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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 하이에크 - 세계 경제와 정치 지형을 바꾼 세기의 대격돌
니컬러스 웝숏 지음, 김홍식 옮김 / 부키 / 2014년 3월
평점 :
가끔 책을 잘 읽고 어떤 식으로 리뷰를 써야 할 지 난감할 때가 있다. 책 내용이 나쁘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재미있게 읽은 책이 그럴 때면 과연 이 책에 대해서 내가 제대로 무엇인가에 대한 글을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된다. 아마도, 아직 내가 수준이 미진하다보니 그에 따라 리뷰를 쓴다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부담으로 작용해서 그런 덧 하다. 더구나, 이 책은 반납을 해야 하는 이유로 반납 전 날에 무려 350페이지나 집중해서 읽었다. 하루 종일 읽지는 않았지만 꽤 많은 것을 포기하고 읽었다.
반납은 하루 남았고 500페이지 중에 전 날에 100페이지를 읽어 포기하고 반납을 고려했지만 내 독서 역사에 그런 일은 극히 드문데다가 끝까지 읽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결국에는 읽었다. 책은 나처럼 경제에 문외한이 읽는 것보다는 경제관련 학부생(3학년 이상??)이나 대학원생이나 경제 관련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듯 하다. 무엇보다 케인스와 하이에크에 대해 어느 정도는 사전 지식이 있어야 보다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케인스가 누구인지 하이에크가 누군인지도 모르고 둘이 어떤 영향을 세상에 끼쳤는지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는 것도 좋겠지만 그 전에 어느 정도 알고 나서 이 책을 읽어야 훨씬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나처럼 제대로 기초부터 경제에 대해 공부하고 지식을 쌓지 못한 사람은 조금 버거울 수 있는데 책에서 두 사람의 사상에 대해 자세한 언급은 있지만 지속적으로 교체로 두 사람에 대한 비교와 살던 당시의 이야기가 진행되어 혼동스럽기도 하다.
케인스는 정부가 일거리를 창출하고 국민들이 먹고 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하이에크는 정부는 국민들이 알아서 하도록 최소한으로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이에크는 자신의 주장이 확고해서 절대불변에 가깝지만 케인스는 꼭 그렇지는 않다. 경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도 이야기한다. 신기하게도 그런 점은 두 사람의 인생에서도 묻어 나온다. 동성애를 포함해서 몇 십년의 나이 차이가 나는 부인을 둔 케인스와 옹고집스럽게 한 여자를 사랑하고 산 하이에크의 차이만큼이나. 재미있는 것은 하이에크는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진 후 비슷한 느낌의 여성과 결혼 한 후에 사랑하는 여자를 다시 만난 후에는 전처를 버리고 다시 결혼해서 살았다는 것이다. 물론, 전처와 전처의 자식들에게 양육비를 주려 수입때문에 고생했지만.
책은 케인스와 삶과 하이에크의 삶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세기의 대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미, 유명인사였던 케인스에게 하이에크가 후발주자로 도전하는 형국이였지만 점차 하이에크가 자신의 세력을 넓혀가며 케인스와 대등해진 것까지의 역사를 그리고 있고 현재까지 두 사람의 사상 대결이 정치와 경제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쳐 세상의 변화와 조정을 이루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다.
케인스와 관련된 인물들과 하이에크와 관련된 인물들까지 소개하며 두 진영이 서로 박터지게 싸운 경과를 시간순서에 따라 연대기순으로 소개한다. 거의 대부분 케인스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신자유주의 시대를 제외하면 대부분 케인스의 사상을 통해 정부가 다양한 방법으로 관계한 것을 보면 말이다. 또한, 신자유주의라고 해도 국가가 개입해야 할 부문은 개입했으니 말이다. 사회주의적인 요소라고 비판을 받는 다양한 제도를 각 국가가 활용한 것을 보면 케인스의 주장이 훨씬 시대에 맞는 방법이였던 듯 하다.
하이에크보다는 밀턴 프리드먼에 대해 신자유주의 사상의 거두로 알고 있었고 그 원류가 하이에크라는 정도를 알고 있었다. 그가 남미 국가에서 행했던 실험에 대한 글도 읽으면서 거의 무슨 악의 화두처럼 그려진 글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약간은 편향된 생각을 했던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결코 그런 인물은 아니였다는 판단을 했다. 비록, 신자유주의 사상을 열정적으로 주장한 인물이지만 케인즈에 대해서도 동의하고 공감했고 그의 이야기를 듣자니 역시나 신자유주의 사상을 자신의 입맛에 해석해서 이용한 놈들이 나쁘다고 본다.
특히, 현재 경제 문제들이 신자유주의 사상에 따른 경제 정책때문이라고 무조건 치부하는 것도 너무 편향된 일부의 주장과 선전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확실히, 이래서 사람은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사상과 인물과 세계에 대해 접해야 균형있는 시선을 갖게 되는 듯 하다. 하이에크가 자신의 동지들을 모아 일주일동안 회의를 할 때 밀터프리드먼도 함께 참여했다고 하지만 그 회는 비록 조용히 사라졌어도 그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이 결국에는 신자유주의 사상을 세상을 널리 전파한 사람들이다.
대체적으로 하이에크는 유연성이 부족하고 너무 자신의 주장을 외친 듯 하다.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한 것은 아니라도 다른 방면으로 볼 수도 있다는 점보다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생각으로 평생을 버티고 올곧게 산 듯 하다. 그가 결국 노벨상을 수상하며 자신의 사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입증을 했다고 할 수 도 있지만 그 보다는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중에 한가지를 세상에 알려줬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으면 뉘앙스가 하이에크보다는 케인스에 좀 더 우호적이고 가깝다는 느낌이다. 아마도, 그건 내 자신이 굳이 따지자면 - 듣보잡이 그런 것이 중요하지도 알아주지도 않을 성향이지만 - 케인스에 가깝다보니 그렇게 읽혔을 수도 있다. 물론, 아무리 제도와 정책과 경제뱡향을 설정해도 중요한 것은 인간의 욕심과 탐욕을 어떻게 컨트롤하느냐의 여부이다. 하이에크의 자유주의 사상은 결코 잘못된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니였다.
케인스가 주장한 정부의 참여와 개입도 그 당시의 시대상을 볼 때 정부라도 나서서 경제를 살리려 했어야지 손 놓고 있으면 안 되는 시절이였고 하이에크가 번성하던 시절도 따지고 보면 엄청나게 호황을 구가했다. 더 들어가면 그 전 시대에 했던 제도와 정책과 경제상황이 누적되어 다음 정부나 세대가 공을 누리거나 과를 짊어졌을 뿐이라 할 수도 있다. 결국에는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사상은 둘 중에 하나를 택하고 하나는 배제해야 할 물과 기름과 같은 성질은 아니라고 본다.
실제로, 현대의 모든 국가는 전적으로 하이에크적이지도 않고 케인스적이지도 않다. 적절하게 혼합되어 있고 그때 그때 경제상황에 따라 조금 더 앞에서 끌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시대에 따라 유행한 사상은 있기 마련이다.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세상을 뒤 덮으면서 아직까지 인류는 가장 적절한 사상과 제도를 만들지 못했고 이를 향해가는 과정중에 있다. 지금까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가장 이상적인 인류를 위한 제도로 정착되고 있는 중이고 이를 보완하고 공교하게 하는 것들중에 경제와 관련되어 - 경제는 정치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 두 사상은 충돌했고 서로 보완하면서 교합되는 중이라 본다.
경제를 공부하는 방법중에 경제사에 대한 역사를 읽는 방법이 꽤 좋다. 어떤 식으로 경제사상이 발전했고 인류가 그 사상에 반응했는지를 아는 것이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책들 거의 대부분이 1900년 대 초반에서 멈춘다. 현대의 사상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룬 책은 없다. 아마도! 케인스 하이에크는 그런 면에서 최근 50~60년 동안 지구라는 땅 덩어리위에서 벌어진 경제현상에 대한 두 진영의 치열한 사상적인 논쟁과 이를 국가들이 어떻게 시행했는지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교과서다.
이제 케인스와 하이에크는 둘 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위대한 사상가처럼 둘의 사상은 인류를 지배했고 휩쓸기도 했고 현재는 다시 인류의 역사에 녹아들어가고 있는 중이라 여겨진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최근 경제에 대해 배우기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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