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서재 이름을 정하고 나면 그대로 쭉 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 삶과 이름의 괴리 때문에 괴로워할 거라면, 그 원칙을 재고해 보는 게 합리적일 겁니다. 지난 세월 동안 전 누구보다도 많은 참이슬을 마셨다고 자부합니다. 누가 ‘산’ 소주를 시키기라도 하면 눈을 부라렸고, 참이슬 1억병 돌파 기사에 “내 공로가 제일 크다.”며 혼자 뿌듯해했습니다. ‘처음처럼’이 나왔을 때도 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마셔본 결과 별반 강인한 인상을 받지 못했으니까요. 심지어 “사람들은 소주 대신 브랜드를 마신다. 맛을 구별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괜히 티내려고 처음처럼을 마시는 거다. 반성하자.”는 황당한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제가 이제 술집에 가면 “술은 참이슬?”이라는 종업원의 말에 고개를 젓습니다. 그래요, 저 개종했습니다. 처음처럼에 좀 길들여졌더니 이제 참이슬이 쓰게 느껴지네요. 최근 몇주간 계속 처음처럼만 마신 것 같습니다. 명색이 ‘참이슬이 있는 서재’인데, 그 주인장이란 놈이 처음처럼만 마신다니, 다른 사람이 알까 두려웠습니다. 이렇듯 양심선언을 하고나니 속이 다 시원하네요. 전 이제, ‘처음처럼이 있는 서재’의 주인장입니다.
73번째: 하루종일 마시다
일시: 6월 28일(수)
이날은 스스로 정한 체력단련일, 코트로 가서 하루종일 테니스를 쳤다. 학교에서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아, 저 지금 잠깐 일이 있어서 모교에 와있거든요.”라는 거짓말을 했는데, 그 말을 할 때 옆에서는 “나이스” “아이고 아깝다.” 등의 구호가 들려오곤 했다.
모두 다 날씨 때문이었다. 그날은 징그럽게 더웠고, 난 더위를 맥주와 더불어 풀고자 했다. 1600cc 짜리 페트병에 든 맥주를 난 연방 들이켰다. 테니스가 대충 마무리될 즈음, 난 무지 취해 있었다. 친구들과 가진 저녁 술자리. 낮에 마신 술이 서서히 깨는 느낌은 여전히 상큼했지만, 저녁에 마신 술이 점차 뇌로 몰려오면서 난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며 술자리에서 누워 버렸다. 맥주는 더위를 쫓는 좋은 수단은 아니었다.
74번째: 간만의 곱창
일시: 7월 6일(목)
월요일날 간단하게 술을 마셨다. 소주를 한병쯤 마셨으니 술일기에 기록되지 못할 양이지만, 그걸 먹고 굉장히 힘들어했다. 내가 소주 한병 마시고 왜 이러지? 너무 오래 술을 안마신 탓일까. 그게 원인이라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그간 너무 조직관리에 소홀했는지, 다음주 주말까지 약속이 쫘악 잡혀 버렸으니까.
어제가 그 첫날이었다. 곱창을 겁나게 좋아하는 미녀 둘과 새로 개장한 황소곱창에 갔다. 식당은 전보다 훨씬 넓어졌지만 손님은 여전히 바글바글했고, 그래서 그런지 종업원들은 더 바빠진 듯했다. 변함없는 것은 황소곱창의 맛, 셋이서 5인분의 곱창과 두그릇의 밥을 먹고도 나갈 때 아쉬움을 느낀 건 오랜만에 느낀 곱창의 맛이 너무 훌륭해서였으리라. 어떤 미녀분은 “곱창은 비가 올 때 먹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래서 그런지 어젠 비가 주룩주룩 왔다. 미녀의 말에 감히 딴지를 걸어 보자면, 비가 오나 안오나 황소곱창의 맛은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