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의 어둠이 채 사라지지 못하고 숲에 어슴푸레 남아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고랑에 난 잡초들과 전쟁이 시작됐다. 그런 고랑이 열 개나 되니까 호미로는 어림없어, 내가 삽을 들고 나섰다

삽날을 옆으로 낮게 뉘어서 잡초가 난 고랑의 바닥을 얇게팍 팍쳐 버리며 돌아다녔다. 너무 강하게 치면 고랑의 바닥이 깊이 파이고, 너무 약하게 치면 고랑 바닥은커녕 잡초들이 반 넘게 살아남고. 삽날로 내치는 힘을 적절하게 구사하느라 삽자루를 부여잡은 두 손에 쥐가 나기도 수십 번이었다. 수시로, 삽질을 멈춘 뒤 삽자루를 지팡이 삼아 잡고 서서 쉬어야 했다.

홀딱 벗고!”

검은등뻐꾸기가 숲 어디서 그렇게 울기 시작했다. 아내를 보았다. 밭 둘레에 조성한 꽃길 주변을 김매느라 정신없는 모습이었다. 아내는 지인들을 밭으로 초대할 계획이었다.‘산비탈 밭이지만 넓이가 팔백 평이나 되는데다가 꽃들로 아름답게 단장된 곳이라며 자랑하고 싶은 걸까.

 

  

홀딱 벗고!”

그럼, 아내는 과연 이 밭을 농사지을 의지가 있었나? 남편은 땀을 뻘뻘 흘려가며 밭에서 고생하는데, 자기는 지인들한테 꽃단장 된 밭 풍경을 보여주려고 바쁘다니. 작은 가방 속에 갖고 다니는 부동산 책만큼이나, 이해하기 힘든 아내의 요즈음 행동이었다. 문제는 잡초들이 아내와 나의 미묘한 갈등과는 상관없이 사나운 기세로 창궐했다는 현실이다.

 

홀딱 벗고!”

아침 햇살이 훤하게 들어차면서 주위의 풍경이 밝고 어두움을 뚜렷하게 드러내었다. 나는 다시 삽자루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는, 생각지도 못하게 농사일에 휘말린 내 팔자를 향해단단히 고랑에 뿌리박은 잡놈의 풀들을 향해 사납게 삽날을 휘둘러댔다.

홀딱 벗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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