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에서 <허스토리>라는 여성지를 만든다고 했을 때, 솔직히 난 걱정이 되었다. 가뜩이나 포화상태인 여성지 시장에 뛰어들어 무슨 이득을 보겠다는 걸까? '차별화' 운운하지만, 신규업체치고 차별화를 들먹이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며, 그 말대로 차별화에 성공한 곳은 또 어디 있는가? 자칫하다가는 한겨레에 커다란 부담만 남기고 망해버린 '한겨레리빙' 꼴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가 했던 걱정이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창간호는 판매한 지 얼마 안되어 매진이 되어 버렸고, 2권 역시 상당한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단다. 허스토리의 성공비결에 대해 한겨레에서는 선정적인 기사보다는 커리어 우먼을 다루며 차별화에 성공한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내가 보기에 <허스토리>의 돌풍은 사은품 때문이다. 창간호에서는 값비싼 외제 화장품을 구입자에게 줬으며, 그 다음호에서도 외제 향수를 보너스로 주고 있단다. 잡지가 다 팔렸는데 더 찍지 않고 서둘러 '매진'을 선언한 이유가 상품으로 줄 화장품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잡지값보다 비싼 화장품을 부록으로 주니, 잡지가 팔리면 팔릴수록 더 손해를 보는 셈이다. 물론 부수에 따라 광고단가가 높아지니 전체적으로 봐서는 이익이겠지만, 이런 게 한겨레의 이념과 맞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고가경품과 1달 이상의 무가지를 금지한 신문고시가 부활되었을 때, 조중동은 한달내내 그 조치를 비난한 반면, 한겨레는 신문시장의 정상화를 위한 적절한 행위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 이후 조중동이 계속적으로 신문고시를 어길 때, 공정거래위원회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느냐고 목청을 높였던 것도 다름아닌 한겨레다. 그런 한겨레가 여성지 시장에 진입하자마자 고가의 경품을 동원해 바람몰이를 하고 있는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다른 여성지와 차별화를 한다는 것은 기사 내용의 질을 높이는 것이어야지, 고가의 화장품을 주는 것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창간호야 그럴 수 있다는 걸 이해한다 쳐도, 두번째 호까지 외제 향수를 뿌려댄다면, 평소 한겨레가 주장했던 '신문시장의 정상화'는 시장점유율이 낮은 매체의 딴지밖에 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난 신문시장의 질서를 바로잡자는 한겨레의 주장에 적극 공감하며, 신문들이 경품을 돌리는 행위가 신문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독자들을 버려놓는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신문과 달리 여성지에서는 사은품을 주는 것이 관행적인 일이라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허스토리>가 한겨레의 이름을 걸고 나오는만큼, 최소한의 일관성은 있어야지 않을까? 잡지값을 능가하는 외제화장품을 '관행'이라고 인정해 달라고 한다면, 한겨레가 자신들이 그렇게 비난하는 조중동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다. 한달 후면 허스토리 3호가 나온다. 그때는 화장품 따위가 아닌, 기사의 질로만 승부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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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1-24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포포님! 오랜만이네요! 하시는 일은 잘 되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