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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민 아이들 일곱 명이 전교생인 분교.

척박한 오지라 의무교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했다. 우리가 오기 한 달 전에도 어떤 청년이 일 년을 근무하다가 황황히 사표를 내고 떠났다 했다. 그런 식으로 배운 아이들이라 제대로 배운 게 없었다. 전교생 일곱 명 중 항상 두어 명은 결석하는 교실. 나는 그런 애들을 썰렁한 교실에 앉혀놓고 국어, 산수, 자연, 도덕, 미술 등 모든 과목을 가르쳐야 했다. 뺄셈도 제대로 못하는 애들한테, 주워온 도토리들을 들고서 수십 번 나눗셈을 반복설명하다 보면 오전이 다 지나가면서 끝나는 수업이었다.

내가 교실에서 수업할 때 경자는 밖에서 돼지새끼들에게 매달렸다.

양돈축산의 미래란 책자를 방바닥에 펴놓고 수시로 메모하며 양돈 연구에 전념하는 경자. 경자는 여기 오기 전부터 양돈사업을 계획했던 게 분명했다. 주변 산에서 나무 등걸들을 주워 일정한 길이로 잘라 직사각형 돈사를 만들고, 삼 십여 리 떨어진 읍내에 나가 실한 돼지새끼 두 마리를 사 오는 등…… 경자는 혼자 몸으로 양돈사업을 시작했다.

아무리 가르쳐도 제자리인 애들에 비해 대견스럽게도 잘 크는 돼지들. 잡식성 동물답게 인근 개울의 가재들부터 산기슭의 도토리들, 주변의 잡초들, 우리가 먹고 남기는 음식찌기까지 모두 다 좋은 사료였다. 돼지들의 성장이 기대 이상이었으므로 경자는 돈사를 새로 더 짓기로 했다.

일요일이었다.

경자는 읍에서 불러온 인부들을 데리고 개량식 돈사 짓기에 나섰다. 반듯한 슬레이트 지붕, 환기가 잘 되는 울타리 구조, 일정하게 사료가 나오는 급식장치, 분뇨가 잘 빠지는 바닥 시설……. 외진 골짜기에 어울리지 않는 현대식 돈사였다.

그럴 때 나는 방바닥에 엎드려 학습지도안을 작성하고 있었다. 각 과목별로 작성해야 하니 그 분량은 만만치 않았다. 물론, 학습지도안의 작성교사 이름은 박경자였다.

나는 고용직으로, 경자는 교사로 채용된 신분이었다. 정작 초등 준교사 자격증을 가진 경자는 돼지를 기르는데, 아무 자격증 없는 나는 애들을 가르치며 학습지도안도 짜는 교사 역이었다.

양돈으로 대성해 보겠다는 경자.

경자는, 아무 거나 잘 먹고 번식력도 왕성한 돼지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몇 년 안에 양돈축산계의 혜성으로 떠오를 계획이라고 내게 털어놓았다. 돼지의 약점이라고는 오직 전염병에 취약할 뿐인데 이곳은 가까운 민가가 십여 리나 떨어진 깊은 산골짜기이니까 그런 면에서 아주 안전한 청정지대라 했다.

얼마나 치밀한 경자의 사업 계획인가.

경자는 우리의 첫 만남부터 양돈사업까지, 모든 일을 철저한 계획 아래 이끌어가고 있었다.

산골짜기는 비좁은 하늘 때문에 하루해가 짧았다.

동쪽 산등성이에 가려 오전 열 시경에 떴다가 오후 네 시경만 되면 서쪽 산등성이 너머로 사라지는 태양. 그 때부터 골짜기는 서늘한 산그늘에 들어 있다가 별들이 뜰 때부터는 적막한 밤에 파묻힌다.

바람결에 흩날리듯 들리다 말다 하는 라디오 방송. 코 골며 자는 경자. 석유램프 불을 끄면 그런 소리들 이외에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방. 그럴 때 또 하나의 소리로 보태지던 나의 수음 소리. 죽지 않고 살아나는 젊은 성욕을 수음으로 달래는 그 쓸쓸한 어둠. 어쩌다가 경자를 깨워 관계를 시도하지만 필경은 딱딱한 돌덩이를 안은 느낌에 제풀에 죽던 그것이었다. 반쪽짜리 내 몸으로는 도저히 헤어날 길 없는 질긴 어두움, 깊은 골짜기.

늦가을로 접어들었다.

낮이 더욱 짧아지면서 찬바람도 자주 불어쳤다. 개울의 가재들도 바위 밑으로 깊숙이 숨고 갈참나무 낙엽들이 무더기로 분교 주위에 쌓여갔다. 경자는 바빠졌다. 김장을 담그고, 숙소 곳곳을 비닐로 감싸고, 가마니들로 돈사를 겹겹이 둘러주고…….

마침내 암퇘지 놈이 발정하였다.

밤의 골짜기를 뒤흔드는 야릇한 울음소리를 듣고 플래시를 들고 나간 경자는 희색이 만연해져 들어왔다.

이제 접 붙여야지! 그게 벌겋게 변했더라고. 책에 적힌 그대로이네.”

그 날 밤 경자는 돈사에 매달려 밤을 지새우는데 나는 느닷없이 저리며 쑤셔오는 왼쪽다리에 방바닥을 구르면서 어쩔 줄 몰랐다. 월남에서 떨어져 나간 그 다리가 아픈 것을 어떻게 납득해야 할까. 없기 때문에 달랠 수도 없는 허공의 통증.

나는 부엌에서 소주를 찾았다. 그 소주는 경자가 음식 간을 맞출 때 쓴다고 남겨 둔 큰 병 소주였다. 2/3정도 남은 그것을 다 들이켰다. 그래도 없는 왼쪽다리는 여전히 나를 괴롭혔다. 급기야는 사라진 왼쪽 눈알까지 함께 쑤시기 시작했다.

나는 기절하고 말았다.

깨어났을 때는 늦은 아침이었다. 경자가 끓여놓았는지, 머리맡에 놓인 미음을 떠먹었으나 쓰린 속은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없는 다리 쪽을 만져보았다. 덜렁거리는 바지가닥이다. 어둑한 방안에 그대로 누워 있을 수 없었다. 기진한데다가 숨 막힐 것 같은 좁은 방안. 나는 목발 없이 기어서 밖으로 나섰다. 태양이 좁은 골짜기의 하늘 안에 비집고 들어와 있었다.

무거운 햇빛들.

나는 숙소 외벽에 기대고 섰다가 풀썩 쓰러졌다. 온몸의 피가 다 빠져버린 듯한 빈혈 증세. 뒤통수부터 휘몰아치는 어지러움.

운동장 어귀 쪽에서 덜커덩 소리가 들려온 게 그 때였다. 경자였다. 수레에 무언가 잔뜩 싣고 돌투성이 많은 운동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최고가의 양돈 사료들이 반입되고 있었다.

 

늦봄에 돼지새끼를 열두 마리나 얻으면서 꿈에 부풀던 경자였다.

일 년 만에 돼지 마릿수가 열네 마리가 되었으니 몇 년 안에 백여 마리 돼지에 달할 듯싶었다. 사료도 몇 번씩 사 나르고 개량식 돈사도 세 채나 추가로 지으며 몇 년 안의 대성공을 눈앞에 둔 듯한 경자가…… 허무하게 쓰러져 버릴 줄이야!

가장 가까운 민가가 십여 리에 있는, 아주 청정한 골짜기라 믿고 지내왔는데 돼지 전염병에 열네 마리 돼지 모두가 차례차례 죽어 자빠질 줄은 몰랐다.

돼지콜레라라고 했다. 돼지들은 피를 토하며 죽어 버렸다. 뒤늦게 읍내 수의사까지 모시고 왔으나 소용없었다. 죽은 돼지들을 수레에 싣고 나가더니 저녁이 다 되어 경자는 들어왔다. 술 냄새가 독하게 났다.

이런 데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폐인이 된다며 내가 마실, 숙소의 술병들까지 내다버린 그녀가 술주정뱅이 꼴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수레는 어디다 팽개쳐두고 왔는지 보이지 않았다.

며칠을 두고 경자는 방에 틀어박혀 울다가 자다가를 반복하며 폐인처럼 보냈다.

어느 날 아침.

경자는 결연한 표정으로 밥상 위에 원고지들을 펴 놓고 앉았다. 골짜기 개울의 찬 물에 세수하고 들어오더니 그런 모습으로 방 가운데에 자리 잡은 것이다. 마침내 나는 사랑하는 그이와 큰 꿈을 품고서 도시를 떠났다-……로 시작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수기였다. 몸의 절반을 잃은 상이군인을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체험 이야기. 경자가 두 달 가까이 밤잠까지 설쳐가며 매달린 끝에 완성된 수기의 제목은 나의 사랑, 절망을 딛고.’

수기 작성에서도 얼마나 치밀한 경자인가. 돼지들을 치다가 절망에 빠지는 사람은 그이였고 아내인 자신은 학생들을 맡아 가르치는 교사로서 분교 교육에 헌신하면서 장애자 남편 일도 돕는 얘기로 수기는 꾸며져 있었다. 어처구니없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아이들을 가르친 사람은 문서상으로 박 경자였으니까. 어차피 그 누구도 들여다본 적 없는 수업들이었으니까.

경자는 읍내에서 사진사까지 모셔 와 피투성이로 남은 절망의 현장들을 사진 찍게 했다. 돼지새끼들이 죽어버린 돈사 앞에 목발 짚고 선 내 독사진과 교실에서 열심히 수업하는 자기 모습의 사진들. 어리둥절한 아이들을 야단쳐서 저요! 저요!’ 손들고 발표하는 동작들까지 만들어낸 경자. 수기 원고에 증거자료로 첨부한다고 했다. 이백 자 원고지로 천이백 매. 모 잡지사에서 창간기념 생활수기를 거금을 걸고 공모한다 했다.

우리는 분교를 떠나기로 했다.

경자가 묵직한 수기 원고를 소중하게 천으로 싸면서 내린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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