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쓰는 말 바로잡기
이복규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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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반가운 책을 읽게 됐다올해는 연초부터 계속 흥미로운 책이 독서리스트에 추가된다국문학 교수인 저자가 교회 안에서 발화되는 다양한 들 가운데 어색하거나 부적절한 표현들을 골라내 항목별로 정리해 엮은 책이다그래 우리에게 이런 정리가 필요했다얼마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어법에도 맞지 않는 말을 너무나 태연하게 사용하거나곰곰이 따져보면 신학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이야기들을 일상적으로 쓰는지 모른다.

 

    말과 글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저자처럼 국문학을 전공했다면 더욱 그럴 테지만나도 이런 부분이 특히 민감하게 다가온다사람들이 하는 말이 문장으로 쉽게 치환되는 편인데그러다 보니 기본적인 주술호응도 안 되거나 분명 찾아보면 신학적으로도 잘못된 내용들이 관행적으로 사용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물론 어떤 경우는 단순히 몰라서 그러는 것일 게다하지만 분명 잘못되었다는 내용을 듣고 나서도부주의 때문에혹은 관행이라귀찮다고심지어 자신이 옳다고 우기는 일들까지 있으니 답답한 일이다.

 


     예를 들면 책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축복이라는 단어가 있다한문으로 빌다는 의미의 과 을 붙여서 복을 빌다라는 동사다이 말은 축복하다로 사용되는 게 문법적으로 맞다그리고 이 단어를 하나님에게 붙이는 건(예컨대 하나님의 축복’) 신학적으로도 문제가 있다하나님이 누구에게 복을 빌어서 우리에게 준다는 말인가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지복을 비는 분이 아니시다.


     하지만 워낙에 오랫동안 축복이라는 단어가 무슨 신령한 표현처럼 사용되면서이젠 아무리 말해도 고칠 생각 자체를 안 한다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축복의 사전적 의미는 그렇지만교회에서 워낙에 다른 의미(특히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라는 뜻으로)로 자주 사용되니 그냥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추가하자는 어이없는 주장도 한다.(한문의 뜻은 어쩌고)

 


     높임법이 발달한 우리 언어의 특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사용하는 부분도 눈에 많이 거슬린다책에 나온 예로는 종님’, ‘설교말씀이 계시겠습니다’, ‘(축도할 때) ~은혜가 계시기를’, ‘복이 계실지어다’, ‘드린 헌금’ 등이 있는데높임법은 인격체에만 사용하므로말씀은혜헌금 같은 게 아무리 신령한 것들이라도 높일 수 없다심지어 ‘(목사를 가리켜) 종님은 뭔지..


     이외에도 찬송을 준비나 예식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 정도로 전락시키는 표현들(‘찬송하므로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이나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라라는 의미의 할렐루야로 시작하는 일들 등 내용을 아는 사람이라면 불편한 표현들도 많이 지적된다.


     사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나 역시 제대로 그 용법을 몰랐던 부분들인데, ‘영원한 이별을 위한 의식이라는 영결식(이건 부활신앙을 갖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그저 고상한 표현쯤으로 여겼던 면이 있었고우리말 어법에서 직책을 이름 뒤에 붙여 소개하는 건 교만한 표현일 수 있다는 지적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저자는 직책을 이름 앞에 두는 게 겸손한 표현이라고 말한다목사 김OO)

 


     사실 이런 부분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곳이 없다그저 교회에서 알음알음 듣고 배우는 게 전부그게 맞는 표현인지틀린 표현인지를 제대로 따져보는 일은 없었다그러니 잘못된 표현들이 점점 사라지기는커녕오히려 뭔 뜻인지도 모르는 젊은 사람들도 그대로 따라하는 지경에 르게 됐다.


     이런 책을 신대원 다니는 동안 꼭 한 번 읽거나 듣고 성경시험처럼 반드시 패스해야 하는 과목으로 삼았으면 좋겠다아무래도 교회에서 가장 말을 많이 하는 게 교역자들이니그들의 언어부터 정립된다면 조금씩 교회 안의 말들도 제대로 자리를 잡지 않을까읽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으니 주변에 자주 권하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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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01-22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그렇다면 정말 엉망진창이 많겠네요.
전 교회에서 흠향이란 단어가 적절치 않다는 말을
오래 전에 들었습니다.
암튼 이 책 정말 필요해 보이네요.

노란가방 2021-01-22 20:55   좋아요 1 | URL
네.. ㅎㅎ
흠향이라는 단어의 향이 향을 피우다 할 때 향이 아니군요!
스텔라님 덕분에 저도 알았습니다.

복규 2021-03-19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축복‘은 이미 표준어로 바뀌어 있어 다루지 않았습니다.

노란가방 2021-03-20 19:25   좋아요 0 | URL
아이고 저자분이시군요. 좋은 책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젊은 목사에게 보내는 편지
에릭 피터슨 외 지음, 홍종락 옮김 / 복있는사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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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책을 읽는 것은 즐거우면서도 괴롭다유진 피터슨 같은 저자가 쓴 통찰력 있는 깊은 글을 읽는 것 자체가 영혼을 채워주는 것 같은 즐거움을 주지만동시에 그 안에 담겨 있는 진주 같은 조언들과 내 삶의 현실이 대조되는 가운데서 한 없이 자괴감을 느낀다목사의 삶목회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조곤조곤 써 내려가는 유진 피터슨의 조언을 읽다보면역시 목사는 아무나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지난 2018년 세상을 떠난 유진 피터슨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엮은 것이다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아들 역시 목사였지만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위 목회 세습 같은 경우는 아니었다우선 유진 피터슨이 목회했던 그리스도 우리 왕 장로교회는 메릴랜드 주의 작은 교회였고아들인 에릭 피터슨은 워싱턴 주에서 역시 작은 교회를 개척해서 섬겼다.

 


     사실 무엇보다 유진 피터슨에 대해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식의 착각 자체를 하지 않았을 거다책에 실린 편지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묻어나오는 그의 목회관은세례 받은 사람들 한 사람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섬기는 것이었으니까구호와 목표가 아니라 구체적인 일상 가운데서 이뤄지는 교제와 돌봄그리고 그 가운데서 일어나는 성장이 유진 피터슨의 목회방식이었고그건 그의 아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던 것 같다.


     우리는 얼마나 구호를 외치기를 좋아하는지... 새해가 되면 올해의 표어를 자랑스럽게 만들어서 큼지막한 현수막에 걸어두어야만 뭔가가 된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교회의 모습니다일단 목표가 만들어지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을 채근하고몰아갈 수밖에 없다이 가운데서 각 사람의 삶에 깊이 들어가는 일은 불가능해진다우선은 시간이 너무 많이 들고한 사람 한 사람의 사정을 봐주면서는 일을 진행하는 게 어려우니까.


     하지만 목회의 본질은 잘 짜인 프로그램을 돌리고세련되게 강의를 하고화려한 건물을 짓는 데 있는 게 아니라교회에 속한 한 사람한 사람의 삶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목사는 회중에게 지시하고 끌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함께 예수를 따르는 사람(팔로워)이라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장은 결국 나는 실패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단다.”였다신실한 실패자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온갖 호들갑스러운 일들로부터 벗어나서작은 공동체를 하나님께 이끌며무엇보다 삶의 모든 부분에서 목회자로서 사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는 결단이렇게 살려고 애쓰다 보면 다른 것들은 애초에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누군가에겐 실패자로혹은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그런 평가 또한 신경 쓰지 않을 테니 아무래도 상관없다.


     더 많은 목회자들이 이런 신실한 실패자의 길에 나섰으면 좋겠다그렇다면 교회에 대해 지금처럼 적대적이고 냉소적인 눈빛도 조금은 누그러지지 않을까아니뭐 꼭 어떤 반응을 위해서가 아니라그게 목사가 해야 할 일의 전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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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 불렸던 사람들 - 기독교 본연의 모습을 찾아 떠나는 여행
래리 허타도 지음, 이주만 옮김 / 이와우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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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가 발생한 서기 1세기 로마 제국 안에는 기독교 외에도 다양한 종교 운동들이 있었다오늘날 그중 대부분이 그 이름조차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지만기독교는 처음부터 달랐다일찍부터 기독교에 대한 핍박과 괴롭힘이 시작되었지만, 1세기 경 1000명 안팎이었던 기독교인은 2세기에는 1만 명으로, 3세기에는 20만 명, 4세기에는 5, 600만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여기에 분명 초기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독창적 특징이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혹자(책에서는 구자유주의의 후예라고 부른다)는 기독교의 독특함이라는 것도 실은 별게 아니고당시 로마의 여러 종교 운동이나 철학들에서도 강조되었던 것들과 유사한 내용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배경과 상황 같은 역사적 맥락을 강조하는 연구법인데저자에 따르면 이런 주장은 심각한 반론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그렇다면왜 수많은 사람들은 핍박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그렇게 딱히 별로 다를 것도 없는 종교에 굳이 입회하려고 했을까.

 


     저자는 이 책에서 초기 기독교가 가지고 있었던 어떤 특징이 성공에 도움이 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우선 가장 큰 차이는 종교에 대한 관점의 차이다고대 그리스와 로마 세계에서 종교는 의례’, ‘제례를 의미했다반면 기독교에는 어떤 신상도성소도제사장도 없었던 대신윤리에 대한 독특한 강조와 실천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저자는 여기까지만 말하지만어쩌면 전쟁이 끊이지 않던 혼란의 시기기독교의 이런 윤리성이 사람들의 마음에 크게 와 닿았을는지 모른다.


     인간과 독특한 인격적 관계를 맺는 하나님이라는 개념도 독특한 부분이었다고대의 신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으니까또 기독교인들은 다른 신들을 광범위하게 수용하던 고대의 관습과 달리 우상이라는 이름으로 경계했고이는 그들의 신앙의 대상에 대한 좀 더 강력한 충성을 유도했다(물론 이 부분 때문에 집중적인 핍박을 받기도 했지만).


     저자가 상당히 집중해서 설명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기독교가 책의 종교라는 점이다기독교만큼 다양하고 많은 저작을 남긴 종교는 당대에 존재하지 않았고(여기까지는 저자의 설명), 아마도 이런 모습은 교육을 받은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기독교는 발생 초기부터 그것이 가지고 있었던 독특한 면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는 말이다책 속에도 언급되지만기독교가 급속도로 퍼져나간 건 단지 황제가 기독교를 믿기로 작정했기 때문이 아니다이미 그 이전에 기독교는 놀랄 만한 성장을 하고 있었고이런 현실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공식적인 종교로 인정되었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그렇게 매력적이었던 기독교가 오늘날 어떤 상황이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퍽이나 아쉽다기독교인의 윤리는 세상과 구분될 정도로 탁월한지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얼마나 인격적으로 깊이 들어가고 있는지책의 종교라고 불릴 만 했던 오래 전의 특징은 바쁜 일상에 묻혀 희미해져 가고 있지 않은지...(물론 여전히 많은 기독교인들은 적어도 윤리적인 삶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있고특히 성경에 대한 관심은 적지 않지만.)


     역사는 단지 지나간 일이 아니다그건 뿌리에 관한 이야기고기원과 기초에 관련된 이야기이기도 하다기독교인들에게도 이건 마찬가지여서역사의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오늘의 신앙의 기초도 허술해 질 수밖에 없다성경과 우리 사이에 놓여 있는 수천 년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신앙의 균형을 제대로 잡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이런 책처럼 읽기에 편한 교양 역사서들이 많이 나온다면 꽤나 도움이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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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12-25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게 그 <도미니언> 읽으시고 주문하셨던 그 책인가요?
일단 좀 얇아서 관심이 갑니다.ㅋ

노란가방 2020-12-25 19:35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ㅋ 이건 딱 교양서적이구요.. 그건 아직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 내년에야 손에 잡을 것 같네요.. ㅎ

stella.K 2020-12-25 19:39   좋아요 0 | URL
오, 교양서적이라니 딱 제 스탈입니다.
그거 이상 깊이들어가면 머리 아파서리...ㅋ
 
구약성경과 신들 - 개정판
주원준 지음 / 한님성서연구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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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성경의 배경이 되는 고대 이스라엘은 작은 국가작은 민족이었다남쪽은 이미 당시 2천 년 역사의 이집트 문명이 있었고북쪽에는 그 못지 않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존재했다그 길목에 있었던 가나안 지역은 당연히 문화의 교통로였고다양한 문화와 전통신화가 묻어날 수밖에 없는 자리였다.


     실제로 구약 성경 안에는 당시 근동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신화적 요소와 고대 설화들과 유사한 내용들이 발견되기도 한다어떤 이들은 이를 근거로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종교가 모두 인근 지역의 원본을 카피한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하지만 이런 주장은 단지 겉모습이 비슷하면 모든 게 진화론적 계통을 지니고 있다는 단순한 견해에 기인한 것일 뿐이다.

 


     독일에서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하고 온 저자는 이런 견해가 얼마나 단편적인 생각인지를 잘 보여준다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존하고 있던 신관(신앙)은 인근 지역의 신앙과 분명히 구분되는 지점이 있다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인근 지역에서 절대적인 신적 존재로 떠받들던 많은 대상들을 비신화화’ 작업을 통해 피조물들 중 하나로 만들었다.


     예컨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섬기던 하늘이집트에서 섬기던 태양레반트 지역에서 섬기던 폭풍은 신적 주체가 아니라 피조물로서 묘사된다메소포타미아의 일부 지역에서 유독 중요하게 여겨지던 달()신의 경우 그 근거지 중 하나인 우르가 아브라함의 고향이었음에도 불구하고구약성경에서 그 존재는 거의 무시된다바람과 강신성한 나무에 대한 신앙도 마찬가지다.


     물론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인근 지역의 신앙과 문화를 받아들였다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독특한 유일신관 아래서 재편되었다하늘은 신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간으로 재평가되었고달의 차고 이지러짐의 주기는 이스라엘에서도 중요하게 여겨져서 초하루는 제사를 바치는 중요한 날로 여겨졌으나딱 거기까지였을 뿐이다.


     저자는 이런 과정을 재신화화라고 표현하면서포로기 이후 그런 경향이 강해졌다고 말한다그것이 원래 가지고 있던 신성의 요소를 제거하고대신 여호와 신앙에 종속되도록 만들었다는 것흥미로운 건 이런 작업이 가장 초기 문서인 창세기부터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는 점인데이는 고대의 작은 민족들이 인근 강대국의 신화를 수용하던 관습과도 크게 다른 모습이다아마도 이 부분이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혹은 발견한종교심의 특별한 점일 것이다.



     책을 읽으며 고대 근동의 여러 문화가 얼마나 많이 이스라엘에 흡수되었는지를 새삼 발견한다. “정의를 물 같이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는 구절에강을 판결의 주체로 여겼던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이 남아있다는 서술은 흥미롭지 않은가또 신성한 피로 인한 속죄라는 개념이 고대 근동에서만 발견되고 그리스 문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개념이었고이를 이해할 수 없었던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그리스도의 피에 관한 특별한 교리를 오해했다는 통찰도 눈여겨 볼만 했다.


     분명 고대 이스라엘과 근동의 다른 민족들 사이에는 유사점이 존재한다어느 한 쪽이 완전히 고립된 상태로 지내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그러나 이들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점도 존재하고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이 부분을 무시하고 유사점만으로 진화론적으로 연결지으려는 건한국인과 일본인이 똑같아 보이는데 왜 사이좋게 못 지내냐고 빈정대는 외부인의 관점처럼 단순해 보인다.


     상당히 전문적인 내용이지만 보통의 독자들도 읽고 어느 정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쓰기 위해 애쓴 게 보인다히브리어와 아람어그리스어와 라틴어 같은 어려운 외국어 부분을 넘길 수 있다면 충분히 읽고 유익을 얻을 수 있을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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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12-16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스라엘의 유일신 사상은 모세가 이집트에서 탈출하며서 갖아왔다는 의견도 있는데 이집트가 다신교를 믿었는데 이당시 태양신 아텐만을 숭배했던 파라오 아크나톤(혹은 아케나텐)의 영향이 남아있어서 여기서 모세가 유일산 사상을 취했다고도 하네요.

노란가방 2020-12-16 18:19   좋아요 0 | URL
네. 그런 주장도 있었죠.
자기가 전생에 람세스 2세였다는 크리스티앙 자크 같은 작가가 ‘람세스‘에서 그런 주장을 담기도 했었구요.
다만 이집트에서 일신교가 국가적으로 섬겨졌던 시기는 지나치게 짧고,
이집트 내에서도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같은 약소국이 그런 담대한 주장을 했다고 보는 데에도 살짝 무리가 있다는 반론도 있지요.

stella.K 2020-12-16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지난 가을인가 여름에 TV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었죠.
카톨릭 학자더군요.
저자는 다른 신들은 강한 자들의 신인데
여호와는 작은 자 평민을 위한 신이라고 해서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호와를 믿는 거구나 했습니다.
책 한 번 읽어야지 했는데 먼저 읽으셨네요.

노란가방 2020-12-16 18:23   좋아요 0 | URL
책 표지에 ‘제16회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 수상작‘이라고 적혀 있더라구요.
저자소개를 보니 신부님은 아닌 학자이신 듯.
이런 괜찮은 책은 감사하게 읽어야지요. ㅎ
 
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 (양장) IVP 모던 클래식스 10
로날드 사이더 지음, 한화룡 옮김 / IVP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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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교회는그리스도인은 부유할까물론 이런 식의 일반진술로는 그 진위를 가릴 수 없다교회 안에는 (특히 경제적으로도다양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고최근 수십 년 동안 새롭게 기독교세가 확장되고 있는 지역인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은(이들의 비율은 아마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높을 것이다보통 생각하는 부유함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기독교는 부유하다는 인상을 준다아마도 20세기 초중반까지 기독교가 미국과 유럽 등의 선진국에서 주요 종교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그리고 실제로 많은 교회들이 좀 더 부유해지는 것을 그들의 구원과 연결시켜 이해하고 있기도 하니까.

 


     물론 (wealth)’라는 것은 악하지 않다다만 부가 쌓이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종종 이 차이는 각자의 노력과는 상관없는 잘못된 구조와 제도그리고 왜곡된 문화로 인해 심각한 수준으로 발생하기도 한다이 책은 그런 상황을 정의롭지 못한 일그리고 하나님께서 문제로 여기시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물론 모든 이들을 공평하게 대하시지만가난한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그 이유는 이런 상황이 대개 억압적이고 비틀린 구조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부는 나누어져야 하며다른 사람들이 빈곤의 늪에 빠져 있는 동안 더 편한 삶을 위해 과시적이고 사치스러운 삶을 사는 건 회개해야 할 죄다.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이런 잘못된 구조를 만들어 낸 다양한 경제학적 문제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적지 않은 분량에 걸친 분석에는 환경적정치적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결부되어 있는 모습이다여기에는 공통적으로 정의에 대한 고민 대신 더 많은 부유함에 대한 욕망만이 두드러진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단순히 문제를 지적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이다저자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요점은 부유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조금 더 검소한 삶을 살기 위해 애쓰면서그렇게 절약된 물질을 가난한 이들을 위한 곳에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이건 후원이나 원조만이 아니라현재의 경제구조 안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보다 나은 삶의 조건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다양한 사업에 투자하거나 그런 일들을 하는 기업의 물건을 구입하는 일들도 포함된다.


     저자는 또한 가정재정의 십일조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의 중요하다는 개인적인 차원뿐만 아니라개발도상국에 대한 관세를 낮추고빚을 탕감해 주는 등 국가와 국제정치적 차원에서의 방안도 함께 고민한다애초에 문제가 구조적인 것이라면 해결책도 구조의 변화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1978년 이 책이 처음 나왔던 그 때 이후로(내가 본 책은 2005년에 나온 증보판이었다세상은 많이 변했다공산주의가 무너지고지구적 기근과 기아문제는 상당부분 개선되었다다양한 차원에서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졌고그 중 일부는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그 때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세상은 좀 더 나아졌는지는 모르겠다트럼프의 미국을 필두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면서 강대국들의 이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구조는 점점 강화되고 있는 것 같고(정권이 바뀌더라도 이런 추세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듯하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전염병이 전 세계를 덮치면서검사와 치료그리고 백신을 통한 면역의 전 과정에 드는 비용을 부담할 수 없는 이들이 가장 먼저 쓰려져나가고 있다.


     문제는 이런 추이가 단지 최근의 몇 년에 국한된 특별한 일이 아닐 것 같다는 점이다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저자가 지적하듯다시 한 번 교회의 중요성그리스도인들의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본다그래도 교회는 아직 뭔가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그건 단지 돈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물론 많은 교회들이 훌륭한 건물을 지니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의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애초에 교회는 큰 건물을 짓거나많은 재산을 쌓거나지속적인 수익을 추구하기 위해혹은 구성원들 각각의 사회적 명성을 높이거나 신분상승에 도움을 주기 위해 모인 조직이 아니지 않은가죽음까지도 감당하며 다른 이들을 도우려 했던 분을 믿는 사람들이 교회였다과부와 고아들을 돕고병자들을 돌보고사회가 인간이 아니라고 가르쳤던 노예들도 기꺼이 집사로 세웠던 혁명적인 조직이었던 교회가 그들을 만들어준 복음의 원초적인 능력을 회복하게 된다면이 세상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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