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사건이 있은 지 보름쯤 지났다.
다른 산으로 등산을 다니던 K는 또 다른 뱀과 맞닥뜨렸다. 정말 재수 없었다.
먼젓번, 가파른 비탈길이 중턱에 있는 산은 높이가 해발 오백이십 미터였지만 이번 산은 해발 삼백오 미터로 낮은 편이었다. 따가운 땡볕에 연실 흐르는 목덜미의 땀을 수건으로 훔치며 봉우리 가까이 다가간 K는 길게 누워 있는 뱀과 맞닥뜨린 것이다.
하마터면 발로 밟을 뻔했었다. K가 미처 못 본 까닭은, 그 뱀이 봉우리 바로 아래의 길고 좁다란 그늘 속에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기어 다니는 뱀한테‘누워 있었다.’니 표현이 이상하다. 그래도 K는 그 그늘 속의 뱀이 편하게 누워 있다고 느꼈다.
그즈음 K에게 산짐승들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생겨난 건 아닐까?
그 뱀이 쉴 만한 그늘이 생겨난 건, 중천의 해가 서쪽으로 조금 기운 오후 시간인 때문이었다.
‘봉우리까지 올랐다 하산해야만 등산한 거다.’는 고집을 가진 K였으므로, 그 뱀을 이유로 봉우리 바로 앞에서 뒤돌아설 순 없었다. 결국 나아가지도 못하고 돌아서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뱀과 삼 미터쯤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뱀의 생김새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전체 길이는 일 미터쯤 되는데, 뭉툭한 대가리에 갈색과 검은색 무늬가 교차한 몸통이었다. 나중에 집에서 생물도감을 보고 알게 됐지만 먹구렁이였다.
일 이 분은 지났을 것이다. 웬만한 뱀이었다면 사람의 접근을 알아채고 그 자리를 떠났을 텐데 이 뱀은 미동도 않고 K를 뻔히 보며 그냥 누워 있었다. K가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뱀은 눈까풀이 없는 짐승이니 눈을 뜬 꼴로 오수를 즐기던 중일 수도 있었다.
생각해 보라, 뱀의 처지를.
이른 아침부터 먹이를 찾아 헤매다가 — 그것도 땡볕에 달궈진 후덥지근한 수풀 속을 헤매다가 마침 ‘산봉우리 바로 밑에 시원하게 생겨난 그늘’에 다다라, 뜨거워진 체온도 식힐 겸 꿀맛 같은 오수를 즐기는 참이었다. 어디, 뱀이라고 해서 온 종일 쉬지 말고 헤매라는 법이 있던가? 뱀도 사람처럼 당연히 쉴 권리가 있다.
이런 뱀의 오수에 대한 생각들은 K가 나중에 해 본 것이고,‘주위에 자신 말고 아무도 없는 한낮에, 눈앞의 그늘에서 팔자 좋게 쉬고 있는 뱀과 맞닥뜨린 당시’의 K는 참 난감했었다.
K는 생각다 못해 그 자리에서 두 발을 땅바닥에 쿵쿵 굴렀다.
그제야 뱀은 ‘S’자로 꿈틀거리며 부근의 수풀 쪽으로 천천히 이동하는데 불평까지 했다.
“젠장! 모처럼 쉬는데…… 짜증나네.”
K는 머리털이 한꺼번에 치솟는 공포를 느꼈다. 보름 전 비탈길에서 만난 뱀처럼 이번 뱀도 말한 것이다! K는 마음 같아서는 뒤돌아서 달아나고 싶었다.
‘봉우리까지 올라야 등산이다’는 자신의 등산 원칙을 그 지경에서도 떠올리며 벌벌 떨리는 두 다리로, 그 뱀이 누워 있었던 그늘진 곳을 건너 봉우리에 올랐다. 예전 같았으면 배낭에서 수통을 꺼내 물 한 잔을 마시며 유유자적하게 일대의 풍경도 둘러보며 여유를 즐겼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봉우리에 십여 초 서 있다가, 얼른 그 자리를 떠나 하산 길로 들어섰다.
푸른 수풀 속 어디에서 그 뱀이 “어이, 잘 가!”하는 것 같아 걸음을 떼는 K의 두 다리는 여전히 후들거렸다.
산에서 가장 주의할 때가 하산할 때다. 마음은 다급해도 조심스런 걸음으로 하산해야 했다. 잘못해서 구르게 되면 수풀 속에서 그 뱀이 얼마나 박장대소할까!
산을 다 내려온 듯해서 방심했던 걸까. K는 산기슭의 소나무 등걸에 어깨를 부딪치고 말았다.
아픈 어깨를 한 손으로 부여잡고 시내 쪽으로, 도로를 힘겹게 걸었다. 한창 걷다가 시내버스를 만났다.
버스에 있는 시골 아주머니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쳐다볼 정도로 K는 온통 땀에 젖어 빈자리를 찾은 뒤 털썩 주저앉았다.
‘맞닥뜨린 뱀이 불쑥 말하는’사건들을 연이어 겪자 K는 등산을 중단했다.
좁은 아파트에 틀어박혀 지냈다. 등산으로 소일하던 K로서는 참 답답한 날들이었다.
아파트 단지 뒤에 작은 동산이 있었다. 해발 몇 미터라고 말할 것도 없이 작은 산이지만 그래도 꼭대기까지 다녀오면 삼십 분은 충분히 지나갔다. 땀도 제법 났었다.
K는 직장생활을 할 때는 주말마다 동산을 다녔지만 퇴직한 뒤로는 갈 수 없었다.
딱 한 번 갔었다. ‘종일 아파트에 틀어박혀 텔레비전이나 보는 생활’에 지친, 퇴직 후 한 달쯤 되던 평일이었다. 애써 용기를 내 갔는데 막상 동산 어귀에 다다랐을 때, 애들이 잘 쓰는 말로 ‘쪽이 팔려서’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바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내라고는 K밖에 없었다.
그 날로 동산 다니기를 단념했고, 생각던 끝에 이삼십 리 근교의 산들로 행선지를 바꾼 것이다.
등산 채비도 하고, 시내버스도 이십여 분은 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래도 근교 산을 다녀오면 하루가 잘 갔다. 땀에 젖은 몸을 찬 물로 샤워하고, 뒤늦은 점심을 차려먹은 뒤 노작지근한 몸을 낮잠으로 푸는 맛이 괜찮았다.
그러기를 이 년째.
‘평일에 혼자 근교 산을 다니는 호젓한 맛’에 빠져드는가 싶었는데 이상한 뱀들과 잇달아 맞닥뜨리면서…… 다시 방 안에 죽치고 앉아 텔레비전이나 보며 소일하는, 퇴직 직후의 딱한 꼴로 되돌아온 것이다.
가족 중 누구도 K의 딱한 처지를 알 리 없었다. 가족이라고 해야 아내와 딸뿐이다. 아들은 군대 가 있다.
아내는 어느 식당에 주방 일을 다닌다. 재작년 봄에 대학을 졸업한 딸애는‘하루 종일 여러 가지 알바를 하느라’고 바빠 보인다. 대학원 갈 등록금 마련이 목적이라는데 그 이상은 알 수 없었다.
K가 지난 해 봄 직장에서 구조조정으로 퇴직된 후 생긴 가족들의 변화였다. 얼마 안 되는 퇴직금조차 재직 때 잘못 선 보증으로 다 날아가자, 각자 알아서 돈벌이에 나선 것이다. 대학 일년생이던 아들애까지 군대에 자원입대하여 집의 생활비를 덜었다.
K는 산에서 겪은 놀라운 뱀들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각기 바삐 사느라 얼굴 보기도 힘들어지면서 가족 간 대화가 사라졌는데 모처럼 꺼낸 대화가 ‘뱀이 불쑥 말을 건넸다’는 이야기라면 어느 누가 화답할까?
어쩔 수 없었다. K는 늘 그랬듯 침묵하며 지내는 게 좋았다. 그러잖아도 가족들은 가장(?)이 재취업 의욕도 보이지 않고 산이나 다니는 데 불만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