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 - 예수와 함께 통과하는 인생의 풀무불
팀 켈러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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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이라는 주제는 오래 전부터 사람들을 고민하게 만들었다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이라든지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상실과 슬픔은 우리를 크게 흔든다이 문제는 또한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도 큰 벽으로 다가온다특별히 기독교에서는 바로 이 문제즉 악과 고통이 가득한 세상과 선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를 두고 특별한 논리적 건축이 진행되기도 했다바로 신정론(theodicy)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결적으로 신정론은 실패한 것으로 밝혀졌다우선 그것은 우리가 삶에서 겪는 모든 경험들을 다 설명할 수 없고고통의 상황에서 신의 입장을 변호하는 일은 좀처럼 먹혀들어가지 않는 일이다(심리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을 고통이라는 주제로 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플란팅가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신정론과 변론 사이를 구분한다. ‘신정론은 악과 고통이라는 현실을 선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교리에 맞추려는 시도이다필연적으로 고통에도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 있다는 식으로 전개되는데 이게 좀처럼 와 닿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인간이 하나님의 계획과 생각을 모두 알 수는 없는 법이니까.


     반면 변론은 악과 고통의 문제가 선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과 양립할 수 없는 게 아니라는 걸 입증하는 데 중점을 둔다앞서의 주장과 비슷해 보이지만 전체적인 구조가 확연히 다르다신정론이 선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악을 허용하는가를 입증해야 하는 책임을 방어 쪽이 진다면변증에서는 왜 하나님과 악의 존재가 양립할 수 없는가를 공격자측이 입증해 내야한다저자가 이 책에서 시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변증이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첫 번째 부분은 고통이라는 문제가 다양한 철학과 신앙들 가운데서 어떻게 설명되고 있는지그리고 기독교 이외의 사상에서 이 문제를 설명하는 데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두 번째 부분은 앞서 설명한 기독교적 변증’ 부분이다이 부분은 흔히 생각하는 신정론과는 다른 식으로 진행된다고통에 관한 기독교적 설명의 핵심은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고통 속으로 들어오셨고먼저그리고 함께 그 고통을 겪어내심으로 우리에게 살 길을 보여주셨다는 점이다.


     세 번째 부분은 이제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고통을 받아들이고 극복해 나가야 하는지에 관한 내용이다고통을 무조건 피해야 할 것으로 여기는 현대적 관점과 달리성경은 하나님과 함께 그 자리를 걸어가기를 요구한다저자는 고통 속에서 우리의 감정과 지성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세심하게 안내한다.

 


     개인적으로는 이제까지 읽어봤던 팀 켈러의 책들 중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다책의 전체적인 구성도 탄탄하고담겨있는 내용도 기억해 둘 만한 부분이 많아 보인다조금은 지루해 보이는 초반의 예비적 고찰도 전체의 완성도를 놓고 보면 꼭 필요한 부분이었고어떻게든 하나님을 변호하려는 입장(신정론대신에고통과 하나님 존재의 양립 가능성을 설명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인상적이다오히려 일반적인 주제들을 담고 있던 3부가 조금은 밋밋하게 느껴질 정도그래도 고통의 시간이 다가오기 전 미리 지적인 준비를 해 놓을 필요가 있다는 제안 같은 건 흥미로웠다.


     고통에 관한기독교적 답변의 백과사전이라고 해도 좋을 듯한 책어떻게든 서둘러 고통을 우리에게서 지워버리는 것이 능사라고 생각하는 현대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조금은 묘한(하지만 곱씹어 보면 인정하게 되는만족감이 떠오른다고통이라는 주제에 관해 다른 책들의 설명들에 만족하지 못했다면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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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대학 강의는 

학생들을 자유롭게 해주어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도취적 반동주의의 핵심 요원으로 만들어

순간의 유행을 좇는 변덕스러운 공론가에게 

언제라도 지령을 받을 태세를 갖추게 한다.


- 낸시 피어시완전한 확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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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 (양장본) IVP 모던 클래식스 9
짐 월리스 지음, 정모세 옮김 / IVP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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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 월리스의 책을 세 권 째 읽는다첫 번째는 하나님의 정치였고두 번째는 부러진 십자가그리고 세 번째가 이 책인 회심이다시간적으로는 이 책이 1981년에 출판되었다는 이 책이 훨씬 더 먼저지만(2005년판 새로 쓴 서문에 하나님의 정치』 출판 홍보에 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순서가 썩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하나님의 정치는 매우 인상적인 책이어서 더불어 작가에 대한 관심을 더 불러일으켰고그 덕분에 비슷한 주제를 담고 있는 나머지 두 권의 책도 읽게 되었으니까.


     잘 알다시피 짐 월리스는 믿음의 고백을 중요하게 여기는 보수적 기독교인들과 사회적 참여와 행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진보적 기독교인들 양쪽으로부터 동시에 호불호가 갈리는 인물이다한쪽에서는 이 양편을 적절하게 통합해냈다는 호평을 받는가 하면(나도 이쪽에 속한다), 다른 편에서는 월리스가 어쭙잖게 자신들의 믿음을 깎아내린다는 불평을 사기도 한다하지만 그가 실제 삶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적어도 책으로만 보면 제대로 균형을 잡고 있는 것 같다이 책도 마찬가지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건 회심이다그리고 이 회심은 죄로부터의 돌이킴(회개)으로 시작해서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정의된다저자는 반복해서 믿음의 역사성을 강조하는데이는 믿음이 추상화형해화 되어버린 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반박이다저자에 따르면 믿음이란 단지 개인의 신념이 바뀌는 것에만 머물 수 없다그것은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


     책은 오늘날 세계에 만연한 불의그 중에서도 빈부격차의 문제를 지적하면서그리스도인들이 이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신학적으로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를 차근차근 지적한다교회는 이 문제에 관한 제대로 된 비전을 세워야 하는데이 비전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교회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그러나 잊혔던것이다.


     책 말미에서 저자는이 모든 현실적인 관심과 도전과 함께 전통적인 예배와 기도찬양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이건 기독교의 근원에 해당하는 것으로이런 의식들을 통해 기독교인들은 새로운 힘을 얻고앞서 언급한 하나님 나라 비전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는 것.

 


     오늘날 교회는 개인주의와 물질주의라는 덫에 깊이 걸려있다교회가 듣고 있는 많은 비난들은 대개 이 두 문제와 얽혀 있다아마도 가장 큰 문제는교회가 이런 문제들과 너무 달라붙어서 이것이 문제라는 의식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경우일 것이다월리스가 깊이 느끼고 있던 미국식 복음주의의 문제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그래도 오늘날에는 이 문제와 관련해 좀 더 나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물론 이건 확증편향일 수도 있다계속해서 그 쪽에 관련된 사람들의 생각과 글들을 읽다보면 생길 수 있는). 다만 코로나19 같은 위기 상황에서 교회가 가지고 있는 공동체와 나눔이라는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을 텐데아쉽게도 이 부분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좀 더 젊은 세대가 주류가 되면 상황이 달라질까 싶지만의외로 젊은이들도 완고한 개인주의자인 경우가 많으니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


     “교회가 세상에 어떤 질문도 던지지 못할 때복음전도 역시 쇠퇴한다는 문장이 인상적이다세상을 너무나 닮아버린 교회는 더 이상 아무런 질문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다그렇다고 의식적으로 무조건 세상과 반대로만 행하는 청개구리가 되라는 말은 아니다우리의 몸이 딛고 있는 땅을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다만 그 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은 세상에서 배울 것이 아니라는 건 기억해야 한다.


     기독교의 총체적 복음을 담은 고전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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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1-05-29 0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한국읙 경우 대형 교회의 사적 대물림이 가장 큰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노란가방 2021-05-29 07:53   좋아요 0 | URL
네 그 문제도 있죠.
크게 보면 그 역시 개인주의와 물질주의의 결과가 아닌가 싶어요.
 
카페에서 하나님께 묻다 - 기독교를 둘러싼 까다로운 질문에 대한 속 시원한 답변들
폴 코판 지음, 홍병룡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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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소위 기독교 변증서변증이란 단어는 일상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데변호라는 좀 더 익숙한 말과 교차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그러니까 기독교 변증서란기독교를 변호하는 책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일단 이 책을 그렇게 정의해 놓고 보면 조금 애매한 면이 있다변증이란 기본적으로 기독교를이런 저런 이유로 공격하는 이들을 향해 하는 말이다그들이 하는 주장의 근거를 허물어뜨리거나기독교의 입장이 타당하다고 말하는 내용이어야 한다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기독교를 부정하는 이들에게 하는 말이기에그들도 동의할 수 있는최소한 적극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근거들을 사용해야 한다이 책의 가장 아쉬운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저자가 변증이라고 이 책에서 전개하고 있는 논리들은상당부분 동료 기독교인들에게 하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오만하고 독선적이라는 공격에 대한 변증을 하는 4장에서 저자가 사용하는 근거들은 자만이라는 말의 정의를 다루는 첫 번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성경 안에서 그 대답을 찾고 있다심지어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은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는 주장(67)은 약간 황당하기까지 하다하나님의 명령과 성경의 명령을 정교하게 분리하는 특별한 기준을 저자가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이런 식의 설명이 과연 기독교의 비판자들에게 어느 정도나 설득력을 지닐까.


     결국 이 책은 처음부터 기독교에 동의하고 있거나최소한 우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기독교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자신의 신앙을 지킬 수 있는 기독교 내적인 방어논리를 제안하기 위해 쓰인 것 같다는 느낌이다그러고 보면 이 점에 있어서 C. S. 루이스의 작업이 얼마나 훌륭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새삼 떠오르게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서 제시되고 있는 주장과 그 결론에 동의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오히려 대부분의 내용에 대해서는 저자와 같은 입장이다저자의 주장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있는 독자에게는 지극히 합리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내용들이니까. ‘기독교적 합리성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말이 아니라기독교회의 증언과 믿음을 증거로 인정한다면 합리적으로 나올 수 있는 결론이라는 의미다다만 법정에서도 그렇지만증언의 신빙성은 그 증언을 하는 사람의 신뢰도에 달린 문제니까증언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또 변증에 성경 내적 논리를 사용할 수 없다는 뜻도 아니다다만 그 논리가 왜 성경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유효한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데도덕법에 관련된 일부를 제외하고이 책에는 그 부분이 부족하다.


   단동성애적 행위동성결혼 등에 관한 몇 개의 장들에서는 성경 이외의 증거들을 차근차근 제안하고 있기도 하다성경의 전쟁십자군지하드 등의 차이를 두드러지게 그리는 몇 개의 장은 너무 논리 쪽에 치우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통계나 수치에 집중하기도 했고.(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리들은 기독교인에게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싶었다.)


     책 표지에 기독교를 둘러싼 까다로운 질문에 대한 속 시원한 답변들이라고 부제를 적어놓았는데그리 속 시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그만큼 변증이라는 게 쉽지 않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그래도 필요한 사람에게는 유용하게 읽힐 수 있을 만한 책책의 내적 논리구조는 나름 탄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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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의미 - 역사적 교회에 관한 신학적 탐구 로완 윌리엄스 선집 (비아)
로완 윌리엄스 지음, 양세규 옮김 / 비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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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지나간 날들과거역사라는 단어는 매우 중요하다기본적으로 기독교는 끊임없이 과거(특별히 그리스도와 관련된 일들)를 회상하도록 그 구성원들을 독려하는 신앙이기도 하고무엇보다 수천 년 전 쓰인 책을 근거로 신앙의 체계를 구성하는 조직이니까그 안에 담긴 역사적 정황과 배경문화관습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신앙이라는 것도 허술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기독교인들은 역사에 대해 무지하다.(비단 이게 어디 기독교인들만의 문제일까 싶긴 하지만여기서 말하는 무지는 단순히 과거에 대한 어떤 정보와 지식의 미달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그 일들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하는역사관의 문제를 말한다대부분의 사람들이 학창시절부터 역사를 그저 암기과목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회에서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갖는 일이 쉽지 않으리라는 건 짐작이 간다.

 


과거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나온 이 책의 원제는 “Why Study the Past?"이다과거를 왜 공부해야 할까라는 뜻인데우리말로 번역된 제목도 나쁘지 않게 어울린다저자인 로완 윌리암스는 특별히 기독교인들에게 과거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그리 길지 않은 이 책 안에 차곡차곡 담아냈다.


저자는 많은 기독교 역사 서술이 현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를 기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지적한다이런 생각으로 역사를 기술하다보면그것을 쓰고 있는 나야말로 온전한 정통이라는 식의 결론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저자에 따르면 이런 시도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차이를 무시하는잘못된 방식이다이런 방식의 역사는 아무리 쓰고읽어도 우리 자신에 대해그러니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게 전혀 없다.


물론 기독교인들은 역사를 기록할 때 자신들이 과거를 완전히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그래서 이전보다 훨씬 더 잘 아는’ 우리가 과거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식으로생각할 수도 없다우리의 과거는 현재의 일부로 존재하기 때문이다좋든 싫든 우리는 과거의 사건들의 연장선상 위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특별히 우리는 오래 전 기독교인들과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존재로 서 있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하다.


저자는 우리에게 일종의 균형감각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그리스도인들에게 역사란지난 시간 속에서 자유로이 행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그로부터 은혜를 얻을 수 있는 자리이다우리는 자신이 과거로부터 바로 튀어나온 존재처럼 스스로의 정통성을 과시하거나과거를 뛰어넘는 특별한 존재인 양 무시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역사를 보는 기독교인들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겸손함이어야 할 것 같다과거와 오늘 사이에 놓여 있는 연속성과 차이를 인정한다면고작 몇 가지 기준으로 과거를 다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신과거를 좀 더 낯설게’ 볼 필요가 있다그들의 고민은 오늘 우리의 고민과 분명 달랐다이 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그들이 했던 고민들을 살핌으로써 얻을 수 있는 많은 유익도 그 자리에서 사라질 테니까.


또 과거는 그저 지난 일일 뿐 오늘의 신앙과는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생각할 수도 없다비록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분화되었지만초기 기독교회의 합법적인 계승자는 오늘의 교회일 수밖에 없다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동일한 분에 대한 신앙 고백과 찬송으로 이어지는 끈이 있다이 연장선에서 우리는 여전히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물론 무조건적인 추종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얼마 전 내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고대 기독교회와 경쟁했던 이단들에 관한 영상을 몇 개 업로드 한 적이 있다그다지 피드백이 많지 않은 채널임에도이 영상 시리즈에는 몇 개의 답글이 달렸었는데많은 수가 고대 이단들이 더 정통적이었으며 오늘날 교회가 이탈해 있다거나단지 고대의 권력게임에 진 것이 이단일 뿐이라는 식의 음모론을 담고 있었다.

 

애초에 팩트 체크부터 안 된 근거 없는 주장들은 딱히 대꾸할 가치도 없지만한두 개의 잣대로 과거를 다 설명할 수 있다는 식의 가벼운 생각은 대화를 길게 해도 답답할 뿐이다한 가족이 있는데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자기야 말로 이 가족의 진짜 구성원이고나머지는 가짜라고 주장한다면우리 가족들은 그의 말을 믿고 호적을 파서 나가야 하는 걸까누가 우리 가족인지는 우리 가족이 가장 잘 아는 일이다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건그 땅을 보유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주장할 수 있는 거지어디서 굴러들어온 녀석들이 정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모두 제대로 된 역사관의 부재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역사가기독교의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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