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에 써먹었던 내용을 잠깐 재탕한다. 순위를 올리기 위해서..라기보다, 그 얘기가 선행되야 다음에 하는 얘기가 설득력이 있기 때문.
-96년 어느날, 일간스포츠에 내가 나왔다. 내가 쓴-지금은 그 사실을 부인하고 싶은-책과 함께. 그 기사가 나가고 난 뒤....책은 별로 안팔렸지만 한국일보 기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기자: 기사 잘 봤습니다.
나: 아, 네. 제가 감사하죠.
기자: 아니 어떻게 그런 좋은 책을 쓰시고(이 따우로 말하는 걸로 보아 내 책을 안읽은 게 분명했다)
나: 아유, 부끄럽습니다.
기자: 그래서 말인데요, 저희가 요즘 행사 기간인데 주간한국 좀 구독해 주시면 안될까요?
책 소개까지 해 줬는데 그 정도는 해야지 않겠냐는 마음에, 그리고 당시의 난 ‘바보’였기에 냉큼 구독을 했다. 1년 후 재구독을 권하기에 그것도 수락했다. 근데 어떻게 끊었냐면...
‘뉴스위크’ 잡지에서 구독을 권하기에-목소리가 예쁜 여자가-주간한국 때문에 부담된다고 했더니 “그거 내가 끊어주면 구독해줄래요?”라고 말한다. “네” 그랬더니 정말로 끊어 줬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뉴스위크 봤다...아니 쌓아 놨다. 결국 비닐도 안뜯고 버렸다. 2년치를...
-2003년 어느날, 이것도 페이퍼로 썼던 건데, 내가 원자력 병원보에 쓴 글에 대해 중앙일보 기자가 관심을 보였다.
“글 잘 봤습니다. 아주 잘 쓰셨더군요”
나: 아, 네. 뭐 부끄럽죠...
기자: 그거 제가 좀 인용해도 될까요?
나: 그럼요.
기자: 선생님 존함도 넣어 드리겠습니다(그야 당연한 거 아닌가?)
기사가 나왔기에 봤다. 내가 쓴 글이 고스란히 기사로 재탕되어 있고, 난 딱 한마디를 한 걸로 되어있다. “서모 교수는....라고 말했습니다”
뭐, 상관없다. 내 이름이 신문에 나오는 걸 난 별로 원치 않으니까. 그런데.
“따르릉”
기자: 기사 봤습니까?
나: 네.
기자: 그래서 말인데요, 이번에 저희가 행사 기간인데 중앙일보 좀 구독해 주시면 안될까요?
그때도 난 바보였기에 그러마고 했다. 하지만 좀 기분은 나빴다. 내 덕에 기사를 썼다--> 기자의 이익-->중앙일보 구독, 그것도 기자의 이익이자 나의 손해.
“기사 쓰는 데 도와줘서 고맙다. 그러니까 우리 신문 하나 구독해라” 이런 논리가 어떻게 가능한 걸까. 응용해 본다.
“너 나한테 돈 빌려줘서 고맙다. 그러니 보험 들어라”
“너 나한테 수박 갖다준 거 잘 먹었다. 그러니 차 한 대만 사주라”
“너 글쓸 소재 제공해 줘서 고마워. 그러니 댓글달고 추천 좀 해주라”
-2005년 5월, 과학xx에서 전화가 왔다.
“요즘 기생충이 뜨고 있는데...”
나: 그런가요?
기자: 그래서...기생충 특집을 편성하려고 합니다. 이러이러한 주제로 글 좀 써주세요.
썼다. A4로 두장 반쯤. 그리고 추가로 계속 요구를 하기에 A4 한 장 분량을 더 썼고, 사진 설명과 용어해설도 보내줬다. 원고료 주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런 건 없었다.
서점에 가서 이번달 과학xx를 두 부 샀다. 내가 쓴 기사가 4페이지에 걸쳐 나와있다. 엄마, “어머나, 우리 아들이!” 간만에 효도했단 생각에 흐뭇했다. 그런데.
전화건 인간: xx일보 기잡니다. 이번에 저희 잡지에 좋은 기사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나: 뭘요... 부끄럽죠.
전화건 인간: 그래서 말인데요, 과학ㅌㅌ 좀 구독해 주시면 안될까요? 저희가 좀 어려워서요.
(더이상 바보가 아닌) 나: 죄송합니다. 저도 요즘 좀 어려워서요.... 안녕히 계세요. (황급히 전화 끊음)
전화를 건 기자들은 보통 사람과 다른 논리를 전개하고 있었다.
내가 기삿거리를 써준다--> 기자가 고마워한다; 이게 정상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기삿거리를 써준다--> 내가 네 글을 실어줬으니 니가 고마워해야 한다--> 잡지를 구독해서 은혜를 갚아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까? 이름을 날리고픈 사람이라면 고마워할 수도 있겠지만,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제 모교 선생님들이 볼까봐 걱정되요. 익명으로 쓰면 안되요?”라고 했었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하지? 왜?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