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그 시월 이십칠일의 교무실을 다시 생각해 본다.
어떻게, 이십 년 가까이 통치한 자가 총격으로 숨졌는데‘보충수업을 한 시간 줄이는’ 정도로 평상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교장선생이 심각한 표정으로‘자기 본분을 다 하자’는 훈시를 했지만 그 영향을 받은 결과는 결코 아니었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인솔교사들을 모아 놓고 훈시할 때도 같은 말씀을 하는 분이었으니 교사들 귀에 담겨질 리 없었다.
그 날의 납득하기 어려운‘평상적인 학교 분위기’는 어떤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았을 때 몸을 바짝 움츠리고서 주변을 살피는 건 약자의 본능이었다. 당연히 우리는 약자였다. 교무실의 누구도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거대한 두려움 속에서 우리는 주변을 조심스레 살폈었다. 김 선생님 그분조차 입을 굳게 다물었고 나까지 덩달아 그러면서 그 하루를 보냈었다. 물문어 교감선생이 흐물거리던 몸을 바짝 세워 텔레비전을 종일 지켜보던 것은, 그러한 두려움의 정체를 찾아보려던 행동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