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건이 있은 지 보름쯤 지났다.

다른 산으로 등산을 다니던 K는 또 다른 뱀과 맞닥뜨렸다. 정말 재수 없었다.

먼젓번, 가파른 비탈길이 중턱에 있는 산은 높이가 해발 오백이십 미터였지만 이번 산은 해발 삼백오 미터로 낮은 편이었다. 따가운 땡볕에 연실 흐르는 목덜미의 땀을 수건으로 훔치며 봉우리 가까이 다가간 K는 길게 누워 있는 뱀과 맞닥뜨린 것이다.

하마터면 발로 밟을 뻔했었다. K가 미처 못 본 까닭은, 그 뱀이 봉우리 바로 아래의 길고 좁다란 그늘 속에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기어 다니는 뱀한테‘누워 있었다.’니 표현이 이상하다. 그래도 K는 그 그늘 속의 뱀이 편하게 누워 있다고 느꼈다.

그즈음 K에게 산짐승들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생겨난 건 아닐까?

그 뱀이 쉴 만한 그늘이 생겨난 건, 중천의 해가 서쪽으로 조금 기운 오후 시간인 때문이었다.

‘봉우리까지 올랐다 하산해야만 등산한 거다.’는 고집을 가진 K였으므로, 그 뱀을 이유로 봉우리 바로 앞에서 뒤돌아설 순 없었다. 결국 나아가지도 못하고 돌아서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뱀과 삼 미터쯤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뱀의 생김새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전체 길이는 일 미터쯤 되는데, 뭉툭한 대가리에 갈색과 검은색 무늬가 교차한 몸통이었다. 나중에 집에서 생물도감을 보고 알게 됐지만 먹구렁이였다.

일 이 분은 지났을 것이다. 웬만한 뱀이었다면 사람의 접근을 알아채고 그 자리를 떠났을 텐데 이 뱀은 미동도 않고 K를 뻔히 보며 그냥 누워 있었다. K가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뱀은 눈까풀이 없는 짐승이니 눈을 뜬 꼴로 오수를 즐기던 중일 수도 있었다.

생각해 보라, 뱀의 처지를.

이른 아침부터 먹이를 찾아 헤매다가 — 그것도 땡볕에 달궈진 후덥지근한 수풀 속을 헤매다가 마침 ‘산봉우리 바로 밑에 시원하게 생겨난 그늘’에 다다라, 뜨거워진 체온도 식힐 겸 꿀맛 같은 오수를 즐기는 참이었다. 어디, 뱀이라고 해서 온 종일 쉬지 말고 헤매라는 법이 있던가? 뱀도 사람처럼 당연히 쉴 권리가 있다.

이런 뱀의 오수에 대한 생각들은 K가 나중에 해 본 것이고,‘주위에 자신 말고 아무도 없는 한낮에, 눈앞의 그늘에서 팔자 좋게 쉬고 있는 뱀과 맞닥뜨린 당시’의 K는 참 난감했었다.

K는 생각다 못해 그 자리에서 두 발을 땅바닥에 쿵쿵 굴렀다.

그제야 뱀은 ‘S’자로 꿈틀거리며 부근의 수풀 쪽으로 천천히 이동하는데 불평까지 했다.

“젠장! 모처럼 쉬는데…… 짜증나네.”

K는 머리털이 한꺼번에 치솟는 공포를 느꼈다. 보름 전 비탈길에서 만난 뱀처럼 이번 뱀도 말한 것이다! K는 마음 같아서는 뒤돌아서 달아나고 싶었다.

‘봉우리까지 올라야 등산이다’는 자신의 등산 원칙을 그 지경에서도 떠올리며 벌벌 떨리는 두 다리로, 그 뱀이 누워 있었던 그늘진 곳을 건너 봉우리에 올랐다. 예전 같았으면 배낭에서 수통을 꺼내 물 한 잔을 마시며 유유자적하게 일대의 풍경도 둘러보며 여유를 즐겼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봉우리에 십여 초 서 있다가, 얼른 그 자리를 떠나 하산 길로 들어섰다.

푸른 수풀 속 어디에서 그 뱀이 “어이, 잘 가!”하는 것 같아 걸음을 떼는 K의 두 다리는 여전히 후들거렸다.

산에서 가장 주의할 때가 하산할 때다. 마음은 다급해도 조심스런 걸음으로 하산해야 했다. 잘못해서 구르게 되면 수풀 속에서 그 뱀이 얼마나 박장대소할까!

산을 다 내려온 듯해서 방심했던 걸까. K는 산기슭의 소나무 등걸에 어깨를 부딪치고 말았다.

아픈 어깨를 한 손으로 부여잡고 시내 쪽으로, 도로를 힘겹게 걸었다. 한창 걷다가 시내버스를 만났다.

버스에 있는 시골 아주머니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쳐다볼 정도로 K는 온통 땀에 젖어 빈자리를 찾은 뒤 털썩 주저앉았다.

 

‘맞닥뜨린 뱀이 불쑥 말하는’사건들을 연이어 겪자 K는 등산을 중단했다.

좁은 아파트에 틀어박혀 지냈다. 등산으로 소일하던 K로서는 참 답답한 날들이었다.

아파트 단지 뒤에 작은 동산이 있었다. 해발 몇 미터라고 말할 것도 없이 작은 산이지만 그래도 꼭대기까지 다녀오면 삼십 분은 충분히 지나갔다. 땀도 제법 났었다.

K는 직장생활을 할 때는 주말마다 동산을 다녔지만 퇴직한 뒤로는 갈 수 없었다.

딱 한 번 갔었다. ‘종일 아파트에 틀어박혀 텔레비전이나 보는 생활’에 지친, 퇴직 후 한 달쯤 되던 평일이었다. 애써 용기를 내 갔는데 막상 동산 어귀에 다다랐을 때, 애들이 잘 쓰는 말로 ‘쪽이 팔려서’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바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내라고는 K밖에 없었다.

그 날로 동산 다니기를 단념했고, 생각던 끝에 이삼십 리 근교의 산들로 행선지를 바꾼 것이다.

등산 채비도 하고, 시내버스도 이십여 분은 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래도 근교 산을 다녀오면 하루가 잘 갔다. 땀에 젖은 몸을 찬 물로 샤워하고, 뒤늦은 점심을 차려먹은 뒤 노작지근한 몸을 낮잠으로 푸는 맛이 괜찮았다.

그러기를 이 년째.

‘평일에 혼자 근교 산을 다니는 호젓한 맛’에 빠져드는가 싶었는데 이상한 뱀들과 잇달아 맞닥뜨리면서…… 다시 방 안에 죽치고 앉아 텔레비전이나 보며 소일하는, 퇴직 직후의 딱한 꼴로 되돌아온 것이다.

가족 중 누구도 K의 딱한 처지를 알 리 없었다. 가족이라고 해야 아내와 딸뿐이다. 아들은 군대 가 있다.

아내는 어느 식당에 주방 일을 다닌다. 재작년 봄에 대학을 졸업한 딸애는‘하루 종일 여러 가지 알바를 하느라’고 바빠 보인다. 대학원 갈 등록금 마련이 목적이라는데 그 이상은 알 수 없었다.

K가 지난 해 봄 직장에서 구조조정으로 퇴직된 후 생긴 가족들의 변화였다. 얼마 안 되는 퇴직금조차 재직 때 잘못 선 보증으로 다 날아가자, 각자 알아서 돈벌이에 나선 것이다. 대학 일년생이던 아들애까지 군대에 자원입대하여 집의 생활비를 덜었다.

K는 산에서 겪은 놀라운 뱀들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각기 바삐 사느라 얼굴 보기도 힘들어지면서 가족 간 대화가 사라졌는데 모처럼 꺼낸 대화가 ‘뱀이 불쑥 말을 건넸다’는 이야기라면 어느 누가 화답할까?

어쩔 수 없었다. K는 늘 그랬듯 침묵하며 지내는 게 좋았다. 그러잖아도 가족들은 가장(?)이 재취업 의욕도 보이지 않고 산이나 다니는 데 불만들이 많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기이한 일이다. K가 산짐승들이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물론 K도 어린 시절에 짐승들이 사람처럼 말하는 만화영화를 본 적이 많았다. 그런 기억의 영향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만화영화 속의 짐승들은 자기네끼리, 혹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식이었지만 요즈음 K가 만난 산짐승들은 불쑥 말을 건네고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그럴 만했다. 만났다기보다는 맞닥뜨린 짐승들이었기 때문이다. 뭣 하러 산짐승들이 K에게 다가오겠는가? 멸종당한 호랑이나 늑대라면 모를까, 현재 산에 살고 있는 짐승들은 사람이라면 기겁해서 먼저 달아나는 종류들뿐이었다. 성질 사납다는 멧돼지 또한 사람 냄새를 맡으면 먼저 피한다는 게 정설이다. 따라서 산짐승들이 K와 만나는 경우란 불가피하게 맞닥뜨린 경우밖에 없었다.

맞닥뜨린 산짐승이 K에게 불쑥 말을 건네는 기괴한 사건들.

그 시작은 재수 없게도, 뱀이었다.

 

갑자기 무더워진 초여름 어느 날이었다. K는 땀에 젖어 산봉우리에 올랐다가, 하산하던 비탈길에서 웬 뱀과 동행하게 되었다.

뱀과의 거리는 이 미터쯤이었다. 끔찍한 대상이라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색깔이 화려한 능사 같았다. 뱀이 평탄한 데가 아닌 비탈길을 내려가다니, K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먹이를 찾다가 길을 잘못 든 게 아니었을까?

K는 온몸에 소름이 끼치면서 동시에 민망했다. 정상적인 여건에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는 동행이었으니까.

뱀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평지였더라면 얼른 그 민망하고 부담스런 동행에서 벗어나련만 워낙 가파른 지형이라 감수하는 모양이었다.

K는 자기가 멈춰 섬으로써, 뱀을 먼저 내려가게 하려 하였다. 하지만 워낙 가파른 곳이라, 멈춰 섰어도 저절로 미끄러지니 딱한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이, K는 아기 걸음마 떼듯 조심조심 비탈길을 내려가며 뱀과 동행하는데…… 식은땀이 목덜미로 흘렀다.

우스운 일마저 벌어졌다. 워낙 비탈진 길이라, 내려가는 뱀의 체형이‘S’자나 ‘I'자가 되지 못하고 'Ⴖ'자 형태로 휘고 만 것이다. 꼬리마저 비탈길 아래쪽으로 휘어, 대가리와 함께 질질 미끄러져 내려가는 꼴이었다.

식은땀 나는 공포 속에서도 뱀의 그 꼴에 웃음이 터질 것 같던 K의 복잡한 심경이란.

약 이삼 분 동행하다가― K가 하산한 뒤 추정해 본 시간이다. 실제로 느껴지던 시간은 몇 시간 같았다.― 뱀은 비탈길가의 풀무더기 속으로 몸을 숨겼다. 두 뼘 넓이의 좁은 풀무더기라서 꼬리부분은 노출된 딱한 꼴이었다. 꿩이 급히 숨을 때에는 땅에 대가리부터 박고 본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어처구니없는 꼴에 K가 머뭇거리자 뱀이 불쑥 말했다.

“형씨, 나를 못 보았다 치고 어서 그냥 내려가슈.”

기겁한 K는 비탈길을 정신없이 내려갔다.

경사도가 완만한 산길에 다다라, 천천히 걸어가도 되는데 방금 전 뱀이 불쑥 말을 건넸다는 사실에 놀라 경황이 없었다. K는 여전히 정신없이 내달아, 두어 번이나 돌부리에 발이 걸려 고꾸라질 뻔하였다.

산 아래 도로까지 내려온 K는 숨을 헐떡이며 시내버스를 기다리다가, 시내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뱀이 말을 건 그 무서운 산에서 더 멀어져야 했다.

시내는 이십 여 리 전방에 있었다.

한참 걷다가 시내버스가 오는 소리를 들었다.

K는 버스에 탄 뒤에야 공포감이 다소 진정되었다. 버스 안의 아무나 붙잡고 그 기괴한 뱀 얘기를 털어놓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운전기사는 운전하느라 바빴고, K를 제외한 다른 승객이라야 연세가 팔십 돼 보이는 노인 두엇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만일 그 사건을 얘기한다면 귀들이 어두워‘뭐라고? 뱀이 말을 잡아먹었다고?’같은 엉뚱한 반문을 할지도 몰랐다.

‘그럼, 집에 가서 식구들한테 털어놓을까?’생각했지만 ‘날마다 산을 다니더니 머리가 이상하게 된가 보네.’하는 의심이나 받을 것 같았다.

‘2단지 주공 아파트’ 앞 정류장에 버스가 당도했다. K는 뱀이 말을 건 사건을 혼자만의 비밀로 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 채, 지친 몸으로 하차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기이한 일이다. K가 산짐승들이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물론 K도 어린 시절에 짐승들이 사람처럼 말하는 만화영화를 본 적이 많았다. 그런 기억의 영향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만화영화 속의 짐승들은 자기네끼리, 혹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식이었지만 요즈음 K가 만난 산짐승들은 불쑥 말을 건네고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그럴 만했다. 만났다기보다는 맞닥뜨린 짐승들이었기 때문이다. 뭣 하러 산짐승들이 K에게 다가오겠는가? 멸종당한 호랑이나 늑대라면 모를까, 현재 산에 살고 있는 짐승들은 사람이라면 기겁해서 먼저 달아나는 종류들뿐이었다. 성질 사납다는 멧돼지 또한 사람 냄새를 맡으면 먼저 피한다는 게 정설이다. 따라서 산짐승들이 K와 만나는 경우란 불가피하게 맞닥뜨린 경우밖에 없었다.

맞닥뜨린 산짐승이 K에게 불쑥 말을 건네는 기괴한 사건들.

그 시작은 재수 없게도, 뱀이었다.

 

 

< 무심 이병욱의 단편소설 '가섭 별전(別傳)' 중에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가을 금강산을 풍악산이라고도 부른다.

 

용(竜)이가 사내를 만난 곳은 풍악산 초입인 단발령 고갯마루다. 사기그릇들을 잔뜩 얹은 지게를 지겟작대기로 간신히 세워놓고 그 그늘에 앉아 쉬려할 때 산발한 사내가 불쑥 나타난 것이다. 어쩌면 사내가 용이보다 먼저 고갯마루에 와 있다가 다가온 건지도 모른다. 용이는 지게 위 그릇들이 무겁고 조심스러워 땅만 내려다보며 고개를 올라왔으니까.

사내는 상투도 못 틀고 산발한 데다가, 길바닥에서 지내는지 옷차림도 걸레처럼 더러웠다. 짚신도 못 신은 맨발이었다. 지게 그늘에서 쉬려다가, 느닷없이 기괴한 꼴로 나타난 사내에 기겁한 용이. 하마터면 지겟작대기를 건드려 그릇들을 다 깨트릴 뻔했다.

그렇게 놀라게 했다면‘아이고 죄송합니다’ 같은 사과의 말이라도 건네야 옳지 않을까. 하지만 사내는 그런 말은커녕 괴이한 소리를 내었다.

“어버버!”

“이 사람, 뭐하자는 거야?”

용이는 본능적으로 지게 등태에 숨겨두었던 칼을 찾아 빼들었다. 세상이 흉흉한 탓에 먼 길을 다닐 때에는 이런 칼 하나는 비치해야 했다. 사내는 서슬 퍼런 칼에 놀라 무릎 꿇고 앉더니, 두 손을 비비며 다시‘어버버’소리를 냈다. 그제야 용이는 상황을 알아챘다. 사내는 말 못하는 벙어리였다. 용이는 칼을 다시 지게 등태 속에 넣었다. 그러자 사내 표정이 밝아지더니 이번에는 웬 작은 보따리를 두 손으로 바친다. 용이가 그 보따리를 받아 풀어보았다. 머루 다래만 가득했다. ‘숲에 들어가면 지천인 게 머루 다래일 텐데, 이걸 바친다고?’하는 어이없다는 생각에 보따리를 되돌려주려 하자 사내는 머리를 가로 저으며 용이 지게가지 끝에 붙들어 매단 전대를 가리켰다. 전대에는, 용이가 오늘 새벽 방산에서 길을 나설 때 아내가 볶아준 콩 열두 홉이 들어 있다. 사내 행동이 짐작 갔다. 보따리의 머루 다래를 드릴 테니 그 전대에 들었을 식량 좀 받아먹고 싶다는 뜻이다. ‘바꿔먹자’는 것 같지만 사실 구걸하는 거나 다름없다. 사내는 그 동안 산에서 머루 다래 같은 산열매나 따 먹으며 연명하느라 지친 것일까.

이 단발령 고개를 내려가면 내금강이다. 내금강에는 절이 많다. 더러, 전란 중에 불타버린 절도 있지만 다행히 대부분의 절이 무사하며 특히 정도사(正道寺)가 예전처럼 불사를 정상적으로 유지한다기에 용이는 쌀을 얻어올 희망을 가졌다. 십 년 전, 어머님의 천도재를 정도사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마음 푸근한 주지 스님이 용이가 지게에 지고 가는 사기그릇 오십 점 정도는 흔쾌히 받으시며, 그 값으로 공양미로 쓰이는 쌀 한 가마니를 성큼 내주실 게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넉넉해진 용이는 애절히 구걸하는 사내한테 인심 한 번 쓰기로 했다. 전대를 풀어 볶은 콩 두 홉쯤 꺼내 건넨 것이다. 사내는 얼른 땅바닥에서 일어나면서 두 손으로 볶은 콩들을 받더니 이내‘으직으직’씹어 먹기 시작했다. 볶은 콩이 얼마나 고소하던지, 애절했던 사내의 표정이 순식간에 행복해졌다. 용이는 어이없어 하다가 보따리에서 머루 서너 알을 꺼냈다. 하지만 쉰내에 먹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자신도 전대에서 볶은 콩을 한 홉쯤 꺼내 입안에 털어 넣고 사내처럼 ‘으직으직’씹어 먹기 시작했다. 이제 전대에 볶은 콩이 아홉 홉쯤 남았다.

 

사기장은 나라에서 명하는 대로 도자기들만 잘 구워내 바치면 농사 지어먹을 만큼의 녹봉도 나오는 안정된 업이었다. 하지만 근년 들어 왜구들의 침략이 잇따르고 이성계 장군의 위화도 회군이라는 큰 사건까지 나자, 나라가 몹시 어지러워지면서 사기장의 생계마저 흔들려버렸다. 관청의 명대로 도자기들을 구워 바쳐도 녹봉이 제대로 내려오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용이와 아들이 사기그릇 백 점을 반씩 나누어 지게들에 지고 아비는 풍악산 정도사로, 아들은 개경으로 각기 집을 떠난 건 그 때문이다.

처음에는 가는 길이 비교적 편한 개경은 용이가 가고, 높은 단발령 고개를 넘어야 하는 정도사에는 아들이 가는 것으로 계획했었다. 하지만 집 앞에서 출발하기 직전에 길을 바꿨다. 정도사 주지 스님을 만나 뵙고 사기그릇들을 사 달라는 부탁을 하려면 아무래도 나이도 있고, 안면도 있는 자신이 가는 게 더 좋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부처님께 공양드릴 때 쓰이는 그릇들이야 귀한 놋그릇이지만 스님들이 먹고 마시는 데 쓰이는 그릇들은 목기가 고작일 터. 이번에 갖고 가는 사기그릇들이야말로 그런 스님들의 품격을 한 단계 높여주는 물건이 될 게다. 용이는 무거운 사기그릇들을 지게에 지고 이 높은 단발령 고갯마루를 향해 겨우겨우 올라오면서 그런 희망적인 생각들로 몸의 고통을 참았던 것이다.

 

사내가 볶은 콩 두 홉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더니, 자세를 가다듬고서 땅바닥에 엎드려 큰절 한다. 비렁뱅이치고는 인사성이 발랐다. 고갯마루에서 받는 늦가을 햇살이 따갑다. 용이는 지게가 드리운 그늘에 혼자만 앉아 쉬기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지게가지 위에 높이 얹은 그릇들 덕에 긴 그 그늘이 최소한 두 사람은 수용할 듯싶다. 용이는 땡볕을 받고 있는 사내한테 말했다.

“이 그늘로 들어오시게.”

사내는 멍청한 표정으로 용이를 볼 뿐이다. ‘참, 이 사내가 말소리를 듣지 못하는 탓에 벙어리가 된 거겠지.’뒤늦은 생각에 용이는 사내의 한 손을 잡아 지게 그늘 안으로 끌어들였다. 비로소 알았는데 사내는 왼쪽다리마저 절고 있었다. 까치집 같은 산발에 넝마 같은 차림에 다리마저 절다니, 어쩌다가 이런 딱한 꼴이 됐을까.

한동안, 왜구들에다가 홍건적들까지 쉴 새 없이 쳐들어와 약탈과 살상을 일삼다가 격퇴됐었다. 사내가 그 때 식구들을 모두 잃고 몸마저 상한 채 유랑민이 된 걸까? 용이는 자신보다 더 딱해 보이는 사내를 보며 왠지 서글퍼져 저잣거리에서 떠도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얄라.

살어리 살어리랏다 바다에 살어리랏다.

나문재 굴 조개랑 먹고 바다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얄라.”

 

본래 용이네 집안은 남해 바닷가 사기장이 마을에서 살았다. 사기장이 마을은, 도자기를 구워 나라에 바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기장들의 공동체다. 용이의 아버님은 마을에서 가장 지체 높은 ‘지유(指諭)’자리를 맡았다. 도자기도 굽지만 다른 사기장들도 통솔하는 자리다. 물론 나라로부터 받는 녹봉도 마을에서 가장 많았다. 용이 아버님은 도자기 만드는 일을 마치면 언제나 물 빠진 갯벌에 나가 굴도 따고 낙지도 잡았다. 미천한 집 가장이 바랄 게 뭐가 있던가. 그저 식솔들 입에 거미줄 칠 일 없이 사는 것 하나 바랄 뿐이다. 행복한 용이네 집에 불행이 닥친 것은 어느 여름 날 배 타고 와 습격한 왜구들 때문이었다. 왜구들은 웃옷만 걸친 기괴한 차림으로 긴 칼을 휘두르며 사기장 마을을 도륙 냈다. 식량은 말할 것도 없고 도자기들까지 모조리 빼앗아 가 버렸다. 반항하는 양민은 그 자리에서 칼로 베 죽였는데 그 때 용이의 아버님도 참변을 당했다. 그 후로 마을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마음 편히 도자기를 구울 수 있고 토질도 적합한, 다른 좋은 땅을 찾아 헤매다가 정착한 데가 바로 방산이다. 방산 땅에는 도자기 재료로 쓰는 흙 중 가장 좋은 백토가 곳곳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너무 어렸던 탓에 도자기 일도 제대로 배우진 못한 용이었지만 아버님의 유업을 이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이십여 년이 흘렀다. 그 동안 용이는 마음씨 고운 옆집 처녀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고 아버님처럼 지유도 되었다. 하지만 지유가 된들 뭐하나. 녹봉도 끊기다시피 돼, 먹고 살 길이 아득한데…….

 

용이는 사내와 그쯤에서 헤어질 생각이었다. 헤어지고 말고도 없었다. 그냥 용이가 먼저 지게를 다시 지고 내금강 쪽으로 단발령 고개를 내려가면 되었다. 그러면 사내는 반대방향인 두타연 쪽으로 내려가든지, 아니면 고갯마루에 남아 있다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한테 음식동냥을 하든지 할 게다.

막상, 지게 지고 일어나 고개 아래쪽으로 발길을 내디디려던 용이가 생각을 바꿨다.

“어이, 나 좀 보시게.”

사내는 소리를 못 듣는 탓인지 어리둥절한 낯이다. 하는 수 없이 용이는 등에 진 지게를 다시 땅에 내려놓은 뒤 강아지한테 하듯 가까이 오라 손짓했다. 사내가 다리를 절면서 다가왔다. 용이는 손짓발짓으로‘뒤에서 이 지게가지를 붙잡으며 고개 아래까지 따라와 달라. 그러면 전대에 든 볶은 콩을 다 주겠다’는 뜻을 전했다.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이가 다시 지게를 지고 비탈진 고갯길을 내려가는데 과연 사내가 뒤에서 지게가지를 붙잡아주지 않는다면 사달이 났을 것 같다. 작은 지게에 사기그릇 오십 점이라니 욕심이 과했던 걸까. 비탈길 아래쪽으로 쏠리려는 그릇들 무게 중심 탓에 용이의 지겟작대기가 연실 후들거렸다. 고개는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위험하다더니 딱 맞는 말이다. 용이는 고개의 사분지 일쯤 내려오다가 결국 다시 지게를 세웠다. 물건들이 높이 얹힌 지게를 비탈길에 세우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어디 또 있을까. 뒤의 사내가 두 팔 벌려 지게가지에 얹힌 그릇들을 안아주었기에 가능했다.

목덜미고 겨드랑이고 용이의 몸은 땀범벅이 되었다. 용이는 소매자루로 땀을 닦으며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내도 따라 앉으며 둘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하긴, 애당초 벙어리인 사내와 무슨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적막하게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눈앞으로 그림같이,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이 가을 햇빛을 받아 하얀 백옥들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 아래로 솟아 있는 검푸른 소나무 잣나무 숲은, 마치 백옥 보석들을 떠받쳐주는 검푸른 색 비단 같다. 저 일만 이천 봉에 허연 운무라도 피어나면 신선들이 바둑 두며 천 년을 보낸다는 선경이 따로 없을 것이다.

이 고개의 전설이 용이한테 떠올랐다.

신라왕조 말기 때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이 천 년 사직을 왕건에게 고스란히 바치고자 했다. 이를 반대했던 마의태자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측근들을 데리고 금강산으로 떠났다. 이 고개에 이르러 일만 이천 봉의 황홀한 풍경을 보게 되자, 마의태자는 나라를 다시 일으키려 했던 마음이 덧없어졌다.‘신선세계에 들어왔으니 다시는 속세에 나가지 않겠다’며 당신의 머리칼들을 다 잘라버리고 말았다. 그 후로 이 고개를 단발령(斷髮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저 봉우리들 중 가장 높은 비로봉에서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오 리쯤 내려가면 마의태자 묘도 있다니, 정말일까? 용이가 이런저런 생각도 하며 눈앞의 선경을 즐기는데 문득 무슨 소리가 고개 아래쪽에서부터 들려왔다. 일정하게 반복되는‘따그닥따그닥’ 소리. 분명, 말들이 달려오는 소리였다. 용이는 가슴이 섬뜩해져 자기도 모르게 주저앉은 채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전란이 그쳤나 했는데 다시 시작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우선, 길 복판의 지게를 다른 데로 옮겨놓고 피신하려는데 도와 줄 사내가 보이지 않았다. 놀랍게도 용이보다 먼저 말발굽 소리를 듣고 피신한 것 같다.

‘귀 먹은 자가 어떻게 나보다 먼저 말발굽 소리를 들었지?’

용이는 지게를 질 새도 없이 그대로 질질 끌어다가 길가 숲속으로 옮겼다. 목발이 땅바닥의 튀어나온 돌에 걸려 하마터면 지게가 넘어갈 뻔했다. 말발굽 소리들이 점점 더 커지더니 살벌한 창끝이 보이고 뒤이어 그 창대를 든 병사의 투구가 보였다. 누런 말 타고 나타난 그 병사 뒤로 검은색 복두를 쓴 사람이 잿빛 말을 탄 모습으로 따르고 있었다. 앞에서 창을 들고 가는 병사는 뒤의 복두를 쓴 사람을 호위하는 역할인 것 같았다. 이윽고 ‘히이잉!’하는 말울음 소리들에 이어 두 사람의 모습이 온전하게 가까워졌다. 병사는 눈매가 사나웠고 복두 쓴 사람은 긴 수염을 날렸다. 길가 숲속에 숨은 용이는 제발 별 일 없기를 부처님께 빌었다. 말들의 거친 숨소리와 옷자락들의 ‘펄럭’ 소리가 한껏 커지더니 다시 작아져갔다.

그들이 일으킨 뿌연 흙먼지가 가라앉은 뒤에야 용이는 숲에서 조심스레 나왔다.‘따그닥 따그닥’ 말 타고 고개를 올라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멀어져간다. 아무래도 개경으로 달려들 가는 것 같다.

‘나라에 무슨 일이 생겼나?’

나중에 알았지만 그들은 이성계 장군의 명을 받고 이듬해 봄, 비로봉에 봉헌할 불사리갖춤 일로 장안사(長安寺)에 다녀가던 중이었다. 이성계 장군이 누구이던가. 왜구와 홍건적을 잇달아 물리치며 온 백성의 구세주처럼 떠오른 대단한 장군이 아니던가. 대국 명나라를 치라는 무리한 명을 거부하며 벌어진 위화도 회군 성사 후, 나라의 새로운 권력으로 떠오른 지 2년째 되는 해 늦가을이었다. 이성계 장군은 자신의 주도로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음을 불사리 봉헌이라는 최고의 제의를 통해 온 백성에게 선언하고 싶었다. 정도전 같은 성리학 선비들을 만나며 역성혁명을 준비한 장군의 마음 한 편에, 이천 년 전 석가모니께서 남긴 불경말씀이 여전했다는 건 참 놀라운 일이 아닐까.

말발굽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다시 지게를 지고 출발하려는데 사내가 여전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잠시 궁리하던 용이는 우선 눈에 뜨이는 땅바닥의 돌멩이들을 여러 개 주운 뒤, 바위 뒤고 숲이고 사방으로 마구 던졌다. 깃털 화려한 장끼 한 마리가 진달래 숲에서‘푸드득!’나타나 멀리 날아가고 뒤이어‘어버버!’소리치면서 싸리나무 숲에서 사내가 기어 나왔다. 무서움이 여전한 표정으로 말이다.

“뭘 그리 무서워해?”

사내는 용이가 하는 말을 여전히 알아듣지 못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렇다면 아까 그들이 멀리서 말 타고 달려오던 소리는 어떻게 용이보다 먼저 들었는지, 영 앞뒤가 맞지 않는 벙어리 사내였다. 다시, 용이가 지게작대기를 짚으며 지게지고 일어서자 사내가 뒤에서 지게가지들을 붙잡아주었다. 조심조심 비탈진 고갯길을 내려가는데 땀은 다시 나지만 주위는 서늘해졌다. 하늘 한복판의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탓이다. 미시(未時)에서 신시(辛時) 사이쯤 되지 않을까. 늦가을 해는 짧아지는 해다. 정도사가 머지않았지만, 도착한 뒤 그릇 파는 일뿐만 아니라 스님이 힘들어 미뤘던 일들도 도와 드리려면 잠시도 지체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고개를 다 내려와서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폭이 마흔 자는 될 냇물이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그렇기도 하고 밀삐에 어깨 살갗이 다 벗겨졌는지 몹시 쓰라렸다. 갈증 나는 목도 축여야 했다. 지게를 일단 냇가에 세워놓고 용이는 엎드린 자세로 흐르는 냇물을 훌쩍훌쩍 들이켰다. 오장육부가 시원해졌다. 그런 뒤 웃옷을 벗어, 벗겨진 어깨의 살갗 부분을 찬 냇물로 여러 번 씻었다. 이래놓아야 덧나는 걸 방지한다.

냇물이 얼마나 맑은지 바닥의 조약돌들이 남김없이 다 보였다. 그런데 흐르는 물살에 모난 데가 다 다듬어져 동글동글한 모양들뿐이다. 용이는 짚신들을 벗고 맨발로 물속의 조약돌들을 한 번 밟아보았다. 짐작대로 여간 매끄러운 게 아니었다. 그냥 짚신을 신고서 간다면 조약돌에 미끄러지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냇물을 건넌 뒤 물에 젖은 축축한 짚신으로 길을 걸을 걸 생각하니, 짚신은 짚신대로 쉬 망가져버리고 발이 짓물러질 게 뻔해서 영 내키지 않았다. ‘집을 나설 때 짚신 한 켤레쯤 여분으로 챙겼더라면 좋았을 것을!’용이는 한탄했다.

게다가, 냇물이 어떤 데는 검푸르게 깊고 어떤 데는 연한 빛으로 얕아서 고른바닥도 못 됐다. 일정한 간격으로 큰 돌들을 놓아 만든 징검다리가 눈에 뜨이긴 하지만 사기그릇 가득 얹은 지게 지고 가기에는 위험천만이다. 천생, 고개를 내려올 때처럼 사내가 뒤에서 지게가지를 붙잡아주며 내를 건너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사내가 또 보이지 않았다.

“이 비렁뱅이자식이 그 새 어디 갔어?”

다리를 저니 멀리 달아나지는 못 했을 것 같다. 용이는 근처 떡갈나무의 굵은 가지 하나를 꺾어들었다. 그것을 휘두르며 부근 숲을 뒤졌다. ‘후다닥!’소리가 난 곳을 봤더니 노루였다. 송아지만 한 노루가 기겁해서 겅중겅중 숲속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웃옷도 채 걸치지 못한 꼴로 숲을 뒤지느라 용이의 상반신은 나뭇가지나 풀잎에 여기저기 긁혔다. ‘이 자식을 놓쳤구나!’체념하며 숲을 나오려는데 가까운 바위 뒤에서 사내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겁먹은 얼굴로 나타났다.

상반신의 긁힌 상처들을 냇물에 여러 번 씻고 난 용이는, 지게를 지고 일어서는 대신 등태 속의 그 칼을 다시 빼들었다. 길이가 한 자밖에 안 되지만 날이 잘 서 있다. 백자를 열 점이나 대장장이한테 주고 장만한 거다. 사내가 듣거나 말거나 용이는 사나운 낯으로 말했다.

“자네 말이야, 내가 그만 따라와도 된다고 할 때까지는 나를 따라와야 해. 만일 또 제멋대로 달아났다가는 그 때는 이 칼로 죽여 버릴 거다.”

고개를 다 내려가면 전대의 볶은 콩들을 다 주겠다고 한 약속은 얼버무려졌다. 그래서는 안 되지만 세상은 강자가 하자는 대로 약자가 순종하며 돌아가기 마련 아닌가.

이 냇물을 건너고 나면, 정도사까지 오 리쯤 된다. 십 년 전 천도재를 지내려고, 단발령 고개 너머에서 가장 가까운 절을 찾다가 정도사를 만난 것이다. 사실상 오늘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 그렇다면…… 이 냇물만 건너면 사내를 풀어주자. 남은 볶은 콩들도 그 때 주자. 벙어리가 다리를 절면서 여기까지 도와준 것만 해도 꽤 고맙지 않나?

사실 말이 오 리지, 산길 오 리를 혼자 무거운 지게를 지고 갈 걸 생각하면 쉬운 결정이 아니다. 하지만 용이는 다시 좋게 마음먹었다. 하긴 냇물이 거울처럼 맑고, 붉거나 노랗거나 한 단풍들이 지천으로 어우러진 아름다운 가을 풍경 속에서 마음을 모질게 먹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용이는 벗은 짚신 켤레를 새고자리에 매단 뒤 바지 대님을 풀었다. 바짓가랑이를 걷어붙이고는 지게를 지었다. 사내의 도움을 뒤로 받으며 냇물로 조심조심 들어섰다. 얼음장같이 찬 냇물에 발가락들이 다 얼어 떨어져버릴 것만 같다. 참아가며, 매끄러운 조약돌들을 조심조심 밟으며 나아간다. 연한 물빛으로 얕은 데는 걷기가 괜찮지만 검푸른 물빛으로 깊은 데는 허리춤 가까이 냇물에 젖어, 사내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고생깨나 했을 게다.

내를 거의 다 건너는가 싶었는데 긴장이 풀어진 탓일까, 결국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지게 뒤의 사내가 바닥의 매끄러운 큰 돌에 ‘휘청’ 미끄러지면서 지게가지에 얹힌 사기그릇 스무 점 가까이가 물에 떨어져 버렸다. 물 깊은 곳이었다면 충격이 덜해 덜 상했을 텐데 얕은 데라 바닥의 조약돌들에 세게 부딪치며 대부분 금이 가거나 깨져버렸다. 용이가 몸을 재빨리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큰 일 날 뻔했다. 용이는 본능적인 동작으로 지게를 내려놓음과 동시에 몸을 돌려 지게가지에 남은 그릇들을 두 팔로 안았다.

냇물에 자빠지며 입은 저고리가 반 가까이가 벗겨진 사내가 처연한 낯으로 용이를 올려다보았다. 그 때 사내 가슴에 검게 문신된 한 글자‘魂’이 용이의 눈에 뜨였다. 섬광처럼 사내의 정체를 깨달았다. 사내는 왜구였다. 용이는 두 팔로 안은 그릇들을 냇가에 내려놓고는 지게 등태에서 칼을 빼들었다.

“이 개새끼!”

“다스케테! 다스케테!”

두 손을 비비며 연실 외치는, 애걸하는 표정으로 봐‘살려 달라’는 왜놈 말인 듯싶다.

“이 개새끼야. 우리 아버님이 니네 칼에 돌아가셨어. 이 원수 놈의 개새끼!”

“도우조 다스케테! 도우조 다스케테!”

어떻게 왜구 새끼가 풍악산 일대를 떠돌고 있었을까. 약탈하러 동해안에 왔다가 다리를 다치면서 낙오된 놈이 아닐까. 용이가 쳐든 칼 앞에서 이제는 삶을 체념한 듯 두 눈을 감고서 합장 자세로 물속에 앉아 있는 사내였다. 그 때 잠자리 한 마리가 부근 하늘을 맴돌다가 용이의 높이 쳐든 칼끝에 무심히 내려앉았다.  

​*   *   *  

   

입춘을 보름 지났지만 겨울 한기가 남아 있다. 어쩌다 핀 들꽃들도 큰 것은 없고 자잘한 것들뿐인데, 낮의 햇빛은 화사하지만 밤만 되면 싸늘한 추위에 꽃잎들을 쉬 오므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이는 가마 일을 서둘렀다. 백자사발들을 하루라도 빨리 만들어놓아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서다.

백자사발은 백토가 있어야 만들 수 있다. 백토 캐내는 일을 아들이 맡았다. 겨우내 언 땅에서 캐내는 일이라 여간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용이는 아들이 안 돼 보이지만 조금도 돕지 않았다. 녀석 스스로 받는 벌이기 때문이다. 녀석은 지난 해 가을, 개경으로 지고 가 팔고 오라 했던 사기그릇 오십 점을 길가 주막의 여자에게 홀려 닷새 간 잠자리 값으로 다 넘겨버리고는 추레해진 꼴로 집에 돌아왔었다. 그 때, 용이 마음 같아서는 당장 집에서 내쫓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녀석의 나이 벌써 스물. 아비처럼 열여섯 나이에 장가갔더라면 자식을 둘쯤은 낳았을 게다. 빈한한 집안 형편 탓에 장가를 못 보낸 아비에게도 죄가 있지 않겠는가, 하여 침묵으로 아들의 허물을 반쯤은 용서했다.

백토는 캐어낸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 녀석은 캐낸 백토를, 미리 파 놓은 물웅덩이에서 수십 번 체로 걸러 불순물 하나 없는 고운 백토로 바꾸는 일까지 이어나갔다. 차디찬 웅덩이물이라 녀석의 손과 발은 벌겋게 터 버렸다. 그 험한 고생 보름여 만에 다섯 수레 분이나 곱디고운 백토를 작업장 한 편에 마련해 놓았다. 반쪽얼굴이 돼버린 아들 녀석의 등을 그제야 용이는 쓰다듬어주었다. 아들은 고개 숙인 채 눈물을 뚝뚝 흘렸다. 부자가 그러고 있는 작업장은 네 기둥 위에 초가지붕만 얹혀있는, 사방이 트인 공간이다. 가까운 데서 부자의 정겨운 모습을 훔쳐본 어미는 돌아서서 흐느꼈다.

본격적으로 백자사발과 향로를 만드는 일이 시작되었다. 용이가 하는 작업을 아들이 곁에서 거들며 부자가 함께 나선 것이다.

백토에 점성이 있는 다른 지역의 흙을 일정 비율로 보탠 뒤, 물을 줘가며 주물러서 차지게 반죽했다. 이것이 첫 번째 단계다. 차진 반죽덩이를 물레에 올려놓고 돌려가며 사발과 향로가 될 수 있는 기본형태들을 만들었으니, 두 번째 단계다. 세 번째 단계는 이 기본형태들을 부자가 손으로 섬세하게 매만져, 사발과 그 뚜껑 및 향로 모양으로 빚어낸 것이다. 이것들을 그늘에서 잘 말리는 일이 네 번째 단계인데 아직은 추운 날씨 탓에 본래 열흘 정도면 충분할 게 보름이나 걸렸다. 작업장이 사방이 트인 곳이라, 마르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통풍은 걱정할 게 없었다.

충분히 잘 마른 것들을 수레에 조심조심 실었다. 사이사이마다 볏짚을 풀어, 혹시 부딪치는 일이 생겨도 그 충격이 흡수되도록 했다. 아들이 수레 앞에 서서 손잡이를, 아비는 수레 뒷부분을 두 손으로 잡았다. 작업장에서 가마가 있는 데까지는 마흔 보쯤 된다.

“출발하거라.”

“네에.”

짧은 거리임에도 수레가 가는 길 가에는 냉이들이 파릇하고 고들빼기가 연보라색 꽃을, 씀바귀가 노란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가마 앞에 도착했다. 이제는 초벌구이 차례다. 모름지기 자기는 흙이 불을 만남으로써 이뤄지는 예술이다. 용이는 가마 안에 들어가, 밖에서 아들이 건네는 것들을 하나하나 받아 불과 잘 어우러지도록 정연하게 쌓았다. 그런 뒤, 소나무장작들로 빈 공간을 빼곡하게 채우면서 가마 밖으로 나왔다. 마침내 가마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뒤로 물러선 용이를 대신해 아들 녀석이 아궁이와 도수리구멍들을 통해 가마 안의 불길을 살펴가며 장작들을 보탰다.

불기운이 강해져 가마 밖까지 열기가 뜨겁게 전해졌다. 용이는 이 때부터 아들을 쉬게 하고 혼자 가마를 지켰다. 자신의 오래된 가마 불 감각이 절대로 필요한 때가 온 것이다. 달라져가는, 가마의 독특한 흙냄새만으로도 불의 세기를 느끼는 용이. 불이 너무 강했다가는 가마 안의 작품들이 찌그러지거나 깨지거나 옆의 것과 붙어버리거나 한다. 물론 약해서도 안 된다. 아주 적당하게 뜨거운 불을 유지해야 한다. 마치 양 극단을 피하라는 부처님의 중도 (中道) 말씀처럼.

 

지난가을, 용이는 사기그릇을 오십 점이나 지게에 지고 내금강 정도사로 가다가 냇물에서의 사고로 반 가까이 깨뜨려버렸다. 그래도 주지 스님이 남은 여남은 그릇들을 쌀 한 가마니 값으로 그냥 쳐주었다. 게다가, 스님은 용이한테 장안사 신관(信寬) 스님을 찾아뵙도록 주선하여 쌀을 두 가마니나 별도로 더 얻게 해 주었다. 잇달아 흰 쌀을 세 가마니나 얻게 된 일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일이 있다. 용이가 장안사로 생면부지인 신관 스님을 뵈러 갔을 때 일이다.

어둑할 때에 장안사에 도착해 사천왕문으로 들어서던 용이는 기절초풍할 뻔했다. 사천왕 못지않게 무섭게 생긴, 눈썹이 시커먼 스님 한 분이 염주를 손으로 매만지며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방산에서 오시는 보살님. 어서 오십시요.”

당황한 용이는 정도사 주지 스님이 적어주신 소개문도 꺼내 보이지 못한 채 합장하며 고개 숙였다.

“소승은‘신관’이라 하옵니다. 아무 말씀하시지 말고 조용히 소승을 따라오십시요.”

신관 스님은, 불경 외는 소리가 나는 대웅전 뒤편의 한 요사(寮舍)로 용이를 안내했다. 다른 사람은 없는 방에서, 스님은 생김새와는 다르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름이 아니고…… 송헌시중께서 사람을 보내 전하시기를, ‘명년 4월에 금강산 비로봉에 불사리를 봉헌하려는데 그에 필요한 백자사발과 향로를 장안사에서 해결해 주십시요.’하셨습니다.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소승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잖아도 며칠 전 미륵불께서 제 꿈에 나타나셔서‘여기서 멀지 않은 땅 방산이라는 데에서 한 사기장이 불원간 장안사로 찾아올 것이니 사리갖춤 백자 일을 부탁하면서 그 값으로 공양미 두 가마니를 주거라.’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송헌시중이란 이성계 장군을 가리키는 말이다. 용이는 놀랍고도 감사한 마음에 뜨겁게 눈물 흘리며, 하신 말씀대로 사리갖춤을 위한 백자 생산을 약속드렸다. 부담스런 마음고생이 만만치 않겠지만 비천한 사기장에게 얼마나 영광된 책무이던가. 하물며 식솔들을 편히 배부르게 할 백미를 두 가마니나 더 얻게 됐으니.

신관 스님은 말씀을 이어나갔다.

“이번에 백자들을 만드시게 될 때에 마을 사람들한테 송헌시중 얘기를 하셔서는 안 됩니다. 그저 금강산 장안사에서 귀하게 쓸 백자를 주문한 거라고만 말씀하면 될 듯싶습니다. 잘못 소문이 났다가는, 그분이 악한 무리들로부터 위해를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도탄에 빠진 만백성을 구하실 분입니다. 허허허……. 모쪼록 힘이 많이 드시겠지만 보살님 식솔의 도움만으로 백자를 만들어주시기 당부 드립니다. 그래야 쓸데없는 낭설이 항간에 퍼질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말씀이라고 감히 제가 거스르겠습니까, 스님.”

“인연에 따라 심용 보살님과 소승은 한 배를 탔습니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가마의 초벌구이나 재벌구이는 아낙네가 겪어야 하는 산고나 다름없다. 그럴 때 지아비는 곁을 떠나서는 안 된다. 용이는 가마 불을 지키며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있다.

아들 녀석은 오랜만의 여유에, 가마 부근 바닥에 깔아놓은 이불에서 마냥 퍼질러 자고 있다. 추운 밤 날씨임에도 이불을 냅다 걷어차기까지 하며 잔다. 용이가 그런 아들의 이불을 끌어다 덮어주며 다시 가마 불을 살피려할 때 하늘에서 백토가루를 닮은, 때늦은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금강산에도 눈이 내리고 있을까? 그 비렁뱅이 왜구 놈이…… 추운 지난겨울을 잘 지냈을까?’

냇물에서 놈을 단 칼에 죽일 수 있었건만 용이는 칼을 거두고 말았다. 살아생전에 사람의 피를 칼에 묻히는 일 없이 마음 편히 살고 싶었다. 그 날, 남은 사기그릇들을 다시 지게가지에 얹고 떠나는 용이 뒤에서 사내는 연실 ‘아리가또우 고자이마스!’라 외쳤다. 그 후, 잇달아 용이한테 흰쌀이란 귀한 양식이 세 가마니나 생기고 비로봉에 봉헌하는 사리갖춤 일에 미천한 사기장이로서 한 역할 하는 영광까지 얻게 된 것은 그 냇물에서 하찮은 왜구일지언정 따듯한 자비심을 베풀었기 때문이 아닐는지.

 

먼동이 트기 전에 싸락눈이 그쳤다. 무겁게 뜬 해가 중천에 자리 잡을 때쯤에서야 초벌구이가 끝났다. 용이는 아들한테 ‘피해 있으라.’ 당부한 뒤, 꽉 막아두었던 아궁이의 흙부터 긴 작대기로 부숴버렸다. 순간 뜨거운 열기가 가마 안에서 밖으로‘화악!’ 뻗쳐 나왔다. 다른, 막아뒀던 도수리구멍들의 흙도 다 부숴버리면서 가마 주위는 한동안 뜨거운 열기가 맴돌았다. 용이가 작대기를 땅바닥에 내려놓으며, 싸리비를 들고 선 아들한테 말했다.

“뒷일은 네게 맡기마.”

“네에 아버님. 그런데 제가 길의 눈을 비로 쓸기는 했는데…… 조심하셔야 합니다.”

뒷짐 지고 돌아선 용이를, 아내가 달려와 부축했다. 비로 눈길을 쓸어놓긴 했지만 아무래도 미끄러운 데다가, 잠까지 쏟아지는 지아비가 혼자 걸어오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내외는 조심조심, 칠십 보쯤 떨어진 집까지 눈길을 함께 걸어갔다. 사립문 따위는 달 필요가 없는, 마음씨 착한 사람들의 방산 마을이다. 용이는 편히 집 마당으로 들어선 뒤 아내한테 말했다.

“고생 많구려.”

“무슨 말씀을…….”

용이는 아내가 방문을 열어주자마자 그대로 방바닥에 대자로 누워버렸다. 코를 드렁드렁 곯으며 밀린 잠에 빠졌다. 아내는 지아비의 저고리와 바지를 조심스레 벗기고는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녀는 난생처음으로 식량걱정 하나 없이 지난겨울을 났다. 흰 쌀이 세 가마니나 집에 들어오다니, 이게 꿈이 아닌가 싶어 자신의 손끝을 한 번 깨물어보기까지 했었다. 흰 쌀뿐인가. 소나무장작들까지 다섯 수레 분이나 집에 들어왔다.

이런 것이 다, 지난가을 장안사에서 보내준 것이다. 지아비가 장안사에서 하룻밤 묵은 뒤 빈 지게만 지고 편히 귀가한 다음 날, 장안사 젊은 스님들이 쌀 세 가마니와 많은 소나무장작들을 수레 둘에 나눠싣고 여기 집 앞까지 찾아와 내려놓고 돌아갔다. 첫눈이 내리기 전까지 스님들은 세 번이나 더, 소나무장작들을 수레로 실어다 주었다. 그녀는 아직도 지난가을의 일만 떠올리면 자기도 모르게 합장한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뻐꾹 뻐꾹 뻐꾹……”

방산 마을 뒷산에서 뻐꾸기가 울었다.

용이는 백저포로 갈아입고 조건을 쓴 뒤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 한복판에 깔아놓은 돗자리에 앉아, 품안의 사발을 꺼내놓았다. 이 사발은 명문을 새길 대상으로 선정된 두 점 중 하나다. 어제까지 용이는 이틀 간, 선정된 사발 두 점의 명문 새기기에 매달렸다. 한 점은 완료했으나 다른 한 점은― 지금 품에서 꺼내놓은 이 사발은 반쯤 하고 말았다. 왜냐면 이 사발의 굽에 새겨야하는 마지막 명문이 용이로서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라서, 지친 몸과 정신으로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물론 신관 스님이 한지에 붓글씨로 적어 인편에 보내주신 명문이다.

사실, 명문을 새길 사발 두 점을 선정하는 데만도 사흘이 걸렸다. 초벌구이를 마친, 가마에서 나온 백여 점의 사발들을 하나하나 살핀 끝에 스무 점을 일단 추렸고 그 중 명문을 새길 두 점을 다시 추린 것이다. 명문을 새기는 대상에서 제외된 열여덟 점의 사발도 나중에 함께 유약을 칠해 가마에 넣어 재벌구이를 거치면, 빛나는 백자사발이 스무 점이나 탄생한다.

지금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아들은 재벌구이를 준비하느라 가마에 가 있고 아내는 마을에서 혼자 사는 가난한 노인네 집에 가 있다. 쌀도 퍼다 드리고 부엌일도 돕고 그러는 것 같다.

화사하게 떨어지는 봄 햇살들을 한 번 담아보려는 것같이 용이는 눈앞의 사발을 두 손으로 조용히 쳐들어보았다. 무늬 하나 없기에 오히려 수많은 무늬가 담겨 있는 듯 여겨지는 깊은 담백함과…… 세속의 모든 욕심들이 다 씻겨나가고 따듯한 마음 하나 남은 듯한 순백함의 결정체였다.

사발의 둥근 굽이 보이게 뒤집어서 내려놓았다. 방산 사기장의 명성을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남기는 작업에 들어갈 참이다. 용이는 떨리는 가슴을 심호흡으로 가라앉혔다. 이윽고 조각칼로 천천히 그 굽에 한 자 한 자 명문을 새겨나갔다.

‘辛未四月日防山砂器匠 沈竜 同發願比丘 信寬’

열아홉 자를 다 새기고 나자 눈부신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이 갑자기 눈앞에 선하게 떠올랐다. 용이는 그 까닭을 좀체 헤아리기 힘들었다.  

   

<참조> ‘이성계 발원 사리갖춤’ /서성호

‘고려시대 장인의 지위와 사기장 심룡/ 홍영의

‘양구 백자와 심룡 콘텐츠 전략’ /최선일,한봉석

​<사진자료(구글)> 금강산 / 김효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는‘상대의 압력에 의해 자신의 의지나 주장을 꺾고 순응’하는 행동을 ‘꼬리 내린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엄한 말씀에 아들은 대꾸도 못하고 꼬리 내렸다.’고 표현하는 식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봤다.

“아득히 먼 옛날 우리가 꼬리 달린 원숭이에서 진화했음을 자백하는 표현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