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바로읽기
안재욱.현진권 엮음 / 백년동안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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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것은 정보를 얻기 위한 측면도 있다. 정보라는 것은 모르는 것을 알게되는 것도 있고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돼새김질하는 것도 있다. 어떤 사람의 주장을 안 후에 그 반대의 주장을 듣는 것은 균형잡힌 시선을 위해 필요하다. 이 세상에는 창작물에서 나오는 절대악도 절대선도 있을 수 없다. 누구나 다 적당하게 선하고 악하다. 똑같이 어떤 사상이나 주장이 무조건 옳거나 틀릴 수는 없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있을 것이다.

 

좀 곤란했다. 아직 읽지도 못하고 어떤 내용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피케티라는 저자의 '21세기 자본'에 대해 반론을 펼치는 '피케티 21세기 자본 바로 읽기'를 읽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반론을 펼치는 책을 읽으려면 최소한 피케티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알아야 하는데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책을 읽었으면 그나마 알지는 못해도 읽어 봤으니 다른 의견도 듣는 것이 혹시나 도움이 될 수 있으련만 그것도 아니다.

 

분명히 조목 조목 반론을 펼치는 내용이 전개될텐데 우습게도 정작 내용은 모르면서 반론만 받아들인다는 상황이 우습게 보였다. 이 책은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출시 되기도 전에 출판이 되었다. 이런 경우도 있을까? 엄청나게 열풍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나도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지만 이 책을 꼭 읽을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다. 읽게 되면 읽게 되는 것이지 정도다. 그것은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을까? 현재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는데 다들 제대로 읽는 걸까?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경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자신만의 뷰로 바라본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은 유행하고 있으니 일단 구입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본다. 책의 내용은 다른 경제학자들의 방대한 데이터에 비해 훨씬 더 충실할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읽지 않았으니 무슨 말인듯 못할까마는. 그렇게 이 책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바로읽기'를 읽게 되었다. 도대체,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반론한다는 내용을 읽는다는 상황이 우습게 생각되면서. 더구나, 책이 번역되어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반론을 펼치는 책이 나왔으니. 물론 지금은 책이 나와 직접 비교가 가능하다.

 

먼저, 든 생각은 얼마나 두렵고 현 상황을 타개해야한다는 강박감에 이렇게 서둘러서 책을 펴 내게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절박함(??)도 느껴졌다. 그냥 '그런 책이 나왔구나' 정도로 넘어갈수도 있는데 반론의 책이 서둘러 나온 것을 보면 말이다. 원문의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충실하게 각장의 서두에 원문의 내용에 대한 언급을 한다. 총 7명의 발췌자(?)가 나오는데 그들이 전부 서두에 원문의 내용을 간략하게 언급하며 반론이 시작된다.

읽으면서 나는 이 책에 나오는 반론을 읽는 것보다는 그 반론의 반론을 생각하며 읽었다. 청개구리처럼 괜히 이런 반론책을 펴내 더 주목받게 할 필요가 없을텐데라는 심정과 더불어 이 책에서 각자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학자들의 이야기를 경제도 모르고 전공하지도 않았고 경제책도 그저 가볍게 팝콘먹으면서 읽을 수 있는 정도의 책만 읽어 감히 무엇이 옳은지도 모르는 무지렁이지만 그 정도의 경제지식을 갖고 이들의 펼치는 주장에 대해 스스로 이상하다고 생각된 측면이 있었는데 그 점이 경제적으로 맞는지 여부는 나도 모르겠다.

 

이 책의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것인 피케티가 엄청나게 방대한 데이터를 갖고 연구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신기하게도 데이터를 갖고 주장한 사람에게는 데이터로 반론을 펼쳐야 하는데 신기하게도 철학으로 반론을 펼친다. 피케티의 철학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세금을 높게 매기면 다른 나라로 도망간다고 하는데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같은 세금을 매기자고 했는데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다른 학자는 전 세계적으로 세금을 매기면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이야기는 차라리 맞다.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워낙 많은 부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에 비해 전체적인 소득재분배통한 삶의 질 향상을 현재에 이룩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느냐는 주장을 펼친다. 여전히 원저를 읽지 않아 모르겟지만 이건 논점의 이탈아닌가? 지금 주장하는 것은 일부 계층의 과도한 부의 집중을 바로잡자는 이야기를 한 것인데 뜬금없이 과거보다 잘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좀 의아했다. 

 

부의 고착화로 인해 부가 계속 상습되는 것을 맞자고 이야기를 하는데 과거에는 신분사회로 날때부터 신분이 정해져 있지만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는데 이또한 과거에 신분사회였다는 것을 왜 이야기할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바로 지금 이런 상황이 있으니 이를 개선하자는 이야기를 하는데 과거보다 좋아졌으니 좋은거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너 어릴때는 한 푼도 벌지 못했으니 지금 월급은 100만원만 받아도 엄청난거잖아? 그냥 이것만 받고 열심히 해!!"라고 하면 어떨까?

 

이외에도 읽으면서 계속 이 책에서 나오는 반론을 나도 모르게 반론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약간 삐딱한 심정으로 읽게 되어 그런지도 모르고. 정작, 원저는 읽지 않고 이렇게 반론을 읽으니 오히려 원저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줬다. 읽으면서 나도 피케티의 주장이 너무 과격하고 실현불가능하다는 인식은 했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욕망은 제거하면 안 된다. 탐욕은 적당히 제재를 해야겠지만.

 

엄청난 부자들에게 징벌적 세금을 매기면 점점 이들의 부가 사라져 가난해진다고 하는데 이것도 들여다보면 부자들이 세금을 내서 줄어든 것으로 가만히 있나? 그들이 그 돈을 가만히 냅둬도 이자가 생기고 투자를 통해 원금 이상의 수입이 생긴다. 이런 점은 모른체하고 무조건 원금이 줄어든 것만 설명하는 것은 - 이에 대한 부연설명은 없다 - 의도적인 곡해로 보이는데 나는 이 책이 전반적으로 그렇게 읽혔다. 좀더 균형잡힌 시선으로 반론을 펼치기 보다는 무조건 결론을 낸 상태에서 이에 대한 반론을 펼치는. 그리고, 피케티가 방대한 자료를 조사로 한 발표를 했다면 이에 대한 반론도 그에 준하는 자료를 갖고 반론을 펼쳐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못했고 재미있게도 참고문헌에 자신이 쓴 논문이나 발표문이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자본수익률이 성장률보다 크다는 주장과 부자들에게 세금을 통해 공평하게 나눠주자는 주장이 현재 엄청난 관심을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는 듯 하다. 또한, 현재 자본에 대한 정의가 없다고 책에서는 계속 언급하는데 정말로 그런지도 궁금했다. 한편으로는 현재 한국 보수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을 알 수 있었다. 그냥 든 생각은 뭐가 이렇게 무서워서 서둘러 이런 책을 펴 냈을까?였다. 그런데, 책은 의외로 쉽게 써져있다. 솔직히, 반론내지 자신의 주장을 펼치려면 이 분처럼 하는 것이 훨씬 더 깔끔하고 균형잡힌 것이 아닐까 한다. 마왕의 서재 - http://blog.naver.com/pretty119/220127256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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