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할머니 전화 해지할래. 쓰지도 않는 거 괜히 돈만 내잖아”

아닌게아니라 내가 할머니한테 해드린 휴대폰은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휴대폰이 생긴 게 기쁘셔서 휴대폰 주머니까지 만드셨던 할머니는 초창기 몇 번을 제외하곤 휴대폰을 거의 쓰지 않았다. 내 통장에서 기본료만 빠져나가길 벌써 2년? 아니면 3년? 엄마는 “그래라”라고 하셨고, 할머니 역시 동의해 주셨다.


KTF에 전화를 걸었다.

“해지하려는데요”

“손님, 해지하시면 마일리지 같은 게 다 무효가 되구요....어쩌구 저쩌구...”

그 직원은 해지신청서를 팩스로 보내왔다. 어인 일일까. 그 종이를 보고 있노라니 해지하겠다고 했을 때 할머니의 얼굴에 한줄기 서운함이 스쳐갔던 생각이 나는 건.


돌이켜보면 할머니가 그 전화기를 자주 쓰지 못했던 것은 전화기가 너무 후지기 때문이었다. ‘효도 휴대폰’이라고 사용자가 60세 이상이면 기본료 12,000원에 단위 시간당 요금도 아주 싼 파격적인 조건에 계약을 해줬는데, 단말기가 너무나도 좋지 않았다. 흑백모니터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전화를 받을 때 폴더를 열고 나서 다시금 통화 버튼을 눌러야 하는 불편함이 있는데다, 결정적으로 전화벨 소리가 너무도 적어 안그래도 귀가 안들리는 할머니가 쓴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것도 기억도 난다. 언젠가 할머니가 전화벨이 작아서 못쓰겠다고 어머님한테 말씀하시는 장면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마자 난 해지신청서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고, 소리가 크고 좋은 새 전화기를 사드릴 생각을 했다.

“할머니, 제가 좋은 전화기로 바꿔 드릴께요”

“돈 드는데 뭐하러 그러냐. 난 괜찮다.”

완곡한 거절을 하신다. 할머니가 정말 싫다면 “나 그런 거 필요없어!”라고 펄펄 뛰셨을 텐데, 할머니도 새 전화기가 좋으신가보다.


밤늦은 시각, 영등포역 근처의 매장을 찾아 새 전화기를 골랐다. 그전에 쓰던 걸 반납하는, 소위 보상판매를 하면 조금 더 깎아준다기에 할머니 전화를 가지고 갔다. 그 전화기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난 휘황찬란한 전화기를 두개나 걸고 다니면서, 어떻게 할머니께 이런 초라한 전화기를 쓰게 했단 말인가. “무조건 소리가 큰 걸로 주세요”

이런 기능은 필요가 없지만, 카메라와 MP3가 모두 되는 전화기를 골라준다. 오늘 아침 개통이 되었기에 전화를 걸어봤다.

“띠리리링-------”

세상에나, 소리가 우렁차다 못해 고막이 울리는 느낌이다. 내 평생 이렇게 큰 전화벨 소리는 처음 들어본다. 이 전화기라면 아무리 할머니라도 제까닥 전화를 받을 수 있으리라.

“할머니, 전화기 샀어요!”

“고맙다. 니가 또 돈 썼구나...”

내일, 아침 일찍 할머니를 모시고 와서 쨘 하고 전화기를 드려야지. 할머니가 좋아하실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뿌듯하다.


* 전화기 값은 4만원씩 6개월에 걸쳐 내면 된단다. 그래봤자 어제 이상한 곳에 가서 쓴 돈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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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02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05-09-02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간 이상한 곳이 어디인지 무지하게 궁금하지만
그래도 효손을 위해 추천!

클리오 2005-09-02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하루밤 술값을 그렇게나... 그래도 할머니께서 좋아하시겠어요. ^^

히나 2005-09-02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란한 곳 하루술값이 그 정도로 나오는군요 흠흠, 하긴 핸드폰이 두 개라 하셨죠
재벌이라 하셨죠 흐흐..
암튼 할머님께 효도하셨네요 잘 지르셨습니다. 멋진 마태손자!!!

어룸 2005-09-02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저도 멋진 마태손자를 위해 추천!! ^^

Joule 2005-09-02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마태우스님.

水巖 2005-09-02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이 날것 같군요. 마태우스님 착한 손자 !

날개 2005-09-02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마태우스님꼐 추천을~ ^^*

merryticket 2005-09-02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잘하셨어요..
마태우스님 마음도 흐믓하시죠?

저도 추천!!!

아영엄마 2005-09-02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가 봅니다. 저도 생각나는군요. 예전에 남동생이 친정 아버지께서 휴대폰 사드린다니 필요없다고 하셨지만 돈 쓰는 거 생각해서 거절하셨지 속으로는 무척 갖고 싶으셨을 겁니다. 휴대폰 사드리니 사용설명서 들추어 보시며 그렇게 좋아하셨다고 하더군요.(아버지도 난청이라 나중에 벨소리 빵빵한 걸로다 바꿔주기도...^^)

울보 2005-09-02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착한 손주네요,,,,

박예진 2005-09-02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손자시군요. ^^ 나도 나중에 할머니 되면 저런 손자 만나면 좋을텐데.
(미래를 이렇게 말하니까 웃기네요.)

비로그인 2005-09-02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수 짝짝짝~ ^^
전 마태님의 이런 이야기 읽을때가 젤 훈훈한거 같아요.

세실 2005-09-03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은 어쩜 이렇게 배려를 잘하시는지....
할머님의 좋아 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마태님 정말 정말 잘하셨어요~~~
참고로 저도 시어머니 핸드폰 사드렸습니다.
신랑이 예전에 쓰던 꼬진 핸드폰 가지고 다니시길래 새것으로 바꾸어 드렸더니 참 좋아 하시네요~~~ 보림이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요~~~

바람돌이 2005-09-03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친정어머니 핸드폰.... 사실은 엄마가 핸드폰이 없으니 내가 얼마나 갑갑한지....^^
마태님은 정말 마음씀씀이가 섬세하세요. 보통 남자들 저렇게 섬세하기 힘든데....^^

야클 2005-09-03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보다 너무 착하시길래 혹시나 이 글의 카테고리가 또 <3류소설>아닐까 했습니다.실화군요. 복 받을겁니다.^^

chika 2005-09-03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저도 손자가 있었음 좋겠구만요~

chika 2005-09-03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오면 항상 추천 클릭할것을 땡스투에 먼저 클릭해지는 나쁜 버릇이... ;;;;;;

산사춘 2005-09-03 0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심의 선두주자인 저로서는,
할머님 맘을 알아챈 마태님의 세심함에 탄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짝짝짝!!!

생각하는 너부리 2005-09-03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우리 아빠 핸드폰 해드렸었는데, 핸드폰이 업그레이드 될 때 마다 저한테 확인을 하시는 거에요. 이건 사진 못찍지, 이건 음악 못듣지? 그러시면서 맨날 전화는 두고 다니시고, 필요할 때 걸면 꺼져있다 하고. 그래서 저두 그냥 해지시킬까 생각했는데, 최신 휴대폰으로 바꿔드려야 할까요? 그냥 디지탈 카메라를 사드릴까 싶기도 한데, 또 아빠가 컴맹이시라....휴, 무엇을 원하신다 확실히 알려주시면 좋을텐데 눈치없는 전 냉정한 딸이 되기 일쑤라니까요.

꾸움 2005-09-03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여.. 이동사 에서 이상한 식으로 이용료를 너무 황당하게 챙겨가더라구요.
많은 이들이 불만의 목소리를 크게 내고 있지만.. 별달라지지 않을듯한..느낌이..
ㅡㅡ;
암튼, 마태님 할머니께서 새 전화기로 기뻐하셨다면
거기에 촛점을 맞춰서..
ㅎㅎ.. 잘 하셨습니다. ^^*

미설 2005-09-03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참지 못하고 썰렁한 멘트하나 날립니다.. 진작 바꿔 주셨어야죠!! 소문에 재벌이시라던데 ^^;;; 아무리 할머니꺼라지만 흑백에 전화가 오면 폴더를 열고 통화버튼을 누르는 것이라니...
늦었지만 해지가 아니라 바꿔 주셨다니 추천 꾸욱~

가을산 2005-09-03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다음주 금요일저녁에 영화 쏩니다. 오실 수 있나요?

플라시보 2005-09-03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착하십니다. 잘 하셨어요. 가끔 그렇게 우리가 받은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면서 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할머니가 오래 오래 그 전화기 잘 쓰시길... 그리고 누구보다 그 전화로 님이 전화를 많이 해 주시길 바랍니다.

마태우스 2005-09-04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안그래도 할머니가 가지고 계시던 책에다 "9월 3일, 내 손자가 비싼 핸드폰 선물해준 기쁜날"이라고 쓰셨더군요. 안드렸으면 후회할 뻔 했어요... 제가 전화 많이 해드려야죠 물론.
가을산님/흑 죄송해요....................
미설님/그러게 말입니다. 질책받아 마땅합니다. 추천 감사드리구요, 혹시 김별아가 쓴 미실과 어떤 관계세요?^^
꾸움님/휴대폰 요금...꼼꼼히 좀 따져봐야 하는데 그냥 내곤 했어요. 음, 그렇구나. 한번 따져봐야겠네요. 하여간 전 님의 편이어요^^
에이프릴님/아아 님은 정말 효자시군요. 전 마흔 다되어서 철이 들었는데 님은 그 젊은 연배에 그런 생각을 다하시다니...휴대폰 바꾸는 문제는 좀 더 상의해 보도록 해요. 저희 할머니도 님 아버님같이 안쓰시기에 해지해 버릴까 했었거든요....
산사춘님/앞으로 잘할께요 제맘 아시죠?
치카님/제가 해드릴까요? ^^
야클님/아이고 너무 자주 속으셨나봐요^^ 감사합니다
바람돌이님/님이 남자라고 유포하는 사람을 붙잡아서 훈방조치했습니다. 누군지 알려드릴까요?
세실님/이런이런, 여기 댓글들을 보니 알라딘 분들은 다들 착하세요. 전 명함도 못내밀겠는데요... 제가 생색을 내서 그렇지, 여기 분들은 이미 다 하셨던 일이네요
고양이님/전 고양이님한테 칭찬받을 때가 가장 흐뭇한 것 같아요^
예진양?어머나 반가운 예진양... 반갑습니다! 후후, 그 나이에 할머니 생각을 하다니 전 지금두 안하고 있는걸요^^
울보님/그래도...할머닌 제가 가정을 갖길 원하시니, 착한 손자는 아니죠..
아영엄마님/아아 님도... 제 행동이 그다지 칭찬받을 일이 아닌, 알라딘에선 지극히 보편적인 일인 것이로군요!
올리브님/그럼요 마음이 뿌듯---하죠! 추천 감사합니다
날개님/오랜만에 추천해 주셔서 고마워요 흑. 울먹. 꺄악...
수암님/울지 마세요. 인자하신 분이 울면 저희가 슬퍼요...(내가 무슨 말을 하는거냐 지금..)
쥴님/하하 뭐 보통이죠 음하하하하
투풀님/추천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지내 보아요
스노우드롭님/멋진 스노우드롭님, 님은 저보다 훨씬 더 잘하시면서...'
새벽별님/제가 님 손자 해드릴께요(치카님도 부탁하셨는데..)
크, 클리오님/저기요 술값보단 선행에 촛점을...하핫.
조선인님/감사합니다. 아 간만에 추천 많이 받았네요^^
속삭이신 분/피,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되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