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불법이민을 온 카를로스. 신분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 해봐야 막노동을 하거나 힘쓰는 정원사 정도였지만, 하나밖에 없는 아들 루이스만은 반듯하게 키우겠다는 것이 그가 사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과는 다르게 십대의 루이스는 그런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꾸 엇나가기만 한다.

가진 돈을 다 털고 동생의 돈까지 빌려 산 트럭으로 좀 더 나은 삶을 향한 꿈을 키워가지만, 어느 날 트럭을 도둑맞으면서 모든 꿈이 깨어져버린다. 아들과 함께 트럭을 찾아 나선 카를로스. 부자간의 대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2. 감상평 。。。。。。。                          

 

     불법이민으로 건너와 육체노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다. 불법이민자로 살아가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그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감독은 그들에게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 게 아니겠느냐는 대답을 넌지시 던진다. 뭐 우리들의 아버지들도 다 그렇게 일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물론 영화 속에서 중심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것은 불법이민자 문제라기보다는 부자간의 관계 회복이다. 불법이민 문제는 이 목표를 어렵게 몰고 가는 한 가지 요인으로 등장할 뿐이다. 금지되어 있는 줄 알면서도 아들에게 조금 더 나은 삶을 선물하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을 카메라는 그저 따라가고 있지만, 모성애와는 좀 다른 느낌을 주는 부성애만이 가지는 애틋함은 충분히 전달된다. 아버지랑 같이 가서 보면 좋을 것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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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체험 - 현대인이 잃어버린 영적 유산의 회복
케네스 리치 지음, 홍병룡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1. 요약 。。。。。。。             

 

     기독교 전통 안에서 하나님을 경험(이 책의 번역에 따르면 체험)할 수 있는 방식, 혹은 그런 삶의 태도나 위치 자체를 흔히 영성이라고 부른다. 가톨릭의 영향을 깊게 받은 성공회 사제인 저자는 이 책 안에서 다양한 방식과 영역에서 하나님을 체험하는 현장들을 역사적으로, 또 신학적으로 정리해나가고 있다. 책은 ‘하나님 체험’이라는 책의 제목에서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신비주의적 언명들이 아니라, 신구약 성경에 근거한 신학적 전제 아래, 초월자이시면서 내재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이해, 관상적 삶과 세례, 성찬, 나아가 사회 전체의 공의와 평화라는 주제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담겨 있다.

 

 

2. 감상평 。。。。。。。           

 

     처음에는 단순히 신비주의적 영성에 관한 책으로 생각했지만, 책이 담고 있는 풍성한 신학적이고 실천적인 내용들은 그런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다. 저자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세상 밖을 조망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적절하게 짚어내고 있다. 저자가 속한 신학적 전통과 다른 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일부 완전히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없진 않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기독교 영성(혹은 ‘경건’)에 관한 좋은 정리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 ‘영성’이라는 단어는 매우 오염되어 있다. 가장 일반적인 오해는 물질적이고 세상적인 모든 것에서 떠나 자발적인 고립, 혹은 하늘만을 바라보는 삶이라는 성속이원론적인 관점이고, 그 정확히 반대의 극단에는 삶의 모든 것을 특별한 의미에서 신성하게 바라보려는 일종의 범신론적 관점이 있다. 사실 정통적인 기독교는 그 가운데 어딘가에 있는데, 사람들의 성향은 쉽게 극단으로 치닫곤 한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아예 이런 데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 더 안타깝지만)

 

     영성을 ‘하나님을 바르게 향해 있음’으로 생각할 때, 이런 상황은 기독교 신앙에 꽤나 치명적인 위기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균형 잡힌 영성은 신앙이 엉뚱한 길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중요한 추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렇게 삶의 무게를 잡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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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추운 겨울의 어느 날, 버려진 개를 데려가기 위해 혜화가 철거촌으로 향한다. 그리고 비슷한 시간, 막 전역한 한수가 집으로 향한다. 고등학생 시절 만나 아이까지 갖게 되었던 두 사람이었지만, 갑자기 유학을 간 한수로 인해 이별하게 되었고 얼마 후 태어난 아이는 죽고 말았으니 반가운 만남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이가 아직 살아 있다는 한수의 말에 혜화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2. 감상평 。。。。。。。                         

 

 

     엄마와 나이차가 꽤나 많아 보이는 혜화였다. 그리고 얼마 후 영화를 보는 이들도 그녀 역시 입양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런 혜화였기에, 난산 끝에 태어난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집으로 입양을 간 것이었다는 한수의 말을 듣자 마치 엄청난 크기의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잠시 머릿속이 멍해졌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자신의 속마음을 말로 많이 꺼내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상황을 더욱 쓰라린 무엇으로 만들어간다. 세밀하면서 감성적인 연출과 연기가 돋보인다.

 

 

 

     버려짐, 혹은 뒤에 남겨짐이라는 감정은 사람의 전 존재를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불안하게 만드는 경험이다. 어디로부터 왜 왔느냐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은 존재의 당위를 잃어버리는 것이기도 하니까. 영화 속 혜화는 그런 경험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가해자가 되기도 했다는 사실로 인해 이중의 괴로움을 품고 살아간다. 무엇을 해도 잊어버릴 수 없는 그것, 모든 것이 그것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경험, 모두가 그 결과인 것만 같은 생각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혜화만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많은 사람들도 비슷한 불안에 빠져있지는 않나 싶다. 수십억 년 전 발생했을 거라는, 우연한 스파크로 인한 무기물들의 결합 따위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는 거니까. 시작에 관한 질문에 대한 이 만족스럽지 못한 답의 결과는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의 상실이었고, 자살이 죽음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어버린 오늘날의 상황은 그 한 가지 결론이기도 하다. 답이 없는 문제는 그 자체로 대단히 불안하고 위험하다.

 

 

 

     주연을 맡은 유아인의 연기력이 인상적이다. 이 길고 조용한 영화 자체를 이끌어가는 존재였던 그녀는 이 무거운 짐을 잘 끌고 나갔다. 혜화의 복잡한 마음을 그녀의 표정과 연기에 잘 묻어나왔다. 감독의 연출력도 한몫했을 것이고. 작은 연못 위에 점점 커져가는 잔잔한 파문을 보는 것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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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렐란드라 C. S. 루이스의 우주 3부작 2
C.S. 루이스 지음, 공경희 옮김 / 홍성사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약 。。。。。。。                    

 

     전작인 『침묵의 행성 밖에서』에서 말라칸드라(화성)에 다녀왔던 랜섬은, 이제 ‘페렐란드라’라고 불리는 금성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금성에 도착한 그는 태초의 순결함을 지니고 있는 초록빛 여인을 두고, 악한 영에 쓰인 웨스턴과 페랄란드라의 역사의 흐름을 두고 대결을 펼친다. 에덴동산에서 벌어졌던 충격적인 사건이 금성에서 재현된다.

 

 

2. 감상평 。。。。。。。                  

 

     이야기 전체에 에덴동산에서의 유혹, 대속(램섬, ransom)과 발뒤꿈치의 상함, 어두운 동굴 속에서의 사흘, 왕의 즉위와 같은 성경적 메타포가 가득한 작품이다. 저자인 루이스는 이런 신학적 주제들을 문학적 용어로 풀어내면서 매우 풍성하고 깊은 내용을 담아낸다. 흔히 조직신학 하면 딱딱한 용어들로 구성된 서술들의 집합 정도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원래 그런 걸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서술의 정확성을 기하려는 노력의 결과가 그런 식의 경향을 낳곤 한다. 신학이 아닌 영문학을 전공한 루이스는 이런 한계를 보다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이런 멋진 작품까지 만들어낼 수 있었다. 참 귀한 자산이다.

 

     이야기의 초반은 성경이 말하는 낙원(혹은 에덴, 새 예루살렘)에 관한 멋진 형상언어들로 가득해 설렘을 주고, 중반은 웨스턴과 랜섬의 논쟁을 통해 죄와 악의 문제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이끌어낸다. 극 후반부의 랜섬의 모험은 다소 이탈하는 느낌도 없진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수난과 승귀에 대한 훌륭한 이미지 묘사이기도 하다.(그래도 좀 덜 어울리는 느낌도 있다)

 

     참 닮고 싶은 작가다.

 

 

     덧, 이 책을 번역해 낸 번역자 공경희 님에게도 특별한 감사를 하고 싶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게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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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제법 규모 있는 장난감 회사를 운영하는 윌터 블랙. 어여쁜 아내와 두 아들까지 둔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다 잘 되고 있는 것 같지만, 중요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깊은 우울증이 그것. 오랜 기다림 끝에 아내조차 그런 그에게서 손을 놓고 말았고, 결국 집을 나온 그는 자살을 시도한다. 바로 그 순간 나타난 비버. 비버는 과거로 다시 돌아가려 하는 대신,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고 명령한다. 그의 말을 듣기로 하고 변신을 시작하는 윌터 블랙. 하지만 꼭두각시놀이를 언제까지나 계속 할 수는 없었다.

 

 

 

2. 감상평 。。。。。。。                           

     깊은 우울감에 빠져서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큰 괴로움을 주는 우울증. 단순한 우울감의 과장된 표현으로부터, 뇌 속의 특정 기능의 장애나 호르몬의 이상과 같은 내과적 질병, 혹은 영적인 문제 등 다양한 원인이 제시되는 만큼 복잡하고, 당연히 치유도 쉽지 않은 질병이다. 영화는 바로 이 우울증을 중심 주제로 삼고 있다.

 

 

     영화 속 비버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 아마도 융(Jung) 유의 (집단)무의식의 일종이 아닌가 싶다. 의식에 비해 억압되어 있는 무의식에 집중을 하고, 그것이 지시하는 방향을 정답으로 받는 것이 좋다는 이 해답은 ‘행복한 척, 다 잘되는 척 하며 평생을 사는 게 진짜 미친 것이다’라는 영화 속 한 대사에 잘 반영되어 있다. ‘척’으로 상징되는 전통적인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진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로운 삶을 살라는 매력적인 목소리다.

 

     하지만 그건 좋게 봐서 그렇다는 거고, 결국 이런 식의 메시지는 자신이 원하는 건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고 살아도 좋다는, 일종의 방종과 무질서를 초래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자아(自我)가 신(神)이 된 상태라고 할까. 그리고 인간의 사회적 차원은 그렇게 단순히 눈 한 번 감는다고 잊힐 만큼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영화 속 윌터가 결국 맞닥뜨리게 된 한계가 바로 이것이었다.)

     마침내 윌터는 비버로부터도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를 진정으로 치유로 이끈 것은 결국 가족(다른 말로 하면 인간관계, 혹은 사회적 정황이 함께 하는 격려와 회복)이었다. 영화 후반부에 가서야 드러나는 진짜 주제다. 조금 진부해보이긴 해도, 원래 진리는 오랫동안 가까운 곳에 있어온 것들일 가능성이 높다. 새롭다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모든 걸 무너뜨리고 새롭게 변화시킬 비버가 아니라 가족이다.

 

 

     조디 포스터나 맬 깁슨의 연기력이야 딴죽을 걸만 한 레벨이 아닌 게 분명하고, 감독까지 맡았던 조디 포스터의 연출력도 괜찮다. 볼만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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