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로 주례를 서는 날.
주례를 선다고 여러 명에게 자랑을 해댔고 나름대로 설레기도 했지만,
내 생각과 달리 주례는 그렇게 높은 자리는 아니었다.
하기야,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랑. 신부지 주례는 아니잖은가?

주례여고 총학생회장의 경력이 공천을 받을 정도라면 주례를 한번 선 나도 충분히 자격이 된다^^
결혼식 30분 전에 예식장에 도착했을 때 아무도 날 반겨주는 이가 없었다.
여기저기 눈치를 살피다 신부 어머니한테 찾아가 "저 마태우슨데요"라고 말했다.
원래 기대했던 답은 "어머나 주례선생님이시군요! 이리로 와서 앉으시죠!"
하지만 어머니는 긴장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하셨다.
"근데요?"
급 당황한 난 이렇게 덧붙였다.
"오늘 주례 보는데요..."
이 말에도 어머니는 내가 기대한 반응을 보이는 대신 "뭐라고요?"라고 하셨다.
그제야 깨달았다.
주례는, 그다지 중요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혹시 내가 주례에서 잘렸나 싶어 처음 부탁을 한 신부(교양과목을 들은 제자)에게 가서 물어보니까
내가 주례 맞단다.
바쁜 신부를 데리고 놀 수는 없기에 식장에 들어가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식을 맞았다.

원래 슬라이드로 주례사를 만들어 할 예정이었지만
그 예식장은 빔 프로젝터 지원이 안될 뿐 아니라 스크린도 없어
할 수 없이 A4 종이에 인쇄한 원고를 낭독해야 했다.
이건 알고 있었다.
주례사는 아무도 듣지 않는다는, 그러니 가급적 짧게 해야 한다는 걸.
연습했을 때 걸린 시간이 7분 정도였으니 그 정도면 적당하다 싶었다.
다년간의 방송출연 덕분인지 떨리지는 않았고
짧게 해서 그런지 박수를 치는 하객도 있었다.
주례가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긴 해도
해보니까 참 재미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부부가 새로운 앞날을 설계하는 데 증인이 되어 준다는 게 얼마나 보람있는가?
앞으로 누가 주례를 부탁하면 거절하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 아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 피로연장에 가서 밥을 먹을 생각을 하니 영 그림이 안그려져, 그냥 터미널 옆 식당에서 참치김밥으로 점심을 떼웠다. 다음번 주례할 때는 미리 밥을 먹고 가야지.
** 부록으로 내가 읽었던 주례사의 일부를 올린다. 읽다보니 아내는 남편을 공경하라, 뭐 이런 내용이 전혀 없었다. 남편한테만 아내를 잘 모시라고 했으니, 시댁 측에선 기분나쁠 수도 있겠다 싶다.
[xxx 양이 저한테 주례를 서달라고 했을 때 좀 당황했습니다. 사람들은 주례라는 건 나이가 어느 정도 들었을 때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주례 부탁을 받으면 대부분이 거절하는 이유도 자신은 그렇게 나이가 들지 않았는데 무슨 주례냐,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주례는 과연 몇 살부터 할 수 있을까요? 요즘 유행하는 애정남 게시판에 올려봤지만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정해드립니다. 주례는 나이에 관계없이 결혼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볼 수 있다,라고요. 제가 여기 서 있는 것도 나름대로 결혼생활을 잘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혼생활이란 둘이 전도유망하고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는 것만으론 해내기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결혼생활을 잘하는 비법 세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집안일은 부부 공동의 것입니다.
흔히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준다’고 말을 하는데, 여기엔 집안일이 아내만의 일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집안일을 아내 혼자 하는 데서 부부간의 갈등의 싹틉니다. 한 명은 계속 치우기만 하고 한 명은 계속 어질기만 하는데 사이가 좋아질 수 없죠. 아내가 요리를 하면 설거지는 남편이 하고, 아내가 애를 보면 남편은 집안일의 대부분을 떠맡는다면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서로 간에 대화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과거에는 남아일언 중천금이란 말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우리 아버님들은 집에 오시면 ‘밥줘’라는 한마디 말밖에 하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 어머니들의 결혼생활은 그다지 재미가 없었습니다. 요즘은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말 잘하는 남자가 인기도 많습니다. 부부간의 금술은 서로간의 대화에서 싹틉니다. 서로 얘기를 하면 할수록 할 말이 많아집니다. 아무리 사소한 얘기라도 좋으니 말을 많이 하십시오.
셋째, 부모님들에게 하루 한번씩 전화를 하시기 바랍니다. 자식을 떠나보내면 부모님들은 서운한 마음이 들고, ‘얘네들이 결혼해서 잘 사나’ 굉장히 궁금해하십니다. 매일같이 시간을 정해서 부모님들께 전화를 드리십시오. 전화는 어렵기만 하던 처가, 시댁과 친해지는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할 말이 없을지 몰라도, 자주 하다보면 할 말도 많아집니다. 매일같이 시간을 정해서 양쪽 부모님들게 전화를 드리십시오.
끝으로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주혈흡충이라는 기생충이 있습니다. 주혈흡충은 수컷이 터널을 파서 암컷을 몸에 품고, 음식도 갖다주고 여기저기 구경도 시켜줍니다. 결혼은 남녀가 하는 것이지만, 여자 쪽에서 더 많은 희생을 하게 마련입니다. 남편이 주혈흡충의 수컷처럼 아내를 모시십시오. 기생충도 하는 일을 사람이 안해서야 되겠습니까? 이상으로 주례사를 마치겠습니다. 들어주신 하객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