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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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유시민이 쓴 <나의 한국현대사>를 드디어 다 읽었다.

글쟁이로서의 유시민을 정치인 유시민보다 훨씬 더 좋아했기에

결과가 어찌됐건 그가 다시금 작가의 세계로 돌아온 걸 환영한다.

한 모임에서 그와 나란히 앉는 영광을 안은 적이 있었다.

난 그의 모든 책을 사서 읽었으며, 그의 책을 읽으면서 사회에 눈을 떴던, 유시민의 제자였지만,

막상 만나니까 벅찬 가슴과는 달리 별로 할 말이 없었는데,

마침 내 앞에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으로 베스트셀러 종합 1위를 달리던 정여울 작가가 있기에

유시민에게 “종합 1위를 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유시민에게 질문을 해봤다’는 것에 들뜬 나머지 그가 뭐라고 답변했는지 기억이 안나지만,

그로부터 두달여가 지난 뒤 나온 이 책은

출간 즉시 종합 1위에 오르더니 종합 1위에 3주간이나 머물렀다! (알라딘 기준)

이 말의 핵심은 이렇다.

“내가 유시민에게 종합 1위를 못해봤냐고 자극한 것이 그로 하여금 남은 기간 열심히 책을 쓰게 만들었고, 그 덕분에 그가 종합 1위를 3주나 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유시민과 내가 별로 나이차이가 없어서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 이런 일이!”라고 한 적은 거의 없다시피하지만,

젊은이들이 의외로 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빈곤하다고 느꼈기에,

균형잡힌 현대사 지식을 가르쳐주는 이 책이 잘 팔린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저자는 민주주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민주주의는 최선의 인물이 권력을 장악해 최대의 선을 실현하도록 하는 제도가 아니다.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잡아도 악을 마음껏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178쪽)

검찰과 국정원, 언론이 힘을 합쳐 최악의 인물이 마음껏 악을 행하도록 돕는 우리나라는

어쩌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저자는 칼 포퍼의 말을 빌어 “다수 국민이 마음을 먹었을 때 정권을 평화적으로 교체할 수 있다면 그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다. 그게 불가능한 나라는 독재국가다.”(177쪽)라고도 말하는데,

우리나라가 헌법상으로는 평화적 정권교체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실질적으로는 그게 불가능한 나라가 돼버린 것도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인지 여부에 대해 회의를 갖게 한다.

현재 55세(만)유시민이 65세가 됐을 무렵의 대한민국은 조금은 희망을 가진 나라가 되어 있을까?


책을 읽을수록 우리나라에 대한 절망감만 들게 만드는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내 이름이 책에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이 대목을 읽을 때 나는 기차를 타고 있었는데,

너무 놀란 나머지 책을 덮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찌됐건 종합 1위 책에 내 이름이 등장한 건 가문의 영광,

이럴 줄 알았다면 “종합 1위 해본 적 있느냐?”는 질문보다는 좀 더 따뜻한 얘기를 해줄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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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8-11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이름 보고선 저도 씨익 웃었어요. ^^

마태우스 2014-08-11 16:15   좋아요 0 | URL
호호 글쿤요 반갑습니다

blanca 2014-08-11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대목 읽고 ^^ 진짜 반가웠던 기억이 나요. 마태우스님한테 이미 이야기하고 쓰신 줄 알았다는 ㅋㅋ

마태우스 2014-08-11 16:15   좋아요 0 | URL
그럴 리가요 저랑 유시민님은 그런 사이가 아닙다.!

팬1 2014-08-11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왕!! 축하합니당~ 장바구니에 넣어놓기는 했는데 읽어야 할 책들이 많아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어요. 조만간 질러야겠네용.

마태우스 2014-08-11 16:16   좋아요 0 | URL
네 축하해주셔서 감사! 정말 세상에는 읽을 책이 많아요

프레이야 2014-08-11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찜만 해두고 담아뒀는데 당장 지르겠어요 ㅎㅎ. 광주에서 인문학 특강이 있다는 소식 들었어요. 그날 저 대신 순오기님과 악수 두번 하시길 바랍니다. 가서 듣고싶지만 그날 선약이 돼있어서 안타까워요. 부산은 특강 계획 없으신지요?

마태우스 2014-08-11 23:5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와앗 소식이 빠르시군요! 순오기님이 오시려나요 혹시...? 한번도 못뵜는데 그날 뵈면 좋겠지만...암튼 부산은 불러주는 곳이 없네요.

카스피 2014-08-11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마태님 대단하세요.이제는 점점 더 유명인사가 되시는것 같으세요^^

마태우스 2014-08-12 09:4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셍 카스피님. 그게요... 방송에서 점점 잘리다보니 이제 인지도는 곧 원래대로 돌아올 거 같아요..ㅠㅠ

transient-guest 2014-08-12 0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최근에 배송 받았습니다. 곧 읽어보려고 하는데, 유시민의 글은 묘하게 프로파간다가 있어 이번 책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마태우스 2014-08-12 09:4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저는 사상이 그쪽이라 그런지 프로파간다의 냄새는 맡지 못했어요. 님이 읽으시면 좀 다를 수도 있겠네요... 암튼 읽어볼만 해요.

transient-guest 2014-08-12 23:56   좋아요 0 | URL
특별한 거부감은 없구요, 저도 사상이 불순(?)하여 그런지 유시민의 글이 좋습니다. 그저 제가 예전에 그렇게 느낀 부분이 조금 있었다는 것이지요.ㅎ

책이좋아 2014-08-25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멋지네요. ^^ 기차 안에서 깜짝 놀라셨겠어요. 이런 경험을 하는 사람은 흔치 않겠죠? ㅎㅎ
 
유괴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이규원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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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책에 몰입하면 역을 지나쳐도 모를 정도였는데

요즘은 책을 보는 것에서 피곤함을 느낀다. 

그러다보니 서울에서 천안까지 기차를 타는 내내 스마트폰만 보는, 

내 기준에서 볼 때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진다. 


지난주, 제주도에 강의를 다녀온 적이 있다.

천안에서 서울로 갔다가 거기서 다시 공항에 간 뒤

11시 비행기로 제주에 가서 두시간짜리 강의를 하고 

다섯시 비행기로 다시 서울에 왔다가 거기서 다시 천안으로 내려오는 스케쥴이었는데,

그날 아침에 가방에 챙겨넣은 책이 다카기 아키미쓰의 <유괴>였다.

처음 보는 작가였지만 언제부터인가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이 된 블로거베스트셀러에 있기에 다른 책 여섯권과 더불어 질러버렸는데,

그 리스트는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당일치기 제주도 (그리고 그날 아침에 사실 아침마당도 출연했다!)라는 힘든 스케줄을

난 오로지 이 책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책인데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흥미를 유발시키는 책을 오랜만에 만났다.

그러고보면 떨어진 체력을 이겨내는 방법은 보다 더 재미있는 책을 고르는 기술인 듯하다.


이 책은 유괴를 계획한 범인이 그보다 먼저 저질러진 유괴 사건의 재판과정을 보면서

“난 저런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라고 치밀하게 준비하고,

그 준비한 보람이 있게 거의 완전범죄 수준의 유괴를 저지르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모델이 된 유괴사건에 대해 읽다가 깜짝 놀랐다.

“가정부에게 현금 이백만엔을 들려서 오후 2시에 역으로 가게 하라.”(23쪽)

이백만엔이면 우리 돈으로 이천만원?

아니 힘들게 유괴를 해서 겨우 이백만엔? 그럴 거면 뭐하러 유괴를 하지?

황당하기로는 모방범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재산가의 아들을 유괴해 놓고선 요구하는 돈이 ‘삼천만엔’이다.

에게게, 겨우 3억?

아니 유괴범들이 이렇게 간이 작아서야 무슨 큰일을 하겠는가?

비밀은 책을 덮고서야 풀렸다. 

“이 작품은 1961년 <호세키> 3월호부터 7월호까지 5회에 걸쳐 연재되었다.”(485쪽)

지금부터 50년 전쯤 쓰여진 소설이니, 이백만엔, 삼천만엔을 요구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고보니 범인은 휴대전화를 전혀 쓰지 않았고, 온라인 송금 이런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읽을 땐 그걸 이상하게 느끼지 못했는데

연도를 알고 나니까 모든 의문이 다 풀리는데,

오래 전에 쓰인 책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은

이 책이 얼마나 잘 쓰인 작품인지를 역설적으로 말해 준다.


책에 나오는 대목 중 감동적인 대목 하나.

이 책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변호사는 주식으로 돈을 잘 버는 아내를 두고 있다.

그 변호사가 돈이 되는 민사 대신 형사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아내가 이렇게 말했단다.

“경제적으로는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평생 형사 변호를 전문으로 해 봐.”(375쪽)

이 대목을 읽으면서 하종강 선생을 떠올렸다.

하선생이 노동운동에 투신할까 말까를 고민할 때 그 아내분이 한 말,

“나는 특수학교 선생이 될 거니까, 너 먹여살리는 것은 걱정이 없어.

네가 적성에 안맞아서 그만둔다면 모를까, 돈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마.”

덕분에 우리나라 노동계는 큰 친구를 얻었으니, 하선생 사모님께 감사할 일이다. 

이건 순전히 자랑질이지만, 난 아내한테 가끔 이렇게 말한다.

“돈 쓸 일 있으면 걱정하지 마. 내가 가루가 되도록 일해서라도 돈 벌어올게.”

그러고보면 아내도 결혼을 참 잘 했고,

그건 외모에 연연하지 않고 날 선택해 준 고마운 판단력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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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4-07-30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훗~ 이 책 읽어보고 싶네요~
크으~ 멋진 신랑이로군요~ 마태님~^^
두 분 너무 좋겠습니다.ㅋㅋ

마태우스 2014-07-31 10:15   좋아요 0 | URL
신랑이라고 하기엔 결혼한지 너무 오래됐죠 호호호. 근데 저도 단점이 겁나 많습니다. 아내가 제가 거절 잘 못하는 것 땜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어요...ㅠㅠ 노력은 하는데 잘 안고쳐짐...ㅠㅠ

페크pek0501 2014-07-30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에서 빵터지네요. ^^

마태우스 2014-07-31 10:15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 앞에서도 좀 터뜨렸어야 하는데...

2014-07-30 2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4-07-31 10:16   좋아요 0 | URL
네 님도 건강한 오후 되세요. 어여 나으시길!!

Ralph 2014-07-30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구렇군요..돈이아니라 배짱이군요. 재벌들도 돈없다고 벌벌떠는데..,

마태우스 2014-07-31 10:17   좋아요 0 | URL
랄프님 안녕하세요 사실 제가 님 댓글의 의미를 잘 모르겠어요. 혹시 또 들르시면 설명 좀 부탁드려요. 죄송!!

Ralph 2014-07-31 16:32   좋아요 0 | URL
아 그게, 재벌 처럼 돈이많아도..더 돈을 벌려고 혈안인 세상인데.. 위에 예를 드신 두 여장부는 재벌에 비하면 버는 것도 아닌 주제?에.. 남편한테 돈벌어오라고 하지않고.. 하고시픈일 하라는 배짱이 있다는 의미로.. 말이 되는건지 저도 햇갈리는 군요..

마태우스 2014-08-08 04:13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 제가 님한테 질문을 던져놓고 깜빡 까먹었습니다. 이해해 주시길...ㅠㅠ 님 댓글의 뜻을 지금은 이해했어요!

2014-07-31 0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31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14-08-07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책이 계속 번역되어 나오니 즐겁네요. 저는 예전 동서미스테리문고에서 나온 '문신살인사건'으로 작가를 처음 접했던 기억이 납니다. 음울한 2차대전 패전 직후 일본의 분위기와 문신에 얽혀 돌아가는 살인사건을 보면서 분위기에 푹 빠져 읽은 기억이 나네요.

마태우스 2014-08-08 03:52   좋아요 0 | URL
아 이분 책이 또 나온 게 있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transient-guest 2014-08-08 04:26   좋아요 0 | URL
지금까지는 '파계재판', 그리고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를 합쳐서 네 권이 나와 있습니다. 즐독하세요..ㅎㅎ
 
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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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을 재미있게 읽었다.

저자가 좀 거시기하긴 해도 그가 책을 참 재미있게 쓴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내가 주인공의 일대기,

즉 언제 태어나서 몇 살 때 뭘 하고 결혼은 누구랑 하고, 돈을 얼마를 벌었고 하는 식의 책을 좋아한다는 걸 알려준 것도 다름아닌 <변경>이었다.

성석제의 신간 <투명인간>도 인간성이 바보처럼 좋은 김만수의 일대기를 그렸는데,

글솜씨도 워낙 뛰어난 작가의 작품인지라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여전히 성석제가 낯선 이유는, 원래 그한테 기대했던 건

문장 곳곳에 숨어있는 유머를 발견하는 재미였기 때문이었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비롯해 그의 책들은 읽는 내내 웃음을 줬기에,

<참말로 좋은 날>에서 유머를 뺀 그의 작품을 읽을 때 내심 당황했다.

이번 책은 제목이 <투명인간>이었고, 도입부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투명인간끼리 서로를 알아보는 내용이 나와서 다시 원래의 성석제로 돌아온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라서 아쉬웠다.


김만수라는 사람의 출생일이 50년대로 추정되고,

이 책이 그 사람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니

기생충 이야기가 몇 번 나온다.

전공이 전공이니만큼 그 얘기만 좀 해본다.

“치료나 예방이 안되는 것도 있었다. 이나 벼룩 같은 기생충이었다”(63-64쪽)

이나 벼룩같은 것들은 사람 몸에 살진 않지만 체외기생충으로 분류하고 기생충학에서 가르친다.

그런데 다음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모기, 파리 같은 기생충도 훨씬 적었다. 구더기도 기생충인지...”(65쪽)

모기와 파리는 사람에게 기생하지 않으며, 따라서 기생충은 아니다. 그냥 곤충일뿐.

그럼 구더기는? 파리가 의식이 없는 사람의 코나 입에 알을 낳아 거기서 구더기가 나오는 일은 가끔 있다.

본의 아니게 사람 몸에 들어오긴 해도 이 구더기는 기생충으로 분류를 한다.

안그래도 몇 년 전 이 구더기 가지고 두 편의 논문을 우려먹은 적이 있다.

환자 코에서 나온 구더기. 



환자의 눈에서 나왔던 구더기.




66쪽에는 채변봉투 얘기가 나온다. 

한 반 학생들 전부에게 변을 담아오라고 한 뒤 기생충 여부를 검사했던 그 채변검사.

“우리반 오십명 중 여덟명 빼고는 다 회충이 있다..내일 약을 먹어야 하니까 아침은 굶고 와라.”

선생님은 회충에 양성이 있는 학생들에게 ‘싼토닌’을 준다.

자료에 의하면 이 약은 근육을 마비시켜 기생충을 배출하게 만드는 회충약이었단다.

주인공 만수는 이 약을 먹고 어지럽다고 하더니, 나중에 운동장에 쓰러져서 기생충을 토한다.

“아이는 잠결에 입에서 무언가 길쭉한 것을 뽑아내고 있었다. 길고 질긴 쫀드기 같은 것을

자꾸만 뽑아올리고 있었다. 먼 데서도 나는 그게 뭔지 알아볼 수 있었다...“(67쪽)

그 당시엔 회충이 입을 통해 밖으로 나오는 경우는 흔히 있었지만,

길고 질긴 쫀드기같은 기생충은 아무래도 길이가 몇미터인 촌충이 아닐까 싶다.

지금이야 디스토시드 (프라지콴텔이 성분명)라는 좋은 구충제가 있지만,

과거 이 약이 없을 때는 니클로사미드 (niclosamide)라는 약을 써서 구충을 했다.

그리 신통한 구충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촌충을 죽이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몸이 기다란 촌충이 이 약을 만나서 죽으면 어떻게 될까?

장의 연동운동에 몸을 맡긴 채 항문 쪽으로 밀려가고, 결국 대변과 함께 배출된다.

그러니, 회충약인 싼토닌을 먹고 촌충이 죽는 건 아니고,

죽었다고 해도 촌충이 입으로 올라와 구토와 더불어 밖으로 배출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촌충은 이렇게 생겼다


마지막으로 148쪽. 

“암만 손님이라고는 해도 저런 인간은 사내도 아니다. 식구들 피 빨아먹는 거머리다. 기생충이지.”

여기서는 성석제 작가가 기생충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가 잘 드러난다. 

기생충을 좋게 봐달라고 역설하는 내가 보기엔 좀 서운하다고나 할까.

소설은 소설일뿐, 분석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럼에도 기생충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쓴 건, 이런 식으로라도 자신의 지식을 뽐내고픈 치기일 것이다.

나이가 오십을 향해 달려가는데도 아직 이런 마음이 남아 있다니,

철이 든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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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7-27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초충 마치 제가 즐겨먹는 칼국수 라면처럼 생겼습니다...ㅎ ㅎㅎㅎㅎㅎㅎㅎㅎ

마태우스 2014-07-27 23:32   좋아요 1 | URL
그죠? 편견을 버리니 기생충이 친근해지는 겁니다^^

재는재로 2014-07-27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촌충모르고보멵 면으로착각하겠네요 근데엄청기네요 저게몸에잇다생각하면 아욱

마태우스 2014-07-27 23:32   좋아요 0 | URL
면이 우리몸에 흡수되듯이, 저게 있어도 별일 없습니다.^^

비연 2014-07-27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촌충을 보니... 갑자기 국수 먹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네요...;;;;

마태우스 2014-07-27 23:32   좋아요 0 | URL
호호 다들 기생충이 친근해지셨나봐요!

가넷 2014-07-27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락국수보다는 칼국수가 연상이 되네요. ㅋㅋ

마태우스 2014-07-27 23:33   좋아요 0 | URL
그죠 예리하십니다. 칼국수는 면이 납작하지만 가락국수는 둥글죠.!!

꼬마요정 2014-07-27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에서도 기생충이 나오는군요.. 엄청 아팠겠는걸요. 문득 책장에 꽂혀 있는 '대통령과 기생충',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을 꺼내들고 싶은데요 ㅋㅋ 마태우스님의 유머에 퐁당 빠져볼까나요~ ^^

근데 투명인간에서 기생충 이야기로 전환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점점 사라져가는(인식하지 못하는) 기생충에 대한 애도(?)인건가요?

마태우스 2014-07-27 23:34   좋아요 0 | URL
우왓 요정님이닷! 머 애도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근데 저 책들은 제가 기억하기 싫은, 악몽의 책들인데, 안보시면 안될까요 흑흑

노이에자이트 2014-07-28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에서 구더기 나오는 동영상을 본 적은 있습니다만 코에서 구더기 나오는 것은 무슨 병입니까?

마태우스 2014-07-29 19:47   좋아요 0 | URL
파리가 코에다 알을 낳는 거죠. 입에서 나오는 경우도 있구요....

카스피 2014-07-28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넘 무시무시하네요^^''

마태우스 2014-07-29 19:47   좋아요 0 | URL
그죠? 좀 아름다운 영상을 올려야 하는데 늘 이런 것만...ㅠㅠ
 
불량 제약회사 - 제약회사는 어떻게 의사를 속이고 환자에게 해를 입히는가
벤 골드에이커 지음, 안형식.권민 옮김 / 공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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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화이자라는 제약회사는 새로운 뇌수막염 치료제인 트로반을 개발했다.

약을 개발하면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해야 하는 건 필수적인 일,

그런데 그들은 임상시험을 하기 위해 나이지리아로 날아간다.

나이지리아의 뇌수막염 환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화이자는 

한 그룹에는 기존 치료제 (ceftriaxone)를 줬고,

또 다른 그룹에는 새로 개발한 트로반을 준다.

정말 부도덕하게도 화이자는 트로반의 효과를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기존 치료제의 용량을 반으로 줄여 환자들에게 투여한다.

트로반이 그다지 좋은 약이 아니어서 트로반 투여군 아이들 100명 중 다섯명이 죽은 건 예상치 못한 일이라 할 수 있지만,

기존 치료제의 용량을 반만 투여함으로써 원래 살 수 있었던 아이들 중 여섯명이 죽은 건

살인행위라 불러도 괜찮을 듯 싶다.

이들이 나이지리아로 간 것도 임상시험 참가자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

그럼에도 화이자는 처음에는 자신들의 행위에 잘못이 없다고 했다가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뒤 합의금을 주고 사태를 종식시킨다.

1996년 벌어진 이 사건에 기초해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콘스탄트 가드너>,

여기서 제약회사는 검증안된 에이즈 치료제를 아프리카 애들을 상대로 실험하고,

그 사실을 알아챈 이들을 죽이는 테러집단으로 나온다.

처음에 이 영화를 볼 때는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라고 생각했지만,

책을 통해 트로반 사건을 뒤늦게 알고 나니 그 영화가 과장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벤 골드에이커는 <배드 사이언스>에서 부도덕한 제약회사에 대한 날선 비판을 한 적이 있다.

그 비판이 한 챕터에 불과했던 게 마음에 걸렸는지,

그는 아예 책 한권으로 제약회사를 까기로 한다.

그래서 나온 게 <불량 제약회사>, 

책이 464쪽으로 두껍고, 온통 약 얘기로 도배돼 있어 책을 선뜻 들기가 부담스러울 것 같긴 하다. 

현재까지 알라딘 세일즈 포인트가 635로, 

거의 안팔렸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렇긴 해도 이 책이 그냥 이렇게 묻히는 건 좀 안타까운 일이다.

제약회사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부도덕한 존재라는 걸 이 책만큼 잘 말해주는 책은 없으니까.

조폭이 가끔 영화의 소재가 되는 건 조폭의 무식함이 관객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기 때문인데,

제약회사가 무서운 이유는 부도덕함과 더불어 좋은 머리까지 가졌다는 점이다.

이 책에 소개되는 제약회사들의 전략을 읽다보면 “이렇게 치밀할 수가!”라는 감탄이 적어도 20번은 나온다. 

마르시아 앤젤이라는 의사가 쓴 <제약회사는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와 비교할 때

사례는 훨씬 더 풍부하고 구체적이며 그래서 그런지 훨씬 더 생동감이 넘치고 재미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읽자,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이게 우리나라 현실에는 그다지 맞지 않는 책이여서다.

새로운 약을 개발하고 그걸 팔아먹으려고 애쓰는 외국 제약회사들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신약개발보다는 리베이트로 먹고사는 제약회사들이 주를 이뤄서다.

신약개발을 별로 안하니 임상시험을 할 필요가 없고,

그러다보니 외국처럼 비열하지만 치밀한 전략을 짤 이유도 없다.

그러고보면 부도덕함이란 것도 어느 정도 능력이 돼야 가능한 게 아닌가 싶다.

일반인들은 빵을 훔쳐서 감옥에 가는 반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천문학적인 액수를 횡령하고도 감옥에 안가지 않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기를 쓰고 높이 되려고 하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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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4-07-27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만 보아서는 어린이 대상용 책인 듯한 느낌도 풍기네요. 여튼 꼭 읽어볼 생각입니다. 아, 그건 그렇고 메디컬X에서도 출연하시더군요.ㅋ 잘 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거의 준반송인이 신듯?ㅎㅎㅎ

마태우스 2014-07-27 12:24   좋아요 0 | URL
어마 시청율 0.5%인 방송을 보시다니! 부끄럽습니다. 근데 제가 방송을 너무 못해서 오래지 않아 잘릴 거라고 제가 전에 페이퍼에 쓴 적 있는데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잘렸답니다.ㅠㅠ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고 있어요^^

꼬마요정 2014-07-27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약이 빼곡하게 적힌 책은.. 너무나 어렵겠는걸요.. 종자회사 못지 않게 제약회사도 참으로 악랄합니다. 미국에 가만히 앉아서 지시만 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죽는 게 아무렇지도 않나 봅니다. 직접 칼로 찔러 죽이는 거나, 약으로 죽이는거나 죽이는 건 매한가지인데 말입니다. 하긴, 가자 지구에서 폭탄이 터질 때마다 그 장면을 보며 맥주 마시면서 박수치는 사람들도 있으니 참.. 우울하네요ㅠㅠ

마태우스 2014-07-27 23:35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자기가 먹을 거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좀 부도덕하더라고요 문제는 그네들이 돈을 가지고 있단 거죠....그래서 의사들이 잘 넘어가요.

Ralph 2014-07-30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우리모두가 열심히 그약을 먹고 처방하고, 돈을 퍼주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방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왜 갑자기 <이방인> 열풍이 불었는지 모르겠다만,

내가 민음사에서 나온 <이방인>을 구매한 것은 그 책이 서재블로거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위에 없었다면 읽고 싶은 마음도 없었을테니,

내가 산 것은 순전히 충동구매였다.

게다가 난 한번 읽은 책은 여간해서는 두 번 읽지 않는 습성을 갖고 있는데,

이는 책읽기를 워낙 늦게 시작해서-30살에!-그럴 만한 겨를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방인>은 세계문학전집에 수록된 것들 중 보기 드물게 읽었던 작품이다.

대학 때 이 책이 독서토론의 주제였기에 정말 억지로 읽었는데,

번역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삼중당문고 거라 읽는 게 그리 편하진 않았다.

지금 민음사 전집처럼 나왔다면 훨씬 더 좋았을 테지만,

그때는 그런 호사를 누릴만한 시대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내가 이 책에서 기억나는 것은 주인공 뫼르소가 햇빛 때문에 다른 사람을 죽였다는 게 유일했다.

 

다시 만난 이방인은 참 반가웠다.

카뮈의 부조리에 대해 이해하는 건 여전히 어려웠지만,

옛날에는 이 책을 사투 끝에 읽었다면 지금은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는 게 차이점이었다.

20년 이상 쌓인 삶의 경험은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줬는데,

재산을 노리고 부모를 죽이는 사람도 있는 판에 어머니의 장례식 때 슬퍼하지 않는 뫼르소를

이해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다보니 뫼르소가 그 아랍인을 죽이는 상황도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좀 황당한 상황에 직면하는데,

<이방인>136페이지에서 그만 끝이 나버렸다는 점이었다.

그 나머지 부분은 죄다 이방인의 해설,

부조리에 대해 잘 모르는만큼 해설을 읽는다면 도움이 되겠지만,

10-20페이지도 아니고 100페이지가 넘는 해설을 보고 있자니

넌 남보다 독서를 늦게 시작했어! 그딴 거 보지 마!”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차원에서 난 이방인 읽기를 그만뒀고,

눈을 감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밤 좋은 차를 훔쳐서 먼 여행을 떠나는 꿈을 꿨는데,

 

 

 

 

 

이건 이방인의 영향일까, 아니면 낮에 학교에서 봤던, 1억을 훨씬 넘는다던 재규어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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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05-20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남보다 독서를 늦게 시작했어요. 반가운 동지 님!!!
그래서 더 열심히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열등감은 나의 힘!!!

저는 해설이 남아 있다면 읽지 않고 못 배기는 성미예요. 궁금한 건 못 참아욧!!!

바쁜 중에도 꾸준히 독서하시는 님을 배우겠습니다. ^^

마태우스 2014-05-22 10:25   좋아요 0 | URL
정말 반갑습니다, 페크언니. 늦게 시작하셨다구요
그래도 페크언니 글 보면 책을 제대로 읽으셨다, 이런 생각이 들던데요
암튼 열시미 읽을게요!!

머프 2014-05-21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도 최근에 사서 읽었는데 정말 황당하더라...책에 반이 남까고 해설이라니...

마태우스 2014-05-22 10:25   좋아요 0 | URL
동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립간 2014-05-22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인사차 글을 남기고 갑니다.

제가 만약 (여자든, 남자든) 바람이 난다면, 알라디너일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결혼 후에는 알라딘 관련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죠. 만약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한다면 안해와 함께 한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번 마태우스님의 북콘서트에 안해와 함께 참석하려 했는데, 여건이 안 되네요.

이번에 책 출간하신 것 및 북콘서트 갖게 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멀리서 응원하겠습니다.

마태우스 2014-05-22 10:26   좋아요 0 | URL
앗 마립간님 반갑습니다. 혹시 염두에 두신 알라디너가 있는지요^^ 조크였구요
제 북콘서트 소식을 어케 아셨어요. 그거 비밀인 줄 알았는데... 응원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저도 갚을 날이 있겠지요!

2014-05-22 1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27 1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28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