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법 현수막 철거’를 담당하는 부서가 시청에 있었다. ‘밭에 깔 현수막을 얻으러 왔다’ 했더니 그 부서에서 젊은 남자 직원이 우리한테 다가와 물었다.
“혹시 그 밭이 도로에 접해 있습니까?”
현수막이 행인들 눈에 뜨이는 곳에 활용된다면 안 좋은 여론이라도 생겨날까 염려하는 것 같았다. ‘불법 현수막을 수거한 거라도 그렇지, 저렇게 아무렇게나 내돌려도 되는 거야?’하는 등의 여론일 테다. 그 의중을 눈치 채고 아내가 자신만만하게 응답했다.
“우리 밭은요, 구거로 해서 한참 올라가야 나오는 산골짜기에 있어요.”
‘구거’란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이다. 우리 밭이 맹지라고 밝히는 표현이라서 자랑거리는 못 되었다. 그가 웃으며 아내 이름과 주소, 밭의 위치를 장부에 적더니 청사 뒤편의 큰 창고로 안내했다. 창고 문을 열자, 세상에, 한 때 거리곳곳에 내걸려서 행인들의 눈길을 끌려 애쓰던 온갖 현수막들이 다 쌓여있었다. 시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거리에 내걸린 탓에 언제고 수거되어 소각될 참이었다. 그가 말했다.
“필요한 만큼 챙기세요.”
우리는‘계약금 500만원이면 30평 럭셔리 명품 아파트 입주 OK’이란 현수막을 시작으로 ‘모여라! △△초등학교 51회 동기회’‘ 한약 넣은 한방오리 출시!― 봉명식당’‘세상에서 가장 빠른 대출, ○○금융’‘ 눈물의 폐업. 반값 왕창 세일, 마지막 기회!’‘ 나는 가수다 출연 가수 특별 초청 공연!’ 등등, 별의별 현수막들을 다 챙겼다. 차 트렁크를 꽉 채웠는데도 아내는 그것도 모자라 뒷좌석까지 실으려 했다. 페인트 냄새도 나고, 경우에 따라서는‘낮게 걸렸다가 취객들의 오줌 세례를 받았는지 지린내를 풀풀 풍기는’현수막들이 무슨 보물단지나 된다고. 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제 그만 실어! 이 정도면 고랑에 다 깔고도 남아. 우리 차가 쓰레기수거 차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짓이야!”
나흘간이나 고랑에 폐 현수막들을 깔았다.
이 작업은 쇠망치 한 자루와 ‘부직포 고정 핀’, 두 가지 도구가 필요했다. 고정 핀은 ‘∩’ 자 모양인 십 센티 길이의 철사인데 농자재를 파는 데에서 묶음 단위로 팔았다. 고랑에 현수막을 깐 뒤 그 핀을 못처럼 대고는 쇠망치로 쳐서 바닥에 고정시키는 게 작업의 개요였다. 문제는 현수막의 길이가 짧다는 데 있었다. 우리 밭의 한 고랑 길이가 이십 미터 정도인데 현수막은 대개 오 미터였다. 고랑 하나 당 현수막 네댓 장을 이어서 할 수밖에 없었다. 이을 때 생겨나는 이음매에도 고정 핀들이 쓰였다. 비닐멀칭은 두루마리로 된 것을 쭉 펼쳐 나가면 되지만 현수막 깔기는 낱장 여럿을 이어서 나가는 거라 시간깨나 걸렸다.
나중에 한 번 계산을 해 봤다. ‘한 고랑 당 현수막이 네댓 장이 쓰이는데 나흘 동안 사십 고랑에 현수막을 깔았으니, 쓰인 현수막 수만 해도 최소한 백육십 장을 넘었다’는 계산이 나왔다. 거기에 쓰이는 고정 핀들만 해도 셀 수 없이 엄청 났다. 현수막에다 고정 핀을 대고 망치질을 해대는 게 고랑 깔기의 주된 일이라서, 힘들어도 사내인 내가 도맡아야 했다.
뻐꾸기 울음소리 들리는 산속의 밭고랑에, 광고 글자들 요란한 현수막을 펼쳐놓고 그 위에 앉아서 망치로 고정 핀들을 탁 탁 탁 때려 박던 시간들. 바람이라도 불면, 반백이 되어가는 내 머리칼들이 헝클어져 날리면서‘내가 이러고 있는 게 과연 노후를 잘 보내고 있는 모습인가?’하는 처량한 생각도 들곤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종잇장같이 얇은 검정비닐과 다르게 현수막은 제법 무게가 있는 직물이어서 바람이 불어도 고정 핀만 확실하게 박혀 있으면 별 탈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나흘 간 나는 원 없이 망치질 했다. 평생 동안에 할 망치질을 몰아 하듯, 손목이 저리도록 두들겨 박았다. 흙바닥에 직물인 천을 한 자루의 쇠망치로 고착시키는 그 행위. 천을 쑤욱 통과한 뒤 딱딱한 흙바닥에 콱 콱 박히는 ∩ 자형 고정 핀의 날카로운 쇠붙이 감촉이라니.
아내는 지인들한테서 얻었다는 화초를 여기저기 심고 있었다. 얼마 전 차 안에서 본 작은 가방 속의 부동산 책보다도 더 의아한 아내의 행동이었다. 나는 현수막에 망치질을 하다 말고 아내한테 다가가 물었다.
“아니, 밭일은 안 도와주고 여기서 뭐해?”
아내는 그제야‘꽃길 조성 계획’을 털어놓았다.
“우리가 여기 올 때마다 항상 다니는 길이 있잖아? 밭의 초입부터 밭의 꼭대기까지 이르는 이 길 말이야. 이런 길이 농로라 할 수 있으니까, 농로 가에 내가 금낭화를 한 줄로 심고 있다고. 우선은 이 농로를 하고 다음에는 다른 화초들을 구해서, 팔백 평 밭 둘레를 에워싸는 꽃길도 조성할 거야. 오뉴월부터 꽃들이 피면 우리 밭 주위가 얼마나 아름답겠어?”
한 때 복부인으로 설쳤던 여자가 산비탈 밭 주위에 꽃길을 조성한다니, 글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꺄우뚱하는 나를, 아내는 짐짓 외면하며 꽃길 조성에 전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