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의미 - 역사적 교회에 관한 신학적 탐구 로완 윌리엄스 선집 (비아)
로완 윌리엄스 지음, 양세규 옮김 / 비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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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지나간 날들과거역사라는 단어는 매우 중요하다기본적으로 기독교는 끊임없이 과거(특별히 그리스도와 관련된 일들)를 회상하도록 그 구성원들을 독려하는 신앙이기도 하고무엇보다 수천 년 전 쓰인 책을 근거로 신앙의 체계를 구성하는 조직이니까그 안에 담긴 역사적 정황과 배경문화관습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신앙이라는 것도 허술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기독교인들은 역사에 대해 무지하다.(비단 이게 어디 기독교인들만의 문제일까 싶긴 하지만여기서 말하는 무지는 단순히 과거에 대한 어떤 정보와 지식의 미달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그 일들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하는역사관의 문제를 말한다대부분의 사람들이 학창시절부터 역사를 그저 암기과목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회에서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갖는 일이 쉽지 않으리라는 건 짐작이 간다.

 


과거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나온 이 책의 원제는 “Why Study the Past?"이다과거를 왜 공부해야 할까라는 뜻인데우리말로 번역된 제목도 나쁘지 않게 어울린다저자인 로완 윌리암스는 특별히 기독교인들에게 과거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그리 길지 않은 이 책 안에 차곡차곡 담아냈다.


저자는 많은 기독교 역사 서술이 현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를 기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지적한다이런 생각으로 역사를 기술하다보면그것을 쓰고 있는 나야말로 온전한 정통이라는 식의 결론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저자에 따르면 이런 시도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차이를 무시하는잘못된 방식이다이런 방식의 역사는 아무리 쓰고읽어도 우리 자신에 대해그러니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게 전혀 없다.


물론 기독교인들은 역사를 기록할 때 자신들이 과거를 완전히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그래서 이전보다 훨씬 더 잘 아는’ 우리가 과거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식으로생각할 수도 없다우리의 과거는 현재의 일부로 존재하기 때문이다좋든 싫든 우리는 과거의 사건들의 연장선상 위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특별히 우리는 오래 전 기독교인들과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존재로 서 있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하다.


저자는 우리에게 일종의 균형감각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그리스도인들에게 역사란지난 시간 속에서 자유로이 행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그로부터 은혜를 얻을 수 있는 자리이다우리는 자신이 과거로부터 바로 튀어나온 존재처럼 스스로의 정통성을 과시하거나과거를 뛰어넘는 특별한 존재인 양 무시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역사를 보는 기독교인들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겸손함이어야 할 것 같다과거와 오늘 사이에 놓여 있는 연속성과 차이를 인정한다면고작 몇 가지 기준으로 과거를 다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신과거를 좀 더 낯설게’ 볼 필요가 있다그들의 고민은 오늘 우리의 고민과 분명 달랐다이 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그들이 했던 고민들을 살핌으로써 얻을 수 있는 많은 유익도 그 자리에서 사라질 테니까.


또 과거는 그저 지난 일일 뿐 오늘의 신앙과는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생각할 수도 없다비록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분화되었지만초기 기독교회의 합법적인 계승자는 오늘의 교회일 수밖에 없다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동일한 분에 대한 신앙 고백과 찬송으로 이어지는 끈이 있다이 연장선에서 우리는 여전히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물론 무조건적인 추종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얼마 전 내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고대 기독교회와 경쟁했던 이단들에 관한 영상을 몇 개 업로드 한 적이 있다그다지 피드백이 많지 않은 채널임에도이 영상 시리즈에는 몇 개의 답글이 달렸었는데많은 수가 고대 이단들이 더 정통적이었으며 오늘날 교회가 이탈해 있다거나단지 고대의 권력게임에 진 것이 이단일 뿐이라는 식의 음모론을 담고 있었다.

 

애초에 팩트 체크부터 안 된 근거 없는 주장들은 딱히 대꾸할 가치도 없지만한두 개의 잣대로 과거를 다 설명할 수 있다는 식의 가벼운 생각은 대화를 길게 해도 답답할 뿐이다한 가족이 있는데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자기야 말로 이 가족의 진짜 구성원이고나머지는 가짜라고 주장한다면우리 가족들은 그의 말을 믿고 호적을 파서 나가야 하는 걸까누가 우리 가족인지는 우리 가족이 가장 잘 아는 일이다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건그 땅을 보유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주장할 수 있는 거지어디서 굴러들어온 녀석들이 정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모두 제대로 된 역사관의 부재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역사가기독교의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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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풍요 - 돈 음식 몸 시간 장소 그리고 그리스도인
월터 브루그만 지음, 정성묵 옮김 / 한국장로교출판사(한장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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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물질성에 관한 기독교적 입장을 다루고 있다세상물질과 같은 용어들은 성경에서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하나는 하나님에게 적대적인내지는 그분의 뜻에 저항하는 반대편에 있는 것들이라는 의미이고이 경우 그리스도인은 서둘러 그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권장된다그러나 이 용어들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데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구성하는 물리적인 것들이다이 경우 그것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대상이고우리가 함께 회복되어 가야 할 무엇으로 여겨진다.


     문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두 가지 개념을 혼동혹은 적절히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대개 그들은 첫 번째 의미로의 세상만 알고 있고무엇이든 세상과 관련된 것이라면 피하고 멀리하는 것을 좋은 것으로 여긴다.(물론 실제 삶에서는 그렇게 살지도 않는다오히려 매우 세상을 사랑하는 것처럼 살 때가 많다.) 당연히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


     이 책은 소위 기독교 일각의 그런 잘못된 환상을 교정하고나아가 우리에게 밀접한 물질세계를 어떻게 구속해 나갈 수 있을지에 관한 탁월한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저자는 이 책에서 돈음식시간장소라는 다섯 가지 개념을 탁자 위로 끄집어내고이것들에 관한 오해와 바른 이해를 차근차근 풀어낸다.

 


     돈과 관련해 저자는 비생산자의 범주를 실직자에서투기와 정당한 몫 이상의 과도한 보수를 받으며 살아가는 이들에게로까지 확장시킨다이 기준에 따르면 일반 노동자들의 수백 배의 보수를 받는 관리자들은 모두 비생산자들이다그들이 실제로 뭔가 만드는 일은 전혀 없으니까어떤 식으로든 많은 돈을 벌면 그만이라는 생각은기독교적 재물관에 들어올 자리가 없다.


     음식은 또 어떨까저자는 단순히 많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어떻게 생산되는가 하는 과정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얼마나 윤리적으로 생산되고 있는가도 물질성을 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자세에서 중요한 부분이다또 음식을 누구와 나눌 것인가도 빼먹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고.


     몸과 관련해서도 꽤 흥미로운 내용들이 보인다저자는 관계는 무시한 채 성애에만 집중하는 왜곡된 문화를 지적하기도 하고우리의 몸이 위치한 정치적 상황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도 한다나아가 불멸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 부활을 기대하는 좋은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저자의 말처럼 교회는 이 세계에 대한 좀 더 제대로 된 이해가 필요하다코로나 상황 가운데서 교회는 더 이상 그들만의 세계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현실 세계 위에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게 해 주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목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들의 현실 인식은 안쓰러울 정도이고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세상에 관심을 두지 않는 고고함이 기독교의 본질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이들도 보인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비둘기처럼 순결할 뿐 아니라뱀처럼 지혜로울 것을 기대하셨다특별히 우리와 밀접하게 닿아있는 물질성에 관한 바른 이해는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이 작은 책은 이 작업을 시작하는 데 충분한 도약대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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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역사와 만나다 - 민족의 경전에서 인류의 고전으로 비아 만나다 시리즈
야로슬라프 펠리칸 지음, 김경민.양세규 옮김 / 비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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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담하지만 알찬 책을 만났다스테인글라스의 한 부분을 담아 놓은 듯한 표지도 예쁘다(이 출판사 책을 만들 줄 아는 것 같다). 저자의 이력도 독특하다예일대 신학대학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기도 했고이후에는 같은 대학교 역사학과 석좌교수를 지냈다루터교회 목사로 사역을 하기도 했지만말년에는 정교회 쪽으로 적을 옮겨서 목회직을 수행하지 않다가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단지 저자의 이력만 독특한 게 아니다책의 내용 역시 흥미롭다이 책에서 저자는 성경의 역사를 다룬다서론에서 저자는 아주 기초적인 질문을 던지는데 그 답부터가 재미있다. ‘성경이란 무엇인가정확히 말하면 성경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개신교인들에게는 구약과 신약 66권이 있을 것이고가톨릭교인들에게는 여기에 외경이 몇 권 더해질 것이다또 유대교인들에게는 앞서의 두 범주에 속한 사람들이 구약이라고 부르는 히브리어 성경, '타나크(책에서는 타낙이라고 표기한다)‘를 가리킬 것이다국제기드온협회에서 보급하는 성경에는 신약에 시편이 함께 실려 있다(그들이 이 책들만 성경이라고 생각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성경의 범위는 역사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변해왔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지속적으로유대교와 가톨릭개신교라는성경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 교파의 관점을 두루 섭렵해 담아내고 있다애초에 말로써 전해지던 메시지가 어떻게 기록으로 옮겨졌고기록된 말씀이 번역되고새롭게 기록되고그에 대한 해석과 주석들이 진행되고 하는 과정이 실감나게 묘사된다.

 


     흥미로운 건 성경에 대한 유대교인들과 그리스도교인들의 해석이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유사한 면이 있다는 지적이다두 종교 전통 모두 아브라함과 모세 같은 인물들을 특정한 민족과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만 관계된 이들이 아니라모든 인류의 조상이자 신앙의 전달자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145-146).


     이 외에도 책은 성경에 관해 생각해 볼 다양한 주제들을 잔뜩 담고 있다신약 성경의 구약인용은 상당부분 70인역을 참고한 것으로 보이는데, 70인역의 그리스어 번역과 히브리어 성경의 그것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을(그리고 신약성경이 구약성경의 히브리어적 의미와 다른 의미에 기초해 논리를 전개하는 것을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기록된 성경과 그것을 전수해 준 공동체의 전통은 어떤 관계에 있는지왜 개신교인들은 가톨릭교인들과 외경에 대한 관점이 다를까 등등하나하나 흥미로운 지적들이다.

 


     같은 성경을 공유하면서도 좀처럼 마음을 합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얼마나 큰 골이 놓여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우리들은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멀리 서 있는 걸까혹 그게 현실이라면그래도 괜찮은 걸까어쩌면 우리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유산을 근거로 조금씩 대화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정리를 해 낸 책책장에 꽂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다시 봐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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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시대와 한국교회의 과제 - 한국교회, 공교회성과 공동체서 그리고 공공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망한다
이도영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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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에 이끌려서 손에 든 책이다코로나19는 지난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했고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적은 피해만 입었지만그래도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1년이나 이 사태를 겪으면서 나름 대응체제를 마련하고는 있지만충분한 대응여력이 없는 자영업자들 사이에는 피해가 누적되고만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대응능력이 부족한 업장(?)들 중 하나가 바로 교회다!(물론 교회는 단순히 수익을 얻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은 아니다.) 코로나 사태가 1년이 넘어가는 동안에도 여전히 현실에 대한 제대로 된 파악 없이, ‘곧 나아지겠지’,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라는 희망회로만 돌리고 있다하지만 사태는 그렇게 쉽게 나아질 것 같지 않고최근에는 짜증을 부리는 단계에 접어든 것 같기도 하다.(물론 그 마음이야 알겠지만어디 교회들만 고통을 감내하고 있던가.)

 





     책은 코로나 팬데믹이 불러온 사회적인 변화를 분석하고교회가 여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그리고 교회는 어떻게 이 난국을 돌파해 나가야 하는지를 제안한다.


     1장에서 저자는 코로나 팬데믹을 해석하는 기독교계의 관점이 지나치게 신정론에 치우쳐져 있다고 말한다신정론이란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신앙적 고백을현실 속 악의 파괴성 앞에서도 여전히 유지시키기 위한 신학적 작업이다그러나 이건 교회 안신앙을 가진 이들에게 내밀 수 있는 답변이지교회 밖 사람들에게 할 말은 아니다. C. S. 루이스 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번역작업이 필요한 건데안타깝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이런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


     저자는 이 시점에서 필요한 건 신정론이 아니라 재난 상황에서 유토피아적 공동체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사실 세상이 욕하는 건 하나님이 아니라 교회다신정론을 강조하며 하나님을 변호하려고 애쓰는 건 애초에 초점을 잘못 맞춘 것이다우리가 이 상황에서 말 도 안 되는 정치논리에 편승해 투덜대는 대신 제대로 희망을 보여주었다면 교회를 향한 눈이 이렇게 악화되었을까?


     2장부터 4장은 각각 성부성자성령을 각각 정의와 생태평화에 대응시켜 이 시대가 제기하는 과제에 어떻게 교회가 대답해야 하는가를 제안하는데문제분석과 인식에 좀 더 많은 부분이 할애되어 있고그에 대한 해결책 부분은 조금 빈약한 느낌이다분석도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책이나 신문을 찾아본 사람들은 충분히 알만한 내용들인지라 새로움도 덜하다.


     이데올로기의 전환(우에서 좌로의 가치 이동)을 다루는 5장으로 넘어오면 사회분석서로서의 이 책의 정체성이 좀 더 두드러진다개인적으로는 교회가 이런 부분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2~5장에서 분석하고 있는 문제들이 코로나19라는 전염병으로 인해서 새롭게 나타난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이건 책의 내용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내용은 적절하다책 제목에서 지목하고 있는 주제가 책 내용에서 잘 풀려나오고 있는가의 차원이다).


     다만 그리스도인의 실천을 직접 다루고 있는 6장은 약간 다르다코로나19로 인해 심각해진 불안을 다루면서초기 기독교인들의 정체성을 파라볼로이”, 즉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들로 정의한 저자는오늘날 교회에게 필요한 모습이 이것이라고 말한다동시에 저자가 목회하고 있는 교회에서 시행했던 다양한 노력들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좋은 도전을 받게 된다.

 





     덧셈과 뺄셈을 배우지 않고는 곱셈과 나눗셈을 배울 수 없다.(C. S. 루이스의 책에서 본 비유다). 하나의 단계를 넘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는 말이다이 책에서 제시되는 다양한 한국교회의 과제들비록 그것이 꼭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발생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코로나19 때문에 그 문제점이 더욱 커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그리고 이 과제들을 적절히 풀어내지 못한다면우리는 좀처럼 다음 단계로 나가지 못할 것 같다끊임없는 과거로의 회귀와 이로 인한 정체그리고 퇴보라는 교과서적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희망적인 건여기저기 이 책의 저자와 비슷한 고민들을 열심히 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점점 많이 발견된다는 점이다당장 내 동기들 중에서도 그런 친구들이 많이 있으니까그들의 고민과 작은 실천에 박수를 보낸다좀 더 많은 이들이 이 고민과 문제풀이를 정면으로 마주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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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본학 이야기 - 웨스트민스턴목회와 신학 1
신현우 지음 / 웨스트민스터출판부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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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성경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우리가 보는 한글 성경은 무엇을 보고 번역한 것인지, 그리고 그 번역의 대상은 어떻게 찾아낸 것인지, 그것은 과연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최초의 성경본문과 정확히 같은 것인지 하는 의문은, 성경을 진지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 봤을 만한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신학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사본학과 원문비평학이라는 분야가 있다. 두 분야 모두 오늘날 남아있는 여러 성경의 사본들(손으로 옮겨 적은 복사본)을 통해 최초로 기록되었을 성경원본의 모습을 추정해가는 학문 분과인데, 전자는 사본들의 특징을 찾아 해석하는데 주로 관심을 두고 있다면, 후자는 그 사본들을 비교하며 원문을 추정해가는 것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있는 학문이다.

 

     요컨대 사본학이란, 오늘날 더 이상 성경의 원저자들이 직접 기록한 성경본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 학문이다. 오늘날 원본은 없다. 아마도 그것이 처음 기록되었을 재질인 파피루스의 연약성 때문에, 이는 거의 확실하다.

 

     남아 있는 것은 모두 사본들뿐이다. 그리고 이 사본들은 옮겨 적는 과정에서 자주 서로 차이를 보여준다. 이 차이는 옮겨 적는 사람들에게서 비롯된 것도 있고, 헬라어 문법이나 알파벳, 발음상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도 있다. 처음 복사한 사람들에 기인하는 것도 있으며,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열 번째, 스무 번째 필사자들에게서 기인하는 문제일수도 있다. 역시 쉽지 않은 내용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사본학 상의 여러 문제들을 알기 쉽게 소개하는 책이다. 어떻게 하면 서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사본들을 통해, 사본학의 궁극적인 목적인 원문을 추정해 나갈 수 있는지 그 기준을 설명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예컨대 짧은 독법이 선호되고, 부드럽게 읽히는 문장보다 거칠게 읽히는 문장이 원문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된다. 서로 다른 두 출처의 내용을 '조화시키는' 본문 후대의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학자들은 저마다의 논리적인 근거를 제안하고 있고, 흔히 네슬-알란트 판이라고 불리는 헬라어성경의 편집기준은 오늘날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기준들이 가진 문제점과 모순들까지도 숨김없이 함께 제시한다. 과연 짧은 독법이 꼭 원문에 가까운 것일까? 필사자들이 내용을 더하는 일 못지 않게, 다양한 이유로 빼먹기도 하지는 않을까? 저자는 무조건 주류학설을 따라가기 보다 그 기준들이 확실한지 검증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주류학설의 주장이 생각만큼 확실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저자는 이를 ‘학자들 간의 상호 주관성에 근거한 객관성 추구’라는 방식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 역시 완전한 객관성을 얻기에는 무리한 면이 있다. 사실 인문학이 가지는 궁극적인 딜레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즉, 완벽하게 원문을 찾아낼 수 있는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본학의 모든 기준은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할 뿐이다. 우리는 좀 더 겸손해져야 한다.


     꽤 흥미 있는 내용의 책이다. 성경 자체에 대해 한 번쯤 깊게 생각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볼만한 책이다. 되도록 여러 가지 비유들을 사용해 독자들에게 가능한 한 쉽게 다가가려고 하는 점은 이 책이 가지는 장점이다.(지금 보면 좀 과하다 싶기도 하지만). 이미 절판된 책이지만, 중고로 구할 수 있다면 구입해 둘 것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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