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장 그 밭에 간 것은 아니었다. 한 달이 지난, 햇빛 화사한 삼월 말이 되어서야‘아내를 따라서’그 밭을 가게 되었다. 내 명의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구매부터 등기까지 모든 절차를 아내가 알아서 했기 때문에 정작 나는 밭의 위치도 몰랐었다.
아내가 가리키는 대로, 차를 몰고 외곽 도로를 오 분 남짓 달리다가 비포장 자갈길로 들어섰다. 물 흐르지 않는 하천 바닥을 지나 언덕진 데를 이삼 분 정도 오르자, 널따란 땅이 야트막한 두 산자락 사이로 나타났다. 맑은 봄 햇살을 가득 받고 있는, 십오 도 가량 비탈진 그 땅이 우리 팔백 평 밭이었다. 아내가 말했다.
“내가 이 동네 사람한테 일당을 줘서, 밭도 다 갈아놓았어요.”
과연 질서정연하게 이랑들이 일궈져 있어서 바로 파종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내가 차 트렁크에서 웬 폭넓은 검정비닐 두루마리부터 꺼내놓고 설명했다.
“여보. 우선 이랑의 개념부터 잘 알아야 해요. 이랑이란 ‘갈아 놓은 밭의 한 두둑과 한 고랑을 아우르는 말’이에요. 이랑의 두둑에 파종하면서 밭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전에 우선 이 검정비닐로 두둑을 씌워야 돼요. 그래야 두둑에 잡초가 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대요. 이런 방법을 ‘비닐멀칭’농법이라 하는데…….”
밭이랑이 정확히 오십 개나 된다는데 그 이랑의 두둑들마다 검정비닐을 씌워야 한다니, 나는 엄두도 나지 않았다. 입을 떡하니 벌렸지만 아내가 그 두루마리를 덥석 내게 떠안기며 자기가 앞장서니 어쩔 수 없었다. 뒤따라 밭으로 들어가서 시키는 대로 비닐멀칭이란 걸 시작했는데, 세상에, 고생도 그런 고생이 없었다.
이랑의 길이가 평균 이십 미터이고 이랑 두둑의 폭은 대략 팔십 센티였다. 두둑의 폭보다 이십 센티 정도 더 넓은 검정두루마리 비닐의 한 끝자락을 아내가 두 손으로 펼쳐 잡고 밭머리에 서면 그 때부터 내 고생이 시작되었다. 내가 그 두루마리를 안고 두둑에 비닐을 풀어 깔면서 반대편 밭머리까지, 이십 미터 가량을 단숨에 뛰어가는 것이다.
작업이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곡괭이를 들고서 고랑을 부리나케 다니면서‘두둑에 깔린 검정비닐의 양 가장자리’를 고랑의 흙으로 덮어줘야 했다. 이 마무리 작업이 부실하면 수시로 부는 봄바람에 검정비닐이 휙 벗겨져서 공중으로 날아갔다. 까마귀 떼처럼 훨훨 날아가는 비닐을 잡는다고 비탈진 밭을― 그것도 수많은 이랑들로 울퉁불퉁한 밭을 갈팡질팡 달리는 나를 멀리서 누가 봤더라면 미친놈인 줄 알았을 테다.
게다가, 비닐멀칭은 기본적으로 허리를 숙인 채 하는 작업이었다. 요 몇 년 간 거실 소파에 편히 등 기대고 앉아 텔레비전 시청으로 소일하던 내 허리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오전에는 가까스로 견뎠으나 오후 들어서는 자주 쉴 수밖에 없었다. 날이 저물어서 작업을 중단하고 세어 봤더니 고작 스무 두둑을 멀칭 했을 뿐이었다. 나머지 서른 두둑은 내일 하기로 미뤘다.
귀가하자마자, 아내는 주방에서 저녁밥을 짓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 사이를 못 기다리고 거실 소파에 등기대고 앉은 채로 곤하게 잠들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