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내가 ‘최봉석’을 죽인 것 같다.

 

한참 망설이다가, 휴대폰에서 사내의 번호를 찾아 발신 버튼을 눌렀다. 엊저녁 횟집 앞에서 헤어질 때 ‘원주에 오실 일이 있으면 말입니다’ 하면서 사내가 직접 입력시켜 놓은 그 번호다. 초면인데도 내가 술값을 다 냈더니 자기가 사는 원주에서 한 번은 보답하고 싶어 했다.

발신 신호가 가는 중에 전화가 잘못 걸리기를 바라는 엉뚱한 마음이 생겼다. 웬 여자가‘전화 잘못 거셨어요.’하며 전화를 끊는 일 같은. 하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어제 그 사내가 내가 건 전화임을 알고 이렇게 외쳤으니.

“아이고, 어제 춘천에서 신세 많이 졌습니다!”

컴퓨터 자판 소리도 약하게 들리는 것으로 봐, 사내는 사무실에 출근한 것 같았다. 춘천에서 마신 술의 취기도 다 털어냈는지 활기찬 목소리의 사내한테, 아침부터 ‘최봉석의 사망 여부’를 묻는다는 것은 실례가 아닐까. 내게 최봉석은 대학교 동창이지만 사내한테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우선은 안부부터 물어야 했다.

“신세라니요? 뭐, 전화를 잘 받으시는 것을 보니까 무사히 귀가를 잘 하셨나 봅니다.”

“그럼요.”

하면서 이어지는 껄껄 웃음. 어젯밤 여덟 시 경, 사내는 시외버스를 타고 원주로 돌아갔다. 막차가 아홉시 이십 분에 있다지만, 우리는 그 쯤 해서 두 번째 술자리를 끝내고 헤어진 것이다. 사내의 껄껄 웃음이 끝나기를 기다려, 쌀쌀해진 아침 날씨 얘기도 늘어놓다가 본 용건을 밝혔다.

“참, 제가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사내가 아연 긴장했다.

“그……러시죠.”

“다름이 아니고 어제 술자리에서 얘기 나왔던 최봉석이 말입니다. 그 녀석이 벌써 오래 전에 술만 퍼 마시며 지내다가 죽었다고 하셨는데…… 그 때가 몇 년도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긴장이 사라지고 편한 어조로 돌아온 사내가 말했다.

“그게 말입니다…… 너무 오래 전이라서.”

“정확한 연도가 아니고 대충이어도 됩니다.”

“가만 있자. 그러니까…… 제가 군대에서 제대하고 나서 녀석이 그렇게 죽었다는 소식을 막 들은 것 같으니까, 1977년도가 될 것 같은데요.”

순간 나는 거대한 파도에 온몸이 휩쓸리는 것 같았다. 하마터면 귀에 대고 있던 휴대폰을 떨어트릴 뻔했다. 이어지는 사내의 말.

“그런데 그 연도를 아는 게 중요한 일입니까? 꼭 필요하시면 제가 오늘 중으로 다른 동창들한테 물어서 77년이 맞는지 재차 확인한 다음에 ”

“아닙니다. 그 정도면 됩니다.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면 제가 왜 그 녀석의 사망연도를 알려고 했는지, 까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예.”

“그럼, 다음에 또 만나서 한 잔 합시다.”

“다음에는 원주에서 제가 낼 차례지요.”

그러면서 껄껄 웃으며 통화를 마쳤다.

1977년이라 했다. 두렵던 예감대로다. 내가 최봉석 그 녀석을 동해안 묵호읍에서 마지막으로 본 게 1974년 가을이니 그로부터 딱 삼 년 뒤에 죽은 것이다. 녀석이 삼 년 간 깡 소주만 마시며 한탄하다가, 술병이 나면서 스물일곱 살 한창 나이에 죽었다. 홧병에 의한 병사 같지만 사실상 자살이다. 자살의 동기를 내가 제공하였다. 내가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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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강의실 밖에서 쉬다가, 시험지의 답들을 적지 않았다는 것을 퍼뜩 깨달았다. 이름 석 자만 적고 휭 하니 나와 버린 것이다. 이걸 어쩌나? 시험지가 모르는 것 천지라도 성의를 보이는 차원에서 아무 거라도 답란에 적고 나왔어야 되지 않나? 이대로 있다가는 과락(科落)이 될 텐데, 다시 시험장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아아 이 절망감.

할 때 아무래도 현실 같지 않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 순간 꿈에서 깼다. K는 자기 집 이부자리에 누워 있었다. 주방에서 무슨 요리를 하는지 아내가 슬리퍼 끌며 바삐 오가는 소리도 들려온다. K는 안도했다. 노후 특징 중 하나가 꼭두새벽에 잠깨는 일이다. 오늘도 새벽 네 시경에 잠이 깨서 하는 수 없이 컴퓨터를 켠 뒤 인터넷 하다가 다시 잠잤는데 그렇듯 시험악몽에 시달렸던 것이다.

시험.

K가 직장(교직)생활 할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일 중 하나가 방학 때 대학교로 강습 가서 치르는 시험이었다. 담당 교수가‘책이나 노트를 펴 놓고 참조해가며 답을 적어도 좋습니다. 단지, 강습을 받았다는 증빙자료로써 답지를 걷는 것이니까요.’하는 부담 없는 시험도 있지만 대개는 승진점수와 결부되는 긴장된 시험이었다. 그럴 때 K는‘승진에 관심이 없다’는 듯 애써 편한 낯으로 시험을 치르지만 속마음은 편치 않았다. 왜냐면 시험을 열심히 치르는 동료들이 주위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동료들이 훗날 K보다 교장 교감이 먼저 돼 평교사로 남은 K를 감독하고 관리할 듯싶었다. 그런 엿 같은 미래현실을 마음 편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K가 3학년 담임으로 있는 학교에서 정기고사를 치를 적마다 그 스트레스에 영양실조 걸린 것처럼 얼굴이 푸석푸석한 학생들이 많은데… 입장이 바뀌어 K 자신이 바로 그런 학생들처럼 스트레스를 받으며 대학교 강의실에 앉아 시험을 치렀던 거다! 순간 K는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뇌까렸다.

“그 놈의 시험!”

주방의 아내가 무엇을 썰다가, 남편의 외마디 소리에 놀라서 큰 소리로 물었다.

“뭐라고요?”

“아냐. 아무 것도 아냐.”

그렇게 답한 뒤 K는 이불을 천천히 개면서 모처럼 퇴직 후 행복감을 만끽했다. 비록 현직 때 받는 봉급의 절반밖에 안 되는 연금으로 살지만 그 놈의 시험을 치를 일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시험. 얼마나 성가신 것인지 모처럼 우리나라를 방문한 미 대통령 트럼프마저 이렇게 외쳤을까.

“북은 미국을 시험에 들게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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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2017-11-26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은 미국을 시험에 들게 하지 마라!˝, 빵 터지는 웃음에 깊은 의미가...꽁트의 묘미를 한껏 느꼈습니다.

무심 2017-11-27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시험‘만큼 사람을 괴롭히는 게 있을까요? 얼마나 지겨운 것인지, 퇴직한 지 10년 넘은 무심이 얼마 전 잠자다가 그 꿈을 다 꾸고
놀라서 깼단 말입니다. 물론 사람들 중에는 시험을 즐기는 사람도 드물게 있더라고요. 무심으로서는 참, 이해하기 힘든 존재였습니다. .
 

 

 

나는 지금 행복하다. 폐(廢) 내비게이션으로 tv 뉴스를 보기 때문이다.

 

물론 차에서 쓰던 내비였다. 그런데 지난 봄, 업그레이드 시키려고 판매점에 갔다가‘이 내비는 구형이라 업그레이드가 안 된다’는 속상한 설명을 들었다.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선택은 두 가지였다. 업그레이드 못한 채 그냥 차에 달고 다니거나, 새것을 사서 차에 달거나.

전자를 선택한다면 돈은 절약되겠지만 곳곳에 신설된 도로들을 안내받지 못하고 다녀야 되는 곤란이 문제였다. 머지않아 차를 몰고 동해안을 한 번 돌 계획인데 그 긴 거리를 생각할 때 아무래도 걱정됐다. 하는 수 없었다. 돈이 들더라도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새 내비를 차에 달자 이전 내비가 폐품이 돼버렸다. 그냥 내버리려다가‘농막 용 tv로 활용하자.’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언젠가, 모(某)씨가 컨테이너에서 지내면서 폐 내비를 tv로 활용하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순간 그의 손재주가 부러웠을 뿐만 아니라 비좁은 거처마저 묘하게 재미있어 보였던 거다.

우리(나와 아내)가 컨테이너 농막을 밭 가장자리에 갖다 놓고 농사지은 지 벌써 6년째. 농사 일 하다가 잠시 쉬는 5평 넓이 컨테이너라서 침낭과‘라면을 끓여먹을 수 있는 조리 도구’정도만 갖췄는데 우리도 이 기회에 모씨처럼 tv도 볼 수 있는 곳으로 바꿀 수 있었다.

나는 우선은, 비닐봉지에 폐 내비를 담아 우리 집 서재 선반 위에 갖다 놓았다. 적당한 기회에 모씨의 자문을 받아 농막에 tv로 설치하자는 계획이었다. 그러다가 실행 못하고 봄이 지나갔다. 농사 일이 워낙 바쁜 철이었기 때문이다. 밭 갈고 비닐 멀칭하고 파종하고, 어디 그뿐인가 올해부터는 산짐승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그물망까지 사서 담처럼 둘렀다.

여름이 되자 농사 일이 한가해졌다. 본격적으로‘폐 내비 농막 설치’에 나섰는데 어럽쇼, 정작 폐 내비를 넣은 비닐봉지를 찾을 수가 없었다. 분명 봄에 우리 집 서재 선반 위에 올려놓은 것 같은데 행방이 묘연했다. 서재 구석구석은 물론이고 집 층계 밑의 창고, 나중에는 혹시나 싶어 농막 안까지 샅샅이 뒤졌는데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폐 내비를 서재의 선반에 둔 건 확실하나?’

내 기억력을 의심까지 하게 됐다. 어디다 물건을 두고 찾지 못하는 상황이 치매의 전조라는 기사를 본 듯도 싶었다. 그놈의 폐 내비 때문에 내 자신까지 의심받고 있었다. 정처모를 울화가 치밀었다. ‘망할 놈의 내비 같으니라고!’ 결국 폐 내비 찾기를 단념했다.

가을이 되었다. 어느 날, 집 층계 밑의 작은 창고에 들어가 뭘 찾다가 웬 작고 반듯한 사각 종이 백에 눈길이 갔다. 그 백을 열었더니 세상에, 그 폐 내비가 얌전히 들어 있지 않은가. 비로소 짐작이 갔다. 아내가 서재에 들어갔다가 서재에 어울리지 않은 그것을 발견하고는 창고로 옮겼으리라는 것을. 깔끔한 성격이라 그것이 허접한 비닐봉지에 담겨 있는 게 마음에 안 들어 반듯한 종이 백으로 옮겨 담기까지 했으리라는 것을.

그 동안 내가 층계 밑 창고를 숱하게 들락거리면서 이 종이 백을 여러 번 봤을 텐데 왜 한 번도 열어볼 생각을 못 했을까. 그저 비닐봉지만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듯싶다. 눈으로 봐도 보지 못한다는 시이불견(視而不見)이 이런 경우다. 사실, 내가 한 번만이라도 아내한테 ‘여보, 혹시 비닐봉지에 내비게이션이 들어 있는 것, 못 봤나?’하고 물어봤더라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내가 그러지 못한 것은 아내한테서 핀잔맞을까 두려워서가 아니었을까? ‘서재에 무슨 고물까지 갖다 놔요?’하는. 혹은 폐 내비 하나 갖고 너무 요란을 떠는 게 아닌가 싶어 스스로 침묵했던 게 아닐까.

어쨌든 폐 내비를 찾자 어서 우리 농막에 설치하자는 의욕에 불타올랐는데 현실은 간단치 않았다. 농막에서 쓰는 전기도 집처럼 220볼트인데 폐 내비는 5볼트용 기계였다. 그렇다면 전압을 변환시키는 무슨 장치가 있어야지, 만일 그냥 연결했다가는 폐 내비가 터진다든가 하는 사고가 날 게 뻔했다. 천생 손재주 많은 모씨의 자문이 필요했다. 그런데 모씨 신변에 무슨 일이 있는지 영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하는 수 없었다. 전형적인 인문계 성격으로 기계공학적인 분야는 꽝인 내가 이럴 때 할 수 있는 일은 컴퓨터를 켜 인터넷 검색이다. ‘내비게이션을 집에서 tv로 보려면?’이란 다소 긴 문장을 넣어 검색했다. 마땅한 답이 뜨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내비는 기본적으로 차에 부착하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궁리 끝에 옆 동네에서 전업사 간판을 언뜻 본 기억을 떠올렸다. 부리나케 전업사를 찾아갔더니‘출장중’이란 안내문이 문에 붙어 있었다. 다시 밤에 찾아가자 다행히 전업사 사장이 있었다. 내가 폐 내비를 보이며 말했다.

“이걸, 집에서 보는 tv로 활용하려고 하거든요. 그냥 집의 전기를 이어서는 안 될 것 같고 무슨 연결 장치 같은 게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그가 씽긋이 웃더니 답했다.

“어댑터라는 걸 찾으시는 건데요, 어댑터는 이런 전업사가 아니라 전파사에 가야 합니다.”

비로소 내가 그 동안 찾은 게 ‘어댑터’라는 사실과, 전업사와 전파사가 다른 업종이라는 걸 알았다.

“그럼, 어디 좋은 전파사 좀 소개해주시겠습니까?”

“글쎄요. 요즈음은 전파사가 대부분 사라져서 말입니다.”

맞는 말이다. 어느 때부턴가 그 많던 가전제품 판매점들이 사라져갔고 그와 함께 전파사들도 문을 닫았다. 세상이 변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전파사’를 찾았다. 춘천에 남아있는 전파사 서너 곳이 화면에 떴다. 그 중 한 곳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가지만 받지 않았다. 두 번이나 전화 걸었지만 마찬가지였다. 그 새 폐업한 걸까? 다른 전파사에 전화 걸었다. 다행히 전화를 받았다. 내 용건을 들은 사장이 허허허 웃더니 답했다.

“어댑터가 있기는 한데요, 말씀하신 어댑터는 내비를 파는 곳에 가야 있습니다. 거기 가면 해결될 겁니다.”

결국 나는 돌고 돌아 새 내비를 산 ― 폐 내비가 생기게 된 업체로 가게 된 거다. 지난봄에 새 내비를 사간 내 얼굴이 기억난 걸까? 사장은 혹시 자기가 판매한 내비가 잘못 됐나 잠시 긴장하는 기색 같았다. 하지만 내 용건을 얘기 듣고는 미소 지었다. 전업사 사장이나 전파사 사장이나 내비 사장이나 약속이라도 한 듯‘폐 내비를 집에서 보는 tv로 바꾸려는 내 의도’에 웃음으로 대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어른이 하는 짓치고는 아동스러워 보였던 때문이 아닐까? 하긴 나 역시 모씨가 좁은 컨테이너 안에서 폐 내비를 이용해 tv를 보는 모습을 본 순간 묘하게 재미있었다.

우리 어른들은 아동스러운 짓을 목격했을 때 오래 전 떠나온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에 미소 짓게 되는 게 아닐까.

마침내, 내비 사장이 부품들이 잡다한 상자에서 어댑터를 하나 꺼내더니 줄을 덧붙이는 작업을 하고서 220볼트 전기와 내 폐 내비를 이었다. 그러자 tv 화면이 떴다. 2만원 들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폐 내비 구하기’가 막을 내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밭으로 가 농막에 설치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흘 전 올해 밭일을 마무리 지으면서 농막도 폐쇄했기 때문이다. 한 해 밭일의 마무리는 늦가을에 지하수 관정의 모터 속 물을 모조리 뺌으로써 이뤄진다. 모터 속 물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추운 겨울에 모터가 얼어터진다.

내년 3월 중순쯤 모터에 다시 물을 부어 작동시키면서 밭농사가 시작된다. 그 때 유여곡절 끝에 마련된 이 작은 tv를 농막 안에 설치할 거다. 적막한 컨테이너 농막 생활에 분명 활력을 줄 테다. 내가 서재 책상 가에 이 작은 tv를 놓고 뉴스를 보는데 아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내한테 자랑했다.

“여보. 이 내비가 원래는 버리는 건데 이렇게 tv로 바꾼 거야. 내년 3월에 농사를 시작할 때 농막에 갖다 놓고서 뉴스도 보고 그럴 거라고.”

“당신도 참. 농사가 시작되면 그거 볼 틈이나 있겠수?”

대꾸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나는 지금 행복하다. 내년 봄 우리 농막에서 이 작은 tv를 볼 생각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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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가 어느 겨울에 생맥주 잔을 비우면서 늘어놓던 ‘결혼’ 얘기가 선하게 살아나더군. 그 얘기의 골목 풍경이 눈앞에 생생한 거야. 여자가 ‘내가 골목을 가다가도 느낌이 이상해서 뒤를 돌아보면 이이가 멀찍이 거리를 두고 멈춰서 바라보는 거 있죠?’ 할 때의 골목이지.

 

 

내가 예전에 시골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었기에 그런 골목 풍경은 아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거든. 봄이 되면 개나리, 진달래들이 화사하게 피어서 꽃길을 이루는 골목이지. 좁아도 햇살들이 넘쳐나고 벌 나비들이 가득한 그 골목길을 천진난만한 여학생이 걷다가 문득 뒤돌아보네. 그러자 멀리 골목 끝에 숫기 없는 남학생이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거야. 여학생이 혼잣말로 그러지. ‘왜 날 따라오지? 정말 이상하네. 나는 하나도 안 이쁜데……’

그렇게 둘이 꽃길 골목의 양끝에 서 있네. 

​ 

 

< 무심 이병욱의 단편소설 '꽃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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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 가장자리에 컨테이너 농막을 두고 있다. 더운 여름은 무리고 요즈음처럼 쌀쌀한 늦가을은 농막에서 지낼 만하다. 그런데 웬, 작은 전갈 닮은 벌레가 농막 안에서 눈에 띄는 건 웬 일일까?  농사가 6년째 접어들면서 철제 농막이 여기저기 쇠한  때문인 듯싶다. 하긴 세월이란 대자연 앞에서 변하지 않는 게 있을까? 

(그런 벌레 한 놈이 농막 문앞 섬돌에 있는 걸 사진 찍었다. 놈은 괜히 긴장하여 꼼짝도 않고 촬영에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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