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만났던 친구에게서 들은 얘기다. 그 친구의 친구가 사고로 죽었다고 한다. 그 친구의 말이다. "걔가 원래 한달에 100만원짜리 생명보험에 들고 있었거든? 그런데 사업이 어려워져 두달 전에 그걸 해약했거든? 그것만 아니었으면 십몇억은 받았을텐데..."

그말을 들으니 정말 아깝기 짝이 없다. 십몇억까지는 아니겠지만, 그가 받을 보험금은 아내와 두 자식을 위해 유용하게 쓰일 텐데. 그는 어떻게 죽었을까? 술에 취해 횡단보도를 건너다 과속을 하는 택시에게 받혔다고 한다.

"걔가 마누라한테 전화를 해서 이랬데.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일단 길을 건널께....아악!'" 남편의 사고순간을 생생히 들은 그의 부인은 거의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다. 그럴 것이다. 비명소리가 한동안은 귀에 남아있어, 휴대폰도 못받지 않을까?

돌이켜보면 난 참으로 운이 좋은 편이다.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집에 간 게 셀 수도 없으니까. 게다가 술만 취하면 무단횡단을 하는 나쁜 버릇이 있지 않은가? 홍대앞의 8차선 도로를 무단으로 건넜던 오래 전의 기억부터, 16차선쯤은 되어 보이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세워진 광화문의 도로를 술을 먹고 건넌 최근의 기억까지, 나의 역사는 무단횡단의 역사였다. 방향감각을 상실해 연대 앞의 넓은 도로를 세번이나 건넜던 경험은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난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기에, 난 좀 오래 살고 싶다. 평균 수명까지는 아니더라도, 환갑 정도까지는 살아야지 않겠는가. 그런데 지금처럼 술을 마신다면, 결코 제명에 못살게다. 올해부터 술을 좀 줄이긴 했지만, 문제는 양이다. 지금처럼 정신을 잃을 때까지 마시다 비명횡사한다면 얼마나 허무할까. 친구의 친구의 사고를 계기로, 술을 줄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얼굴은 모르지만, 그 친구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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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에 입원하는 환자라면, 같은 말을 여러번 반복할 준비가 있어야 한다. 어떻게 병원에 왔으며 그전에는 어땠느냐는 질문을 인턴, 레지던트, 간호사가 각각 따로따로 물어보니까. 그게 다가 아니다. 병원실습을 도는 학생도 거기 가세한다. 같은 말을 4번씩 하려니 짜증이 나는 것은 당연지사, 게다가 요즘은 학생인지 아닌지 귀신같이 알아보니, 묻고 싶은 것도 못묻고 문전박대를 당할 수도 있는 법이다.

내시경을 할 때도 그렇다. 아무리 안아파졌다 해도 길다란 호스가 목에 들어오는 것은 무척이나 괴로운 경험이다. 빨리 빼주면 좋겠지만 교수는 마냥 느긋하다. "저기 pylorus 부근에 궤양이 보이지?" 교수의 말에 레지던트나 학생은 틈새를 비집고 궤양을 관찰하려 아우성이다. 이런 것에 대해 교수님께 여쭤봤더니, 이렇게 답하신다. "대학병원 오려면 그정도는 각오해야지!" 의사는 교육을 통해서 길러지는지라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하는 법이지만, 그 누군가는 대체 누가 되는가? 이런 생각을 오랫동안 해오다, 어느 책에서 그에 관한 내용을 보게 되었다. 가완디라는 미국 외과의사가 지은 <나는 고백한다,현대의학을>이라는 책인데, 9쇄까지 찍은 걸 보니 꽤 많이 팔렸고, KBS 선정도서이기도 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오래전부터 의학계는 환자들에게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와 신출내기 의사들에게 경험을 쌓게 해야 한다는 두가지 상반되는 명제 사이에서 고민해 왔다. 레지던트 제도는 감독과 누진적 책임부과를 통해 잠재적 위험을 완화시키고자 하는 시도다]

그는 그게 신출내기 의사 뿐 아니라 환자들에게도 이익을 가져다 준다고 한다. [연구결과를 보면 수련의 제도가 있는 병원들이 없는 병원들보다 결과가 좋았다. 레지던트들은 미숙할지 몰라도 환자를 체크하고 질문하고, 그리고 스태프 선생들로 하여금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이런 딜레마에 빠진다. [하지만 초보의사가 ...처음 몇번의 가슴 떨리는 순간들을 피해갈 방법은 아직 없다. 아무리 많은 안전장치를 해놓는다 해도, 그러한 케이스들은 노련한 의사보다 초보의 경우에 잘 안될 때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특진비를 부담할 능력이 된다면 레지던트보다는 교수에게서 수술을 받고자 한다. 가완디의 말이다. [스태프 선생 가족이 수술을 받아야 할 경우 병원사람들은 수련의들을 얼마나 참여시킬까 고심한다....중심정맥관을 삽입해야 될 경우 초짜한테는 맡기지 않는다....레지던트가 혼자 집도한다면그 대상은 대체로 환자들 중에서 가장 힘없는 이들일 경우-무보험환자, 주정뱅이..-가 많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이는...참 난감한 진상이다....최상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환자의 권리는 의사의 수련이라는 목적보다 분명 상위에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실습대상이 되는 것은 싫어하면서 숙련된 의사를 원한다. 하지만 만일 누군가를 훈련시키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모두의 몫이다....]
어쩌겠는가. 처음부터 숙련된 의사는 없는 것을. 숙련된 의사를 배출하기 위해 누군가는 희생할 수밖에 없고, 다른 모든 분야에서처럼 대개의 희생자는 힘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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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2-02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를 낳을 때, 분만의 진행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내진>이라는 것을 하지요. 매우 싫은 것으로...자세한 언급은 피하겠습니다. 여하간 제가 가입한 임신출산 카페에 이런 엽기적인 글이 올라왔습니다.
모 대학병원 분만대기실에 누워 있는데, 개나 소나(?) 다 와서 한 번씩 손 넣어보고 가는 바람에, 정말 아프지만 않으면 벌떡 일어나서 나와버리고 싶었다고...
이건 제 직장동료의 에피소드. 자궁 경부에 물혹이 나 있다고 해서 대학병원에 갔답니다. 수줍음 많은 친구라 여자 교수님에게 비싼 돈 주고 특진을 신청했다지요. 진찰 준비를 하고 누워 있는데....이게 왠일입니까, 여자 교수님 뒤로 수 많은 남자 인턴, 레지던트들이 우르르 따라 들어오더라는...허어어...
수련과 희생이라, 정말 난감한 딜레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마태우스 2004-02-02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저 내진이 뭔줄 알아요. 학생 때 절더러 내진 해보라고 해서 버티면서 안했던 기억이... 저도 싫었지만, 산모가 얼마나 싫을까 하는 생각에.....직장에 손넣는 검사도 하기 싫어 안했는데, 그건 제가 하기 싫어서....

sooninara 2004-02-07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병원은 아니고 산부인과 전문병원에서 아이를 낳는데..하필이면 초보 간호사가 실습중인지 베테랑간호사부터 몇명이서 내진을 해대는데..시간 맞춰서 한번씩 하는데도 정말 싫더군요..요즘 같아서는 집에서 예전식으로 아이를 낳고싶답니다. 두아이를 자연분만으로 순풍순풍 낳았는데도 병원에서 환자취급 받으면서..비인간적으로 아이 낳은게 억울해요.
저 은영이 낳고 그후에 그병원에서도 가족분만이 도입되어서..저는 가족분만도 못했어요
아줌마들은 아이 낳는 이야기면 밤을 새죠^^

waho 2004-02-12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지던트들이 배워야 할테니 어쩔 수 없지만 배움의 대상이 내가 되는 게 넘 싫어서 전 왠만하면 개인 병원만 갑니다. 전 예전에 수술했는데 레지던트가 실수하는 바람에 아직도 고생하고 있거든요. 의료사고래요.한 쪽 어깨가 안 좋아서 수영 못해요...이후로!
레지던트 넘 무서워요.ㅠㅠ 한의사들은 더 무섭구요. 수술 안해서 그렇지 스테로이드 마구 넣고 겁 없이 이거 저거 권한다는 편견 땜에...(울 사촌 오빠 한의산데 절대 자기 말곤 다른데서 한약 먹지 말라더군요. 특히 다이어트 클리닉( ^--^ 몸버린다구...)
의사분 읽으심 기분 나쁘겠지만...저두 의사 가족이니 봐주세요ㅋㅋ
 

 

 

 

 

 

외국 사람이 쓴 책을 번역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최고의 번역가인 이윤기님의 말에 따르자면 "번역이란 텍스트의 문장과 번역문장의 무게를 천칭에다 얹고 달아보는 예술"이란다. 무게다는 게 뭐 어렵냐고 할지 몰라도, 하여간 어렵다. 황보석 씨는 폴 오스터의 작품을 주로 번역했는데, 난 그의 번역에 별 불만이 없고, 최근작인 <환상의 책> 역시 무난한 번역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몇가지 대목에서는 의문점이 있다.

1.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연이어진 재빠르고 찌르는 듯한 동작으로 옆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66쪽)]

밑줄친 부분들이 대충 비슷한 단어가 나열되어 있어 눈에 거슬린다. 원문에는 'And then', 이런 식으로 되어 있을텐데 그걸 곧이곧대로 "그리고 다음에는"이라고 번역하는 게 옳은 것인가? 예컨대, I'm fine thanks and you?라는 문장을 "난 괜찮은데 그리고 너는?"이라고 하지는 않지 않는가?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것은 의역으로, 위의 문장은 '그리고'와 '다음에는'을 생략한 채  "연이어 재빠르게 찌르는 듯한..."으로 해도 별 무리가 없을 듯싶다. 문제는 번역자가 그렇게 자의성을 갖기 시작하면, 작가의 의도와 무관한 번역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일게다. 그걸 어떻게 조화를 이룬담?

2. [정확히 알렉스가 쓴 그 말은 그의 전형적인 말투였다(79쪽)]

이것도 읽기가 조금 거슬렸다. 원문에는 'Correctly' 가 앞에 있다해도, 놓이는 위치가 뒤쪽이면 더 좋지 않을까? 이렇게 말이다. "알렉스가 쓴 그 말은 정확히 그의 전형적인 말투였다" 아니, '정확히'를 빼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

3. 112쪽을  보면 '유대 인'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즉, '유대'와 '인'을 띄어써넣고 있는데, 네이버의 백과사전을 아무리 봐도 난 '유대 인'으로 표기한 건 찾을 수가 없었다.

4. [...우리가 일을 하지 않을 때는 그 짓을 할 거요. 우리는 집안 어느 곳에서나 그 짓을 할 거고....(376쪽)] 이건 주인공인 짐머가 엘머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하는 말이다. 아내를 잃고 자포자기의 인생을 살다가 새로운 희망에 부풀어서 하는 말인데, 좋은 사람끼리 만나서 하는 사랑의 행위가 왜 '그짓'으로 묘사되야 하는지 이해할 길이 없다. 차라리 '사랑을 할 거요'로 하면 뜻도 다 통하고 더 숭고해 보이지 않는가?

이상 '딴지걸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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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주인을 잃은 치아와가 우리집에 왔다. 새끼를 낳은 적이 있던 암컷, 나이는 세살. 그 녀석을 데려오느라 그전에 키우던 강아지를 다른 곳에 보내야 했기에, 나로서는 치아와가 좋을 리가 없었다. "오기만 해봐라. 당장...!" 하지만 치아와를 본 순간 그런 마음은 모두 사라졌다. 큰 눈에 그보다 더 큰 귀를 가진 귀여운 녀석이 현관 앞에서 떨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쉬츠나 마르치스, 테리어같이 이쁜 개들이 인기지만, 당시는 머리가 좋은 치아와도 꽤 인기있는 개였다.

그 다음날, 우리 가족은 모두 온천에 놀러갔고,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던 나는 빈집에 덩그라니 남았다.  침대에 엎드려 공부를 하고 있는데, 치아와가 긴 발톱을 딱딱거리며 내게로 왔다. 내가 친하게 지내려면 멀찌감치 도망가는 수줍음을 보였지만, 기본적으로 애완견들은 외로움에 그다지 익숙치 않아, 얼마 후 치아와는 내 침대에 나란히 엎드려 있었다. 다음날 우리 가족이 왔을 때, 치아와는 이미 나에게 마음을 주기로 작정한 뒤였다.

치아와와 난 잘 어울리는 한쌍이었다. 내가 엎드려서 공부를 하면 치아와는 내 등에 또아리를 틀고 잠을 자곤 했다. 모르는 사람이 찾아오면 갈색의 등 한가운데 난 검은 털을 치켜세우며 맹렬히 짖었고, 누군가 날 때리거나 하면 벤지가 그러는 것처럼 그 사람을 향해 열심히 짖었다. 난 치아와와 정말 친하게 지냈고, 누나는 치아와를 '올캐'라고 부르며 놀리기도 했다.

그 행복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우리집에 하얀 진돗개 한마리가 생겼다. 보배라는 이름의 얌전하게 생긴 숫놈이었는데,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성격이 흉포해, 우리 앞집에서 기르는 애완견을 물어죽이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온 나에게 어머님은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주셨다. "치아와랑 보배가....했다"

그 큰놈이 저 조그만 치아와랑? 난 지하실로 보배를 끌고 가 두들겨 팼는데, 내 생애에서 개를 때린 건 그게 유일하다. 아버님도 화가 나셨는지 보배를 내쫓으셨는데, 난 그런 걸 말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사 돌이켜보면 그건 너무도 잔인한 행위였다. 집안에 여자가 있고, 자기는 몇년을 굶었다. 이런 경우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명약관화하지 않는가? 보배는 몇번이나 우리집 대문 앞에 있었지만, 그때마다 아버님은 막대기를 휘둘러 보배를 쫓아냈다 (그 광경을 본 건 아니지만 그게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왜 그렇게 보배에게 가혹했던 걸까? 그전에 있던 조리라는 개는 우리 할머니를 물고, 여동생 친구를 물어 부모님으로 하여금 그집에 가서 머리를 조아리게 만들었지만, 쫓겨나지는 않았는데. 누나가 그랬던 것처럼, 아버님도 치아와를 며느리로 생각했던 걸까? 아무리 그가 잘못을 했더라도, 그 사태를 수수방관한 나도 참 잔인한 놈이었다. 내가 아버님께 사정을 했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겠지만.

몇달 후, 치아와는 새끼를 두마리 낳았다. 그 조그만 녀석이 어떻게 그런 큰개 두마리를 품고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물론 그 녀석들은 치아와를 전혀 닮지 않은 완벽한 잡종이었어도, 어린 동물이 다 그렇듯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치아와는 그 녀석들과 같이 머무르며 강력한 모성애를 과시했지만, 그 둘은 결국 다른 집으로 보내져야 했다. 또 얼마가 지나서, 치아와는 아프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병원에 다녔지만 별로 나아지는 건 없었다. 그다지 신뢰하지 못할 가축병원 의사는 치아와가 '자궁암'이라고 했다. 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암이라니? 아픈 와중에도 치아와는 날 보면 몸을 일으켰고, 꼬리를 쳤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학교에서 왔더니 치아와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죽었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남을 줬다"고 했다가 횡설수설하셨는데, 가장 신빙성 있는 주장은 누나가 말한 건데, 어딘가에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난 치아와와 이별했다.  집안은 허전하기만 했고, 그럴 때마다 난 그녀 생각을 했다.

지금 내 곁에는 치아와 대신 벤지가 웅크리고 자고 있다. 난 치아와가 버려졌다는 누나의 주장을 믿는다. 힘이 없던 그땐 내가 치아와를 지켜주지 못했지만,  "집 나간다" 혹은 "밥 안먹는다"는 주장이 어머님께 그대로 먹히는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16세, 기력이 쇠했다는 이유로, 그보다는 내 앞길을 막는다는 이유로, 어머님은 벤지를 안락사 시키자고 하지만, 난 절대 그럴 생각이 없다. 모르겠다. 벤지가 많이 아프고, 그로 인해 괴로워한다면 생각해 보겠지만, 우렁차게 짖는 모습은 아직도 변함이 없는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그를 버려야 하겠는가? 이별이 예정된 생명체와 인연을 맺는 것은 참으로 마음아픈 일이기에 앞으로는 개를 기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벤지는 내가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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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들어 배우기'의 속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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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으로부터 온갖 구박을 받아가면서도 두달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컴퓨터 학원을 다니셨던 어머님의 노력은 수포로 결국 돌아갔다. 다른 일로 너무 바쁘신 어머니가 학원서 배운 바를 한번도 복습을 하지 않았던 것도 이유가 되지만, 학원서 가르치는 종목이 어머니에게는 별반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던 게 더 큰 원인이었다. 엑셀을 하고, 그림파일을 올리고, 그림그리기를 하고, 챠트를 만들고.... 이런 것들이 전혀 필요가 없는 건 아니겠지만, 내 생각에 어머니께서 그 모든 걸 아실 필요는 없었다. 컴맹인 내가 아무 불편없이 인터넷에 글을 쓰고 읽는 것처럼, 자신에게 꼭 필요한 한가지의 기술이면 충분한 게 아닐까? 학원을 두달 다닐 게 아니라 그 시간에 인터넷에 실린 여러 자료들을 읽고, 이메일을 주고받고, maxmp3로 음악을 듣고, 프리챌에서 만들어진 엄마의 홈피에다 글을 쓰는 게 훨씬 더 남는 장사일 수 있다는 거다.

아는 것도 없고, 그나마도 잘 가르쳐 주지 않던 내게 어머님은 이러셨다. "너 내가 컴퓨터 잘하게 되면 너랑 안놀아" 학원을 다닐 때만 해도 그렇게 꿈에 부풀었던 어머니는 회의를 느끼셨는지 두달의 마지막 일주일을 나가지 않으셨다. 늘 하던대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어머니는 이제 컴퓨터를 잊은 듯했다. 그러던 어느날, 다급하게 날 부른 어머니는 한글의 표만들기를 통해 만들어진 전화번호부를 보여주셨다.

"모임 같이하는 엄마 친구가 이걸 자기가 만들었다고 나누어 줬어. 어찌나 충격을 받았는지..."

학원에서 표만드는 걸 배우셨지만, 아무것도 만들 줄 모르는 어머님으로서는 어머님 또래분이 주소록을 만든 게 쇼크일 법도 했다.

그때부터 내 삶은 조금 귀찮아졌다. 뭔가를 좀 하려면 어머님은 "x아!" 하고 특유의 우렁찬 목소리로 날 불러댔으니까.

"칸을 하나 없애려고 하는데, 안된다"

"칸을 키워야 하는데 아무리 해도 안돼"

"칸에다 슬러시를 어떻게 만드냐?"

뭐, 뒤늦게 뭔가를 해보려는 건 좋은 일이고, 어머님께 많은 것을 받은 나로서는 열심히 가르쳐 드리는 게 그 은혜를 갚는 한가지 길이었다. 문제는 어머님의 수업 태도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것.

어머님은 아는 분이 많았다. 평소에도 무슨 약속이 그리 많은지 달력이 스케줄로 새까맣게 변할 정도다. 아버님의 장례식 때, 나름대로 친구가 많다고 자부하던 나는 어머님을 뵈러 온 인파를 보고는 질려 버렸다. '이상하다... 유머감각도 별로 없고, 목소리도 아주 큰데....그렇다고 술을 드시는 것도 아니고...' 내가 술을 같이 마심으로써 친구들을 관리한다면, 어머님의 관리수단은 전화였다. 단둘이 사는 우리집은 전화가 정말 많이 왔다. 내 친구들이야 휴대폰으로 하니, 집으로 오는 전화는 100% 어머님 전화였다. 하루에 30-40통 정도는 오는 것 같았고, 다들 끈질겨서 한번 안받아도 세번, 네번 계속해서 전화를 했다 (발신자 번호가 뜨니까 알 수 있다). 어머님도 휴대폰이 있지만, 다들 장시간 통화를 하고자 하는지라 일반전화로 전화를 했다. 혼자 있을 때 그 전화벨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정신병에 걸릴 것 같았다. 하여간 어머님은 댁에 계실 때 언제나 전화통을 붙들고 사셨다. 한시간, 두시간, 가부장적인 아버님 때문에 눈치를 보며 전화를 해야 했던 한을 푸는 것이리라, 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내가 컴퓨터를 가르쳐 드리는 와중에도 전화벨은 수시로 울렸다.

"그러니까 컨트롤 버튼을 누르고 화살표로 크기를 조정하는...따르릉! 따르릉!"

20분, 혹은 30분 후 어머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린다.

"x아! 좀 가르쳐달라니까 또 어딜 갔어?"

하지만 오래지 않아 전화가 울려댄다. 장시간 통화중이었으니 얼마나 안타까웠겠는가.

성당에서 결성된 무슨 모임의 주소록을 어머님이 만드시겠다고 자청한 엊그제, 난 밤 12시까지 대충 열번도 넘게 컴퓨터방과 내방을 왔다갔다해야 했고, 어머님은 이쁜 주소록을 만들 수 있었다.

가끔은 어머님이 학자의 길을 걸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60이 훌쩍 넘은 연배에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낼 줄 알고, 스팸밖에 오지 않을지라도 이따금씩 메일을 확인하시는 멋쟁이, 배우려는 욕망이 참으로 강한 분이시니까. 내가 어머님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면 좋은 학자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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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2-01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 고스톱으로 컴과 친해진 우리 엄마. 가끔 돈 좀 잃었다고 욕설을 날리는 사람에게 한 마디 해 주려다가 피박광박을 쓰신답니다. 자판 들여다보며 띄엄띄엄 치다 보면 패 볼 시간이 없어서...^^
맞고 쳐서 돈 따고 나갈 때 "미안해요, 바쁜일이 있어서~ 다음에 다시 좋은 시간 가져요~"하고 나가는 기특한(?) 것들이 있으면 화면을 바라보며 "나도 안녕~" 하고 인사한다는 귀여운 엄마입니다.^^

sooninara 2004-02-07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표만들기가 약해서...님의 어머님과 같은 세대가 되버린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