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보트 한 척에 의지해 한국과 일본을 오고가며 ‘보경 아저씨’에게 물건을 날라주며 살아가는 형구. 그런 형구를 마중 나와 늘 ‘여보세요’라고 인사하는 약간 모자란 것 같은 토오루. 어느 날 김치인 줄로만 알았던 짐이 마약이었음을 알고 놀란 것도 잠시, 곧 이번에는 친구의 딸을 배달하라는 주문을 받는다. 아무리 해도 이상했던 배달은 결국 자신의 돈을 가지고 도망한 채무자의 딸(지수)이었음이 밝혀지고, 그 딸은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주면 더 큰 돈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보경 아저씨를 배신하고 지수의 아버지를 찾기로 결심한 두 남자.

 

 

2. 감상평 。。。。。。。                   

 

     꽤나 익숙한 얼굴이었던 츠마부키 사토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눈물이 주룩주룩’, ‘P짱은 내 친구’ 같은 영화들에서 비중 있는 역할로 출연했던 배우였다. 이번 영화에서는 하정우와 호흡을 맞춰서 우리말 연기에까지 도전했는데 결과적으로 실패가 아니었나 싶다. 그의 한국어 연기는 시종일관 어색해서 전혀 감정이 실리지 못했다. 여기에 하정우의 연기력은 늘 그렇듯 딱히 만족스럽다는 느낌이 없다. 무슨 영화에서 무슨 배역을 맡든 그의 대사톤과 표정, 표현은 그냥 다 같아 보인다.

 

     연기력도 연기력이지만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구성이다. 장면 전환이니 스토리의 전개니 하는 부분에 있어서 거의 두서가 없고, 인물들은 그냥 다 따로따로 놀고 있다.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딸리니 결말 역시 흐지부지하다. 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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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십 수 년 전 교통사고로 딸이 죽은 후 대화가 끊어진 더그와 로이스 부부. 치유하지 못한 상처는 낫지 않고 점점 곪아만 갔다. 로이스는 그 뒤로는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했고, 더그는 밖으로만 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뉴올리언즈로 출장을 갔다가 스트립걸인 말로리를 만난 더그는 딸처럼 느껴지는 그녀를 돌보기로 결심한다. 당분간 집에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더그의 전화를 받고 그를 찾아가기로 한 로이스. 그렇게 치유는 시작되고 있었다.

 

 

 

2. 감상평 。。。。。。。                       

 

     살다 보면 이런 저런 이유들로 상처를 받을 때가 많이 있다. 당연한 일이다. 세상이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으니, 그 안에 사는 동안 원하지 않더라도 때가 묻고, 상처가 나고, 절망스러운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문제를 치유하는 일은 누구나 해 내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일일이 세어본 것은 아니지만, 최근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들 중에 이런 식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작년 말에 개봉했던 ‘래빗 홀’도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어떤 분은 9.11 테러가 일어난 지 10년이 넘어가면서 미국인들 사이에 추모와 치유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분석하던데, 일리 있는 이야기지만 어디 그것뿐일까. 사실 우린 늘 그렇게 상처에 대한 회복을 갈구하고 있지 않은가.

 

 

     영화는 먼저 내민 누군가의 손이 문제를 해결하는 시작이라고 옳게 지적한다. 상처를 안고 있는 더그가 내민 손은 말로리와 로이스를 변화시켰고, 그들은 점차 치유되기 시작한다. 물론 이유 없는 비난과 부당한 대우를 감내하면서까지 먼저 선을 내미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일단 그렇게 손을 내밀고 나면 막혔던 둑이 터지듯 해결의 물꼬가 열리는 게 인지상정이다.

 

     다만 모든 인간의 본성에 선한 무엇이 내재되어 있고, 적절한 정서적, 기술적 치유로 회복될 수 있다는 미국식 심리학의 전제들도 함께 보인다는 점은 집고 넘어가야겠다.(분명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일들과는 다른 데 말이다.) 인간에 대한 이런 낙관적 견해는 도리어 치유를 막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잔잔한 드라마다. 초반에 극 전체의 흐름을 잘 잡아낸다면 은은한 향을 즐길 수 있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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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2차 세계대전. 상호원조조약을 맺고 있었던 영국과 독일이 폴란드를 지원하러 올 것을 알고 있었던 폴란드 군은 열심히 맞서 싸웠지만 상황은 어이없게 정리되고 말았다. 독일과 폴란드의 땅을 나눠먹기로 비밀리에 동맹을 맺었던 소련군이 배후에서 공격해 들어왔기 때문. 소련군은 폴란드 군의 장교 2만 5천 명을 포로로 삼았고, 그들은 그렇게 끌려가 카틴 숲에서 아무런 재판 없이 처형되어 암매장된다. 이른 바 카틴 숲의 학살.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를 점령한 나치 독일군은 이를 볼셰비키의 만행이라며 폴란드의 남은 반절을 차지하기 위한 정보공작을 펴지만, 결국 독일군이 패하고 소련군이 진주해 들어오면서 공산정부가 세워지자 모든 일은 나치의 소행으로 발표된다. 그러나 학살 당한 이들의 가족들은 분명한 진실을 알고 있었다. 이 영화는 떠나간 남편과 오빠, 아빠를 간절히 기다렸던 가족들이 이야기다.

 

 

 

 

 

 

 

 

2. 감상평 。。。。。。。                    

 

     쇼비니즘과 코뮤니즘의 협공. 그 사이에서 죽어나가는 것은 폴란드 국민들뿐이었다. 양쪽 모두 국민보다는 국가라는 실체 자체가 모호한 집단적 개념을 더 우선시하는 사상체계다. 실체가 없는 것에 매달리니 실체가 있는 존재가 희생되는 당연한 상황. 사전에도 없는 국격 운운하며 국민을 비난하고 잔뜩 거드름을 피며 훈계하는 어떤 정부도 길게 보연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어떤 유형의 정부냐가 아니라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가이니 말이다.

 

     소련군 진주 후 폴란드 공산 정부는 카틴 학살에 대한 소련측의 범죄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소련과의 관개냉각을 우려한 서방의 민주주의 국가들도 학살에 대한 책임을 모른 척 하기에는 마찬가지였다(심지어 전후 영국과 미국은 소련 측의 주장을 전적으로 따른 국경선을 폴란드 정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관철시켰다). 결국 199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사건의 실체가 공식적으로 드러날 수 있었고, 죽은 이들은 그 때까지도 진짜 사인을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분명한 것은, 무슨 이유를 대든지 감추는 것이 많은 정부는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화 참 잘 만들었다. 초반에 상황과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성공했다면 두 시간 여에 달하는 영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영화 전체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감독은 비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연약한 사람들 대신, 회유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을 그려내고 있다. 멋진 연출 방식이다.

 

 

     덧. 2010년 공교롭게도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 내외와 정부 요인들이 카틴 학살 70년을 추모하기 위해 러시아로 가던 비행기가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고 말았다. 당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그들을 초청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개인 자격으로 가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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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어느 날 연주연습을 마치고 돌아오던 아내가 괴한에게 강간과 폭행을 당해 충격에 빠져 있는 윌. 병원 대합실에서 만난 사이먼이라는 남자가 그에게 의미심장한 제안을 한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제대로 처벌될지도 확실치 않은 법의 심판 대신 자신들이 그를 처리해주겠다는 것. 고통 받는 아내의 모습을 본 윌은 마침내 결심을 하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그가 요청하는 간단한 일들을 해주면 된다는 것. 그러나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평범한 고등학교 교사였던 윌은 도망자가 되고 말았다.

 

 

 

 

2. 감상평 。。。。。。。                    

 

     가끔 그런 일들이 있다. 정말 나쁜 놈들인데 법원의 판결은 솜방망이라서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아, 가해 당사자는 만족할) 그런 사건들. 파렴치범들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은 상상치도 못할 범죄와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도 권력의 힘을 빌려 빠져나온 후 두꺼운 얼굴을 들고 떵떵거리며 사는 놈들도 있다. 정의가 죽고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 이런 세상에서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은 ‘누가 가서 저런 놈들 안 잡아가나’ 하는 것. 바로 이 영화에 그런 집단이 등장한다. 빠르고 확실한 정의 실현.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 방식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정의의 기준을 단체의 지도자가 판단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 가장 기본적인 죄의 유무를 가리는 것부터 어느 정도의 처벌이 정당한 것인가 하는 것들이 철저하게 한 개인에게 달려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너무나 위험한 일이니까.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공명정대하면서도 틀림없이 심판할 수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여기에 조직의 변질은 너무나도 뻔히 예상되는 이야기였고, 영화 또한 다르지 않았다. 결국 부작용을 만들기 위해 시스템이 필요하고, 시간이 지나면 처음과 같아진다. 풀리지 않는 딜레마.

 

 

 

     그래도 뭐 영화화하기에는 괜찮은 소재였다. 다만 시나리오가 좀 더 치밀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딱히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했던 평범한 일들이 결국 모여 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발상 자체는 흥미를 불러일으켰지만, 영화 속 사이먼의 지시는 그저 어디로 가라는 식의 일방적인 지시일 뿐 전체적으로 큰 그림을 그려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도 몰래 집에 들어와 냉장고에 문자판을 재배열해 놓을 수 있는 수준의 조직이 평범한 고등학교 교사 하나를 못 잡아 그 애를 쓴다는 것 자체가 좀 어설프기도 했고. 구도는 잘 잡아 놓았는데 세부 묘사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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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 무스는 입학식 날부터 우연히 비보이들의 춤대결에 말려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루크와 ‘해적단’이라는 비보잉 그룹을 만나게 된다. 춤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렇게 함께 모여 새로운 가족을 이룬 그들. 하지만 라이벌 그룹인 사무라이는 그들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쓴다. 세계적인 비보잉 대회인 월드 잼에서 우승하는 것만이 모든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니 어쩌겠는가. 다음은 뻔하다.

 

 

 

2. 감상평 。。。。。。。                    

 

     처음부터 3D니 뭐니 하면서 역동적인 영상을 만들어 내는 데 골몰하느라 정작 스토리 면에는 신경을 쓰지 못한 영화다. 이미 두 편이나 제작되었던 시리즈물인데도 불구하고 스토리상의 발전이 거의 없다. 월트디즈니의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의 스토리 구조랑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나. 물론 반대로 영상 면에 있어서는 독특하면서도 역동적인 장면들을 자주 보여준다. 또, 영화 전체를 흐르는 강한 비트의 음악은 저절로 리듬을 타게 만든다. 딱 한 편의 극단을 선택한 영화.

 

 

     춤이라는 공통의 대상을 매개로 해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는 모습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가족의 개념이 점차 해체되어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사람에게는 연대라는 것이, 인간적이고 정서적인 교류라는 것이 필요했던 것.(영화 속 나탈리가 친 오빠보다 남자친구를 택하는 장면은 이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일종의 대안이 될 수도 있지만, 혈연과 같은 천부적인 무엇이 아닌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결합은 동시에 쉽게 해체될 수도 있다는 단점 또한 아울러 가지고 있다.

 

     한편, 전통과 권위가 부정되어가는 사회에서 결국 최종적인 기준이 되는 건 감정이었다는 점도 눈에 들어온다. 결국 그들을 하나로 묶어 준 것은 춤에 대한 열정, 즉 특정한 대상에 대한 공감이었다. 사실 춤이란 것 자체가 자신의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해 내는 가장 감정적인 예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물론 다행히 영화 속 주인공들은 그 감정과 열정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표출해 내는데 성공했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좀 더 많은 것도 사실인지라 이런 경향이 그닥 반갑지만은 않다.

 

 

 

     전체적으로 머리가 아닌 몸으로 볼 것을 강요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영화다. 좀 더 탄탄한 시나리오가 준비되지 않는다면 시리즈를 더 이어가기 힘들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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