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2차 세계대전 초기, 독소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은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에 진주하면서 졸지에 나라를 잃게 된 폴란드 사람들. 하지만 그들에게는 또 다른 시련이 남아 있었다. 폴란드 동부를 점령한 스탈린 독재 치하의 소련군은 통치에 협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반동분자로 몰아 시베리아 수용소로 보내버렸고, 그렇게 한 번 들어가면 생사를 알 수 없게 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어느 날 밤, 일곱 명의 수용자들이 감시병들의 눈을 피해 탈출을 감행했고, 자유를 찾아 수천 km를 걷고 또 걷는다. 마침내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도착한 인도.

 

 

2. 감상평 。。。。。。。                   

 

     영화 속 인물들이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살아야 하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의 내용은 원한과 보복, 분노보다는 용서와 회복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비록 고문에 의한 것이지만 자신을 반동으로 고발할 수밖에 없었던 아내의 사정을 모두 이해하고, 자신이 돌아가지 못하면 평생 동안 죄책감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며 반드시 돌아가서 그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남편의 이야기와 마지막 장면에서의 재회는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영화적인 차원에서는, 일단 무대가 저 북쪽 시베리아에서부터 고비 사막을 거쳐 험난한 히말라야를 지나 티벳과 인도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지역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일단 지루한 감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눈밭에서만 헤맸던 ‘더 그레이’와 좀 달랐던 점이다. 물론 이 영화도 시간이 지나면서 인물들이 하나씩 죽고 이탈하게 된다는 전통적인 공식을 따르고 있긴 하고, 주연들을 제외한 보조 출연자들의 연기력은 앞서의 이유도 있고 해서 약간의 어색함을 감안해야 할 것 같다.

 

 

     깊은 어둠 속에서는 작은 불빛도 주변을 환하게 만들어주는 것처럼, 극도로 위협적인 상황에서 서로를 향한 배려와 의리가 돋보였던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이 영화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숫자 몇 개의 조합으로, 혹은 화학물질들의 결합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을 가지고 있음을 확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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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교도소에서 막 나온 전직 폭력배 미첼. 이제 손을 씻고 제대로 살아보려고 하는 그에게 전직 영화배우인 샬롯의 경호를 하는 일이 들어온다. 과거에 경험한 상처 때문에 좀처럼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던 샬롯은 조금씩 미첼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미첼 역시 그런 샬롯과 함께 영국을 떠나 LA로 같이 가기로 한다. 하지만 미첼을 마음에 들어 하는 폭력배 두목은 그를 데려오기 위해 각종 위협과 회유를 반복한다. 마침내 먼저 미국으로 출발한 샬롯. 미첼은 자신과 연관된 복잡한 일들을 마무리하러 나선다.

 

 

2. 감상평 。。。。。。。                     

 

     그냥 90년대 홍콩 느와르를 그대로 본 따 만든 것 같은 느낌의 영화. 일단 기본적인 스토리 구조가 단순한데, 여기에 인물들의 성격이나 영상도 평범하니 영화 전체에서 딱히 특별함을 느낄 수 없었다.

 

     일단 주인공들에게서 별로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인물들의 행동에 개연성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 있으니까. 영화의 주제 면에 있어서도, 당연히 교훈 같은 건 없고, 감동을 줄만한 여지도 부족해 보인다. 수틀리면 총질하는 전형적인 폭력배 이야기일 뿐.

 

     처음부터 끝까지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만 주었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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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시간과 거슬러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점프)을 가지고 있는 샘. 경찰도 해결하지 못한 미제 사건이 현장으로 돌아가 단서를 찾아 알려주는 대가로 보상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는 그에게, 어느 날 한 여인이 찾아온다. 샘의 전 여자친구인 레베카의 동생이었다. 비참하게 살해된 그녀를 죽인 진짜 범인을 찾아달라는 것. 처음에는 거절했던 샘은 결국 옛 연인을 위해 점프를 시도하지만 좀처럼 실마리는 잡히지 않았고, 점프를 계속할수록 도리어 죽어가는 사람만 늘어날 뿐이었다. 그리고 결국 알아낸 범인은 충격적이게도 그의 여동생이었다.

 

 

2. 감상평 。。。。。。。               

 

      타임 슬립, 혹은 점프라고 부르는 시간 거스르기는 영화의 단골소재니까 딱히 새롭지는 않다. 여기에 과거에 어떤 작은 변화를 일으키면 그것이 점점 큰 파문이 되어 현재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도 당연하게 따라오는 부소재다. ‘백 투 더 퓨쳐’ 시리즈나 일본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 시리즈가 그 대표작인데, 이 영화에서 사용되었던 모든 소재는 이미 다 등장했던 것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를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건 스토리를 한 없이 꼬아서 지속적인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것, 혹은 비주얼로 승부하는 것 정도가 있겠는데 이 영화는 후자 쪽은 아니었다. 다만 스토리를 꼬는 데 집중하다보니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추측하고 상상할 만한 단서조차 남기지 않아서, 그냥 주인공과 함께 계속 범인의 뒤만 쫓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아 그런 거였어?’ 하는 좀 허탈한 결론을 맺어버렸다는 감이 있다. 일종의 ‘규칙’을 지키지 못한 영화라고나 할까.

 

     뭐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재미없기만 했던 건 아니다. 누구든지 과거로 돌아가서 다른 식으로 결정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한 번쯤 해봤을 텐데, 영화는 그런 아쉬움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으니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도 이런 걸 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들을 떠올리면서 영화를 본다면 나쁘지 않은 수준은 된다.

 

 

 

 

     영화 속 주인공 샘에는 자신이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자만이 전제되어 있다. 점프를 계속 할수록 일은 점점 꼬여만 가고, 죽어가는 사람은 늘어나고, 어떻게 해서든지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는데도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들이 자연을 비롯한 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능력으로 이 세상에 낙원을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해버리기 시작한 현대인들의 착각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문득 든다. 물론 샘의 의도는 선했지만, 좋은 의도가 얼마든지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거니까. 불치병을 치료하겠다고 인간 배아를 찢어발기는 일을 얼마든지 해내는 것도 인간이다.

 

     때로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자신이 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도 괜찮은 삶의 방식이다. 두 어깨에 온 세상의 운명을 걸고 사는 건 한 사람이면 족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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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세 편의 단편영화들을 모아 만든 옴니버스 영화다. 유기성 폐기물을 재활용한 사료로 인해 발생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좀비로 변해버리고 만다는 내용의 <멋진 신세계>, 한 사찰에 잡무를 담당하기 위해 보내진 인간형 로봇이 깨달음을 얻게 되자 이를 제거하기 위해 나타난 로봇 회사 직원과 승려들의 토론을 다룬 <천상의 피조물>, 실수로 깨뜨린 아버지의 당구공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더니 당구공 모양의 거대한 운석이 지구로 날아오게 되었다는 <해피 버스데이> 등 기발한 상상력에 현실에 대한 풍자가 더해져 한편의 블랙코미디가 완성되었다.

 

2. 감상평 。。。。。。。                    

 

     기대했던 것보다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사람들의 말에 동의한다. 확실히 그렇긴 하다. 많지 않은 제작비에 감독들이 원하는 영상을 만들어내기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뭐 수백 만 달러가 들어간 헐리웃 영화들의 컴퓨터 그래픽이나 거대함을 바라고 본 건 아니니까. 각각의 내용마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시작을 했지만, 충분히 아이디어가 전개되고 결말까지 완성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좀 더 강하게 든다.

 

 

     각각의 작품들은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불안의 한 요소를 담고 있는데, 종합해 보면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었던 기술과 과학의 발전에 위험한 부분은 없는가, 즉 인류의 발전이 무한적으로 지속 가능한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영화 속 대사 중 하나처럼 ‘그냥 한 번 부서질 때가 된 건 아닐까’하는 매우 우연적이면서 본능적이기도 한 떨림. 그게 녹색운동과 같이 현실성을 띄고 구체적인 실천운동으로 표현될 수도 있는 거고, 이 영화처럼 상상력의 힘을 빌려서 주의를 환기시키는 모습으로 나올 수도 있는 거고.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꼭 영화의 완성도가 낮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일반적 관점으로 보면 B급 영화로 분류해야 할 듯하다. 서구 사회에서는 수백 년 동안 이루어진 급속한 경제적, 과학적 발전을 수십 년 만에 겪어내면서, 그들보다 더 물질에 대한 숭배, 인간 이성과 가능성에 대한 맹신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 의미가 있다. 요컨대 자신이 운전 실력을 과신해서 술 몇 잔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고 운전대 앞에 앉은 사람에게, 음주운전으로 발생한 사고와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을 담은 영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할 수도 있겠다. 꼭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경각심은 일깨워 줄 수 있을 테니까.

 

     감독들의 다음 영화에서는 이런 불안감을 좀 더 분명하게 다뤄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단, 어설프게 가르치려 하거나 과한 겉멋을 부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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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하라 - 박노자, 처음으로 말 걸다
박노자.지승호 지음 / 꾸리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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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러시아에서 출생해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다시 노르웨이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교수일을 하고 있는 독특한 이력의 저자가 한국 사회를 중심으로 작금의 전 세계적인 정치, 경제 상황에 관한 사회주의적 해석을 제시한다. 저자가 보는 상황이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아서인지, 논지는 조금 강경하고 그래서 선명해 보인다.

 

 

2. 감상평 。。。。。。。           

 

     사회주의 원리에 좀 더 충실하려는 저자가 보기에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좌파적 정치성향을 제대로 띄고 있는 정당은 진보신당뿐이었다. 그래서 지난 총선에는 비례대표 후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물론 처음부터 당선권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출마로 조금이라도 진보적 의제를 공적 정치무대로 이끌어오는 데 도움이 된다면 하는 생각이었단다. 근데 지난 선거를 통해 최소한의 정당유지를 위한 득표마저 실패해 결국 선관위에 의해 진보신당이 해산되어버렸으니 그의 한국에 대한 전망은 좀 더 어두워졌을까.

 

 

     일단 저자의 현실에 대한 분석은 날카롭다. 사회과학적인 분석은 자못 굳건한 이론적 토대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다만 개인적으로 자본가든 노동자든 누가 권력을 쥐던 유토피아가 이 세상에 이뤄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내가 보기엔 여전히 이상주의적인 모습이 엿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소련의 국가 자본주의가 분명히 실패했고 끔찍한 결과를 낳았음을 인정하면서도(169), 소련이 몰락하지 않았다면 세계 곳곳의 상황이 지금보다는 훨씬 좋았을 것(157)이라는 전망을 하는 건 한편으로 이해가 되면서도 논지에 따라 근거는 얼마든지 가져다 붙일 수도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게 만든다.

 

     박사학위까지 따고 교수로 일하고 있는 저자이기 때문인지 엘리트주의적 냄새가 나는 것도 있다. 한 가지 예일 뿐이지만, 숙제철폐운동을 한다고 해서 교육격차가 나아질 거라는 생각은 전혀 엉뚱한 이야기고(아마 그 시간에 소득이 감내할 수 있는 여지 안에서 각각 다른 학원을 갈 것 같다), 한국 사회에 있어서 소위 노빠들을 단지 영웅적 개인에 대한 심취 정도로 평가절하 하는 것도 저자의 틀 안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해석이긴 하지만, 그건 대중에 대한 지나치게 가벼운 해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분명 인터넷 해적방송 같은 책임감 없는 뒷담화 수준보다는 훨씬 수준 높은 논의다. 일단 자기반성을 할 줄은 아니까. 국가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도 좋았다. 다만 내 교양수준이 낮아서인지 여전히 ‘어떻게’에 대한 길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불가피한 폭력을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좌파적 가치는 선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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