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갈매나무의 가지 하나를 길게 잡아 꺾었다. 갈매나무에 붙어있던 노랑나비들이 떠올라 주위가 부산해졌다. 갈매나무가지를 한 손에 단단히 쥐고 입구 쪽으로 갔다. 누렁개도 입구 쪽으로 이동했다.
미닫이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나뭇가지로 누렁개를 공격하며 피신할 작전이었다. 악마처럼 허연 이빨을 있는 대로 다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누렁개를 코앞에서 보자, 그는 전의가 꺾였다.
그나마, 그가 나비 나라로 들어온 뒤 개 줄이 풀렸기 천만다행이었다. 진돗개 잡종으로 보이는 저 놈과 밖에서 마주쳤더라면 어찌 됐을까.
그는 탈출을 단념하였다. 누군가 나타날 때까지 바위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덩달아 날아오르던 나비들이 이제는 그의 어깨나 머리 위에 날아와 앉았다.
몇 달 간 지내던 거실 소파가 이다지도 그리울 수가 없었다.
사실, 무엇 하나 불편함이 없는 아파트였다. 냉장고에는 아내가 만들어놓은 반찬들이 가득했고, 컴퓨터의 인터넷으로 들어가면 세상 돌아가는 정보들이 널려 있었다. 텔레비전은 유선방송에 가입되어 있어서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골라볼 수 있었다. 그러다 졸음이 쏟아지면 소파에 등기대고 앉아 낮잠을 잤다.
두 줄까지 나가다 만 장편소설이 문제였을 뿐이다. 사실, 그가 글을 쓰지 않고 텔레비전이나 보며 시간을 보내도 뭐라 할 아내가 아니니까 그 또한 별 문제는 아니었다. 단지, 직장을 다니며 생활비를 버는 아내에 대한 예의(?)로써 그는 늘 글을 쓰는 것처럼 보이면 됐었다.
‘거리의 끝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은 휴지와 라면 봉지와 빈 캔과 짝 잃은 양말 한 쪽까지 훑으며, 사내가 멈춰 서 있는 데까지 끌고 오고 있었다.’
혹시 글 속의‘사내’가 그를 대신해 거리로 외출한 게 아니었을까? 스토리가 나아가지 못하는 이상 ‘사내’는 항상 거리에 외출해 있었다.
그가 아파트 밖으로 외출할 필요가 없었던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런 편한 생활이 무료한 날들이었다고 느낀 것은 복에 겨운 짓이었다.
그는 오늘의 외출을 후회하기에 이르렀다.
지겹도록, 초여름햇빛이 나비 나라 안으로 들이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