한 노동자, 농부 등이 주인공인 회색빛이던 그림은 나중에 강렬한 원색으로 바뀐다. 그 추함을 ‘소름끼치게’ 잘 그려냈다고. 자청해서 요양원에 구금되기도 하고 남프랑스에서 북프랑스로 옮겨 다니는 등 여전히 불안하고 분주하다. 화가들과 교류를 통해 잠시나마 활력을 찾고 영감을 얻기도 한다. 그의 그림에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도 생기지만, 팔리지는 않는다.


 빈센트에게 참으로 다행인 것은 그를 믿어주고 경제적으로 지원해주는 테오가 있었다는 점이다. 모든 불평불만과 짜증을 다 받아준 테오. 그들의 형제애가 아름답다. 어쩌면 부모노릇을 온전히 해낸 동생이 아닐까. 물론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에 자살을 결심하기도 하지만. 반면 그의 어머니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자신이 가진 약간의 재능으로 데생이나 수채화를 가르쳐 준 사람인데, 장남이 그림과 광기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두고두고 후회했을까.


 살아생전에 딱 한 점 팔렸다고 한다. 한 여인이 구입한 <붉은 포도밭>. 평생 가난했고, 사랑을 갈구했으며, 그러나 항상 고독했던 빈센트는 테오와 나란히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누워있다. 빈센트의 열정과 테오의 희생이 빚어낸 혜택으로 우리의 눈앞에 그의 그림이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열정은 많이 부족하다. 광기로 점철된 삶이라고 하지만, 더 속 깊은 빈센트의 내면과 그림에 대한 열정, 작품세계와 그 변화를 알 수 있는 감동적이고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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