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이한 일이다. K가 산짐승들이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물론 K도 어린 시절에 짐승들이 사람처럼 말하는 만화영화를 본 적이 많았다. 그런 기억의 영향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만화영화 속의 짐승들은 자기네끼리, 혹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식이었지만 요즈음 K가 만난 산짐승들은 불쑥 말을 건네고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그럴 만했다. 만났다기보다는 맞닥뜨린 짐승들이었기 때문이다. 뭣 하러 산짐승들이 K에게 다가오겠는가? 멸종당한 호랑이나 늑대라면 모를까, 현재 산에 살고 있는 짐승들은 사람이라면 기겁해서 먼저 달아나는 종류들뿐이었다. 성질 사납다는 멧돼지 또한 사람 냄새를 맡으면 먼저 피한다는 게 정설이다. 따라서 산짐승들이 K와 만나는 경우란 불가피하게 맞닥뜨린 경우밖에 없었다.
맞닥뜨린 산짐승이 K에게 불쑥 말을 건네는 기괴한 사건들.
그 시작은 재수 없게도, 뱀이었다.
갑자기 무더워진 초여름 어느 날이었다. K는 땀에 젖어 산봉우리에 올랐다가, 하산하던 비탈길에서 웬 뱀과 동행하게 되었다.
뱀과의 거리는 이 미터쯤이었다. 끔찍한 대상이라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색깔이 화려한 능사 같았다. 뱀이 평탄한 데가 아닌 비탈길을 내려가다니, K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먹이를 찾다가 길을 잘못 든 게 아니었을까?
K는 온몸에 소름이 끼치면서 동시에 민망했다. 정상적인 여건에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는 동행이었으니까.
뱀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평지였더라면 얼른 그 민망하고 부담스런 동행에서 벗어나련만 워낙 가파른 지형이라 감수하는 모양이었다.
K는 자기가 멈춰 섬으로써, 뱀을 먼저 내려가게 하려 하였다. 하지만 워낙 가파른 곳이라, 멈춰 섰어도 저절로 미끄러지니 딱한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이, K는 아기 걸음마 떼듯 조심조심 비탈길을 내려가며 뱀과 동행하는데…… 식은땀이 목덜미로 흘렀다.
우스운 일마저 벌어졌다. 워낙 비탈진 길이라, 내려가는 뱀의 체형이‘S’자나 ‘I'자가 되지 못하고 'Ⴖ'자 형태로 휘고 만 것이다. 꼬리마저 비탈길 아래쪽으로 휘어, 대가리와 함께 질질 미끄러져 내려가는 꼴이었다.
식은땀 나는 공포 속에서도 뱀의 그 꼴에 웃음이 터질 것 같던 K의 복잡한 심경이란.
약 이삼 분 동행하다가― K가 하산한 뒤 추정해 본 시간이다. 실제로 느껴지던 시간은 몇 시간 같았다.― 뱀은 비탈길가의 풀무더기 속으로 몸을 숨겼다. 두 뼘 넓이의 좁은 풀무더기라서 꼬리부분은 노출된 딱한 꼴이었다. 꿩이 급히 숨을 때에는 땅에 대가리부터 박고 본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어처구니없는 꼴에 K가 머뭇거리자 뱀이 불쑥 말했다.
“형씨, 나를 못 보았다 치고 어서 그냥 내려가슈.”
기겁한 K는 비탈길을 정신없이 내려갔다.
경사도가 완만한 산길에 다다라, 천천히 걸어가도 되는데 방금 전 뱀이 불쑥 말을 건넸다는 사실에 놀라 경황이 없었다. K는 여전히 정신없이 내달아, 두어 번이나 돌부리에 발이 걸려 고꾸라질 뻔하였다.
산 아래 도로까지 내려온 K는 숨을 헐떡이며 시내버스를 기다리다가, 시내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뱀이 말을 건 그 무서운 산에서 더 멀어져야 했다.
시내는 이십 여 리 전방에 있었다.
한참 걷다가 시내버스가 오는 소리를 들었다.
K는 버스에 탄 뒤에야 공포감이 다소 진정되었다. 버스 안의 아무나 붙잡고 그 기괴한 뱀 얘기를 털어놓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운전기사는 운전하느라 바빴고, K를 제외한 다른 승객이라야 연세가 팔십 돼 보이는 노인 두엇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만일 그 사건을 얘기한다면 귀들이 어두워‘뭐라고? 뱀이 말을 잡아먹었다고?’같은 엉뚱한 반문을 할지도 몰랐다.
‘그럼, 집에 가서 식구들한테 털어놓을까?’생각했지만 ‘날마다 산을 다니더니 머리가 이상하게 된가 보네.’하는 의심이나 받을 것 같았다.
‘2단지 주공 아파트’ 앞 정류장에 버스가 당도했다. K는 뱀이 말을 건 사건을 혼자만의 비밀로 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 채, 지친 몸으로 하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