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밤 나는 하숙방에 누워 감격하고 있었다.

‘마침내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구나!’하는 감격이었다. 장기 집권자에 대한 애증 차원이 아니라, 어떤 지겨움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감격하고 있었다. 조국근대화니 경제부국 달성이니, 아무리 거창하게 선전해도 한 인물이 다스린 땅에서 십팔 년이나 살아온 ‘지겨움’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인물은 내 초등학교 사학년 시절부터 직장을 잡은 현재까지, 교과서 벽보 신문 잡지 텔레비전 등등의 매체를 통하여 항상 매섭게 지켜보던 눈길이었다. 그런 눈길이 일격에 쓰러졌다는 믿지 못할 역사적 시점에 나는 살고 있었다. 역사적 격변이라는 거대하고 도도한 흐름까지 온몸으로 느끼며 하숙방에 누워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게는 반정부적인 성향이 있었다. 뒤늦은 자각이었다. 내가 김 선생님 그분에게 호감을 가진 것만 봐도 충분히 입증되는 사실이었다. 십팔 년이나 진행된 일인치하의 날들에서 감히 ‘지겹다.’는 말들도 못하고 지내는데 그나마 유일하게 ‘아니, 뭐 이리 심심하지?’라고 돌려서라도 투덜대는 게 그분의 매력이었으니까.

나는 습관적으로 텔레비전은 켜 놓았으나 제대로 보지도 않으면서 혼자만의 감격에 겨워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자정 넘어 잤다.

다음 날도 학교는 평상을 유지했다.

다만 전 날처럼, 교감선생이 졸지도 않고 텔레비전을 지켜보는 게 별스러울 뿐이었다. 신문까지 당신 책상에 갖다 놓고 틈틈이 보는 모습이었다. 김 선생님 그분은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신문은 거들떠도 않고 말없이 앉아 있다가 종이 울리면 수업에 들어가는, 그분답지 않은 모습을 이틀째 보여주었다. 그렇다, 10․26 이후로 교감선생뿐만 아니라 그분도 별스러워져 있었다.

온통 흰 국화로 치장한 국장이 방영되는 날, 수업이 비는 교사들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그 화면을 지켜볼 때도 그분은 말없이 자기 자리에 앉아 교재연구를 하고 있었다. 교련선생이 다가가 농담했다.

“어디 아파? 왜 그리 말이 없어졌어?”

그분이 담담하게 답했다.

“교과서 진도가 많이 떨어졌거든.”

“그래? 난 뭔 삐친 일이라도 생겼나 했지.”

교과서 진도가 떨어졌다는 그분의 말은 거짓이었다. 바로 전 시간에 내가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복도를 지나면서 얼핏 봤는데, 어느 반 교실에 있던 그분은 결코 진도를 바삐 나가는 모습이 아니었다. 수학문제 몇 개를 칠판에다 적어놓고는 혼자 창가에 서서 운동장 쪽을 망연히 내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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