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막 깔기 작업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시청에서 갖고 온 현수막들이 오후에 동이 났다. 오십 고랑 중 스무 고랑밖에 깔지 못했다. 나는 현수막 위에 벌렁, 대자로 누웠다. 얼마나 숱하게 현수막들을 봤는지, 내 눈에 들어오는 하늘도 이음매 없이 펼쳐진 넓은 현수막 같았다. 고개를 돌려 농로 쪽을 보았다.

아내가 이틀째 금낭화를 심고 있었다. 금낭화 모종들이 담긴 작은 스티로폼 박스를 갖고 다니면서 한 포기씩 꺼내어 농로에 줄 맞추어 심고 있었다. 내가 망치질도 멈추고 현수막 위에 대자로 누워 자기를 지켜보는 줄 모르고 있었다.

“여보.”

고요한 산속이라, 이십 미터 가량 거리에서 작은 목소리로 불렀는데도 아내는 들었다. 고개 돌리고 쳐다보는 아내한테 이어서 말했다.

“현수막이 다 떨어졌어.”

‘거 봐요. 그래서 내가 그 날 시청에서 차에 현수막을 더 실으려 했던 거라고.’하며 아내가 잔소리깨나 해댔을 법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잠깐 기다려요. 내가 시청에 가서 더 얻어 올 테니까.”

하면서 차를 몰고 나가더니, 한 시간쯤 지나, 현수막을 잔뜩 싣고 왔다. 트렁크는 물론이고 뒷좌석에까지 실은 것이다. 다시 나의 현수막 작업은 이어졌다.

하염없이 다음,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그럴 때 아내는 변함없이, 농로에 금낭화만 심고 있었다. 우리 밭이 긴 고구마 모양으로 길쯤하게 생긴 지형이니까 그 긴 농로 따라 금낭화를 심기도 쉬이 끝날 일이 아니었다. 나흘 간, 나는 현수막 위를 옮겨 다니며 망치질을 했고 아내는 하얀 작은 스티로폼 박스를 끌고 다니면서 계속 금낭화를 심었다.

 

현수막 작업을 끝낸 나흘째 날이다.

‘지난번에 비닐멀칭을 하지 않고 내버려 둔 열 두둑’의 고랑 차례였다. 두둑은 맨땅으로 둔 채 고랑에만 현수막을 깐다는 게 아무래도 이상했다. 자칫했다가는 아내한테서 ‘여보. 이 참에 그 열 두둑도 마저 비닐멀칭을 해야 되지 않겠어?’하는 소리나 들을 것 같고…… 궁리 끝에 이틀 전처럼 농로에 있는 아내를 불렀다.

“여보.”

아내가 고개 돌려 ‘왜?’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여기 남은 고랑들에다가 현수막을 마저 깔 수도 있지만 말이야.”

하며, ‘땅 좀 숨 쉬게 놔두자!’는 생태환경론적인 연설을 또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연설의 마무리 단계에서 스스로 맥이 빠지고 만 것은, 아내가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금낭화 심기를 멈추지 않는 때문이었다. ‘더 듣지 않아도 잘 아니까, 당신 좋을 대로 하라.’는 뜻이었다. 나로서는, 시작한 연설을 중단할 수 없어서 어물어물 마무리를 지었다. 그런 뒤, 남은 현수막들을 끌어다가 밭 가장자리에 쌓아놓고, 부근의 바위에 걸터앉아서 어둑해질 때까지 쉬었다.

눈앞에 펼쳐진 우리 밭의 광경. 사십 이랑이 검정비닐과 갖가지 현수막 순으로 나란하게 짝들을 이루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물결처럼 일제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 광경을 어디서 본 듯했다. 전국체전의 마스게임 광경 같았다.

 

그 즈음이 가장 평화로웠던 때가 아니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잡초들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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