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에  올가을 들어 첫얼음이  얼었다는  날이다. 바깥에  놔두어서는 안된다는 꽃화분들을 아내가  힘들여 서재 창가로 모셨다.  그러자  "이제 살았구나!  "하며 안도하는 꽃화분들의  표정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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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배수가 잘된다. 사실 집에서 배수 문제는 간단치 않다. 주방에서 쓰는 물이나 화장실 물이나, 만일 배수가 안 되고 관 중간에서 막힌다면 만사를 제치고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운 좋게 쉬 해결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기술자를 불러 돈을 써야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해결돼야지, 만일 기술자도 못해낸다면 배수관을 드러내기 위해 바닥파기 대 공사를 벌여야 하지 않을까? 상상만으로도 끔직하다.

우리 집은 20년 전에 지은 단독주택이다. 집을 직접 짓는 사람도 있다지만 나는 건축청부업자한테 일임해 지었다. 학교에서 고 3 담임을 맡아 몹시 바빴을 뿐만 아니라 건축 분야에는 문외한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보다 다섯 살 위인 50세라는데 머리가 벌써 반백인 건축청부업자 김 사장을 처음 만났을 때, 내가 건넨 설계도를 쭉 살펴보고는 첫마디가 이랬다.

“걱정 마십쇼. 잘 지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뭐가 부끄러운지 반백의 머리를 한 손으로 긁적였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그 말은‘집이 지어지는 동안은 물론이고 다 지어진 뒤에도 집 주인과 건축청부업자 간 분쟁이 빈번한 현실’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열에 아홉은 그런 분쟁이 벌어진다고들 했다.

 

​어쨌든 김 사장 책임 아래 우리 집 짓기가 시작되었다. 집이 지어지는 6개월 동안 내가 할 일은, 그에게 총 건축비를 나누어 틈틈이 건네기였다. 적지 않은 건축비였으므로 그 동안 통장에 모아놓았던 돈은 물론이고 아내까지 은행에서 융자내야 했다. 건축비를 건넬 때면 우선 그에게‘김 사장님, 제가 잠시 후 공사장을 들르겠습니다.’전화부터 해 놓고 학교에서 나서야 했다. 그가 우리 집뿐만이 아니라 다른 집까지 다른 동네에서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 공사 현장에서 만나는 김 사장은 대개 부근 도로 가에 서서 여러 분야의 기술자들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때가 많았다. 시멘트 담당, 벽돌쌓기 담당, 미장 공, 타일 공, 전기기술자 등이 그의 눈길 앞에서 분주히 움직이며 설계도 상의 우리 집이 서서히 실현되고 있었다. 얼핏 보면 그는 바쁜 공사현장에서 특별히 맡은 일 없이, 뒷짐 지고 노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은 웬 일로 그가 손수 팔소매를 걷어 부치고 일하고 있었다. 화장실 바닥을 마무리할 때였다. 시멘트 칼을 직접 쥐고 바닥을 다듬는 그에게 물었다.

“김 사장님 손수, 웬 일이세요?”

“제가 말입니다, 배수가 전공이거든요. 바닥이 잘 경사지게 해서 물을 쏟았을 때 가장자리에 물이 남는다든가 하는 일이 절대로 없게 합니다. 너무 가파르게 해서도 안 되고 아주 적당히 경사지게 해야 집 주인식구들이 미끄러져 다치는 일 없이 잘 쓰지요. 그리고 저는 배수 파이프도, 설계도 것보다 더 지름이 큰 것을 써서 시원하게 물이 잘 빠지게 합니다. 건축설계사가 현실을 잘 모르거든요. 사실 집을 완공했는데 뭣보다도 배수가 잘 안된다거나 하면 집 주인한테 욕은 욕대로 먹고 건축대금도 다 못 받을 수 있다니까요!”

습관대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는 바람에 반백머리 한 부분에 시멘트가 묻은 것도 모르며 하하하! 웃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그 후 오늘까지, 21년째 우리 집은 다른 것은 몰라도 배수에 관한 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 언제나 시원시원하게 물이 잘 빠진다. 샤워를 오래해도 바닥의 물이 조금도 남지 않고 깨끗하게 다 배수된다. 그렇다고 가파르게 경사진 바닥도 아니다. 김 사장 스스로 자부한 ‘배수 전공’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후배 국어교사가 있었다. 그는 고장 난 손목시계나 만년필 같은 것을 고치기를 즐겼고 실제로 잘 고쳤다. 주위사람들한테서‘맥가이버’라는 칭찬 아닌 칭찬을 받을 때가 많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유감스런 상황이었다. 왜냐면 정작 전공인 국어교과에는 별 관심이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국어교사가 될 게 아니라 기술교사가 됐어야 하는 게 아닌가. 국가에서 교단에 설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고 매달 봉급까지 줘 가며 생계걱정을 덜어주었다면 교무실에 앉아 시계를 고칠 게 아니라 국어교재연구에 몰두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도대체‘전공’의 의미조차 깨닫지 못하는 후배에 대해 나는 말은 못하고 늘 마음이 안 좋았던 기억이다.

그런 후배교사에 비해 건축청부업자 김 사장은 얼마나 멋진가. 화장실 바닥이고 주방이고 배수에 관한 한 20년 넘게 조금도 문제가 없는 그의 전공 실력. 대개 집이 다 지어지고 나면 여기저기 흠이 발견되면서 결국에는 집 주인과 건축청부업자 간에 불화가 발생하고, 그 결과 다시는 만날 일이 없는 나쁜 사이가 된다는데…… 김 사장과 나 사이는 달랐다. 올봄에 우리 아들을 장가보낼 때 나는 김 사장한테도 청첩장을 보냈고 그는 쾌히 만사 제치고 하객으로 와 주었다. 이제는 완전한 백발이 된 모습으로 내게 말했다.

“오늘 장가가는 신랑이, 제가 집을 지어드릴 때 초등학교 다니던 그 꼬마 맞죠?”

나는‘그럼요!’하면서 그의 투박한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잡았다. 그 간의 21년 세월이 허망하기는커녕 아주 기분 좋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김 사장 같은 분들 덕으로 우리 사회가 이만큼 발전해 왔고 그래서 우리 아들이 행복한 모습으로 식장에서 신부를 맞은 거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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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관광호텔 정문 앞에 서 있었다.

오후 네 시 반이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몇 번 휴대폰을 걸었으나 ‘통화가 되지 않습니다.’ 라는 자동안내만 반복됐을 뿐이다.

‘이 이가 동해안에서 넘어오는 중이 아닐까? 운전하느라 휴대폰을 받기 힘들겠지.’

좋게 해석하지만 왠지 불길한 생각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손가방에서 거울을 꺼내어 얼굴화장을 다듬는다. 산속에 자리 잡은 관광호텔 지역이라 지나가는 차나 사람도 별로 없다.

남편은‘다섯 명의 직장 동기 중 네 명이 승진하는 인사발령’에서 탈락된 뒤 근무의욕을 잃고 밤잠까지 못 이루기 시작했었다. 그녀는 폐인처럼 되어가는 남편에게 명퇴신청을 권했다. 맞벌이도 좋지만 자칫했다가는 남편을 잃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남편이 ‘젊었을 적에 문학했던 소양을 되살려서 한 번 대작에 도전해 보겠다.’며 명퇴 후 생활을 잘 보내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남편의‘대작’은 기대도 않는다. 어떻게 이십 대에 했던 문학을 나이 오십이 다 되어 되살린단 말인가.

장편소설을 쓰거나 말거나, 더 이상 폐인이 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동료끼리 경쟁해야 하는 직장생활은 유순한 성격의 남편에게 무리였었다. 남편 같은 사내는 여럿이 모인 직장생활보다는 혼자 하는 직업을 가졌어야 했다.

몇 달째, 혼자 아파트에서 잘 지내는 것만 봐도 입증된 사실이다.

‘그런데 이 이가 너무 늦네. 다섯 시가 되어 가는데…….’

그녀는 다시 얼굴화장을 다듬었다. 그 시간, 산 너머 행복 생태학교의‘나비 나라’안에서 남편이 목이 다 쉬어 외치고 있었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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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갈매나무의 가지 하나를 길게 잡아 꺾었다. 갈매나무에 붙어있던 노랑나비들이 떠올라 주위가 부산해졌다. 갈매나무가지를 한 손에 단단히 쥐고 입구 쪽으로 갔다. 누렁개도 입구 쪽으로 이동했다.

미닫이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나뭇가지로 누렁개를 공격하며 피신할 작전이었다. 악마처럼 허연 이빨을 있는 대로 다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누렁개를 코앞에서 보자, 그는 전의가 꺾였다.

그나마, 그가 나비 나라로 들어온 뒤 개 줄이 풀렸기 천만다행이었다. 진돗개 잡종으로 보이는 저 놈과 밖에서 마주쳤더라면 어찌 됐을까.

그는 탈출을 단념하였다. 누군가 나타날 때까지 바위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덩달아 날아오르던 나비들이 이제는 그의 어깨나 머리 위에 날아와 앉았다.

몇 달 간 지내던 거실 소파가 이다지도 그리울 수가 없었다.

사실, 무엇 하나 불편함이 없는 아파트였다. 냉장고에는 아내가 만들어놓은 반찬들이 가득했고, 컴퓨터의 인터넷으로 들어가면 세상 돌아가는 정보들이 널려 있었다. 텔레비전은 유선방송에 가입되어 있어서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골라볼 수 있었다. 그러다 졸음이 쏟아지면 소파에 등기대고 앉아 낮잠을 잤다.

두 줄까지 나가다 만 장편소설이 문제였을 뿐이다. 사실, 그가 글을 쓰지 않고 텔레비전이나 보며 시간을 보내도 뭐라 할 아내가 아니니까 그 또한 별 문제는 아니었다. 단지, 직장을 다니며 생활비를 버는 아내에 대한 예의(?)로써 그는 늘 글을 쓰는 것처럼 보이면 됐었다.

‘거리의 끝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은 휴지와 라면 봉지와 빈 캔과 짝 잃은 양말 한 쪽까지 훑으며, 사내가 멈춰 서 있는 데까지 끌고 오고 있었다.’

혹시 글 속의‘사내’가 그를 대신해 거리로 외출한 게 아니었을까? 스토리가 나아가지 못하는 이상 ‘사내’는 항상 거리에 외출해 있었다.

그가 아파트 밖으로 외출할 필요가 없었던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런 편한 생활이 무료한 날들이었다고 느낀 것은 복에 겨운 짓이었다.

그는 오늘의 외출을 후회하기에 이르렀다.

지겹도록, 초여름햇빛이 나비 나라 안으로 들이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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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닫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바깥보다 더울 거라 예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천장에 해당될 윗부분에 하얀색 판을 넓게 깔아 햇빛을 차단했고, 벽에 해당될 옆면의 유리들 사이로 촘촘한 방충망을 시설해 놓아 바람의 소통도 잘 되는 때문이었다.

몇 걸음 내디디자, 수풀이나 바위에 붙어 있던 나비들이 일제히 날아 색종이조각들처럼 반짝거렸다. 단순한 수풀더미가 아니었다. 탱자나무, 화초, 나팔꽃덩굴이 바위들과 어우러진 가운데 쟁반만한 작은 습지들 또한 곳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습지에는 화초들만큼이나 다양한 색깔의 나비들이 앉아있거나 맴돌았다.

나비 외에도, 시커멓거나 파란 애벌레들이 풀잎이나 나뭇가지에서 기어가고 있었다. 풍경은 요란한 듯싶지만 소리 하나 없이 조용한 ‘나비 나라’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 소리를 죽였다.

나비 나라를 사분지 일쯤 봤을 때, 기분 나쁜 이상한 소리가 나지막하게 그의 귀에 들렸다.

누렁개가 허연 이빨을 드러낸 채‘나비 나라’밖에서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입구 쪽을 보았다. 다행히 미닫이문이 닫혀 있었다. 누렁개가 침까지 질질 흘리며 신음하듯 으르렁거렸다.

‘이거, 어떡해야 하나!’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누렁개도 밖에서 따라 움직였다. 나비 나라 구조물이 둥근 유리통 같은 형태라, 서로를 보며 빙빙 도는 꼴이었다. 누렁개 목에는 이 미터 남짓한 줄이 달려 있었다. 어딘가에 매여 있다가 줄이 끊기며 이곳으로 달려온 게 아닐까?

바깥, 오십여 미터 전방에 조립식 주택이 하나 있었다. 여기 행복 생태학교 교장의 사택으로 여겨지는 그 주택의, 개집에 줄로 매여 있었던 개일 듯싶었다. 그는 주택을 향해 소리쳤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무도 그 주택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가 정문 옆 쪽문을 통해 들어올 때부터 자신의 발걸음 외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행복 생태학교 교장이 가족과 함께 읍내로 일 보러 나간 것일까? 최소한의 보안을 위해 누렁개 한 마리 남겨 놓고서.

‘그래서, 방문 전 예약해 달라고 홈페이지에 밝혀 놓았던 걸까? 젠장! 그러려면 그 문장 앞에 반드시라는 부사를 적었어야지!’

누렁개와 그는 유리를 사이에 두고 눈길이 마주쳤다. 파란빛으로 적의에 불타는 누렁개 눈깔. 그를 도둑으로 여기는, 터무니없는 오해라니…….

‘행복 생태학교 약 2KM’란 팻말을 보고 어귀로 들어섰을 때부터 터무니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무엇 하나 마음 편하게 그를 맞아주질 않았다. 그는 ‘아악!’외마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갈증을 느꼈다.

바깥으로 십여 미터 전방에 펌프가 있었다. 누렁개가 변함없이 시퍼런 적의로 주위를 맴돌고 있으니, 시원한 지하수를 제공할 그 펌프도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하는 수 없었다. 그는 갈색 나비들이 새까맣게 앉아있는 습지 가에 몸을 엎드려 목을 축였다. 땅바닥을 얕게 파고 이끼류를 심어놓은 그곳엔 물기가 축축했다. 흙가루 같은 게 이빨 새로 걸려 꺼림칙한 물이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습지에 있던 갈색 나비들이 시커멓게 떠오르며 난리였다.

갈증은 달랬으나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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