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하루였다.‘자전거를 이용하면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라는 교감선생의 말씀을 비웃듯 한 시간 넘게 걸려 다녀오는 교사들이 많은 탓이었다.‘분향소 앞에 줄지어선 인파가 대단했다’고들 했다. 읍내에 있는 여러 관공서의 직원들 수만 해도 적지 않은데 일반인들까지 몰려들었다니 그럴 만했다.

수업할 교사가 미처 귀교하지 못한 학급들 때문에 교내가 소란스러워지자, 교감선생 혼자 자습들을 시키느라 복도를 수시로 오가는 둥 참 어수선하게 지나간 하루였다.

교감선생한테 물문어란 별명이 붙을 때에는 문어란 동물이 보이는 음흉스러운 이미지도 반영되지 않았을까. 교감선생은, 어수선하게 지나가는 하루의 끝 무렵에 나의‘조문 불참’을 확인하던 것이다. 교무실 뒤편의 주전자 물을 마실 양 내 앞을 지나가다가 문득 생각난 듯 멈춰 서서 이렇게 물었다.

“참, 우리 국어선생님은 밤에나 분향소에 가시려나?”

나는 당황했다가 잠시 후 답했다.

“뭐, 퇴근길에나 들러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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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이 치러진 직후에 텔레비전에는 난데없이‘머리가 많이 벗겨진 사내’가 등장하여 누군가를 노려보는 표정으로 사건의 경위를 밝혔다. 범인으로 드러난 중앙정보부장이 초췌한 모습으로 포승줄에 묶인 채 범행을 재연하는 현장 장면도 방영되었다. 당일의 술좌석은 핏자국이 흥건했다. 그런 화면들을 말없이 지켜볼 때 서무과 박 주사가 황급하게 교무실로 들어오더니 교감선생한테 전언통신장부를 전했다. 교감선생은 장부를 펼쳐 한 번 보고는 당신 등 뒤에 있는 작은 칠판에 백묵으로 두 줄 적었다.

1. 고(故) 박대통령을 추모하는 분향소를 읍사무소에 개설했음.

2. 비는 시간들을 이용해서 각자 분향소에 다녀오기 바람.

교사들은 술렁거렸다. 읍사무소가 학교에서 오 리 넘게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그 먼 데까지 시간을 내어 다녀올 수 있느냐는 불평불만이었다. 솔직히 말한다면 ‘수업이라도 한 시간 빼 버리고 단체로 다녀오게 했으면’하는 바람이었다. 흐물거리는 몸짓이지만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른 교감선생이 한 마디 하였다.

“뭐, 자전거 타고 가면 그리 먼 거리가 아닙니다. 자전거가 없는 분은 학생들 거라도 빌려 타고 다녀오시든지.”

그분이 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교감선생님, 분향소에 다녀오는 것이 의무입니까?”

물문어 교감선생은 당황하여 의자에 앉았는데도 휘청거렸다.

“뭐…… 의무라고는 쓰여 있지 않으니까…… 알아서 판단하세요. 나는 전언통신장부에 있는 대로 전했을 뿐입니다.”

장부를 돌려받고도 남아 있던 박 주사가 호들갑스레 나섰다.

“아니에요, 가야 할 겁니다. 거기에는 자기 직장과 이름을 적어놓는 방명록이 있는데 나중에 그것을 관계기관에서 회수해 간다는 말이 있어요.”

박 주사는 서무과 말직에 있는 노인네였다. 예우상 주사라고 불러주지만, 실상은 고용직 서기였다. 정년이 일 년 남아 있었다. 그분은 교감선생에게 향했던 자세를 박 주사 쪽으로 바꾼 뒤 싸늘한 어조로 물었다.

“그럼, 박 주사께서는 참석하실 겁니까?”

박 주사는 당연하단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은 아무 말 없이 서랍에서 담배 한 가치를 꺼내어 피워 물었다. 길게 내뿜는 연기가 그분의 머리 위로 올라가 사방으로 흩어져갔다. 그 연기를 신호로 삼은 듯 교련선생이 애들 같은 장난기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이 빌 때 빨랑 자전거 타고 다녀와야지!”

각자 수업이 비는 시간들을 이용해서 읍사무소를 다녀오기 시작했다. 학생과장은 교무과장에게 ‘가서, 내 이름이나 대신 적어 줘.’ 부탁하고 앉아 있다가 아무래도 찜찜한지‘에이, 까짓 거 구경삼아 가보지 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앞서 출발한 교무과장을 허겁지겁 뒤쫓아 갔다.

나는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지겨운 눈길을 당사자가 죽은 뒤에도 대해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까짓 거 될 대로 되라지. 분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파면이야 시키겠나.’

교재연구에 몰두해보지만 아무래도 편치 않은 마음이었다.

‘이런 일로 내 자신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

각오까지 다지며 비는 시간마다 그대로 교무실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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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 밤 나는 하숙방에 누워 감격하고 있었다.

‘마침내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구나!’하는 감격이었다. 장기 집권자에 대한 애증 차원이 아니라, 어떤 지겨움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감격하고 있었다. 조국근대화니 경제부국 달성이니, 아무리 거창하게 선전해도 한 인물이 다스린 땅에서 십팔 년이나 살아온 ‘지겨움’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인물은 내 초등학교 사학년 시절부터 직장을 잡은 현재까지, 교과서 벽보 신문 잡지 텔레비전 등등의 매체를 통하여 항상 매섭게 지켜보던 눈길이었다. 그런 눈길이 일격에 쓰러졌다는 믿지 못할 역사적 시점에 나는 살고 있었다. 역사적 격변이라는 거대하고 도도한 흐름까지 온몸으로 느끼며 하숙방에 누워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게는 반정부적인 성향이 있었다. 뒤늦은 자각이었다. 내가 김 선생님 그분에게 호감을 가진 것만 봐도 충분히 입증되는 사실이었다. 십팔 년이나 진행된 일인치하의 날들에서 감히 ‘지겹다.’는 말들도 못하고 지내는데 그나마 유일하게 ‘아니, 뭐 이리 심심하지?’라고 돌려서라도 투덜대는 게 그분의 매력이었으니까.

나는 습관적으로 텔레비전은 켜 놓았으나 제대로 보지도 않으면서 혼자만의 감격에 겨워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자정 넘어 잤다.

다음 날도 학교는 평상을 유지했다.

다만 전 날처럼, 교감선생이 졸지도 않고 텔레비전을 지켜보는 게 별스러울 뿐이었다. 신문까지 당신 책상에 갖다 놓고 틈틈이 보는 모습이었다. 김 선생님 그분은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신문은 거들떠도 않고 말없이 앉아 있다가 종이 울리면 수업에 들어가는, 그분답지 않은 모습을 이틀째 보여주었다. 그렇다, 10․26 이후로 교감선생뿐만 아니라 그분도 별스러워져 있었다.

온통 흰 국화로 치장한 국장이 방영되는 날, 수업이 비는 교사들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그 화면을 지켜볼 때도 그분은 말없이 자기 자리에 앉아 교재연구를 하고 있었다. 교련선생이 다가가 농담했다.

“어디 아파? 왜 그리 말이 없어졌어?”

그분이 담담하게 답했다.

“교과서 진도가 많이 떨어졌거든.”

“그래? 난 뭔 삐친 일이라도 생겼나 했지.”

교과서 진도가 떨어졌다는 그분의 말은 거짓이었다. 바로 전 시간에 내가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복도를 지나면서 얼핏 봤는데, 어느 반 교실에 있던 그분은 결코 진도를 바삐 나가는 모습이 아니었다. 수학문제 몇 개를 칠판에다 적어놓고는 혼자 창가에 서서 운동장 쪽을 망연히 내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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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여름, 미국 나사에서 쏘아올린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잘 사는 이웃집의 안방에는 그 장면을 지켜보려고 모여든 동네 사람들로 가득했다. 흑백 tv로 중계되는,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첫 발을 디디는 장면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다음 날 저녁 신문은‘인간 달에 서다’라고 대문짝만한 활자로 발간되었다. 아폴로 우주선은 이런저런 것들을 실험하고 채집하느라 며칠 간 달 표면에 남아 있는다 했다. 학교는 여름방학 중이었다.

 

대학입학을 위한 예비고사가 몇 달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라 시험공부에 매진해야 하는데 무심은 전혀 공부가 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달에 우리 인간이 쏘아올린 우주선이 착륙해 있다는데, 편안히 시험문제집을 펴 놓고 방안에 앉아 있다니 스스로 납득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결국 옷을 갈아입고 학교로 갔다. 학교는 멀었다. 삼십 분은 걸려, 걸어서 도착한 학교.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여름방학에 들어갔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만, 그 또한 무심이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천여 명의 학생들이 북적거리던 공간이 마술이라도 부려진 듯, 단 한 명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니 말이다.

 

혼자 텅 빈 교내를 방황하다가 가까이에 있는 공설운동장으로 갔다. 다행히도 그곳에 몇 명의 동기애들이 모여 있었다. 걔네들마저 없었더라면 무심은 그 날 어떡할 뻔했을까?

 

걔네들은 어떤 애가 떠드는 얘기를 아주 재미있어 하며 둥글게 모여 있었다. 무심이 다가갔는데도 특별히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그 애의 얘기에 푹 빠져 있었다.

 

그 애는 우리와 동기이긴 하지만 학교를 안 다녔다. 깡패 비슷하게 거리에서 지내는 아이인데 웬 일로 공설운동장 한 구석에 나타나, 동기애들한테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음담이었다. 우리 또래 여학생을 하룻밤에 어쨌다는 음담을 아주 실감나게 늘어놓고 있었다. (사실, 이 묘한 아이에 대해 무심은 얼마 전 작품 하나를 썼다. 때가 되면 발표할 것이다.)

 

공설운동장의 서쪽으로는 미군부대가 있었다. 미군부대에서 성조기 하강식을 하느라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때 서쪽 하늘에 붉은 노을이 선연했다.

 

달에 아폴로 우주선이 착륙해 있다는데 학교 다니지 않는 애가 열심히 음담을 늘어놓고, 진위 여부가 분명치 않은 그 음담을 학교 다니는 동기애들이 킬킬거리며 재미나게 듣고 있고, 미군부대에서는 늘 그랬듯 성조기 하강식이 치러지고, 천여 명의 학생이 북적거렸던 학교는 갑자기 텅 빈 건물로 있고, 하는 뭐라 간단히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 무심을 못 견디게 했다.

 

무심은 다시 먼 집으로, 삼십여 분 걸어서 돌아왔다. 집이라고는 하나, 사실 독채 전세로 얻은 집이었다. 무심은 부엌 위, 지붕 아래 다락방에 올라갔다. 미리 갖다놓은 작은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 스탠드 등을 켠 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예비고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그 하루 이틀 사이에 벌어지는 상황들을 견딜 수가 없었다. (소설을 완성한 뒤‘황사’라 제목을 붙이고 모 대학교에서 공모하는 전국고등학생 대상 현상문예에 응모했다. 두 달 뒤 당선되었다는 통지를 받았다. 무심의 문학수련은 그렇게 시작됐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무심은 그 여름날을 잊지 못했다. 그냥 두어서는 안 되는 여름날이란 생각에 미쳤다. 다 늙어서, 이제는 서재에 앉아 그 여름날을 눈앞에 떠올리며 며칠 걸려 작품을 썼다. ‘달나라’라는 소설은 그렇게 창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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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그 시월 이십칠일의 교무실을 다시 생각해 본다.

어떻게, 이십 년 가까이 통치한 자가 총격으로 숨졌는데‘보충수업을 한 시간 줄이는’ 정도로 평상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교장선생이 심각한 표정으로‘자기 본분을 다 하자’는 훈시를 했지만 그 영향을 받은 결과는 결코 아니었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인솔교사들을 모아 놓고 훈시할 때도 같은 말씀을 하는 분이었으니 교사들 귀에 담겨질 리 없었다.

그 날의 납득하기 어려운‘평상적인 학교 분위기’는 어떤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았을 때 몸을 바짝 움츠리고서 주변을 살피는 건 약자의 본능이었다. 당연히 우리는 약자였다. 교무실의 누구도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거대한 두려움 속에서 우리는 주변을 조심스레 살폈었다. 김 선생님 그분조차 입을 굳게 다물었고 나까지 덩달아 그러면서 그 하루를 보냈었다. 물문어 교감선생이 흐물거리던 몸을 바짝 세워 텔레비전을 종일 지켜보던 것은, 그러한 두려움의 정체를 찾아보려던 행동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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