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 명인이 되었습니다 - 목욕 가방 들고 벳푸 온천 순례
안소정 지음 / 앨리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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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차례 일본 여행을 했지만 온천에 가 본 적은 없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평소에도 목욕탕에 가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번거롭게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는 집에 있는 욕조에 따끈한 물을 받아서 즐기는 편이다. 그런데 온천 명인이 되었다는 작가를 따라 온천 여행을 하다 보니 정말 가보고 싶어졌다. 피부에도 좋고 통증을 치유하기도 하는 온천이 좋다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들어온 것도 그렇고. 작가가 명인에 도전하게 된 계기를 떠나서 그 과정은 재밌기도 하겠지만 좀 번거로워 보이기도 했다. 88군데의 온천을 다니고 도장을 받아야 명인이 되는 것인데 하루에 열군데 정도를 다녀야 한단다. 그렇다면? 옷을 벗었다 입었다 열 번 정도를 반복해야 한다. 글쎄 나 같으면 못하겠다 싶어서 웃음이 났다.

 무겐노사토 슌카슈토(몽환의 마을 춘하추동)온천. 이름처럼 멋지고 환상적인 느낌이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저 단순한 온천 순례가 아니었다. 같은 일에 도전하는 사람과 뜻밖의 만남을 거듭하면서 친구가 되고 온천을 사랑하는 사람, 재정난 때문에 문을 닫았다가 좋은 온천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려고 함께 관리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의 힘을 얻어 운영한다는 푸근한 이야기를 알고 감동으로 벅차올랐다. 아주 오래되어 낡은 듯한 온천부터 호텔의 신식 온천, 특이하고 이색적인 온천까지 다양한 곳이 소개된다. 백년도 넘은 온천, 극장을 끼고 있는 온천, 식물원을 개조하여 만들었다는 온천 그 개성도 참 다양하다. 전세를 내다시피 유유자적 혼자 온천을 즐기는 작가의 모습에서, 오롯이 자신의 몸을 따뜻한 물에 담그고 호사를 누리는 그런 시간들이 정말 부러웠다. 어느덧 나도 명인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번 쯤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은 어떤 모습의 온천이 나올까, 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 하며 책장을 넘기기 바빠진다.

 

  

꿈이 뭐예요?”

과거의 나는 이 질문에 직업에서 성공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꿈이라는 게 직업적 성취가 아님을, 열정도 언젠가는 소모되는 자원임을 깨닫기 시작한 20대 끝자락에서 꿈을 놓치고 오히려 안도했다. 꿈꾸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진작 알았다면 더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P4-시작하며(꿈 대신 행복을 발견했습니다))

 

 꿈꾸는 것과 행복은 다른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자신이 하는 일로 성공의 승부를 걸지 않을까. 그러다보면 주위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기 시작하고 시간에 쫓기게 되고 행복을 느껴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게 되기도 한다. 행복이란 그렇게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큰 것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소개하는 온천의 주소, 영업시간, 교통편, 입욕 요금과 시설 정보가 자세히 들어있다.

각 장에는 먹거리와 머물 숙소의 정보도 들어있고, 온천 명인에 도전한 이야기인 만큼 온천 축제의 정보, 건강한 입욕을 위한 안전 수칙 등 유용한 정보들이 가득하다.

  

 

찜질할 때도 이렇게 평화로웠으면 참 좋았을 것을…….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 또한 온천 명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할 수 없는 일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즐기는 것. 그러면서 내게 알맞은 입욕법을 알아가는 것. 온천 명인이 된다는 건, 그런 일들을 알아가는 게 아닐까? 130초의 시간은 실패의 시간이 아니라, 내게 가장 알맞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하자 마음도 홀가분해졌다. 이렇게 온천 명인에 한 걸음 더 다가간다.’(P39)

 

 명색이 온천 명인에 도전 중인데 뜨거운 물속에 오래 있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는 아니라고 자위한다. 나의 상태에 가장 알맞은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만큼의 행복을 느낄 수 있겠지. 일상에서도 자신을 향한 너그러운 태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무엇을 하다가 작심삼일로 끝났다고 해서 나는 안 돼, 라며 포기하지 말고 다시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한 과정에 집중하다 보면 하나씩 이루어가게 되는 것이다.

 

 

 

매일을 산다는 건 자신을 잃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쓰바라 온천은 전혀 다른 말을 걸어왔다.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강해질 수 있다고. 매일은 새롭게 도착하니까 언제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세상에 온천에게 이렇게 위로를 받는 사람도 있을까. 엉뚱해서 웃음이 절로 났다. 매일 새로 태어나는 물처럼, 꾸준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온천을 좋아해야지. 그렇게 매일을 맞이해야지.’(P198)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에서 제대로 살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작가는 매일 다른 온천을 만나면서 어느 순간 온천과도 마음을 공유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온천 또한 자신 속에 들어올 누군가를 기다리며 찰랑거리는 모습이 그려졌다. 창문에서 쏟아지는 햇살에 반짝반짝 빛을 내며 어서 들어오라고 유혹도 했을까. 아무도 없는 공간, 누군가의 손길로 말끔히 정리되어 있는 온천을 보며 편안한 위로를 받으며 매일을 새롭게 살겠다고 다짐한다.

 

차나 식사를 주문하면 온천은 무료 이용할 수 있는 등 개성 넘치는 온천이 많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몸을 씻는 것처럼 마음도 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적이 종종 있었는데, 이 순간만큼은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것 같았다.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시간. 온천에 홀로 간다는 것은 그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P310~311)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많은 사람들은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나도 그렇고.) 뭔가 하지 않으면 큰 일 나는 것처럼. 시간을 낭비하는 죄를 짓는 것 같은 마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저렇게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고 싶어진다. 물아일체가 된다는 것은 행복의 다른 말이 아닐까.

 

삶이란 건 거창한 게 아니라고. 온천에서 몸을 단정히 하는 일처럼, 그저 매 순간을 열심히 살면 된다고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온천을 만난 뒤, 평범한 매일 그리고 보통의 나를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하나 설명하기보다 질문자에게 되묻고 싶다. “좋아하는 일은 모두 특별하지 않나요?” 사랑에 빠지면 연인이 세상 누구보다 특별한 존재로 느껴지는 것처럼, 온천을 사랑하기 때문에 온천이 내게 대단할 뿐. (중략) 벳푸 온천 명인 도전 길에서 얻은 가장 값진 것은 상장도 수건도 아닌 언제든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리고 그건 누구에게나 유효할 거라는 희망도 함께였다.’(P317~319)

 

 삶이란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고 행복도 그리 거창한 게 아닌지도 모른다. 꿈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선택함으로써 행복을 찾은 작가가 달리 보였다. 탕 속에 들어가기 전에 깨끗이 몸을 닦는 것처럼 매 순간을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살면 된다는 것을, 평범한 매일과 보통의 자신을 조금 더좋아하게 되었단다. 무엇보다 언제든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요 근래에 좋아하는 일을 찾아 떠난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여러 권 읽었다. 오래된 가게를 좋아해서 도쿄 골목을 돌아다닌 작가 이야기, 미술관이 좋아서 일본 열도의 미술관을 탐방한 이야기, ‘꿈 없음에 만족하던 어느 날’ ‘벳푸 온천 명인을 알게 되어 온천 명인에 도전했다는 안소정 작가의 이 책까지. 공교롭게도 모두 일본 이야기다. 나 또한 일본에 관심이 아주 많은 터라 언젠가 일본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다. 이 도전 이야기는 좋아하는 것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것, 그것이 행복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알게 해 주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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