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이틀째 부부싸움 중이다.


발단은 다섯째 강아지 오리,

이 녀석이 허리 디스크 진단을 받아 절대안정이 필요하다.

오리는 아내와 나 중 나를 훨씬 더 좋아해,

둘이 같이 있을 때는 늘 나랑 같이 있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오리는 마루에 있는 케이지에 넣어 두면

방구석에 있는 나에게 가겠다며 끼룩끼룩 울었다.


 

갈등은 여기서 시작됐다.

아내는 내 방에서도 케이지에 넣어 두자고 했고,

난 작은 공간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있게 하자고 했다.

내가 보기엔 그 작은 공간도 집안 전체를 누비던 오리에게 너무 비좁았지만

절대안정을 우선시하는 아내는 그 공간이 너무 컸다.

난 “나를 믿어라”고 주장했지만, 아내는 “만의 하나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며 맞섰다.

그게 조금 큰 싸움이 됐고, 화해하러 갔던 오늘 아침엔 되려 고질라급의 싸움으로 번졌다.

 

결국 오리는 내 옆에 있게 됐지만, 아내와 난 필요한 말 이외엔 하지 않고 있다.

 

싸움이 시작되면 아내한테 밥을 차려달라고 하기가 좀 쑥스럽다.

다행히 어제 중국집에서 배달온 잡채밥이 있어서 그걸로 첫 끼니를 떼웠다.

일이 밀려 마음이 급했던 오후, 다시 공복이 찾아왔다.

배고픔을 참기 위해 억지로 잠을 잤지만,

깨고 나니 다시 배가 고팠다.

그때 가방에 어디선가 받은 과자가 있는 게 생각났다.

그거라도 먹자 싶어서 과자를 뜯는데, 오리가 갑자기 입맛을 다신다.

사료도 있고 고구마도 있고 다른 간식도 있지만,

갇혀 있어서 그런지 오리는 통 식사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오리가 입맛을 다신다니,

난 당연히 과자를 오리에게 줬고, 오리는 맛있게 그걸 먹었다.

계속 먹었다.

곧 과자가 바닥이 났다.

오후 8시 28분 현재, 난 여전히 배가 고프다.

다시 억지로 잠을 청해 볼까. 

내가 먹으려던 과자를 먹는 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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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8-20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늦게 보았습니다.
지금은 아내님과 화해하셨겠죠?
주방에서 들어보라고 일부러 달그락 소리를 내며 뭔가 하는 척하면
아내님도 못 이기는 척 나와서 도와주시지 않았을까요?ㅎ

정말 개가 옆에서 입맛을 다시고 있으면 안 줄 수가 없어요.
녀석 때문에 그 사단이 났는데 그것도 모르고 달라고 하고 있으니.
이걸 두고 벼룩의 간을 내 먹는다고 하는 건가요?ㅎㅎㅎㅎ

마태우스 2019-08-21 01:03   좋아요 0 | URL
화해는 했지요 주방 가서 혼자 차려먹을 수도 있지만, 역시 안먹어야 굳은 의지를 보이는 거죠^^ 글구 개는 참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뭔 짓을 해도 예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