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근동 신들과의 논쟁
존 D. 커리드 지음, 이옥용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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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고고학의 발전으로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다양한 표현들, 이야기들과 유사한 인근 문명의 기록들이 발견되었다. 흥미로운 건 대다수의 사람들이 성서의 기록이 그런 인근 지역의 신화들에서 파생된, 혹은 표절된 아류기록이라고 본다는 것. (이 책에 의하면 심지어 후대에 기록된 인근 기록이 이전에 기록된 성서의 기록의 원조라고까지..)

 

     이 책의 저자는 좀 다른 방향에서 문제를 본다. 물론 성서의 기록자들이 인근의 신화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그들의 기록에 인근 문화의 요소들이 일부 담겨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엔 분명한 목적이 있었는데, 그건 성서 기록자들의 기록들과 인근 기록들의 차이점에서 발견된다.

 

     저자는 성서의 기록자들이 의도적으로 외부의 이야기와 표현들을 가져왔으며, 이는 성서의 하나님의 우월함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성서 이야기 안에서 이방의 신들은 의도적으로 약화되어 있고, 인근 문화에서 그들의 신에게 돌려지던 능력과 영광은 성경 속에서 오직 한 분 하나님에게만 속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른바 논쟁신학적 목적이라는 것.

 

     책의 주요 내용의 대부분은 이른바 창조 이야기부터 홍수 기사, 요셉, 고난을 극복하는 영웅 등 다양한 이야기 등을 통해 논쟁신학이 어떤 식으로 실제 전개되는지를 보여준다.

 

 

2. 감상평 。。。。。。。

 

     흥미로운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이다. 성서와 인근 고대 문명의 신화, 기록들 사이의 유사성을 두고 주로 성경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던 논의에, 일종의 전환지점을 만드는 데 성공하지 않았나 싶다. 저자는 양측의 공통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차이점에서 특별함을 찾으려 하고 있고, 이는 막연히 사상의 진화론적 전제를 고수하면서 별다른 증거도 없이 하나가 다른 하나로 변했다는 식으로 판단하는 것보다 좀 더 학문적으로 보인다.

 

     다만 책이 뭘 말하려는지 주제 파악은 일찌감치 끝났는데, 정작 본문에 들어가서도 앞서의 설명했던 주제를 계속 반복하는 느낌이 들어 아쉽다. 물론 앞서의 주장을 실제 본문들 가운데서 입증하기 위해 예를 제시하는 부분이기에, 주제의 반복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 권의 책으로 엮는다면, 주제의 발전을 보여주거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대감을 갖게 만들 만한 내용의 확장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새로운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이 꼭 완성적일 필요는 없으니까. (물론 그렇게 된다면 더 좋겠지만) "이방의 신화가 이스라엘의 사실이 되었다"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한 번 읽어볼 만한 책.

 

 

​덧. 번역은 대체로 괜찮게 되었는데 88페이지 표의 가장 마지막 단의 표현이 거슬린다. “야웨가 노아를 축복한다는 문장인데, ‘축복복을 빈다는 뜻이다. 비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그 소원을 듣고 복을 내려주는 존재가 필요하고. 그렇다면 야웨가 그보다 더 높은 존재에게 복을 빌어서 노아에게 내리도록 한다는 뜻인데, 이건 저자가 그토록 강조하던 고대 이스라엘의 유일신 사상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표현이다. 영어의 bless를 번역할 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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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편견
랜돌프 리처즈.브랜든 오브라이언 지음, 홍병룡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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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아무런 편견 없이 중립적으로 읽을 수 없다. 자신이 타고난 문화와 역사, 지리와 환경으로부터 온 온갖 관점들이 성경을 읽는 우리의 눈에 안경이 되어 영향을 끼친다. 이 책은 바로 그 부분에 집중하면서, 우리가 결코 맨눈으로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편견들은 다양하다. 관습과 인종, 언어, 개인 문화 대 집단문화, 명예-수치 관념 대 옳고 그름, 시간의 흐름에 대한 다른 감각, 규칙을 지키는 것과 관계를 세워가는 것 사이의 중요도 문제, 미덕과 악덕에 대한 다른 기준, 자기 중심적 읽기 등이 그것이다. 저자들은 이것들을 수면 위’, ‘수면 바로 아래’, ‘수면 아래 깊숙한 곳이라는 소제목에 따라 분류함으로써, 알아채기 쉬운 것부터 어려운 것까지를 배열한다.

 

     결론부에서는 어떻게 하면 이런 문화적 편견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 지에 관한 몇 가지 조언들이 덧붙여져 있다. (물론 이 내용은 각 챕터마다 이미 길게 설명되어 있기도 하다.)

 

  

2. 감상평 。。。。。。。

 

     기독교의 시작은 동양의(정확히는 동방) 한 작은 도시에서부터였다. 오랫동안 신학의 중심지 역시 소아시아를 비롯한 동방이었다. 하지만 중세가 되면서 동방은 이슬람교의 무대로 변했고, 자연히 신학의 중심지도 서방으로 옮겨갔다. 그 이후 오늘날까지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렇게 신학은 서방 중심, 나아가 서양 중심으로 연구되어왔다. 이 과정에서 신학연구의 방법은 물론 목적과 방향까지도 서양인들의 사고를 따라서, 그들의 문화와 역사와 환경의 영향력 아래서 이루어진 것도 당연한 일이다.

 

     ​기독교가 서양인들의 종교였을 동안에야 딱히 불편함이 없었을지 모르지만(물론 이건 틀리지 않았다는 말과는 다르다), 신의 미래라는 훌륭한 연구서에서 저자인 필립 젠킨스가 말한 것처럼 오늘날 기독교는 서구사회 이외의 지역에서 훨씬 더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양 중심의 신학적 사고, 성경의 이해 역시 도전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책의 공저자 중 하나인 랜돌프 리처즈는 이런 지역적 편견에 근거한 성경읽기에 대한 도전을 자주 경험할 수 있는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그는 인도네시아에서 8년 동안 신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 덕분에 이런 좋은 책이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 모두가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닐 터. 자신의 편견을 편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훨씬 더 많으니까. 여러모로 이 책의 기획과 내용은 저자 자신의 특징과 성품이 많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책은 성경을 대하면서 흔히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편견들을 잘 정리하고 있다. 물론 목차에 나온 순서가 이 문제들이 우리의 내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전체적으로 읽기기 편한데, 그건 경험에서 나온 적절한 실제 예가 자주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저자가 직접 인도네시아에서 경험한 예들은, 그 당시 당황했을 저자의 심정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다

 

     한국교회는 분명 아시아의 한 부분이지만, 그 시작부터 미국교회의 영향을 깊이 받아왔다. 때문에 이 책에서 말하는 서양적 편견을 상당부분 지니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종종 보수성을 자랑하는 일부 기독교 단체가 성조기를 들고 광장으로 나오는 걸 보면 확실히 그렇다) 물론 동시에 동양적 정서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도 없기에 또 어떤 부분에서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서양적) 편견도 있었다. 덕분에 책을 읽으면서 묘한 재미가 느껴진다.

 

 

     결국 기독교는 성경 중심의 종교다. 그렇다면 성경을 제대로읽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일 게다. 그런데 종교적 권위라는 것은 사람들을 쉽게 독선적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자신의 관점과 해석이 모든 것을 꿰뚫는 절대적인 진리인 양 주장하고 나서는 것.(대개 이단이라는 단체들이 그런 식이다)

 

     내가 아는 것, 내가 이해하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의식이 없이 성경을 읽으면, 그건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도 망하게 만들 수 있는 위험한 도구가 된다. 때문에 무엇보다 성경을 읽으며 겸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교훈도 이것이 아닐까 싶다.(물론 세세한 지적들도 그냥 넘기지 말자.)

 

     성경을 아예 처음 읽는 사람보다는, 어느 정도 읽어보았고, 좀 더 깊이 읽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하다.

 

 

     . 책 말미에 붙어 있는 미주는 본문을 읽으면서 그냥 넘어가기엔 아까울 정도로 꽤나 알차다. 바로 앞 추천도서 목록도 마찬가지다.

 

     2. 홍병룡 선생님의 좋은 번역에 늘 감사하고 있다. 다만 고대 로마 인물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쓰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그것도 바로 윗줄에는 라틴어식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말이다. 220페이지에는 옥타비우스 아우구스투스와 싸운 앤소니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앤쏘니는 '안토니우스'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좋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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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아이 (양장) - 정답 없는 삶 속에서 신학하기
스탠리 하우어워스 지음, 홍종락 옮김 / IVP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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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이 시대 영미권에서 교회에 관한 탁월한 견해를 제시하고 있는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쓴 자서전이다.

 

     텍사스에서 조적공(벽돌을 쌓는 건축노동자)이었던 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 스탠리는 자신도 아버지와 친척들의 직업을 물려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조적공의 일을 어느 정도 배우고 해 오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는 건축현장이 아닌 학문계에서 자신의 관심사를 발견하고, 결국 대학에서의 교직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하우어워스의 평생을 둔 관심 중 하나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었다. 애초의 남부 특유의 감리교적 전통 아래서 교회 생활을 시작했지만, 자신이 정말로 신앙을 갖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했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을 했던 것. 그는 가톨릭, 메노나이트, 복음주의 교파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동료와 분위기 아래서 일해 왔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신앙을 찾아가게 된다.

 

     또 한 가지 관심사는 윤리학이었다. 사실 하우어워스는 윤리신학자라기 보다는, 신학적 (소양이 깊은) 윤리학자라고 불리기를 더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기독교 윤리학이 필연적으로 세상의 실제적 문제들을 다뤄야 하고, 이 과정에서 정치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과감한 평화주의를 채택했던 그는, 반전운동이나 인종차별 철폐, 성차별 거부에 (평화주의적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나섰고, 이는 보수적인 이들로부터 미움을 사는 원인이 되기도 했었다.

 

     책에는 하우어워스가 만나고 영향을 주고받은 수많은 사람들(그리고 수많은 책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정말로 사람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그의 아내 앤의 이야기.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발현된 그녀의 정신질환은 하우어워스가 거의 평생을 지고 가야했던 십자가였다.

 

 

 

 

2. 감상평 。。。。。。。

 

     한 사람의 일생을 보거나 읽는다는 건, 어떤 형태로든 감동을 준다. 특히 그 기록이 억지로 잘 보이려고 꾸며대거나,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한 변명으로 일관된 형편없는 책과 거리가 멀다면 더더욱.

 

     하우어워스는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을 솔직하게 내어 보이고 있다. 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거의 매순간 열성적으로, 그리고 진실하게 살기 위해 애써왔던 한 사람의 삶은 자연스럽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특히 진리를 향한 그의 오랜 탐구의 여정들, 지적인 면과 삶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들,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신의를 지치기 위해 애써왔던 모습 등이 인상적이다.

 

 

     평생을 배우고, 새로운 것에 열려 있는 인물은 많지 않다. 자기의 것을 완고하게 고수하면서 그 자리에 머물려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특히 대학에서 가르치는 교수들의 경우 나이가 들수록 젊은 시절 주장했던 것에 교조적으로 매달리거나, 어느 순간 고민 없이 반복만 하는 경우가 많다.

 

     하우어워스는 좀 다르다. 그에게서는 자주 새로움이 느껴지는데, 아마도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향한 탐구를 그치지 않았던 삶의 태도와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넘어가는 대신 끝까지 문제를 파고들어가려 했던 성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주류가 되기보다는 자신의 삶에 (지적으로나, 말과 삶의 일관성에 있어서) 정직하고자 했던 이의 삶에선 참 배울 점이 많다.

 

 

     책 속엔 하우어워스와 관계된 수많은 사람들(상당수는 학자들)과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책들의 목록이 잔뜩 등장한다. 덕분에 두께가 제법 두툼해졌지만, 이 부분 또한 관심을 둔 사람이라면 좋은 참고 목록이 될 듯하다. 본격적으로 하우어워스의 작품세계에 발을 내딛으려고 한다면 꼭 딛고 넘어가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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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바로 읽기 SU 신학총서 1
크레이그 바르톨로뮤 지음, 김대웅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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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보통 성경의 잠언은 다양한 실제 생활 속 지혜를 담은 격언들의 모음집으로 여겨지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내용이 한두 구절로 이루어져 있는 짧은 어구들이고, 이들 사이에 밀접한 연관성도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크레이그 바르톨로뮤는 그렇게 잠언을 단편적으로 읽는 것은 바른 읽기 방식이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잠언이 하나의 통일된 주제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 창조의 질서를 따라 사는 것이 지혜이다를 지니고 있으며, 이를 위해 전체가 잘 구조화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잠언에 담겨 있는 다양한 실생활 영역에 관한 내용들은,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끌고 들어왔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창조 안에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본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잠언은 절대적인 진리체계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결과적으로 모든 면에 있어서 자신감을 상실하고 불안해져버린 현대인들에게, 삶의 모든 영역에서 확실한 기반이 존재하며, 나아가 그 기반 위에서 살아가는 태도가 지혜로운 것임을 도전하는 책이다.

 

 

2. 감상평 。。。。。。。

 

     흔히 단편적으로만 이해하게 되는 잠언을, 하나의 큰 구조를 가진 전체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흥미롭다. 실제로 잠언을 읽다보면, 이런 내용이 굳이 성경에 들어가야 하는가 싶은 생각이 드는 구절도 많고, 그런 구절들은 다른 내용들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인지 쉽게 파악도 되지 않는다.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언을 전체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 보게 만든다.

 

     다만 왜 잠언을 그렇게 읽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보다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그냥 저자의 선입관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할 테니까. 다만 아쉽게도 이 작은 책은 그 입증 과정을 설명하지는 않고, 반 르우웬의 책을 참고하라고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총서라는 이름을 붙이고 다이제스트 같은 느낌의 책을 내기로 기획한 거라 어쩔 수 없는 부분.

 

 

     책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해 볼 부분은 잠언에 등장하는 일상의 여러 영역들을, 하나님의 섭리와 그분의 뜻이 성취되어야 할 공간으로써 제시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부분이다. 일종의 기독교 세계관적 관점으로 잠언을 읽는 방식인데, 저자의 이력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리고 하나 꼽자면, 잠언에 즉각적인 인과응보적 관점을 취하고 있는 듯한 구절들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이해도 눈이 간다. 저자는 그것들이 개별행동에 대한 직접적 결과가 아니라 인격적 인과율’, 즉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는 인격과 습관들에 관한 내용이라고 말한다. 뭐 약간 반론의 여지도 들여다보이지만, 나름 신선한 설명.

 

 

     간략한 내용이지만, 잠언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데 도움을 줄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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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죽고 예수와 살다 - 종교 게임을 끝내고 사랑을 시작하다
스카이 제서니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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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는 모든 사람들 안에 있는 종교심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떤 이들은 종교가 마치 만 악의 근원인 것처럼 비난하지만, 정말 종교만 없어지면 그 모든 문제가 다 사라질까? 저자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봤자 종교적인 악을 비종교적인 악으로 대체하는 수준 이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53) 실제로 우리는 스탈린과 모택동, 크메르 정권 등 20세기 가장 압제적인 체제가 무신론을 기초로 해 있음을 보아오지 않았던가.(52)

 

     문제는 종교가 아니라 종교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책에서 저자가 꼽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소비주의와 사명주의다. 전자는 신을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존재로 전락시키는 태도이고, 후자는 신을 위해 위대한 일을 행함으로써 자신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말한다.

 

     저자는 기독교가 담고 있는 핵심은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 회복에 있다고 단언한다. 다른 무엇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써 신을 갈망하는 것에서, 그분과의 관계 자체에서 누리는 안정감과 채워짐으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vs 소비주의) 이런 삶은 특정한 삶의 형태로만이 아니라, 모든 곳에서 모든 시간에 모든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다.(vs 사명주의) 

 

 

2. 감상평 。。。。。。。

 

     물론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가치보다는 눈에 보이는 무엇을 대체재로 삼으려 해왔으니까. 눈이 밝은 이들은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질을 정확히 지적해 내곤 했다. 꼭 이 책에 나온 소비주의와 사명주의가 아니더라도, 교회 안에는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세상의 흔적이 적지 않다.

 

     저자는 사람들이 종교를 이런 식으로 변질시키는 주된 동인을 삶을 안전하게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을 꼽는데, 아주 인상적인 지적이다. 사실 인류의 역사란 그렇게 삶을 통제하기 위해 온갖 지혜를 모아온 과정을 가리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강렬한 욕망은 모든 것을(종교마저)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 버렸다.(하지만 그 결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심각한 기아문제와 환경오염, 빈부격차와 차별이다)

 

     애초부터 통제가 안 되는 것을 통제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요컨대 엉뚱한 데서 해결책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 데나 열심히 땅을 판다고 석유가 나오지 않는 것처럼, 애쓴다고 해서 늘 답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서 그분이 등장한다. 그분은 우리의 방식대로 일하시지 않지만, 그분께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참된 위안과 안정감을 부여해 주신다. 그분 곁에 왔던 사람들이 그것들을 얻었고, 그분 자신은 죽음마저 흔들지 못할 완벽한 신뢰와 안정감을 누리셨다. 그분을 조작하려는 시도는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좋다. 다만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자신의 삶을 맡길 때, 원하던 것을 (어쩌면 미처 원하지도 못했던 것을) 얻을 수 있다. 복음의 모든 양상을 다 설명한 것은 아니지만, 그 핵심 중 일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핵심적 가치를 딱 담백하게 표현하고 있는 책. 책의 내용을 어느 정도 안다고 해서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는 건 아니다. 루이스가 말했듯, 좋은 책은 몇 번을 읽어도 좋은 법이니까. 주변에 권해줘도 좋을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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