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 날 유난히 이뻐하는 선생님이 계셨다. 물론 그분이 나만 이뻐한 건 아니었는데, 총애를 받는 학생들의 성분을 따져보면 실력자의 아들이거나 공부를 잘하는 애, 그리고 이유를 잘 모르겠는 기타로 분류해볼 수 있다. 당시 집권당인 민정당의 대표였던 권익현의 아들이 첫번째 경우라면, 1학기 성적이 나온 뒤 갑자기 관심을 받게 된 나는 후자에 속했다. 그 선생님은 이뻐하는 애들을 '아들'이라 불렀고, 이름 또한 그 선생님의 성씨인 김씨로 바꿔 불렀고 (난 그래서 김민이 되었다). 여름에는 우리들을 바닷가에 데려가기까지 했다. 평생을 홀로 사신 선생님인지라 그런 행동을 하시는 게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었지만, 아이들의 시각은 그다지 곱지 않았다. 나? 조금 부담스러웠긴 해도, 혜택을 받는 입장이었으니 나쁠 거야 없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선생님은 집에 갈 때마다 자신에게 들러 인사를 하게 했다 (교도주임이라 방이 따로 있었다). 그날도 '아들들'끼리 모여 인사를 하러 갔는데, 키가 훤칠한 학생이 들어온다. "오, 우리 김재용 왔나?" 선생은 밝게 웃으며 그 학생의 인사를 받았다. 그가 돌아나오는 순간, 난 그의 명찰에 씌어진 이름을 봤다. 전-재-용. 전두환 대통령의 둘째 아들이 우리 학교에 다닌다는 얘기를 듣긴 했어도 직접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긴 다리에 훤칠한 키, 여드름이 나있긴 했어도 멋져 보이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난 당황했고, 대통령의 아들을 직접 본 감격에 동네방네 자랑을 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시큰둥했지만.

그해 학력고사-지금의 수능-는 무지하게 쉽게 나왔고, 주위 사람들은 그걸 공부를 썩 잘하지 못하는 둘째 때문이라고 주장을 했었다. 어쨌거나 그는 연대 정외과에 당당히 합격을 했고, 그 이후의 소식은 잘 모른다.

오랜만에 그의 얼굴을 봤다. 미국서 귀국한 뒤 비자금 수사를 받기 위해 검찰에 출두한 장면이었다. 어릴 적 그렇게 멋져 보이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TV 화면에는 아버지처럼 대머리에다 세파에 찌든 중년 아저씨의 얼굴이 비춰지고 있다. 잘은 모르지만, 그는 아버지의 비자금을 관리했단다.

따지고 보면 그건 그만의 잘못은 아니다. 그는 태어날 때 줄을 잘못 선거다. 내가 전두환의 아들로 태어났어봐라. 사는 게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비자금을 맡아 달라는 아버지의 요구를 내가 거절할 수 있었을까? 왜 광주에서 사람을 죽였냐고 아버지에게 따질 수 있었을까? 박지만이 마약에 빠진 삶을 사는 거, 난 이해한다. 내가 아무리 의지가 강하다해도, 나 역시 전재용처럼 검찰청의 포토라인에 서서 카메라 플래시를 받고 있었겠지.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전재용이 내 동정을 받을 입장은 아니다. 그의 형인 전재국은 시공사라는 굴지의 출판사를 운영하며 신나게 돈을 벌고있고, 전재용도 혹시 구속이 될지라도 곧바로 사면된 후 어딘가에 숨겨둔 비자금으로 재미있는 삶을 살 테니까. 내가 자신을 동정했다는 걸 알면 재용씨는 어이가 없어서 턱이 빠질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니 그가 태어날 때 줄을 잘 섰다는 생각이 든다. 모 신문에서는 그와 내연의 관계라는 P양이 누구냐고 난리다. 아, 그 이쁜 P양을.... 그러니까 그의 모습이 일그러져 보이는 건, TV 화면에서 뿐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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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느티나무 2004-02-06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시공사가 전두환 전대통령 아들이 운영하는 거였군요~. 그랬구나~~

sooninara 2004-02-07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공사가 그래서 더 유명하죠...P양은 누군지 참 궁금했는데..박ㅇㅇ양이란 이야길 듣고 놀랐죠..

갈대 2004-02-07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양을 밝혀 달라!!^^

waho 2004-02-11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양은 박상아...!
 

 

 

 

 

 

전에도 말했지만 난 좋은 초등학교를 나왔고, 인터넷 동창회가 생긴 후로는 다시금 모여서 재미있게 놀고 있다. 번개 같은 게 수시로 만들어지고, 정모도 제법 자주 있다. 옛날에 헤어진 여자애들이 아직도 20대로 착각할만큼 미모가 뛰어나니, 그럴 법도 하다.

엊그제, 한 친구-알파라고 하자-가 번개 공고를 알리는 글을 올렸다.
[간만에 번개를 갖고자 합니다. 휘성(가명)과 저, 둘이서 번개를 제안합니다. 시간이 되는 친구들은 리플 남겨 주세요]

하지만... 83회에 달하는 조회수에도 불구하고 리플은 단 한개도 달리지 않았다. 다들 바빠서? 그렇지만은 않다. 바빠서 못갈 경우 "난 그날 안되는데" 정도의 리플은 언제나 올라왔는데?

물론 이런 건 있다. 번개를 할 때는 무작정 공고를 내기보다, 핵심멤버들의 참석여부를 미리 확인받는 게 그 세계에서의 암묵적인 절차였다. 나쁘게 말하면 이런 거다. "우리 모일 테니까, 니들도 오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리플이 한개도 안달린 것은 처음이었다. 알파가 번개공고를 낸 것도 처음이었지만.

머쓱해진 휘성이 그 밑에 답글을 달았다.
"하도 모임에 못나갔더니 이제는 잊혀진 이름이 되었나보다. 오랫만에 얼굴좀 보여줄 친구가 하나 없다니....불경기라 모두 바빠서 그런건가? 어쨌든... 기다려 볼란다..."
그러자 리플이 몇개 달렸다.
-휘성, 나두 너 보구시퍼... 시간이 안되서 그랴..
-휘성, 오랫만인데...요즘은 꼼짝 못한단다...좀 지나서 보자
-휘성, 나두 한 번 보고 픈데.. 좀 여유 생기면 보자....^^ 
-휘성아, 연락좀 하고살자... 

이게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사람들은 알파가 싫은거지, 휘성이 싫은 게 아니었던 거다. 아는 친구와 통화 도중 휘성에게 냉담한 이유를 아느냐고 물었다.
"글쎄 왜 그러지? 영삼이도 걔 아주 싫어하고, 대중이도 그러던데..."
이유를 말해줬다. 알파 걔, 다단계 일을 한다고. 친구는 질겁을 했다. "나 다단계 때문에 엄청 뜯겼거든"이라면서.

사실 알파가 나에게 다단계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은 없다. 나 역시 다른 친구에게서 들었을 뿐이다.
"알파가 둘이 술을 마시자고 하더니, 갑자기 신청서를 꺼내는거야. 암웨이 가입하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우리 오늘은 그냥 기분좋게 술 마시자"
오늘은 기분좋게 술 마시자... 이건 참 모욕적인 얘기다. 하지만 알파는 그걸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다른 동창들에게도 암웨이 가입을 권했다. 도대체 어떤 스파르타식 교육을 하길래 그러는 걸까. 암웨이, 다단계, 정말이지 분위기를 깨는 데 가장 좋은 말이 아닌가?

어제 만난 초등 동창들도 알파에 관해서 다들 알고 있었다. 가입 권유를 받은 친구도 둘이나 됐고... 알게 모르게, 알파는 초등동창 사이에서 왕따가 되어 버린거다.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알파는 제법 다단계가 잘되어 웬만한 사람 월급 정도의 수익을 매달 올리고 있단다. 인생에서 돈이 중요한 거야 부인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돈을 위해 그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그는 잃어가고 있었다. 난 알파가 왜 우리 동창들 번개에 그토록 열성인지 이해할 것 같았다. 알파의 주위에 과연 누가 남아 있겠는가?

왕따는 무조건 나쁘다. 알파를 따돌리며 리플 하나 달지 않은 나도 마음이 편치는 않다. 하지만 아무 죄도 없는데 생기는 어릴적 왕따와 달리, 나이가 들어서 벌어지는 왕따는 자기 책임이 더 크다. 알파는 알까. 남들이 자기를 왜 따돌리는지를. 하지만 "다들 바쁜가봐. 그 집 맥주 참 맛있는데..."라고 단 리플을 보면서, 난 알파에게 아무 생각도 없다는 것을,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게 되리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다단계의 세뇌교육은 이렇듯 사람의 영혼을 마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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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느티나무 2004-02-06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주변에 다단계에 끌려갔던(?!) 사람 말을 들으며..... 음...... 진짜 세뇌교육이란 놀랍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그 알파(^^)분도 불쌍하네요..

비로그인 2004-02-06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단계 때문에 친구 잃는 사람이 많던데...이렇게 또 얘기를 듣고보니 씁쓸하네요...에구...

sooninara 2004-02-07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ㅇ이와 하이X빙 등에서 아는 분들이 하루가 멀다고 찾아오는데..서로 괴롭더군요.
돈때문에 왕따가된다는것은..참 슬픈일입니다
 

 

 

 

 

 

몇십년 전, 어머님은 밭에서 노는 꿈을 꾸셨다. 아는 할머니는 꿈 얘기를 듣자 대번에 딸을 낳을 것이라고 말했고, 그로부터 열달 후 어머니는 누나를 낳았다. 그 후 어머니는 구렁이 두마리가 벽에 붙어 있는 꿈을 꾸셨다. 구렁이처럼 길다란 건 남성의 상징, 어머님은 그 뒤 나와 남동생을 낳으셨다. 여기까지 듣고 엄마한테 물었다.
"그럼 여동생 가질 땐 무슨 꿈을 꿨어요?"
그땐 아무 꿈도 안꾸셨단다. 넷씩이나 낳으려니 좀 지겨웠던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태몽없이 태어난 여동생은 우리 가족 중 가장 인물이 출중한데 비해 구렁이 꿈을 꾸고 태어난 나는 뭔가 많이 모자라니, 태몽이라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닌가보다.

옛날에, 아주 옛날, 지금은 헤어진 여친과 사귈 때였다. 어느날 여친의 어머님이 꿈을 꾸셨는데, 새끼 호랑이를 안아올리는 꿈이었단다. 어머님이 딸에게 물었다. "너 오늘 민이 만나냐?" 여친이 그렇다고 하자 어머님은 이렇게 말했단다. "조심하거라"
하지만 우린 그날 아무일도 없었고-손만 잡아도 아기가 생긴다면 모르겠지만-집에 가는 와중에 갑자기 설사가 나와, 화장실을 찾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그 뒤부터 우린 '대변을 본다'를 '호랑이를 잡는다'고 표현하곤 했다.

내 친구 중 일년 전에 결혼한 녀석이 있다. 어제 그와 만나 술을 마셨는데, 그가 이런 말을 한다.
[내 마누라가 얼마 전에 고추-먹는 고추가 아니라-를 달고 다니는 꿈을 꿨데. 아무리 떼어도 안떨어졌다나. 무슨 그런 흉칙한 꿈이 있냐고 하더니, 글쎄 애가 생겼다지 뭐야]
친구는 지금 임신 5주째란다. 아들인지 딸인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꿈의 성격상 아들이 아니겠는가.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해 친구에게 물어봤다. "5주 전엔 뭐했는데?" 친구는 술에 취해서 아무 생각도 안난단다. 그러자 같이 있던 여자애가 덧붙인다. "그럼 딸이네!" 그 여자, 남자가 술먹고 하면, 그래서 술취한 정자가 들어가면 딸을 낳는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가보다.

아직 장가는 안갔지만 그래도 태몽 전문가인 전직피디 박모씨는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의 꿈은 태몽으로 해석될 소지를 가지고 있다. 결혼한 상황에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아이를 바라면 그게 꿈으로 나타나는 수가 많으니, 그런 꿈을 꿀 수밖에 없다" 내가 태몽으로 해석되는 게 아예 불가능한 꿈들, 예를 들면 학장님한테 혼난다든지, 고교시절로 돌아가 시험 전날까지 공부를 한자도 안하는 그런 꿈들만 꾸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아이를 낳을 상황이 아니어서 그런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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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06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태몽은, '앗, 이거 태몽이야!!'라는 느낌이 확~ 온다던데...^^ 나중에 결과랑 껴맞추는건진 모르겠지만, 태몽과 성별이 대충 맞아떨어지는 건 신기하죠. 시험치는 꿈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그렇다던데~
 

 

 

 

 

 

많은 분들이 진우맘님(이하 님 생략)의 서재에 비치된 심리검사를 의뢰한다. 그러면 진우맘은 검사결과를 친절하게 알려주는데, 그걸 쓰는데만 한사람당 20-30분이 걸린다고 한다. 진우맘은 말한다. "떠오르는 서재 중 내 심리검사 안받은 사람 나와보라 그래"
떠오르는 서재는 아니지만, 나도 진우맘의 서재에서 심리검사를 받았고, 그 이후부터 좀더 자신감을 가지고 인생을 살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을 즐겨 분석하는 진우맘님(이하 님 진짜로 생략)을 한번 분석해보면 어떨까? 그래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진우맘님에 대해 생각나는대로 두서없이 써봤고, 그걸 여기다 올린다.

내가 그런 것처럼, 진우맘도 알라딘 서재에 목을 매셨다. 그래서 진우맘의 서재는 서재지수 10위, 마이리뷰.마이리스트 톱50, 마이페이퍼 톱10이라는 화려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의 서재는 하루 50-100명이 찾는 인기서재다. 342개에 달하는 마이리뷰가 말해주듯, 진우맘은 한창 때 책을 무진장 많이 읽었다. 그당시 진우맘은 한달에 평균 40개 정도의 마이리뷰를 써 2만원어치씩 상품권을 받았다는데, 2002년 1월에 쓴 마이리뷰를 세어보니 무려 77편에 달한다. 이쯤되면 "인간이냐?"는 탄식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최근들어서 진우맘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 왜? 어느날 갑자기 생긴 마이페이퍼 때문이다. 마이페이퍼가 생긴 후 진우맘은 모든 신경을 그쪽으로만 쓰기 시작했는데, 거기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 워낙 많은지라 진우맘은 톱10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걸 진우맘은 "책을 못읽게 하려는 알라딘의 음모"라고 말했는데, 사람들이 책을 덜읽으면 마이리뷰 10편당 하나씩 지급되는 상품권을 덜줘도 되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진우맘. 예진과 연우의 엄마란 뜻이다. 두 아이의 엄마, 그래서 난 진우맘이 30대 중반쯤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엊그제 알았다. 그는 놀랍게도 방년 29세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다음 코멘트를 보자.
[전 중학교가 남녀공학인데다가 중 3담임 선생님이 남녀짝꿍까지 시켜줘서 아직까지 남자인 죽마고우들이 몇 있습니다만은, 이 녀석들...좀 더 키워야할 것 같습니다. 남자 나이 스물 아홉, 서른이면 이제 짝 만나서 결혼할 생각에 바쁠 나이잖아요. 대화의 수준이 보장이 안 됩니다. 게다가 이태백(아시죠? 이십대 태반이 백수) 시대라서, 맨날 술 값은 제가 덤탱이를 쓰지요. -.-]
독서의 달인인 진우맘과 대화의 수준이 안되는 건 이해할 수 있어도, 술값까지 덤터기를 씌우다니, 좀 멀리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진우맘이 자신의 사진을 띄운 적은 아직 없지만, 아이들의 얼굴로 유추해 볼 때 영화배우 정선경을 닮았을 것 같다!!! (이것도 맞나요?)

난 여자의 결혼은 모든 낭만을 포기하고 삶이라는 굴레로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자아실현? 결혼하면 끝이다. 하지만 진우맘을 보면서 난 그게 편견이었음을 알게된다. 마이페이퍼에 올라온 글들로 보건대 진우맘의 삶은 너무도 유쾌하고, 운치가 있다. 두 아이의 엄마가 저런 멋진 삶을 살 수 있다니, 진작에 진우맘을 만났더라면, 베티 프리단이 <여성의 신비>같은 책을 안쓰지 않았을까? 다음 글을 보자.
[제목:  컴 앞으로 오는, 멀고도 험한 길
1차 관문...도련님의 출퇴근 시간. 우리 집 컴은 도련님이 산 거다...도련님이 야근 나간 저녁이라던가, 놀러 나간 낮, 혹은 퇴근 전의 새벽...그런 시간을 교묘히 뚫어야 한다.
2차 관문...강적, 조예진. 원조 엄마 중독 예진. "놀아줘~"의 대가이다. 이런 그녀를 물리치고 컴 앞에 앉기는 매우 힘들다...3차 관문...그다지 강적은 아니지만, 신경쓰이는 조연우...]
그렇다. 진우맘은 이런 관문을 뚫고 그토록 많은 글을 써온 거다. 진우맘의 페이퍼를 읽으며 고단한 하루의 피로를 잊는 나같은 사람들이 보기엔, 돈을 얼마씩 내서 초고속 컴퓨터를 사서 기증하고, 교대로 예진이와 놀아주기, 뭐 이런 이벤트를 벌이면서 진우맘의 글쓰기를 돕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보라. 다음은 진우맘이 글을 남긴 시각이다.
-나는 알라딘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추천: 1 I 2004-02-01 03:52 (추천은 방금 내가 했다. '0'이면 좀 그렇잖아?)
-황금같은 시간이 끝나간다... 추천: 0 I 2004-02-05 01:39
급기야는 이런 멘트도 볼 수 있다. "큰일이다. 곧 알라딘 정기점검 시간인데..."(나도 엊그제 알았는데, 알라딘은 새벽 5-6시에 점검을 한다)
그러니까 진우맘은 이렇게 온몸을 던져가며 톱10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중이다. 재미있는 글을 보니 좋긴 하지만, 저러다 건강이 상하면 어쩌나 걱정이 슬그머니 된다. 진우맘님, 쉬엄쉬엄 하세요!

애엄마는 사실 바쁜 존재다. 다음 글을 보자. [연우는 지금...책을...먹고 있습니다. 책이 마음의 양식 뿐 아니라 몸의 양식도 된다고 생각하는건지... 연우는 양띠인데, 아무래도 자기가 염소띠라고 생각하나봐요. 온갖 종류의 종이를 씹는 것을 매우매우 좋아한답니다. 책 씹기에 지쳤는지 새로운 놀이를 찾아냈습니다. 엄마 노예놀이? 들고 있던 책을 일부러 떨어뜨리고는 주워달라며 좋아하네요...] 애가 커감에 따라 엄마는 점점 시간이 없어진다.
[원래 저는 속독, 탐독, 폭독을 일삼는 활자중독자였습니다. 화장실에서는 락스통이라도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제 사전에 구입하고도 못 읽은 책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그/러/나... 진/우의 엄마가 된 지금은 하루가 온전히 제 것이 아니네요]
거기다 페이퍼까지 쓰려니, 점점 책읽을 시간이 없다. 그래서 진우맘은 만화를 보기 시작한다. 책을 좀 읽는 사람들 중에는 만화를 폄하하는 사람이 참 많다. <느낌표>의 MC가 그러다 항의를 받은 것처럼, 우리에겐 만화에 대한 이상한 편견이 있다. 좋은 만화 한편은 보통 책 열권보다 훨씬 나은데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진우맘은 그런 편견으로부터 자유롭다.
[아영맘에게 좋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래, 호흡이 긴 책이 소화가 안 될 상황이면 좋은 판타지나 만화라도 보자!]
최근 그의 페이퍼를 보면, H2라는 만화에 대한 멋진 감상문이 연재되고 있다. 그렇다고 진우맘이 완전히 책을 떠났을까? 물론 아니다. 지난 1월에는 다섯권의 리뷰를 썼고, 12월엔 열편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라도 책을 읽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책을 읽는 목적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책을 많이 읽으면 글을 잘쓰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일상 얘기도 진우맘의 손을 거치면 참으로 재미있고 유쾌한 한편의 서사시가 되어 버리니까. 요즘 한가한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바쁜 일상 속에서도 열심히 서재를 가꾸는 진우맘을 보면서 난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꿈과 사랑과 용기를 얻는다. 지난번 알라딘마을 잔치에서 아차상에 그치긴 했지만, 그의 서재는 내 마음 속의 베스트서재다. 진우맘의 서재가 더 발전하기를 빌어본다. 훌륭한 엄마 밑에서 크는 예진이와 연우가 얼마나 멋진 인격체로 자랄지를 상상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 원래 이런 리뷰는 그가 쓴 모든 글을 읽고 써야 하지만, 몇편만 읽고 써서 매우 부실한 분석이 되어 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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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2-05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T 감동의 눈물. 누군가 나를 분석할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해 준다는 자체가, 감동적이군요. 참, 뭐라 말씀드려야할지...그저, 고맙습니다.
정선경...이 이 사실을 알면 제 서재를 폭파할지도 모릅니다.^^;;;; 이제껏 연예인 닮았단 얘기는 한 번 밖에 못 들어봤습니다. 한참 눈에 콩깍지 씌운 울 신랑이, 저보고 하희라 닮았다고 했다가 뭇매를 맞았었지요... 저도 제가 외모로는 하위 몇 %라고 생각하는데...환상을 깨시려면, 그림책 리메이크 7페이지 쯤에서 언뜻언뜻 저를 찾으실 수 있습니다.^^

sooninara 2004-02-07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축하해요..이글보고 마태우스님의 서재에 놀러왔습니다
 

 

 

 

 

 

한시간 후면 2월 4일이고, 그날은 제 생일입니다. 며칠 전부터, 아니 한달쯤 전부터, 생일을 기다려 왔습니다. 10대, 20대 시절에는 생일을 맞는 게 부끄러웠어요. 제가 노력해서 이룬 것도 아닌데 남들의 축하를 받는다는 것이 참 쑥스럽더군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생일이 기다려지고, 생일인 게 자랑스럽더군요. 공짜로 뭘 얻는 능력도, 숫기도 없는 제가 생일날만큼은 이런 말을 하고 다닙니다. "아저씨, 저 오늘 생일인데, 무슨 서비스 없어요? 하다못해 노가리 안주라도..." 만나는 사람마다 생일이라고 밝히고, 선물을 미처 준비못한 그들을 미안하게 만들지요^^.

왜 이런가에 대해 생각을 해봤습니다. 제가 제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 세상에 태어난 걸 다행으로 느끼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요. 실제로 제가 생일을 부끄러워하던 10대 때는 죽고픈 적도 꽤 있었으니까요. 또 하나는, 지나온 생일보다 남은 생일이 더 적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겠지요. 그런 생각을 하면 남은 생일 한번 한번이 얼마나 소중하겠습니까?

나이가 워낙 많은지라 몇번째 생일인지는 밝히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여기 오시는 분들, 제 생일 축하해 주실 거죠? 서재를 통해서 여러분들을 알게되고, 서로의 서재를 왕래하면서 친분을 쌓아가긴 했어도, 겨우 한달 조금 넘게 지내놓고선 "생일축하 해달라"고 말하는 게 뻔뻔스럽긴 하지만, 좀 봐줍시다. 제 생일이니까, 그리고 생일은 벼슬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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쎈연필 2004-02-04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저도 덩달아 기쁘네요. 마태우스님 글 항상 재미나게 읽고 있답니다. 꾸준히 재미나게 사셔서 재미난 글 변치 마시옵고, 늘 건강하세요!!

연우주 2004-02-04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00번째 생일 축하드립니다. 이쁜 케잌 덧붙여 드립니다. 알았으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겠죠? ^^

생일인데,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삶이야 어짜피 주어졌으니 하루하루 기쁜 일만 있을 수는 없지만 기쁘게 살 수는 있겠지요...^^

행복하세요~~~ 생일 어찌 보냈는지 글도 올려주시구요...^^


진/우맘 2004-02-04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일 축하합니다! 저는 축가를 선물해드리려고 했는데, 안 되네요. 뭐가 문제지.-.-

비로그인 2004-02-04 0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일축하드려요, 마태우스님~ ^^ 선물까진 아니라도 기억해주고 축하해주는 한마디가 사실 기분좋은 법이지요~ 즐거운 생일 보내시길 바랄께요~~

chaire 2004-02-04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생일상 받을 오늘밤의 술일기는 여느때보다도 재밌겠네요. 기대하며 기다리겠습니다.

nrim 2004-02-04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일 축하드려요. ^^

mannerist 2004-02-04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일 축하드립니다. 뭐 다른거 해드릴건 없고... 요즘 제 홈피에 깔려있는 음악 한자락 보내드립니다. 어디서 한번쯤은 들어보셨는지도 모르겠군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_^o-

 

 

원천에서 mannerist...


프루스트의마들렌 2004-02-05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일축하합니다~ 생일축하합니다~ 노래 받아주세요.^^;

젊은느티나무 2004-02-06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미..... 생일 끝나버렸네요... 이제야 축하드리기는 뭣하고... 내년에는 꼭 축하해드릴께요..ㅋㅋ 근데 몇 번째 생일인지 참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