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정말 바쁜 날이었다.
9시반부터 국가사업+학교사업 으로 진행되는 인터넷 동영상촬영 3회분을 찍었다.
KBS 앞에 간 건 두시, 거기서 해장국을 한 그릇 먹고
라디오 출연을 했다.
그로부터 1시간 40분 뒤 다시 라디오 출연이 있었는데,
5시 20분에 나간 라디오-김용민의 라이브-는 조국 논문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나간 것이다.
조국의 의혹이 일파만파 퍼지다 딸의 논문에 이르러서는 거의 폭발 지경에 이르렀고,
그건 특권층들이 쉽게 대학에 가는 현실에 서민들이 분노한 것이다.
문제의 논문을 쓴 책임저자 장영표 선생이 울학교 교수라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난 이 논문사태가 핀트를 잘못 맞추고 있다고 본다.
이 사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입시.
1) 수시가 확대되고 학종으로 대학에 갈 수 있는 시대가 됐다
2) 각종 스펙이 입시에 반영됐고 논문도 그 중 하나다.
특목고에선 아예 학생들한테 방학 때 교수랑 연구해서 논문 쓰라는 걸 숙제 비슷하게 내줬다.
3) 학부모들이 아는 교수를 찾기 시작---> 연구 좀 하는 과학 쪽 교수들이 다 연락을 받음.
4) 일을 했으니 논문에 이름을 실어줌---> 그걸로 대학에 감.
5) 조국 교수 딸이 그 중 하나라는 게 알려지자, 난리가 남. 무려 10년 전 일인데!
여기서 나쁜놈은 누구일까.
제도를 잘 이용한 조국 딸과 부인? 논문을 같이 써준 교수? 아니면 특권층에 유리하게 입시판을 짠 정부?
아무리봐도 난 세번째 같다.
지름길을 만들어놓고 거액의 통행료를 매겨 특권층만 다닐 수 있게 했으니까.
하지만 첫번쨰와 두번째를 욕할 분도 있을테니, 이제 논문에 대해 말해보자.
1) 조국 딸은 2주간 장영표 선생님 밑에서 일을 했다.
2) 그 논문은 병리학회지에 실렸다.
3) 조국 딸은 제1 저자가 됐다.
여기에 대해 욕하는 사람들은
-1저자가 말이 되느냐
-학생이 그 논문을 이해하고 썼겠느냐.
-2주 동안 논문을 쓸 수 있느냐?
논문을 안써본 이들이 이런 말을 하는 건 이해하겠지만,
서울의대 교수들 등 논문을 제법 써본 사람들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조국에 대한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들다.
-사이언스, 네이처 등 외국학술지에 실리는 논문이면 모르겠지만,
병리학회지에 실린 그 논문은 엄청난 실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병리학회지는 국내학술지며, 당시엔 잠깐 SCIE-좋은 논문의 척도-였지만 곧 탈락했다.
-논문을 쓰는 기간이 길다고 훌륭한 논문이 되는 건 아니지만,
해당 논문은 이미 수집해놓은 데이터를 이용했고, 2-3일 정도 실험을 하면 가능한 수준이다.
2주면, 이 일을 하기엔 차고 넘친다.
-학생이 어떻게 논문을 썼겠느냐고 비난하지만,
논문을 꼭 1저자가 쓰는 건 아니다.
학위가 필요한 경우라면 대학원생에게 초고를 맡기고 1저자를 주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주저자가 쓰는 경우가 많다.
그게 시간과 노력을 가장 덜 들이면서 좋은 논문을 쓰는 방법이니까.
조국 딸은 논문을 쓸 능력도 없었겠지만, 써야 될 이유도 없었다.
-논문저자에 학생이 들어가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하지만,
저자는 일을 하면 들어가는 것이지 거기에 어떤 특별한 자격이 필요없다.
그리고 논문 공저자들이 무슨 엄청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잠깐 현미경을 봐줬거나, 장비를 쓰게 해줬다 같은 이유만으로도 공저자가 되는 게 현실이고,
그들은 다른 실험이 어떻게 되는지, 논문은 누가 쓰는지, 어디에 게재되는지 모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주저자는 논문이 학술지에 게재되면 '요기 실렸습니다 도움줘서 감사했습니다'라고
공저자에게 메일을 돌려야 한다.
-조국 딸은 2주간 연구에 참여했다. 다른 공저자들 중 그만큼 시간을 투자한 이가
주저자 말고 또 있을까? 난 그렇지 않다고 본다.
저자 중 유일한 대학원생은 풀타임으로 일하는 분이니 실험실에 계속 있었을 테지만,
나머지 분들은 논문 기여도로 봤을 때 조국 딸보다 높다고 장담할 수 없다.
-문제는 1저자 여부인데, 이건 전적으로 주저자의 책임이다.
공동연구가 깨지는 것은 대부분 여기서 오는 갈등에서 비롯된다.
일전에 네이처 논문을 둘러싸고 저자끼리 싸움이 나고, 결국 다 학교를 옮긴 전례가 있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 논문에서 그 학생에게 1저자를 줬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를
난 듣지 못했다.
이건 해당 논문이 평범한 국내학술지에 실렸기 때문이기도 한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장교수는 조국 딸에게 1저자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조국 딸은 고교 3년의 시간 중 2주를 연구에 투자했고, 그로 인해 1저자 타이틀을 얻었다.
제도적으로 허용되는 것이었기에 그녀는 대학입시 때 이 논문을 이용했을 것이다 (이건 추측).
이것이 비난받아야 할 일일까?
봉사활동과 각종 스펙, 심지어 동아리활동까지,
고교 과정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입시를 위해 이용되는 현실에서,
2주를 바쳐 연구를 한 걸 입시에 이용하는 건 너무도 당연하며,
이게 무슨 적폐인 것처럼 얘기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시험문제를 유출하는 등의 부정한 방법으로 이득을 얻으려는 게 아니라
자기가 시간을 투자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일은 나쁜 게 아니다.
조국 딸처럼 많은 이들이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리고, 그걸 이용해 대학에 갔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이름을 올렸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걸 비난할 이유는 없다.
점수 몇 점을 더 올리려고 입시 코디를 쓰는 나라에서,
있는 제도를 활용하지 않는 게 말이나 되나?
그래서 난 지금처럼 수시가 주를 이루는 대학입시를 반대하고,
100% 정시가 훨씬 더 공정한 사회라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조국 딸은 부산대학교 의전원에 갔다.
의과대학만 있던 시절, 많은 의대교수가 자기 아이를 의대에 넣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다 의전원이 생겼다.
전수조사한 건 아니지만, 그 뒤부터 의전원 학생 중 의사나 기타 권력자를 부모로 둔 이들의 비율이 늘었다.
부산대 의전원은 아예 MEET 점수조차 안봤다는 설이 있는데,
이 학교는 그런 소문이 파다한 만큼, 한번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 말이 너무 길어지는 느낌이지만 이것도 얘기해야겠다.
공정한 입시를 위한답시고 현 정부 들어 2010년 정도부터 미성년자가 등재된 논문을 뒤지고 있다.
당시 불법이 아니었던 걸 뒤져서 뭐하겠는지 모르겠지만,
한때 난 고교생의 실험참여를 돕는 걸 교수의 의무라고 생각했었고,
덕분에 지금 두편의 논문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
그 중 한 편은 1저자를 줬다고 뭐라 하는데, 그 학생과 나 둘이서 모든 연구를 다 한 걸 가지고
나를 무슨 적폐처럼 몰아붙이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물론 내가 90%를 했다. 그리고 그 학생은 3수를 해서 모 의대에 다닌다)
1년반 가량 조사를 받으면서 결심한 것은 앞으로는 다시 이런 짓 하지 말자, 였다.
다른 교수들도 다 같은 생각일 터,
앞으로 우리나라는 외국처럼 고교생이 자유롭게 연구에 참여하는 일은 일체 없어질 것이다.
중고교 때 논문연구에 참여하는 게 학생들이 진로를 선택할 때 큰 동기부여가 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가 과학강국이 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어느 분이 제 글을 퍼가서 거기에 댓글이 달렸는데, 제가 1저자를 준 학생이 의대 간 게 논문 덕이 아니냐고 하네요. 그 학생은 그 해 대학에 떨어졌고, 결국 3수끝에 정시로 의대에 갔다고 썼습니다. 전 재수생은 수시가 안되는 줄 알고 3수를 강조한 건데, 그게 아니네요^^ 글구 제가 받고 있는 조사는 교육부 조사고요, 이건 미성년자를 저자에 올린 모든 이에 대한 전수조사입니다. 그 과정에서 아무 것도 안했는데 저자로 넣어준 경우는 처벌을 받았는데 제가 아직 무사한 이유는 증빙자료가 다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논문에서 제일 중요한 저자가 1저자라고 착각하시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주저자, 혹은 책임저자가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니 제가 주저자를 하고 그 학생에게 1저자를 준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