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현대인의 소외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됐었다.  급격한 도시화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서로 대화 나눌 시간조차 갖지 못한 결과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얘기가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

왜서일까?

나는 휴대폰의 폭발적인 보급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만 해도 거의 전국민이 휴대폰을 갖고 있으며 수시로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다.  이젠 대화 부족이 아니라 대화 과잉을 걱정해야 될 듯싶다 . 한창 공부해야 할 청소년들의 휴대폰 애용은 정도가 지나쳐 사회문제화됐으니 더 말하여 무엇하랴.

 

그렇다면 현대인의 소외 문제는 과연 끝난 것일까?  글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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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은 어느 날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업하던 남편이 암에 걸려 병석에 눕자 아내 되는 여자가 어떻게 해서든지 남편을 살려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결국 남편은 세상을 떴고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들 형제와 작은 아파트 한 채. 그나마 아파트는 많은 빚에 저당 잡혀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고민 끝에 상식을 넘는 선택을 하였다. 아들 형제를 내팽개치고 다른 남자랑 따로 사는 길을 택한 것이다. 문제는 그 남자와 옆 동네에서 살림을 차렸다는 사실이다. 모자간에 길에서 맞닥뜨릴 상황이 되면 그녀는 먼저 다른 길로 피해 감으로써 자신이 원치 않는 만남을 용케 면하며 산다고 한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모성애’ 만은 천고불변의 진리인 듯 영원할 거라 믿어온 무심으로는 정말 믿기지 않는 실화였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형제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다니는 어린애들이 아니라 하나는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고, 다른 하나는 군대에 갔다가 막 제대한 청년이라는 사실이다. 하긴, 형제가 열 살 미만의 어린이들인데 그녀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면 법의 심판을 받았을 테다.

그렇다 해도 무심으로서는 ‘가난 앞에 무너진 모성애’라는 차원에서 여전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생각 끝에 지인들에게 ‘과연 그런 비극이 가능할 수 있는지’ 그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경제난이 심화되면 그럴 수도 있다’는 의견들이 다수였다. 뜻밖이었다.

결국 무심은 그 이야기를 작품화하여 허구로나마 못된 어미를 응징하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하지만 그녀를 응징했다고 해도 비극은 여전히 남을 수밖에 없었다. 소설은 허구이긴 하지만 개연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못한 비극의 재생산에 무심의 가슴은 다시 아팠다.

‘박쥐가 된 아이’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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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전민 아이들 일곱 명이 전교생인 분교.

척박한 오지라 의무교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했다. 우리가 오기 한 달 전에도 어떤 청년이 일 년을 근무하다가 황황히 사표를 내고 떠났다 했다. 그런 식으로 배운 아이들이라 제대로 배운 게 없었다. 전교생 일곱 명 중 항상 두어 명은 결석하는 교실. 나는 그런 애들을 썰렁한 교실에 앉혀놓고 국어, 산수, 자연, 도덕, 미술 등 모든 과목을 가르쳐야 했다. 뺄셈도 제대로 못하는 애들한테, 주워온 도토리들을 들고서 수십 번 나눗셈을 반복설명하다 보면 오전이 다 지나가면서 끝나는 수업이었다.

내가 교실에서 수업할 때 경자는 밖에서 돼지새끼들에게 매달렸다.

‘양돈축산의 미래’ 란 책자를 방바닥에 펴놓고 수시로 메모하며 양돈 연구에 전념하는 경자. 경자는 여기 오기 전부터 양돈사업을 계획했던 게 분명했다. 주변 산에서 나무 등걸들을 주워 일정한 길이로 잘라 직사각형 돈사를 만들고, 삼 십여 리 떨어진 읍내에 나가 실한 돼지새끼 두 마리를 사 오는 등…… 경자는 혼자 몸으로 양돈사업을 시작했다.

아무리 가르쳐도 제자리인 애들에 비해 대견스럽게도 잘 크는 돼지들. 잡식성 동물답게 인근 개울의 가재들부터 산기슭의 도토리들, 주변의 잡초들, 우리가 먹고 남기는 음식찌기까지 모두 다 좋은 사료였다. 돼지들의 성장이 기대 이상이었으므로 경자는 돈사를 새로 더 짓기로 했다.

일요일이었다.

경자는 읍에서 불러온 인부들을 데리고 개량식 돈사 짓기에 나섰다. 반듯한 슬레이트 지붕, 환기가 잘 되는 울타리 구조, 일정하게 사료가 나오는 급식장치, 분뇨가 잘 빠지는 바닥 시설……. 외진 골짜기에 어울리지 않는 현대식 돈사였다.

그럴 때 나는 방바닥에 엎드려 학습지도안을 작성하고 있었다. 각 과목별로 작성해야 하니 그 분량은 만만치 않았다. 물론, 학습지도안의 작성교사 이름은 ‘박경자’였다.

나는 고용직으로, 경자는 교사로 채용된 신분이었다. 정작 ‘초등 준교사 자격증’을 가진 경자는 돼지를 기르는데, 아무 자격증 없는 나는 애들을 가르치며 학습지도안도 짜는 교사 역이었다.

양돈으로 대성해 보겠다는 경자.

경자는, 아무 거나 잘 먹고 번식력도 왕성한 돼지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몇 년 안에 양돈축산계의 혜성으로 떠오를 계획이라고 내게 털어놓았다. 돼지의 약점이라고는 오직 전염병에 취약할 뿐인데 이곳은 가까운 민가가 십여 리나 떨어진 깊은 산골짜기이니까 그런 면에서 아주 안전한 청정지대라 했다.

얼마나 치밀한 경자의 사업 계획인가.

경자는 우리의 첫 만남부터 양돈사업까지, 모든 일을 철저한 계획 아래 이끌어가고 있었다.

산골짜기는 비좁은 하늘 때문에 하루해가 짧았다.

동쪽 산등성이에 가려 오전 열 시경에 떴다가 오후 네 시경만 되면 서쪽 산등성이 너머로 사라지는 태양. 그 때부터 골짜기는 서늘한 산그늘에 들어 있다가 별들이 뜰 때부터는 적막한 밤에 파묻힌다.

바람결에 흩날리듯 들리다 말다 하는 라디오 방송. 코 골며 자는 경자. 석유램프 불을 끄면 그런 소리들 이외에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방. 그럴 때 또 하나의 소리로 보태지던 나의 수음 소리. 죽지 않고 살아나는 젊은 성욕을 수음으로 달래는 그 쓸쓸한 어둠. 어쩌다가 경자를 깨워 관계를 시도하지만 필경은 딱딱한 돌덩이를 안은 느낌에 제풀에 죽던 ‘그것’이었다. 반쪽짜리 내 몸으로는 도저히 헤어날 길 없는 질긴 어두움, 깊은 골짜기.

늦가을로 접어들었다.

낮이 더욱 짧아지면서 찬바람도 자주 불어쳤다. 개울의 가재들도 바위 밑으로 깊숙이 숨고 갈참나무 낙엽들이 무더기로 분교 주위에 쌓여갔다. 경자는 바빠졌다. 김장을 담그고, 숙소 곳곳을 비닐로 감싸고, 가마니들로 돈사를 겹겹이 둘러주고…….

마침내 암퇘지 놈이 발정하였다.

밤의 골짜기를 뒤흔드는 야릇한 울음소리를 듣고 플래시를 들고 나간 경자는 희색이 만연해져 들어왔다.

“이제 접 붙여야지! 그게 벌겋게 변했더라고. 책에 적힌 그대로이네.”

그 날 밤 경자는 돈사에 매달려 밤을 지새우는데 나는 느닷없이 저리며 쑤셔오는 왼쪽다리에 방바닥을 구르면서 어쩔 줄 몰랐다. 월남에서 떨어져 나간 그 다리가 아픈 것을 어떻게 납득해야 할까. 없기 때문에 달랠 수도 없는 허공의 통증.

나는 부엌에서 소주를 찾았다. 그 소주는 경자가 음식 간을 맞출 때 쓴다고 남겨 둔 큰 병 소주였다. 2/3정도 남은 그것을 다 들이켰다. 그래도 없는 왼쪽다리는 여전히 나를 괴롭혔다. 급기야는 사라진 왼쪽 눈알까지 함께 쑤시기 시작했다.

나는 기절하고 말았다.

깨어났을 때는 늦은 아침이었다. 경자가 끓여놓았는지, 머리맡에 놓인 미음을 떠먹었으나 쓰린 속은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없는 다리 쪽을 만져보았다. 덜렁거리는 바지가닥이다. 어둑한 방안에 그대로 누워 있을 수 없었다. 기진한데다가 숨 막힐 것 같은 좁은 방안. 나는 목발 없이 기어서 밖으로 나섰다. 태양이 좁은 골짜기의 하늘 안에 비집고 들어와 있었다.

무거운 햇빛들.

나는 숙소 외벽에 기대고 섰다가 풀썩 쓰러졌다. 온몸의 피가 다 빠져버린 듯한 빈혈 증세. 뒤통수부터 휘몰아치는 어지러움.

운동장 어귀 쪽에서 덜커덩 소리가 들려온 게 그 때였다. 경자였다. 수레에 무언가 잔뜩 싣고 돌투성이 많은 운동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최고가의 양돈 사료들이 반입되고 있었다.

 

늦봄에 돼지새끼를 열두 마리나 얻으면서 꿈에 부풀던 경자였다.

일 년 만에 돼지 마릿수가 열네 마리가 되었으니 몇 년 안에 백여 마리 돼지에 달할 듯싶었다. 사료도 몇 번씩 사 나르고 개량식 돈사도 세 채나 추가로 지으며 몇 년 안의 대성공을 눈앞에 둔 듯한 경자가…… 허무하게 쓰러져 버릴 줄이야!

가장 가까운 민가가 십여 리에 있는, 아주 청정한 골짜기라 믿고 지내왔는데 돼지 전염병에 열네 마리 돼지 모두가 차례차례 죽어 자빠질 줄은 몰랐다.

돼지콜레라라고 했다. 돼지들은 피를 토하며 죽어 버렸다. 뒤늦게 읍내 수의사까지 모시고 왔으나 소용없었다. 죽은 돼지들을 수레에 싣고 나가더니 저녁이 다 되어 경자는 들어왔다. 술 냄새가 독하게 났다.

‘이런 데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폐인이 된다’며 내가 마실, 숙소의 술병들까지 내다버린 그녀가 술주정뱅이 꼴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수레는 어디다 팽개쳐두고 왔는지 보이지 않았다.

며칠을 두고 경자는 방에 틀어박혀 울다가 자다가를 반복하며 폐인처럼 보냈다.

어느 날 아침.

경자는 결연한 표정으로 밥상 위에 원고지들을 펴 놓고 앉았다. 골짜기 개울의 찬 물에 세수하고 들어오더니 그런 모습으로 방 가운데에 자리 잡은 것이다. 마침내 ‘나는 사랑하는 그이와 큰 꿈을 품고서 도시를 떠났다-……’로 시작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수기였다. 몸의 절반을 잃은 상이군인을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체험 이야기. 경자가 두 달 가까이 밤잠까지 설쳐가며 매달린 끝에 완성된 수기의 제목은 ‘나의 사랑, 절망을 딛고.’

수기 작성에서도 얼마나 치밀한 경자인가. 돼지들을 치다가 절망에 빠지는 사람은 ‘그이’였고 아내인 자신은 학생들을 맡아 가르치는 교사로서 ― 분교 교육에 헌신하면서 장애자 남편 일도 돕는 얘기로 수기는 꾸며져 있었다. 어처구니없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아이들을 가르친 사람은 문서상으로 ‘박 경자’였으니까. 어차피 그 누구도 들여다본 적 없는 수업들이었으니까.

경자는 읍내에서 사진사까지 모셔 와 ‘피투성이로 남은 절망의 현장들’을 사진 찍게 했다. 돼지새끼들이 죽어버린 돈사 앞에 목발 짚고 선 내 독사진과 교실에서 열심히 수업하는 자기 모습의 사진들. 어리둥절한 아이들을 야단쳐서 ‘저요! 저요!’ 손들고 발표하는 동작들까지 만들어낸 경자. 수기 원고에 증거자료로 첨부한다고 했다. 이백 자 원고지로 천이백 매. 모 잡지사에서 창간기념 생활수기를 거금을 걸고 공모한다 했다.

우리는 분교를 떠나기로 했다.

경자가 묵직한 수기 원고를 소중하게 천으로 싸면서 내린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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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차는 마침내 운포면 희망리 마을로 가는 도로로 들어섰다. 방금 전 운포면 면소재지 동네 가까이 다다랐지만 외곽도로로 그냥 지나쳐 온 거다.

자갈 많고 먼지 나던 신작로가 아닌 깨끗한 아스팔트길이다. 그런데 다른 차들도 없이 한적한 길이라 그는 차의 속도를 시속 40키로 정도로 낮추었다.

웬 사내의 멱살을 쥐고 ‘야, 이 새끼야! 너, 춘천에서 온 봉길이 알아?’하고는 냅다 발로 후려차기를 했던 고개가…… 없어진 듯싶다. 고백하건대 달빛에 드러난, 놀란 사내의 얼굴은 최소한 30대는 돼 보였다. 나이도 열 살 이상 될 사람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이다.

운이 좋았다. 만일 사내가 면소재지 파출소로 달려가 ‘춘천에서 온 봉길이란 깡패한테 봉변을 당했다’고 신고했더라면 어찌 될 뻔했나? 하마터면, 다음 날 저녁쯤 외갓집에 나타난 경찰관에 체포되어 충주나 청주 같은 대도시의 경찰서로 이송되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는데, 그건 사내가 ‘하마터먼 맞아죽을 뻔했는데 운 좋게 살았다!’며 안도의 숨이나 쉬고 만 덕분이 아닐까?

그리고, 코피가 터진 것은 둘째 치고 앞니가 몇 대 나갔을 키 작은 아이.

다행히 그 아이도 ‘사나이끼리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끝까지 애써 담대한 자세를 유지한 게 아니었을까?

운포면 내에는 마땅한 치과도 없었을 테니 하는 수 없이 충주나 청주의 치과를 다니면서 의치를 해 넣느라 고생이 많았을 게다. 요즈음같이 인정 삭막한 시대에는 결코 있을 수 없는 키 작은 아이의 담대함이었다. 그 아이한테 지금이라도 고마워해야 한다.

그의 차가 어느 새 희망리 앞에 다다랐다. ‘희망리’란 글자가 새겨진 큰 바위가 동네 어귀에 서 있다. 그 바위가 아니더라도 ‘버스 정류장 역할 하던 도로 변 구멍가게’ 집이 허름하나마 남아 있어서 희망리 어귀임을 알 수 있었다. 당시에 동네 통 털어서 하나뿐이던 그 가게가 이제는 널빤지 여러 장으로 전면을 폐쇄해 버린 폐가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바위 옆에 차를 세웠다.

참, 그 날 밤 사건의 현장은 언제 지나쳤을까? 험한 신작로 대신 말끔한 아스팔트길로, 차로 5분여 만에 도착하는 바람에 ‘그날 밤 사건’의 현장을 휙 지나치고 만 것 같다. 우선은 외갓집부터 가 보고, 다시 돌아갈 때 사건 현장을 찾아보면 되지 않을까? 예전의 굽이 많던 신작로를 바로 펴면서 아스팔트길로 만들어 놓아, 과연 그 현장을 찾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동네 안 길로 천천히 걸어가는데…… 놀랍게도 예전의 즐비했던 집들이 대부분 사라진 풍경이다. 새마을운동으로 철거됐을 그 많던 초가집들은 그렇다 치고 몇 안 되던 기와집마저 빈 터로 남았거나 ‘농촌주택’이라는 표준형 단층 건물로 변해 드문드문 남아 있었다. 사람이 사는 주택보다 조립식 창고나 비닐하우스가 더 많아 보이는 동네다.

농촌 사람들 대부분 도시로 나가면서 농촌이 황폐화된다는 뉴스 보도를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듯한데, 45년 전 ‘사건 다음 날’ 새벽에 마지막으로 본 정겹던 풍경이 이렇게 황폐화되었을 줄이야.

45년 전 새벽이다. 그는 책가방 짐을 싼 뒤 외할머니를 찾았다. 외할머니는 새벽부터 부엌 바닥에 앉아 옥수수 껍질들을 벗기고 있었다. 젊어서 남편을 여의고 하나 남은 외동아들 용석 아재를 충주의 모 고등학교에 유학까지 보낸 정성은 그렇듯 항시 변함이 없었다.

“할머니, 나 춘천 가야 해, 차비 좀 줘.”

갑작스레 나타난 외손주에 놀란 외할머니. 주름살 가득한 얼굴로 옥수수 껍질 벗기기도 멈추고, 그냥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개학하자마자 학교에서 시험을 본다는데 그걸 깜빡 잊었어. 어서 집에 가서 공부해야 돼.”

외할머니는 허리를 천천히 펴며 일어나더니 당신의 허리춤에서 비닐로 돌돌 싼 작은 돈뭉치를 꺼냈다.

“차비 하고…… 남은 거는 니 에미한테 줘라. 아니 그런데 손이 왜 퉁퉁 부었냐?”

“어제 벌에 쏘였어.”

“그럼 된장이라도 발라야제.”

“괜찮아. 가다 약방 들를게.”

그는 그 길로 외갓집을 나왔다. 먼동이 트는 새벽에 동네 안 길이 아닌, 뒷동산 오솔길로 해서 동네를 떠났다. 외할머니 말고는 아무도 그의 모습을 목격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전 날 밤 저지른 일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게 전개될 듯싶은 불길한 예감에 밤새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그렇듯 춘천으로 새벽같이 달아나는 방법을 택했다. 개학은 아직도 열흘이나 남았다. 뒷동산을 넘을 때 그는 왠지 ‘외갓집에 다시는 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잠깐 멈춰 서서 외갓집을 비롯한 희망리 온 동네를 돌아보았다.

‘“꼬끼요오!”

닭울음소리들이 여기저기 나며, 굴뚝들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밥 짓는 연기들. 초가집들 사이로 드문드문 기와집이 있는 그 평온한 풍경.

그의 황급한 처지와 비교되던 평온한 풍경이라니…….

그 후 그는 ‘왠지 외갓집에 다시는 오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을 증명이라도 하듯 장장 45년간이나 발길을 끊었다.

이듬해는 고 3이 되면서 대입예비고사 공부를 하느라 바빴고, 그 이듬해에는 학비가 저렴한 사범대학에 들어가 미팅하고 데이트하고 실연도 하고 그러느라 경황이 없었다. 그러면서 외갓집은 추억 혹은 기억 속의 무엇이 되었다.

솔직히 마음만 먹었다면 외갓집에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자기한테 주먹을 맞고서 앞니들이 다 나간, 망신창이가 된 키 작은 아이’가 마음에 걸려 엄두를 내지 못했다. 뒤늦게 그 날 밤 사건을 문제 삼을 것 같은 두려움이랄까.

그는 낡은 기억을 뒤지듯, 동네 골목을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골목’이라면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길을 뜻하는데 동네가 황폐화된 지금 골목이란 표현이 합당할까? 하는 생각마저 들 때 휴대폰이 ‘부으응!’ 울었다. 아내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차에쥐색빛깔지갑있나확인바람’

쥐색빛깔지갑이라면 아내가 성당 갈 때마다 지참하는 돈지갑이다. 그걸 차 안 어디에 둔 모양이다.

‘이런 칠칠치 못한 여편네 같으니라고. 백 날 콩나물 값 몇 푼을 깎으면 뭐해? 돈지갑도 잊고 다니면서……!’ 속으로 발칵 욕하던 그는 돌연 발걸음을 돌렸다. 조금만 골목을 더 걸으면 외갓집이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할 수 있지만 그건 지금 중요치 않다. ‘희망리’ 바위 있는 데로 황급히 걷는데, 조수석 창이 고장 나서 반쯤 열어둔 차 생각이 퍼뜩 났기 때문이다. 인적도 그친 동네처럼 보이지만, 모르는 일이다. 누군가 조수석 창 안으로 손을 넣어 차 문을 연 뒤, 돈지갑을 갖고 갈 수 있다.

황급히 뛰어갔더니, 늦가을 햇살 아래 차는 그대로 있었다.

그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이외에는 다른 움직임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불편한 차 실내에서 몸을 사방으로 움직여가며 쥐색빛깔 지갑을 찾았다. 없었다. 글러브 박스는 물론이고, 의자 뒤의 주머니 닮은 부분의 속과 의자 밑까지 샅샅이 살폈으나 그 지갑을 찾을 수 없었다.

‘모자란 여편네 같으니라고. 대체 어디다 흘린 거야.’

마지막으로 트렁크를 뒤져볼 생각에 차 밖으로 나왔는데 그 때 조수석 쪽의 창유리가 ‘푸르륵’ 소리를 내며 아래로 내려졌다. 반 정도 열려 있던 게 이제는 활짝 열린 꼴이다. 장만한 지 10년 넘었음을 어김없이 증명하는 고물차다.

‘이제 어떻게 한다? 이대로 400리 길을 되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만일 그랬다가는 꼴불견도 그렇지만, 차 안으로 들이치는 쌀쌀한 바람을 세 시간이나 감당해야 한다. 그건 못할 짓이다. 천생, 카센터라도 찾아, 어서 해결하자. 그러려면 면소재지로 가 볼 수밖에.’

그는 아까 오던 아스팔트길로 부지런히 차를 몰았다. 45년 전 ‘그날 밤 사건’의 현장이고 뭐고 차창 고장을 수리하는 일이 급하다.

면소재지 동네에 도착했다. 희망리와는 다르게 제법 번듯한 건물들이 들어선 장거리. 약국, 다방, 당구장, 철물점, 농협 하나로마트, 우체국…… 인적은 뜸하지만 있어야 할 건물들이 작은 규모로 존재하고 있다. 마침내 ‘우정 카센터’란 간판의 조립식 건물을 만났다.

차를 건물 앞에 세우자 키 작은, 때에 전 가죽점퍼 차림의 사내가 안쪽의 작은 사무실에서 나오며 말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나 참! 조수석 창유리가 내려가서는 안 올라오거든요.”

“고치는 데 시간 좀 걸릴 것 같은데”

“오늘 중으로야 수리되겠죠?”

그 말에 사내가 입을 벌리고 헤헤 웃는데 앞니 모두가 누런 금니였다. 작은 키에 앞니를 다 간 사내……. 그는 억지로 따라 웃으며 등허리로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 때 성가시게도 휴대폰이 또 ‘부응’ 울었다. 아내가 다시 보낸 문자메시지.

‘찬미예수님지갑주방에서찾았어미안해당신지금어딨어?’

이럴 때 답신이 가능할까? ‘아무래도 함정에 빠진 것 같다’는 이상한 답신이 아내에게 가능할까? 그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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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오후 다섯 시까지 학생들이 기숙사로 들어오게 되어 있다. 박 선생은 서울 집에서 오후 세 시쯤 학교가 있는 지방 도시로 출발해도 될 텐데 오늘은 점심을 먹자마자 한 시에 바로 출발했다. 아무래도 그 아이가 마음에 걸려 집에 있느니 기숙사에 일찍 가 있는 게 나을 듯싶었다. 오후 세 시도 되기 전에 학교 내의 기숙사에 도착한 박 선생.

이 층 건물인 기숙사의 일층 출입구 옆에 전원박스가 있다. 그것을 열어 기숙사에 전기가 들어오게 하고, 이어서 출입구를 가린 철제문의 잠금장치를 풂으로써 기숙사는 정상이 되었다. 쥐 죽은 듯 조용한 기숙사 내부. 박 선생은 뚜벅뚜벅 걸어 사감실로 들어가서는, 벽에 붙은‘각 실 별 명단’부터 살핀다. 일 층에는 101호실부터 110호실까지 있고, 이 층은 201호실부터 210호실까지 있다. 그 아이 이름은 210호실에 들어 있었다. 이 층 맨 끝 구석방이다.

그 아이가 그 동안 내 눈에 뜨이지 않았던 게 맨 끝 구석방인 때문이었나? 그보다는 그 아이가 내 눈길을 피해 생활했을 개연성이 더 크겠다. 각 호실마다 네 명씩 배정되어 있는데, 애들은 기숙사를 수학여행 온 여관방처럼 여기는지 쉬지 않고 들락날락거리며 떠들어댄다. 그 아이가 그런 소란 속에 숨어 있으면 내가 몇 달 정도는 모르고 지낼 수도 있지.

박 선생은 사감실을 나와 어둑한 복도를 걸어 210호실에 다다랐다. 문을 열자, 하루가 지났는데도 여전한 악취. 한창 크는 애들이라 수컷의 냄새에다가 안 빤 양말 냄새, 땀 냄새 등이 뒤섞여 남아있다. 방의 왼쪽에는 사 단으로 설치된 침대가 있고 오른 쪽에는 네 조의 책걸상이 나란히 놓여 있다.

네 조의 책걸상 중 가장 구석에 있는 그 아이의 자리. 책상 앞 벽에는 아이가 형으로 보이는 청년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과, ‘서울대 합격!’이라고 검은 매직으로 굵게 쓴 종이가 나란히 붙어 있다.

박 선생이 놀란 것은 책상 밑에 가득한 책들이다. 어둑해서 미처 못 봤었는데 의자에 앉아 두 발을 뻗기 힘들게 책상 밑에 꽉 찼다. 극빈이라는 아이가 웬 책이 이렇게 많아?

궁금해서 책 하나를 꺼내 환한 창가에서 보니까 영어 문제집이다. 들쳐보자 지저분한 밑줄 긋기도 많은데다가, 책 표지에 적힌 이름도 그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 이름이다. 그제야 감이 잡혔다. 아이가 문제집을 살 돈이 없자 학교 쓰레기장에서 주운 것이다. 요즈음 애들은 학년이 오르거나 졸업하면 그 동안 보던 책들을 미련 없이 다 쓰레기장에 내다 버린다. 조금 풀다가 말아서 새 것이나 다름없는 문제집도 그냥 다 내버린다. 여하튼 공부 하나는 열심히 하는 아이이구먼.

그런 아이를 기숙사에 남겨놓는다면, 내가 전기를 꺼 놓아도 양초라도 구해 밤새 공부했을 게 뻔하다. 그건 안 돼지. 이렇게 책들도 많고 좁은 방에서 그랬다가는, 자칫 양초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기숙사 전체로 불이 번져 대형화재가 될 텐데. 안 됐지만, 내가 어제 아이한테 나가서 자고 오라 한 것은 아주 잘한 결정이었다. 암 그렇고말고.

박 선생이 사감실로 돌아와 텔레비전의 재방 드라마를 보는 중에 오후 네 시가 되었다. 그 때부터 아이들이 와글와글 기숙사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다섯 시. 박 선생은 사감실의 방송장치를 켠 뒤 마이크를 잡고서 각 방의 대표들에게 현재인원을 즉각 보고하도록 알린다. 잠시 후 이십 명의 대표 모두 사감실 앞에 모여 101호실부터 보고하는데 210호실에 이르도록 단 한 명의 결원도 없었다. 일부러 210호실의 대표에게 재차 확인했으나 전원이 입사했단다.

그럼 됐구나. 어제 오후부터 편치 않은 박 선생의 마음이 확 풀렸다. 그 아이가 여하튼 들어왔으면 되었다. 박 선생은 기숙사 구내식당을 인터폰으로 불러‘기숙사생들의 여섯 시 저녁식사에 차질이 없도록’당부해 놓고 다시 텔레비전 드라마를 본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갈등이 본격화될 때 그 아이가 왔다. 부은 듯한데 겁먹은 얼굴이다. “기숙사 학생회장 애가,(콜록) 사감 선생님이 어제부터 저를 찾으셨다고 해서, 왔습니다.(콜록)”

“내가 말이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너를 학교 수위실 빈 방에 재울 것을 그랬나 싶더라고. 그래서 찾았지. 그래, 간밤에 잠은 어디서 잘 잤냐?”

“네.”

기침하는 것을 보아, 어디 공원 벤치 같은 데에서 잠잤을 듯싶다. 박 선생은 캐묻지 않았다. 이제 그만 가 봐도 된다고 손짓해서 보냈다. 그래놓고 생각해 보니, 녀석이 여전히 땀내 나는 동복 차림에다가 덥수룩한 머리인 게 어제처럼 용의복장 불량한 상태 그대로였다. 그런 녀석을 방치해서는 집단의 질서를 잡을 수 없다는 게 지론이지만 이번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아이고, 이놈의 기숙사 사감 짓도 못할 짓이다. 밤새 들락날락하며 떠드는 놈에다가, 배탈 났다고 찾아오는 놈, 물건 잃었다고 찾아오는 놈, 다른 호실에 들어가 잠자는 친구를 후려치고 도망 오다가 잡힌 놈 등등. 어디 그뿐인가? 수시로 막히는 화장실의 변기, 수시로 갈아주어야 하는 형광등, 수시로 시내 기술자를 불러들여 고쳐야 하는 고물 세탁기. 게다가, 화장실에 비치하는 두루마리 화장지는 하루나 이틀 만에 거덜 난다. 다섯 칸이나 되는 화장실에 비치되는 것들이 거의 동시에 그런다. 학교의 행정실장은 나만 보면 투덜거린다.“두루마리 화장지 비용으로 올해 기숙사 운영비가 다 나가겠습니다!”

객지의 하숙비도 아낄 겸, 교감 승진이 되기 위한 평가 하나 잘 받아보려고 자원한 고생치고는 고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사감이란 짓은 올 한 해로 끝이다. 내년에는 학교 부근에서 하숙하며 설렁설렁 출근하다가…… 교감 자격 연수로 들어가야 되겠지. 어쩌다가 마누라를 안아주는 일도 버거운 늙은 놈이 이제 무슨 낙이 있나. 교감, 교장이 되는 것, 그 낙밖에 없지.

박 선생이 신세타령을 속으로 하고 있을 때 누가 문을 노크한다. 문을 열자 이번 주 화장실 청소를 맡은 녀석이 서 있다. 이 녀석은 지난주에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다가 걸려 이번 주 화장실 청소 전담이라는 벌을 받았다. 이 녀석은 왜 왔나? “무슨 일이냐?”

“선생님, 변기 구멍이 하나 막힌 것 같은데요.”

다음 날 오전.

학교 교무실로 형사 두 사람이 찾아 왔다. 한 사람은‘이 학교 동복을 입은 아이가 웬 여자를 시내버스 쪽으로 세차게 밀치는’장면이 찍힌 감시카메라 사진 한 장을 손에 쥐었고 다른 한 사람은 헌 책가방을 들었다. 헌 책가방을 든 형사가 기막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사고현장에서 이 책가방을 채증해 왔기에 그 안의 책들을 보고 용의자를 특정하려 했는데 책마다 적힌 이름이 다 다르니, 나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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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bkim77 2017-03-09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가슴 아픈 내용이네요. ㅠㅠ
쇠락한 재개발 아파트로 피신한 아이의 모습에서 서러움이 묻어납니다.
사회가 어려울 때 청소년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껴안고 가는 모습이
실감있게 느껴졌습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