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원권을 발행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 10만원짜리 수표를 한번 쓰고 버리는 게 아깝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수표 발행비용이 연간 4천6백억원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수표의 특성상 낼 때 괜히 미안해해야하고, 심지어 수표를 안받는 곳도 있고, 뒤에다 이서를 일일이 해야 하는 것도 영 귀찮은 일이다. 10만원짜리 지폐의 평균수명이 4년으로 추측되는 데 반해 수표의 유통기간은 겨우 7.9일이란다. 미국에는 100달러 짜리가 있는데 우리는 1만원이 가장 고액이라니 이것도 웃기지 않는가? 그런데 10만원권을 발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유는 뭘까? 인플레이션이 생겨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 그것도 일리는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5만원권 지폐는 생각하지 않는 걸까? 500원짜리가 있고 1천원짜리가 있으며, 5천원짜리가 있고 1만원짜리가 있는 것처럼, 5만원권을 먼저 만들고 나중에 10만원권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5만원권만 있으면 웬만큼 큰 거래도 현찰로 지불이 가능할텐데 말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이런 의문을 말했더니 다들 "생각해 보겠다" "지금은 바쁘니 나중에 얘기하자"고 한다. 5만원권이 안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걸까?

하여간 언제가 되었든 10만원권이 생기는 건 기정사실일 것 같아, 거기에 누구 얼굴을 실을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지금까지의 등장인물을 보면 1천원이 이황, 5천원이 이이(맞아요?), 1만원은 세종대왕, 모두 조선시대 사람이고, 다들 남자다. 그러니 10만원권에는 기필코 여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그간 우리 사회가 워낙 남성중심이어서 여자 중에는 마땅한 인물이 없다는 것. 기껏 생각나는 사람이 유관순 정도? 글쎄다. 만세 한번 불렀다고 지폐에 얼굴이 새겨진다는 건... 조금 더 생각해보면 춘향이도 있고 논개도 있지만, 춘향이는 시대착오적인 정절 이데올로기를 더 강화할 것이고, 논개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국가주의의 표상, 지금처럼 자유와 개성을 중시하는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꼭 옛날 사람만 해야 되는 건 아니잖아?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이효리, 만만치 않은 안티 세력이 있긴 하지만, 그녀만큼 전국민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없지 않는가?

문제는 수명이 짧다는 것. 10만원짜리 수표가 8일도 안되는 것처럼, 이효리의 인기 역시 그리 오래갈 것 같진 않다. 20-30년 후에 "아빠, 이효리가 누구야?"라고 물었을 때 뭐라고 대답을 하겠는가? "이효리, 아주 섹시한 스타였단다"라고 답하는 건 영 이상하지 않는가? 허난설헌은 어떨까? 얼마전 도전 골든벨을 보니 "조선에서 태어난 게 한이다"라는 말을 했다는데, 지폐에 얼굴이 찍히기는 부족한 듯싶다. 에라 모르겠다. 내가 왜 이런 걸 고민한담? 한가지 확실한 것은 남자든 여자든 누굴 정한다 해도 만만치 않은 반대가 있을 것이라는 것. "그사람이 뭐 그리 대단하냐" "그사람이 세종대왕보다 열배 더 훌륭하다는 편견을 버려라" "그인간 친일파다" "팔삭둥이더라" 등등의 비난이 쏟아지겠지. 지폐의 인물을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 천만 다행이다. 참, 호랑이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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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의꿈 2004-01-27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우리나라에도 여성으로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분들이 많았겠죠-;.. 뭐. 옛날사람들이 남녀차별이 심했었다는 일은 다 알던 사실이니까 넘어가고, 이효리씨는.. 좀.... 연예인으로서 조금 인기있다고 지폐에 얼굴찍히는건-_-;(그리고 생각하기에 전국민의 사랑을 그렇게 열렬히 받고있다는 것도 아닌듯 싶고;)... 음,, 하여튼(-ㅁ-) 저도 여자고.. 우리나라 고액 지폐에 여자가 실리면 좋기는 하겠지만,, 요즘에는 광개토대왕님께서 상당히 인기가 좋으시고...저도 중국때문에 일단은 광개토대왕님을 적극적으로 밀어주려고 생각중이었답니다;;...
10만원권 나오면 한번 만져나 봤으면 좋으련만...
 

 

 

 

* 저희 학교 교지에 실으려고 썼습니다. 남의 글을 짜깁기한 수준이라, 갑자기 내기가 싫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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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에 관한 오해들

평소 xx 교지를 즐겨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교지에는 이따금씩 페미니즘을 다룬 글들이 실립니다. 다른 글들은 대부분 제게 많은 가르침을 주는 수준높은 것들이지만, 페미니즘에 관한 글들은 전혀 동의할 수 없더군요. 젊은 분들이 어쩌면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까, 하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고맙게도 편집부에서 제게 반론을 실을 지면을 주신다고 해, 나름대로 열심히 써 봤습니다. 저보다 훨씬 많이 아시는 분들의 말씀을 주로 인용했으니 제 글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이 글이 페미니즘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풀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페미니즘이란?
흔히 페미니즘을 '여성만 잘 살자'는 주장으로 몰아붙이는 사람이 있지요. 하지만 그건 아닙니다. 페미니즘은 남자와 여자가 더불어 잘살자는 주장입니다. 경희대 강사인 정희진님의 말을 인용합니다. "페미니즘은 타협, 생존, 공존을 위한 운동이다. 남성의 세계관과 경험만을 보편적인 인간의 역사로 만드는 힘을 조금 상대화시키자는 것이다. 남성의 삶이 인간 경험의 일부이듯, 이제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의 경험도 인간 역사의 일부임을 호소하는 것이다" 그래요, 타협하고 공존하잡니다. 이게... 나쁜가요? 알렉스 슈바르쳐의 말처럼, 생물학적으로 구별되는 아주 작은 차이가 사회적으로 엄청난 결과를 빚어서는 안되겠지요?

2. 페미니즘은 왜 생겼을까?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듯, 페미니스트도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구요. 그러니까 여성 억압적인 사회가 페미니즘을 잉태하는 거지요. 우리나라보다는 덜하지만 외국도 여성차별적인 현실은 마찬가지기에, 수많은 페미니스트가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20세기 초에 살았던 나혜석은 이렇게 말했었지요.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 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영어로 페미니즘이라고 하니까 거창한 이론이 필요한 것 같지만, 여성 자신이 사는 현실이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것, 그게 페미니즘으로 가는 첫 발입니다. 나혜석을 한국 최초의 페미니스트라 부르는 것은 이렇게 자신이 느낀 바를 솔직히 표현할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어떤가요? 20세기 초 조선의 풍경과, 100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은 얼마나 다르다고 생각하시나요?

3. 우리 페미니즘은 과격합니까?
교지에 글을 쓰신 어떤 분의 말입니다. "한국의 여성운동은 극단적 페미니즘에 빠진 여성운동가들의 목소리가 크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과연 그럴까요? 시네21 편집장이었던 조선희의 말을 들어보죠. "한국에서 여자들은 지금보다 훨씬 과격해져야 한다. 그런데 정말 심각한 문제는 여성 자신들이 얼마나 기막히게 낙후된 여성인권 후진국에 살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의 말입니다. "우리 현실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오버하고 편파적일 권리가 있다고 봅니다...그들은 편파적일 의무와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이 어떻기에 이런 말을 할까요? 실례를 하나 들지요. 1988년, 30대 주부 변모씨가 골목길에서 20대 청년 2명에게 붙잡혀 성폭행을 당할 뻔했습니다. 범인들에게 가슴과 옆구리를 발로 차이고, 바지를 벗기운 채 한명이 강제로 혓바닥을 밀어넣는 상황에서 변씨는 혀를 깨물어 3분의 1 정도를 잘라버림으로써 위기를 탈출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변씨에게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죄를 적용, 징역 1년을 구형...검찰은 성폭행을 피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쓸 수도 있는데 혀를 잘라 불구자로 만든 것은 과잉방어라고 보았던 것이다. 결국 변씨는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혀를 자른 행위는 결코 정당방위가 될 수 없다는 유죄판결이 나온 것이다"
2심에 가서야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이게 말이 됩니까. 혀를 자르는 거 말고 도대체 어떤 방법을 쓸 수 있는지 검사님께 묻고 싶어지네요. 너무 오래 전 얘기라고요? 이건 어떤가요. 손광기 (이경실 남편) 사건에 대한 대전대 권혁범 교수의 한탄입니다.
"신문 제목에 불륜이 나와있는 것을 보고 숨이 막혔다. 항상 피해자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전형적인 가해자 중심의 관점이다. 설사 어떤 여자가 바람을 피웠다고 하자. 그렇다면 야구방망이로 좀 맞아도 정당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런 논리라면 대한민국 남편의 60%는 아내에게 매월 최소한 한번 정도는 야구방망이로 구타당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래요, 이경실처럼 잘나가는 여자도 가정 내에서는 그저 매맞는 아내에 불과했습니다. 여성권한척도 순위가 케냐와 더불어 세계 최하위라는 사실이 여러 차례 언론에 공표되도, 다른 순위에는 민감하면서 그런 보도에는 꿈쩍도 하지 않더군요.
다른 얘기를 하지요. 2년 전 장상씨의 총리인준이 부결되었지요. 거기에 대해 권혁범 교수는 이렇게 항변합니다. "장씨가 보여준 문제들이 특권층 모습인 건 맞다. 그런데 그 흠결이 총리가 되는데 결격사유인가. 원래 총리는 특권층적인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이 늘 가던 자리 아닌가. 그동안 역대 남자 총리들은 무슨 대단한 민중적 행태를 보이셔서 그 자리에 갔던가...장상에게 제기된 문제는 여성문제가 아니지만, 그것에 대한 해석과 적용방식은 분명 여성문제다" 지금 총리를 하고 있는 고건 씨는 과연 장상씨보다 도덕적으로 많이 우월한가요? 거친 목소리와 핏대 선 얼굴, 이건 약자의 어쩔 수 없는 수단입니다. 한국 여성운동가들의 목소리가 과격하다면, 그건 우리나라 여성의 현실이 워낙 척박하기 때문인 겁니다.

4. 오버하지 맙시다
일전에 연대에서 여자 총학생회장이 탄생한 적이 있습니다. 여학생 비율이 37%에 달하니, 여자 회장이 하나쯤 있는 건 당연해 보입니다. 그때 대학관계자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합디다. "여학생 강세가 계속돼 남학생들이 위축된다면 앞으로 학교위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요. 과연 그럴까요? 그래봤자 남학생은 63%로 훨씬 더 많습니다. 남자교수의 비율은 더 압도적이며, 총장은 100% 남성입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면서 여자들이 사회를 쥐고 흔드는 것처럼 엄살을 피우는 남자들이 많이 눈에 띄더군요. 심지어 역차별을 제기하는 사람까지 있더군요. 여기에 대한 권혁범 교수의 진단입니다. "간큰 남자 시리즈에서 암시되듯, 여성의 힘을 일부러 과장함으로써 남성중심 질서에 대한 여성의 도전이나 위협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논리와 정서 또한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마디로 남성들은 약간의 변화에도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여성에게 취업의 문은 아직 좁습니다. 비정규직의 대부분은 여성이고, 그들은 남성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임금으로 허드렛일을 하고 있지요. 현대차 노조에서 일어난 일을 다룬 <밥.꽃.양>에서 나타나듯, 정리해고의 1순위는 언제나 여성입니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자는 아직은 남성, 그러니 제발 오버하지 맙시다.

5. 페미니즘은 교육받은 중산층 여성들의 소일거리일까?
교지에서 어느 분이 한 말입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여성들로서...저학력 여성까지 모두 포함하지는 못한다"
좌파논객으로 유명한 손석춘이 한 말을 보죠. "역겹다. 페미니즘은 먹고사는 데 아무 지장없는 중산층 여성들의 주장"
모택동, 맑스, 모두 중산층 지식인이었지만, 페미니스트만 중산층 지식인인 것이 시비거리가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희진의 말입니다. "여성은 어머니이거나 창녀일 뿐, 지식인이나 중산층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것이다...위와 같이 말하는 남성도 중산층 부르주아 지식인이면서"
현실에 대한 자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이론화하고 운동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배운 사람의 몫이지요. 주장의 옳고 그름을 따져야지, 중산층이니 엘리트니 하는 게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페미니스트 최보은이 시네21에 쓴 글을 읽어보면 "중산층"이자 "엘리트"인 여성이 어떤 삶을 사는지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주소를 복사해 놨으니, 한번 읽어 보세요. 전 마음이 아프더군요
http://www.cine21.co.kr/kisa/sec-002100101/2002/05/020527153719033.html)

6. 페미니즘은 보편적 인간해방운동의 대의를 거스르는가?
여성의 이익보다는 계급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자는 얘기, 수없이 나오는 말이지요. 지난호 교지에서 본 말입니다. "그늘에 가려진 힘없는 여성들의 생사가 달린 문제를 외면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의 특징은, 평소 저소득층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기 십상이지요. 여기에 대해 권혁범 교수가 멋지게 반박을 했습니다. "그 보편과 인간해방을 그동안 누가 규정해 왔는가? 모든 억압에 대항해야 한다는 말은 전체주의적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억압이 있고 그걸 한줄로 꿸 수 있는 운동도 논리도 없다...여성주의는 절대적 선도, 이 세상의 모든 정의를 포괄하는 진리도 아닌 매우 제한적인 담론이며 이념이다. 여성주의에게 감당할 수 없는 절대적 보편성을 부여하는 것은 이미 그것에 대한 무지 혹은 근원적 거부를 전제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말이죠. 장애인들이 처우개선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하고 있는데, "왜 너희는 니네 이익밖에 모르냐. 지금 서울역에 가면 노숙자가 얼만데..." 말이 좀 안되죠? 그런데 그런 걸 왜 여성운동에만 요구하는 걸까요? 여성운동가가 무슨 슈퍼맨인가요?

7. 여성의 적은 여성?
흔히 여성이면서도 여성에게 더 가혹한 경우를 볼 수 있지요. 남성들은 그런 여성들을 조롱합니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니 뭐니 해가면서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셋이서 커다란 파이를 먹을 땐 화기애애하게 먹을 수 있어도, 남은 부스러기를 먹을 때는 싸울 수밖에 없는 거죠. 여성에게 주어진 권력은 그야말로 파이의 부스러기밖에 안되는 수준이며, 큰 파이를 먹고 이를 쑤시고 있는 남성보다는 자기가 먼저 발견한 부스러기를 주워먹는 여성이 더 얄미울 수밖에 없는 거지요. 페미니스트는 못생긴 여자들이 하는 거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든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자 팔자는 남자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게 하는 것이다. 옆에 있는 남성에 의해 여성의 가치가 결정된다고 하는 정치적 메시지를 젊은 여성이 내면화하기를 거부하고 그런 중독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그 여성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상하고 위험한 존재로 여겨진다... 때문에 여성들은 여성들끼리 서로 지지하는 자매애를 갖기 어렵다" 여성 스스로가 열등하다고 세뇌가 되면, 모든 문제를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풍조가 생겨납니다. "열등한 집단이 가진 모든 것은 그들이 겪는 부당함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수 있"는 거지요. 그런데 여성의 적은 정말 여성인가요? 우리나라 정치판을 보니, 맨날 싸움질만 하는 건 남자들끼리던데.

8. 여성 차별에는 보수, 진보가 없다?
이런 농담이 있습니다. 맑시스트들이 전선에서 총을 쏘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이렇게 말한답니다. 메리, 수잔, 빨리 밥해! 여성 차별에 있어서는 정말이지 보수와 진보가 없습니다. 대표적인 극우논객 이문열의 말입니다. "내가 비판한 페미니즘은 천박하기 짝이 없는 일부 페미니즘" '그 페미니즘'을 써서 화제가 되었던, 스스로를 B급 좌파라고 말하는 김규항의 말을 볼까요? "내가 비판한 것은 건전하지 못한 페미니즘"이랍니다. 대척점에 서 있는 이념적 좌표와 달리, 페미니즘 비판에는 이렇게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죠. 김규항은 스스로를 '노력하는 마초'라고 표현합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죠. 다시 권혁범의 말을 들어 보지요. "노력하는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는가. 여성을 얕잡아보는 평상시의 무례함이 드러난다...그 페미니즘에 대해 비판을 한다는 것은 나머지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동의한다는 뜻인가? 여기엔 저항적 사회운동의 정당성을 훼손하려 할 때마다 등장하는 논리, 즉 지식인 리더를 보통 사람과 분리시켜 그들의 주장의 근거를 빼앗으려는 의도가 들어있다" 여성운동의 어느 부분이 천박한지 실례를 들어서 비판합시다!

9. 모성의 신비
우리 사회는 유난히 모성을 강조합니다. 어머니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며 울먹이곤 하죠. 사실은 그게요, 몸의 기능을 근거로 사회적 역할을 고정시키는 참 위험하고 치사한 계략이랍니다. 다음 말을 들어봅시다. "아이는 물론 여자가 낳죠. 그러나 여자 혼자서 아이를 배는 건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보내는 열달이야 어머니 혼자서 감당하는 기간이지만,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기를 돌보는 기쁨과 노고는 엄마 아빠 두 사람이 함께 나누어야 할 몫입니다. 아기가 살았던 자궁이 어머니 뱃속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아이의 양육은 모두 어머니 몫이라는 얘기는 정말 터무니 없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어디 그런가요? 직장이 있으나 없으나 양육과 가사는 몽땅 여자의 몫, 그러니 조선희가 이런 말을 했겠지요. "이 시대 한국사회에서 성공한 전문직 여자들은 모두 입지전적 인물들이다. 프로의 여자는 백조처럼 물 위에 우아하게 떠 있지만, 물밑에서는 두발을 x나게 휘젓고 있는 것이다"
신문을 보니까 이규태 논설위원이 대처를 열심히 칭찬해 놓았습디다. 남편과 딸을 돌보는 가정사를 소홀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네요. "쇠약한 남편 돌보기를 이유로 포클랜드 승전 20주년 관련행사 초청을 거절하고, 딸네집 도배와 페인트칠을 마다하지 않는 그녀, 남편 식사를 손수 마련하는 그녀..." 이런 주장까지 합니다. "우리 조상들의 부덕을 고스란히 체질화한 인간 대처" 아니 슈퍼우먼이 언제부터 우리 조상들의 전통이었죠? 권혁범의 말입니다. "가정 일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남성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가? 도배하고 밥하고 애보는 일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당신들부터 일찍 귀가해야 하지 않는가? 여성들이 가정 일 때문에 급하게 귀가할 때 여자라서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외치면서..." 모성 강조하고, 어머니 하면서 울먹이는 사람을 조심합시다.

10. 최보은은 왜 박근혜를 지지한다고 했을까?
많은 분들이 이 사실을 비판했습니다. 여성단체 내에서도 반발이 많았구요. 하지만 그분들은 최보은이 왜 그런 주장을 했는가 하는 데는 눈을 감습니다. 조선희의 말입니다.
"여성운동도 결국 권력을 나누자는 운동이다. 우리도 권력 좀 가져 보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효과적인 여성운동은 여자가 권력자가 되는 것이다. 영국에서 11년이나 집권한 대처 총리가 보수당 출신 매파고, 여성같은 소외집단 문제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해도, 그가 총리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미 영국 국민들에게 여성 해방에 관한 교과서 10권씩을 읽는 효과를 가져왔음에 틀림없다" 조금은 이해가 되시나요?

11. 호주제는 왜 폐지되어야 하는가?
호주제가 없어지면 가정이 파괴된다는 분들, 그럼 호주제가 우리나라밖에 없는데 남들은 어떻게 가정을 유지하는지, 호주제가 있는데 왜 이혼율은 그렇게 급증하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호주제 폐지의 전도사 고은광순님의 말을 들어보지요. "...손자가 엄마와 할머니의 호주가 되고, 바람피워 낳은 아들이 법적 아내와 딸들을 젖히고 호주승계를 하는" 호주제, 좀 웃기지 않습니까? 호주제 폐지 주장이 과격한 게 아니라, 여성을 수단으로, 종속물로 여겨온 그간의 제도와 문화가 엄청나게 과격했던 거지요.

12. 페미니스트 남성은 있는가?
변정수에 의하면 페미니스트 남성은 '착한 자본가'만큼이나 무의미한 말이랍니다. "자본가는 그가 악독하든 착하든 자본가일 수밖에 없으며, 남성 역시 그가 페미니스트이건 무엇이건 남성일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난 페미니스트지만" 혹은 "페미니즘의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이런 말을 쓰는 사람은 특히 조심해야 해요. 그게 결국은 여성주의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기 위한 appetizer를 먹이는 거니깐요. 남성 페미니스트는 없으며, 여성해방은 여성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13. 역지사지를 합시다!
남자가 월경을 하고 여자는 하지 않게 된다면, 월경이 부러움이 대상이 되었을 거라는 게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말입니다. 정력을 가지고 비교를 하듯이, 남자들은 자기가 얼마나 오래 월경을 하며 생리량이 많은지 자랑하며 떠들어댈 것이며, 초경을 한 소년들은 이제야 진짜 남자가 되었다고 좋아할 거라나요. 지난호 교지를 보니 '사이버 공간에서 한국남성 역차별 논쟁'이라는 기사와 함께 말도 안되는 통계가 실려 있더군요. 이런 허접한 글이 대학 교지에 실렸다는 것 자체도 놀라운 일이지만, 역시 인터넷에서 돌고 있는, 이에 대한 반박글을 같이 싣는 형평성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xx대의 페미니즘, 이대로는 곤란합니다. 여러분의 아내와 딸도 다 여성이지 않습니까? 역지사지를 합시다!

참고문헌
-지승호, <비판적 지성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조성관, <딸은 죽었다>
-조선희, <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
-알렉스 슈바르쳐, <아주 작은 차이>
-이휘현 외, <남성의 광기를 잠재운 여성들>
-김규항.김어준, <쾌도난담>
-글로리아 스타이넘,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일상의 반란>
-글로리아 스타이넘,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변정수, <나는 남자의 몸에 갇힌 레즈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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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02-29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오래 전 글인데 퍼갑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남성들의 부정적인 시각은 정말... 휴~ 이 글을 새삼 퍼가서 조금이라도 더 이 글을 읽도록 만들어야겠어요. 마태우스님!

마립간 2004-03-02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듯' - 이말이 맞는 말인가요.

연우주 2004-03-03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막 추천했습니다. 아무래도 추천 눌러야 할 것 같아서. 뒷북이라 죄송.

조선인 2004-06-05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말씀 잘 읽었습니다.
다만 페미니스트 남성은 없다... 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착한 자본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페미니즘은 '권리회복' 운동이 아니라 성적 정체성과 권력관계에 대한 정치적 입장으로
더욱 광범위하게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너부리 2005-06-10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잘 읽었습니다. 실은 저는 여성이고, 또 직업상 마이너리티에 속합니다. 얼마전 편한자리라고 생각된 모임에서 현재의 문제의 얘기를 하다가 나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공격적이고 불만만 얘기한다'는 소리를 듣고 매우 상처를 받았습니다. 속이 너무 상해서 바보처럼 울고 말았는데, 정말 나 자신이 그런가 싶어 슬펐습니다. 그런데 오늘 '거친 목소리와 핏대선 얼굴, 이건 약자의 어쩔 수 없는 수단입니다'라는 글을 보니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보다 싶어 맘이 많이 위로가 됩니다.
정말 좋은 글이라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 퍼갑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애완견을 기르는 집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눈에 넣어도 예쁘지 않을 귀여운 강아지들을 보면 한번쯤 길러보고픈 마음이 생기지 않겠는가.  '소외' '삭막' '소통부재' 등의 단어가 화두가 되고있는 현대 사회에서, 개만큼 충직한 친구가 또 어디 있겠는가.

-젊은 느티나무님의 알라딘 서재에서 몰래 퍼옴-

개를 기를 때 성대수술을 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단다. 아파트 같은 곳에서 시끄럽게 짖어대는 개의 존재는 이웃과의 분쟁을 불러오는 이유가 되니까. 짖지 못하는 개, 이게 과연 개일까? 짖는 게 거의 유일한 의사 표현인 개로서는 소리를 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슬프기 짝이 없을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대수술은 너무 잔인한 행위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개를 기르지 않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그럼 고환/불임수술은 어떨까. 물론 난 고환수술에 반대한다. 고환에서 분비되는 성호르몬은 개의 건강을 증진시킨다는, 별로 과학적이지 못한 믿음을 갖고 있는 탓이다. 그 허황된 믿음을 증명하는 것은 바로 벤지, 개로서는 할아버지인 16세건만, 아직도 '정정하다'는 말을 듣고 산다. 이 나이에도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내 팔에 대고 자위행위를 하고, 분비물을 배출한다. 처음에야 그게 귀찮았지만, 내 팔을 희생시켜 벤지가 건강하다면, 하는 마음으로 과히 아름답지 못한 장면들을 참아냈다. 지금은 거기에 매우 익숙해져, 벤지가 그짓을 하는 동안 난 한가롭게 독서를 하거나 TV를 본다.

벤지가 남자인 데 반해, 암컷의 경우는 좀 더 심각한 모양이다. 요즘 읽는 <독신>이란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육개월에 한번씩 생리가 있고나면 한 삼주나 사주쯤이 발정기야. 그때 밖으로 내보내지만 않으면 되는 거야. 조금 신경질적이되기는 하지만 다른 변화는 없다구]

주인공은 난소제거수술을 하라는 친구의 말에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그런 일을...그런 자연스럽지 못하고 잔인한 일을.."

친구의 말이다.

"수술을 받는다면...애당초 자신에게 그런 욕망이 있었다는 걸 다 잊고.....어느 편이 더 잔인하다고 생각해? 실현할 수 없는 욕망이면 아예 잊는 편이 좋지 않아?"

하지만 주인공은 끝내 수술을 시키지 않는데, 나중에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을 때, 그 개는 주인공을 뿌리치고 길거리의 개와 합궁한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쯤되면 과연 수술을 안시키는 게 꼭 좋은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 아닐까?

딱 한번, 벤지에게 여자를 만나게 해주려는 시도를 했었다. 하지만 벤지의 주치의는 그걸 말렸다.

"한번 그 맛을 보면 집을 나가요. 더이상 애완용으로 기를 수가 없지요"

난 결국 그 생각을 포기했다. 그 때는 벤지를 위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사 따져보면 벤지가 내 곁을 떠나는 게 싫었던 것 같다.

<몽정기>를 보면 중학교 애들이 철봉에 매달려 자위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에게는 좀더 자라면 그간 참았던 정력을 쏟아부을 기회가 생기겠지만, 우리 벤지는 죽을 때까지 내 팔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다른 이쁜 개들을 봤을 때 그라고 하고픈 마음이 없었을까. 그런 걸 보면 우리 벤지도 아예 욕망을 제거하는 게 더 행복한 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이 문제에 물론 정답은 없다. 욕망을 아예 모르는 상태와 욕망이 충족되지 않아 허기진 상태 중 어느 것이 좋은지. 하지만 그건 성대수술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목소리를 못내더라도 따뜻한 집과 풍부한 음식이 있는 곳을 애완견둘은 더 선호할 지 모르는 일이다. 대답할 수만 있다면 벤지에게 묻고 싶다. 지금 행복하냐고. 대답 대신 벤지는 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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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25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남자는 어때야 한다는 식의 남녀차별적인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헤어지고 난 뒤 해꼬지를 하는 건 남자로서 할 짓은 아닌 것 같다. 그럼 여자는 그래도 되냐고 묻는 사람이 반드시 있겠지만 그거야 알아서 판단할 문제고, 개인적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여자가 사회적 약자라는 걸 감안할 때 어느 정도의 해꼬지는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심은하와 사귀던 남자(여기선 알파라 부르겠다)는 심씨가 자신과 동거했다는 사실을 언론에 공표했다. 물론 심씨는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소송을 냈고, 그 남자 또한 자신의 말이 맞다며 맞소송을 냈다. 심은하라는 문화권력을 상대로 소송을 낸 걸 보면 동거를 했던 것이 사실인 것 같긴 한데, 문제는 왜 그가 뒤늦게 그 사실을 밝혔는지 하는 거다.

돈을 요구했는데 심씨가 응하지 않아서 그랬다는 세간의 의혹을 알파는 철저히 부인했는데, 그럼 왜 이런 발표를 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알파는 이렇게 대답했다.
"진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진실'이라는 숭고한 단어가 그렇게 모욕당하는 걸 보면서 마음이 아파왔다. 그렇게 진실을 밝히길 좋아한다면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을 하던 분들의 의문사 규명을 돕는 게 어떨까? 이제 와서 그 사실을 알리는 게 도대체 무슨 이득이 있단 말일까?

내 친구에게 물어봤다. "네가 심은하랑 동거를 했었어 봐. 너같으면 어쩌겠니?"
잠시 생각하던 내 친구, 이렇게 대답한다. "십만원만 주면 입 다물지."
나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사랑하던 사람이 그렇게 유명해졌다면, 그 추억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일이다. 심은하가 그리 쫀쫀한 사람은 아닌지라 아까 그 친구처럼 10만원만 달라고 했을 때 딱 십만원만 주겠는가. 한 100만원까지도 줄지 모른다. 도대체 알파라는 놈은 얼마를 요구했기에 심은하가 거절을 했을까? 얼마나 거머리같은 근성이 있었기에 뜯기고 뜯기고 또 뜯기느니 같이 죽자고 생각한 걸까? 알파란 놈이 심은하를 사랑하긴 한 건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심은하는 다행히 뛰어난 연기력으로 그 위기를 극복한 채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별로 남았지만, 비슷한 경우를 당하고 좌초한 사람도 있다. 진재영이 바로 그러한데, 사건의 전개과정이 심은하랑 다를 바 없다. 그 일로 인해 우리가는 진재영을 TV에서 더이상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난데없이 등장해 신선한 마스크로 우리를 사로잡았던 그녀, 부산 사투리를 고치기 위해 입에 야쿠르트 병을 물고 살았다는 그녀의 노력이 아깝기 짝이 없다. <색즉시공>에 나오는 등 활동을 재개했지만, 예전만큼 인기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

위의 두 남자들을 보면서 내가 같은 남자라는 게 부끄러울 따름이다. 무엇보다도 연예인이 데뷔 전에 무슨 일을 했건 문제가 전혀 안되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고, 혼전 동거라는 게 마치 큰 죄인양 여겨지는 풍토도 제발 좀 개선되었으면 한다. 그런 일 때문에 노래 잘하는 가수 백지영이 몰락했고, 시원한 미모를 자랑하던 오현경은 이 나라를 떴다. 국내에 돌아와 연예활동을 해볼까 했지만, 제정신이 아닌 우리 사회는 그마저도 막았다. <순풍 산부인과>에서 날 즐겁게 해준 이태란도 하마터면 더이상 못볼 뻔으니 이게 무슨 난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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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01-24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를 너무 좋아하는 건 아닌지요? ^^;

마태우스 2004-01-24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들켜버렸다.....

연우주 2004-01-24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가 살아가는 방식의 잣대로, 그 잣대를 윤리라고 부르면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억압하는 짓은 해서는 안 될 짓이라고 생각해요. 여자 연예인이 연기나 노래만 잘 하면 되었지 다른 게 무슨 상관이랍니까? --;
 

 

 

 

한겨레에서 <허스토리>라는 여성지를 만든다고 했을 때, 솔직히 난 걱정이 되었다. 가뜩이나 포화상태인 여성지 시장에 뛰어들어 무슨 이득을 보겠다는 걸까? '차별화' 운운하지만, 신규업체치고 차별화를 들먹이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며, 그 말대로 차별화에 성공한 곳은 또 어디 있는가? 자칫하다가는 한겨레에 커다란 부담만 남기고 망해버린 '한겨레리빙' 꼴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가 했던 걱정이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창간호는 판매한 지 얼마 안되어 매진이 되어 버렸고, 2권 역시 상당한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단다. 허스토리의 성공비결에 대해 한겨레에서는 선정적인 기사보다는 커리어 우먼을 다루며 차별화에 성공한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내가 보기에 <허스토리>의 돌풍은 사은품 때문이다. 창간호에서는 값비싼 외제 화장품을 구입자에게 줬으며, 그 다음호에서도 외제 향수를 보너스로 주고 있단다. 잡지가 다 팔렸는데 더 찍지 않고 서둘러 '매진'을 선언한 이유가 상품으로 줄 화장품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잡지값보다 비싼 화장품을 부록으로 주니, 잡지가 팔리면 팔릴수록 더 손해를 보는 셈이다. 물론 부수에 따라 광고단가가 높아지니 전체적으로 봐서는 이익이겠지만, 이런 게 한겨레의 이념과 맞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고가경품과 1달 이상의 무가지를 금지한 신문고시가 부활되었을 때, 조중동은 한달내내 그 조치를 비난한 반면, 한겨레는 신문시장의 정상화를 위한 적절한 행위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 이후 조중동이 계속적으로 신문고시를 어길 때, 공정거래위원회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느냐고 목청을 높였던 것도 다름아닌 한겨레다. 그런 한겨레가 여성지 시장에 진입하자마자 고가의 경품을 동원해 바람몰이를 하고 있는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다른 여성지와 차별화를 한다는 것은 기사 내용의 질을 높이는 것이어야지, 고가의 화장품을 주는 것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창간호야 그럴 수 있다는 걸 이해한다 쳐도, 두번째 호까지 외제 향수를 뿌려댄다면, 평소 한겨레가 주장했던 '신문시장의 정상화'는 시장점유율이 낮은 매체의 딴지밖에 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난 신문시장의 질서를 바로잡자는 한겨레의 주장에 적극 공감하며, 신문들이 경품을 돌리는 행위가 신문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독자들을 버려놓는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신문과 달리 여성지에서는 사은품을 주는 것이 관행적인 일이라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허스토리>가 한겨레의 이름을 걸고 나오는만큼, 최소한의 일관성은 있어야지 않을까? 잡지값을 능가하는 외제화장품을 '관행'이라고 인정해 달라고 한다면, 한겨레가 자신들이 그렇게 비난하는 조중동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다. 한달 후면 허스토리 3호가 나온다. 그때는 화장품 따위가 아닌, 기사의 질로만 승부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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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1-24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포포님! 오랜만이네요! 하시는 일은 잘 되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