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날도 아침부터 비닐멀칭이 반복됐다. 오후에 들어서 나는 밭고랑에 털썩 주저앉으며 소리쳤다.
“아이고 허리야, 나 죽겠네!”
맞은편에서 비닐자락을 붙잡고 있던 아내도 덩달아 풀썩 주저앉으면서 비닐 씌우기가 중단되었다. 결국 오십 두둑 중 아래쪽 열 두둑은 맨땅으로 내버려둔 채 비닐멀칭을 마감했다. 다음 날 하루는 집에서 쉬기로 했다. 잡초를 잡으려다가 우리 부부를 잡을 것 같았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되는 거야? 정작 농사는 안 짓고 날마다 뭐하는 짓이냐고!”
하루를 쉬고 밭으로 가면서, 차 안에서 나는 울화를 터뜨렸다.
“여보. 도시농업센터에서 그러는데 처음부터 잡초를 잡아놔야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 수확도 없다는 거야. 그러니 힘들어도 며칠간은 어쩔 수 없어. 농사 한 번 제대로 지으려고 이십 미터 깊이 관정까지 돈 들여 파 놓았는데…… 참아야지. 안 그래?”
아내가 지하수 개발업자를 구해서 우리 밭 한 가운데에 파 놓은 관정. 한 달 전 거실에서 나한테 ‘여보. 우리 농사지읍시다.’라고 제의를 할 때, 그 지하수 개발업자와 이미 관정 파는 계약이 되어 있었다. 어처구니없지 않은가. 내가 만일 농사짓자는 제의를 거부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요즈음 세상에 어디 어느 늙은 남편이 아내의 제의를 거부할 수 있을까. 그랬다가는 잠자리는 물론이고 밥도 못 얻어먹을 텐데. 어차피 나는 죽으나 사나 산비탈 밭에서 아내의 지도를 받으면서 농사를 지어야 되는 팔자였다.
‘그렇다면 힘들어도 올 일 년은 아내가 하자는 대로 따르고 내년 봄에 가서 도저히 못 하겠다고 나가자빠지자. 예전처럼 이 동네에서 사람 하나 구해서 밭 부쳐 먹도록 하는 대안을 제시해 보고, 그래도 아내가 끝내 우리가 직접 농사지어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그 쉽다는 들깨 농사나 짓자고 하자.’ 고, 내가 살기 위한 방도를 속으로 마련했다.
밭에 도착했다.
의아한 일이 생겼다. 아내가 먼저 차에서 내려 밭으로 내려간 뒤의 일이다. 아내의 반쯤 열린 손가방에 부동산에 관한 책이 들어 있는 게 보였다. ‘복부인 짓은 관둔 것으로 아는데 왜 이런 책을 갖고 다니나?’ 궁금했으나 굳이 묻고 싶지는 않았다. 오래된 작은 아파트를 중심으로 ‘사재기’니 ‘되팔기’니 하면서, 친인척들의 명의를 빌려가며 수선 피우던 그 부동산 일이란 다시는 묻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파종 작업이 시작되었다.
두둑을 씌운 비닐에 약 삼십 센티 간격으로 주먹만 한 구멍을 내면서 파종했다. 감자와 옥수수, 두 가지로 작물을 결정했는데 씨감자는 한 조각씩, 옥수수는 두 알씩 심어 나갔다. 땡볕 아래 종일 허리를 숙이고 다니며 심었지만 비닐멀칭 작업보다는 덜 힘들었다. 툭하면 비닐을 하늘로 날려서 애먹이던 바람이 이제는 몸의 땀을 시원하게 식혀주기나 하고, 본격적으로 농사가 시작된다는 실감도 났기 때문이다.
파종을 끝내고 밭 주변에 앉아 있자, 서늘한 산그늘이 서쪽에서부터 드리웠다. 해가 기울도록 정신없이 일한 하루였다. 온몸은 뻑적지근하지만 파종을 끝내서 마음이 편했다.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과연 저 검정비닐의 구멍들 속에서 옥수수와 감자 싹들이 나기나 할까? 만일 안 나면 그 때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 때, 같이 앉아서 쉬던 아내가 침묵을 깼다.
“여보. 그저께 멀칭 하다가 만 저 아래 열 두둑 있잖아요, 어둡기 전에 지금 마저 후딱 씌웁시다. 쓰다 만 비닐이 차 트렁크에 있거든요. 다른 데는 멀칭에다 파종까지 마쳤는데 저기만 저래 놓고 마니까 보기 흉하지 않아요?”
한 이불을 덮고 자도 어찌 이리 생각이 다를 수가 있을까. 나는 과연 저 밭에서 파종한 대로 작물이 나오기나 할까 하는 두려운 생각일 때 아직도 그저께 멀칭하다 만 열 두둑에 집착하다니. 나는 긴 말로 아내의 제의를 거절했다.
“어지간도 해야지. 그래, 이 넓은 땅을 숨도 못 쉬게 비닐로 씌워 놓고…… 땅이 불쌍하지도 않아? 당신은‘잡초를 예방하는 방법’이라지만 너무하지 않아? 좀 여유를 갖자고. 우리가 사십 개 두둑이나 씌웠으니, 저 나머지는 숨 좀 쉬게 내 버려두자고. 물론 잡초 좀 나겠지. 그 때, 김매면 되지. 내가 학창시절에 외갓집에 놀러 가면 텃밭을 김맸었거든. 그 시절에는 비닐멀칭 같은 것 않고도 맨땅에서 별 일 없이 농사를 잘 지었다고. 요즈음 농사는… 비닐까지 씌우고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거리야? 이건 자연환경에 해를 끼치는 짓이 아니겠어?”
나도 모르게 생태환경론자가 되었다. 아내가 말없이 있기에 내 열변에 감동한 거라고 여겼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내는 나보다 여섯 살 어린데 상황에 따라서 내게 존댓말을 쓰다가 반말을 쓰다가 한다. 이번에는 반말로 대꾸했다.
“그래 알았어. 남은 열 두둑은 그냥 내버려둬. 그런데 여보, 이제부터는 고랑이야. 아직은 괜찮지만 때가 되면 고랑에도 잡초가 엄청 나게 날 텐데 그걸 어쩌지?”
기가 막혀 내가 언성을 높였다.
"그럼, 그 지겨운 검정비닐을 고랑에도 씌우는 거야?”
아내가 애써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아니야. 이번에는 현수막이야.”
“뭔 소리야?”
아내가 찬찬히 설명했다.
“밭농사에서 고랑은 작물을 심는 두둑만큼이나 중요해. 배수로 도 되고 농부가 이랑 사이를 다닐 때 통로도 되지. 그러니 고랑에다가 비닐을 깐다면, 다닐 때 밟혀서 다 찢어져. 그래서 현수막을 구해다 까는 거야. 원래는 ‘방초 부직포’라는 걸 사다가 깔아야 하는데…… 돈이 드니까 대신 폐 현수막을 재활용하는 거지. 우리, 시청 가서 그 폐 현수막들을 얻어 옵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