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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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분필로 교실 칠판을 가득히 채우거나 골목 담벼락에 낙서해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분필로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거나 칠판에 썼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오릅니다. 지금은 학교에서 분필이 사라진지 오래이지만, 손에 분필가루를 묻히던 기억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작은 마을인 앤더베리에 살고 있는 12살의 다섯 명의 친구들은 동네 친구이자 학교 친구로서 소꿉친구로 성장합니다. 1986년 당시 12살인 주인공 에드와 그의 친구들은 각자가 정한 컬러 초크로 자신들만의 비밀표시를 만들어 모임을 갖게 되는데 누군가 각자의 집에 표시를 한 초크를 기준으로 친구들은 숲 속에서 만납니다. 그런데 숲속에서 머리가 없는 여자 시신이 발견됩니다. 특이한 점은 신체의 각 부위가 절단이 되어있고 각각 떨어진 장소에서 발견된 점, 단 하나 머리가 발견이 되지 않은 채 수사는 그녀를 알고 지낸 학교 선생님이 의심받게 됩니다.

책은 1986년의 12살 에드와 그의 친구들의 성장과 함께 2016년이 된 현재 시점의 그들의 이야기를 오고 가며 펼쳐집니다. 유력한 용의자가 사건의 진법임이 밝혀졌지만 현재 그들에게 각각 흰색의 분필로 얼굴로 신체부위가 표시된 편지들을 받게 되면서 잠잠했던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나가는 과정이 그려집니다.

일반적인 추리 스릴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한편의 아프고도 슬프고 담담한 시선이 어린 성장소설처럼 읽었습니다. 30년에 걸친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고리를 맺고 있는데, 작은 실수에서 빚어진 일들이어서 더 비극적으로 느껴집니다. 어린 마음에, 치기 어린 장난에, 또 순수한 마음에 한 작은 말과 행동이 걷잡을 수 없는 큰 사건이 되어 이후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뚱뚱이 개브가 미키의 형 션의 자전거를 강에 빠뜨리지 않았다면? 에드의 엄마가 해나 토머스의 비밀을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에드가 댄싱걸의 은반지를 돌려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비극은 일라이자의 머리가 사라져 버린 일이 아닐까요?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현장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면 사건의 진실이 더 빨리 밝혀지지 않았을까요?

저자의 필력이 자신의 인생의 어떤 터닝포인트를 연상시키는 것처럼 곳곳에 스며든 인생의 아이러니함, 그 안에서 겪는 부모와 종교, 권위, 질투, 암묵적인 동조 하에 벌어진 억울한 사람의 이야기들까지, 책은 장편소설로써 시종 에드의 시선을 중심으로 숲 속에서 벌어진 그 사건 뒤에 다섯 친구들이 어떻게 서먹서먹하게 되고 그 이후 각자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이면서 범인의 실체를 밝히는 과정이 들어있습니다.

인간의 극단적이고 예외적이지 않는 보편적인 판단은 한 소녀의 죽음 뒤에 가려진 많은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지고 그들이 악의로 한 행동은 아니었으나 결국엔 각자가 불행의 사건으로 몰고 간 사람들이었음을 보입니다. 친구가 당한 안타까움에 대한 보복으로, 반려견의 죽음의 원인이라고 생각한 이유 때문에, 선생님의 아픈 사랑을 조금이나 위로해주려 한 물건이 걷잡을 수없는 파국으로 치달았을 때의 그 소년들은 어렸고 두려웠다는 점, 결국엔 돌고 돌아 30년이 흐른 시점이 되어서야 진정한 범인이 밝혀지기까지의 여정은 반전의 맛을 선사합니다.

가장 크게 아쉽다고 느껴지는 건 시원하게 밝혀내지 않고 넘어가는 부분이 있다는 점입니다. 작가는 과거와 현재를 반복하면서 긴장감은 생길 정도로, 그러나 힌트는 감춰둔 채 이야기를 전개하며 독자들이 몰입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런 패턴은 책의 초반과 후반에는 몰입도 유지에 아주 효과적이었지만 중반부와 중후반부 즈음에는 지치게 만드는 면도 분명 존재합니다. 스토리 중간중간에 작가가 뭔가를 숨기고 있음을 계속해서 암시하면서도 알려주지 않고 다른 쪽으로 계속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주된 스토리인 초크맨의 정체, 살인 사건의 전말뿐만 아니라 여러 서브 스토리들이 엉켜있기 때문에 집중력이 조금 흐려지는 면도 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시원하게 다 끝맺음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대충 얼렁뚱땅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소 복잡한 스토리 라인과 일정 부분을 시원하게 풀어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운 책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어린 소년들의 성장기를 통해 어른들의 세계, 사랑에 대한 진실, 그 모든 것들에 대해서 무언의 암시를 주는 것 같습니다.

 

호포에게 거짓말을 하기는 싫었지만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공유할 수 없는 게 있기 마련이다. 아이들에게도 비밀이 있다. 어른들보다 더 많을 때도 있다. 우리 패거리에서 나는 꺼벙이 역할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했고 조금 고지식했다. 나는 잡동사니를 수집할 만한 성격의 아이였다...나는 수집한 잡동사니들을 애지중지했다. 꽁꽁 숨겨서 안전하게 보관했다. 뭔가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느낌이 좋았던 것 같다. 아이들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데, 나는 그 상자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았고 오직 나만이 뭘 새로 넣거나 뺄 수 있었다
- P49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알았지만 앞에서도 얘기했다시피 누구에게나 비밀이 있는 법이고,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저지르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내게는 그것이 남의 물건을 슬쩍하는 것, 수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엿같게도 그걸 원래 있었던 자리에 갖다놓으려고 할 때만 꼭 탈이 났다
- P54

사람들은 그런 사건에 항상 호기심을 느낀다. 내가 보기에도 그럴 만한 요소를 전부 갖추고 있다. 특이한 주인공, 분필로 그린 섬뜩한 그림 그리고 소름 끼치는 살인. 우리는 역사에 흔적을 남겼다. 초크맨 모양의 조그만 흔적을.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씁쓸해한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사실은 윤색됐고 진실은 점점 모호해졌다. 역사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일 뿐이다
- P89

죽음은 우리 같은 어린아이나 우리 주변이 아니라 다른 데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죽음은 추상적이고 먼 일이었다. 나는 아마 션 쿠퍼의 장례식을 통해 서늘하고 시큼한 입김 바로 그 너머에 사신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의 가장 놀라운 전략이다. 그의 차갑고 어두컴컴한 소매 속에는 전략이 많이 숨겨져 있다
- P164

흰색 초크맨이었다. 두 팔을 올리고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입을 ‘O‘ 모양으로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었다. 그 옆에 흰색 분필로 조잡하게 그린 개가 있었다.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초크맨을 조심해

- P176

나뭇잎들이 오그라들고 쭈글쭈글해지다 결국에는 힘없이 나무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시들시들하게 죽어가는 분위기가 모든 것에 스며들었다. 이제는 그 어떤 것도 신선하거나 다채롭거나 순수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온 마을이 자기만의 부연 타임캡슐 안에 갇혀서 잠시 유예됐다
- P255

어른이 된다는 건 환상이다. 따지고 보면 실제로 어른이 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그냥 키가 커지고 털이 많아질 뿐이다. 나는 나에게 운전면허가 주어졌고 술집에서 술을 마셔도 잡혀가지 않는다는 데 지금도 가끔 놀랄 때가 있다. 어른이라는 허울을 걷으면, 한 해, 두 해가 태연하게 흘러가는 동안 켜켜이 쌓인 경험을 헤치면 까진 무릎으로 코를 흘리며 엄마, 아빠를 찾는....그리고 친구를 찾는 어린애가 숨어 있다
- P260

예단하지 말 것.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할 것.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우리가 예단을 하는 이유는 그게 좀 더 쉽고 게으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떠올리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일들에 대해 너무 열심히 생각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을 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길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비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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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 피플 - 복수하는 사람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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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에는 내 손에 닿지 않는 미스터리, 우연이란 것이 존재합니다. 바닷물이 빠지면 섬들이 연결돼 있는 게 보이는 것처럼, 우연은 인생을 이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게이브는 3년 전 자신의 부인과 딸을 잃었습니다. 한동안 사람들은 그가 책임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특히 사망 당시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것을 거부하는 배우자인 그는 명백한 용의자이지만 그에 대한 실제 증거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믿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딸과 아내가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 3년이 지났지만, 게이브는 지금까지 살아 있다고 믿는 딸 이지에 대한 정보를 엿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고속도로를 오고 갑니다. 그는 다른 모든 것을 포기했지만, 밤낮으로 고속도로 위아래로 여행하면서 주유소나 밴에서 자며, 그녀를 데려 간 차를 찾아 다니며 이지를 찾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르는 신기한 남자를 만나는데, 그는 게이브를 많은 단서가 들어있는 차량으로 안내하지만, 아이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케이트는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주유소에서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녀는 게이브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9년 전, 그녀의 아버지는 살해당했습니다. 그녀는 장례식 날부터 언니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때문에 그를 이해하고 동정합니다.

한편, 프랜이라는 여자와 그녀의 딸 앨리스도 밤새 미지의 위협으로 도망 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누군가를 찾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서 도망치고 있습니다. 프랜은 자신이 해서는 안되는 일을 알고 있으며, 잡히면 딸과 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습니다.

게이브는 딸을 찾을 때 다크 웹에서 인터넷의 가장 깊은 구석에 숨겨져있는 사람들 커뮤니티를 만납니다. 서로 정의를 얻도록 돕는 것 외에는 동기가 없습니다. 개념은 간단합니다. 때로는 법이 진정으로 정의를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합니다. 이 그룹에 참여하기 위해 개인은 온라인으로 요청하고, "요청"이 수락되면 다른 익명의 개인이 수행합니다.

프랜과 게이브는 모두 ‘디아더피플’이라는 어두운 웹 사이트에 연결되어있어 비극 피해자들이 원하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 스토리 라인을 번갈아 가면서 다른 사람들은 아버지의 사랑, 어머니의 헌신, 그리고 "디아더피플"로 알려진 그림자 그룹을 피하기 위해 복잡하고 불길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스토리 라인 각각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복잡하게 얽혀있고 많은 사건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줄거리와 등장 인물은 모두 매우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모든 것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계속해서 궁금하게 만듭니다. 간혹 초현실적인 부분이 등장했을 때에는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습니다.

슬픔, 상실 및 희망이라는 주제와 다른 사람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미스터리와 음모를 갖춘이 책은 진정한 페이지 터너입니다. 특히 인간 관계의 기본 원리, 특히 가족의 사랑, 부모의 희생, 정의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이라는 주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미스터리와 스릴러 음모는 종종 우연의 일치에 의존합니다. 너무 많은 ‘우연의 일치’는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반전과 의외의 결말, 스릴러의 재미 등 개인적으로 전작보다 더 나은 책이었습니다.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스릴러의 세계에 빠져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꼭 만나보길 바랍니다.

*본 포스팅은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이해는 됐다. 그들은 수많은 일을 함께 겪었고 프랜은 그녀를 위해 수많은 희생을 했고 그들은 유대감을 공유했지만, 그녀가 한밤중에 찾는 사람은 프랜이 아니었다. 나쁜 꿈을 꾸었을 때 자길 토닥여주길 바라는 사람은 프랜이 아니었다.
자기 엄마였다 - P74

그들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한때는 그들도 서로를 열정적으로 미친 듯이 사랑했다. 열렬한 사랑은 시들기 마련이다. 그래야 한다. 다른 모든 것처럼 사랑도 진화해야 한다. 계속 유지되려면 화르륵 불타오를 게 아니라 부글부글 끓어야 한다. 그래도 계속해서 온기를 유지할 수 있게 관리해야 한다. 너무 오랫동안 방치하면 불이 완전히 꺼져서 한때 있었던 불씨를 찾느라 잿더미를 뒤져야 한다. - P178

우리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생각하더라도 자신과는 거리가 멀고 추상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어느 늦은 봄날 저녁에 우리 집 차고에서 나를 기습할 거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특별한 예외자이기 때문에 비극이 들이닥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것과 같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다른 사람들에게만 벌어진다. - P208

아이가 느끼는 괴로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전부 그냥 두면 왜 안돼요?’ 그럴 수는 없으니까. 인생은 불공평하니까. 골라서 선택해야 하는데 가끔은 선택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가끔은 아예 선택권이 없을 때도 있다. 끈으로 묶고 풀로 발라서 고칠 수 없는 물건과 사람도 있고 누구나 앞 베란다에서 햇살을 맞으며 생을 마감하는 것은 아니다.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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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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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 중에 임진왜란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만큼 우리 역사에서 주요한 사건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 임진왜란을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도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쓰디쓴 침략의 역사이면서 이순신의 전투 기록을 본다면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은 조선 중기 문신 류성룡이 임진왜란 동안에 경험한 사실을 기록한 책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이었던 류성룡이 전쟁이 끝난 뒤, 뒷날을 경계하고자 하는 뜻에서 1592년(선조245년)에서 1598년까지의 일을 직접 기록한 것입니다.

무력한 조선군. 자기 살 길만 쫓아 달아나는 관리들. 병법도 모르고 덤벼드는 조선의 장군들. 왜적이 10일 만에 한양까지 들어왔습니다. 그 동안 조선이 한 일이라고는 ‘도망’과 ‘무모함’, ‘탁상공론’이 전부였습니다.

백성들이 매순간 죽어갈 때 왕과 대신들은 피난가기에 바빴고, 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위와 같은 현실성 없는 대책뿐이었습니다. 도망가기에 바빠 전략적 요충지도 다 버렸습니다다.

왜적의 침입에 이미 예견되어 있었고 전쟁 준비에 대한 이야기는 많았지만 번번이 묻혔습니다. 임진왜란이 진행되는 기간에 백성들은 농사를 짓지 못해 굶었습니다. 아비는 아비 노릇하기 힘들어졌고, 어미는 제 자식 젖조차 물릴 힘이 없었습니다.

그때도 ‘정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 파직되고 서로 복권되었습니다. 나라가 찢겨가는 전쟁 중에도 대신들은 서로를 헐뜯으며 찢기 바빴습니다. 안에서부터 썩은 나라는 전쟁을 준비할 힘이 없었습니다. 전쟁도 정쟁에 묻혔습니다.

류성룡이 이 책을 기록한 이유도 누구를 헐뜯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시는 이런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속에는 잘못한 과거가 들어 있습니다. 장수들의 무능함과 대신들의 잘못이 들어 있고, 류성룡 자신의 실책도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만 들어 있지 않습니다. 군주는 도성도 버리고 도망갔지만, 내 고장 버리지 않고 지킨 의병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성을 지키다 죽은 함안 군수 조종도, 자신의 죽음조차 승리에 방해가 된다며, 버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임진왜란은 국가의 무능이 부른 미증유의 대재앙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이 언급된 문집은 있지만, 사건의 과정을 총체적으로 기술한 동시대의 서적은 이 책이 사실상 유일할 것입니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읽는 내내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류성룡의 시점에서 임진왜란이 어떻게 일어나고 당시 참혹했고 위험했던 상황들을 생생하게 느끼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전쟁의 기록들을 보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상황과 비교하게 됩니다. 특히, 사건의 발달은 문신과 당파 싸움에서 일어나는 것은 지금도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것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나 똑같은 일을 겪어야 과거의 잘못을 경계하고 삼갈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씁쓸한 생각을 해봅니다.

징비란 시경의 소비 편에 나오는 문장인 ‘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로부터 유래한다고 한다. 즉 자신이 겪은 환란을 교훈으로 삼아 후일 닥쳐올지도 모를 우환을 경계토록 하기 위해 쓴 글이다. 이러한 집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저자는 자신의 잘못으로부터 조정 내의 분란, 나아가 임금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 등 임진왜란을 둘러싸고 발생한 모든 일을 더하고 뺌 없이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 P10

4월 1일, 두 사람은 서울로 돌아와 임금께 보고했다. 그 무렵 집으로 찾아온 신립에게 내가 물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큰 변이 일어날 것 같소. 그렇게 되면 그대가 군사를 맡아야 할 터인데, 그래 적을 충분히 막아낼 자신이 있소?" 신립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까짓 것 걱정할 것 없소이다." 나는 다시 말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과거에 왜군은 짧은 무기들만 가지고 있었소. 그러나 지금은 조총을 갖고 있습니다.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닌 것 같소." 그러나 신립은 끝까지 태연한 말투로 대꾸했다. "아, 그 조총이란 것이 쏠 때마다 맞는답디까?" 신립은 내 말은 무시한 채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 P42

후에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왜군을 쫓아 조령을 지나다가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이런 천혜의 요새지를 두고도 지킬 줄을 몰랐으니 신총병(신립)도 참으로 부족한 사람이로구나."원래 신립은 날쌔고 용감한 것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전투의 계책에는 부족한 인물이었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장수가 군사를 쓸 줄 모르면 나라를 적에게 넘겨준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는데,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나 후손들에게 경계가 될것이라 생각해 상세히 적어 둔다.
- P68

당시 요동에서는 왜적이 우리 나라를 침략했다는 말을 엄자 전에 들었다. 그런데 다시 임금이 서울을 버리고 서쪽으로 피란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더니, 이윽고 왜적이 평양까지 닿았다는 소식을 접하자 의심을 품기까지 했다. 아무리 왜적이 강하다 하더라도 이렇게 빨리 올라올 수는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조선이 왜구의 앞잡이가 되어 이끌고 온다."고도 했다.
- P90

"이 모습을 본 성 안의 아전과 백성들이 난동을 부렸다. 그들은 칼을 빼어 길을 막고 나서며 폭행했다. 신주는 길에 떨어지기도 하였는데, 그들은 재신을 지목하며 말했다. `너희들은 평소에는 편히 앉아 국록만 축내더니 이제 와서는 나라를 망치고 백성마저 속이는구나?‘ 이 무렵 연광정에서 임금께로 향하던 나는 아녀자와 어린 아이까지 분노를 감추지 않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았다. `성을 버리고 갈 거면 왜 우리는 성 안으로 들어오게 했소? 이야말로 우리를 속여 적의 손에 넘겨주려는 속셈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오?‘"
- P92

결국 전라도와 충청도를 보전하고 아울러 황해도와 평안도 연안 지방까지 지키게 됨으로써 군량의 조달과 통신체계가 확립될 수 있었다. 이는 곧 나라를 회복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요동과 천진 지방에 왜적의 손길이 닿지 않게 되어 명나라 군사들이 육로를 통해 우리나라를 구원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이순신이 한 번 이긴 결과였다
- P122

언젠가 큰비가 내린 날이었다. 굶주린 백성들이 밤중에 내 숙소 곁에서 모여 신음 소리를 내는데 차마 들을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주위를 살펴보자 굶어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 P165

게다가 조선 전역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었으며, 군량 운반에 지친 노인과 어린아이들이 곳곳에 쓰러져 있었다. 힘이 있는 자들은 모두 도적이 되었으며 전염병이 창궐해 살아남은 사람도 별로 없었다. 심지어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잡아먹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 죽이는 지경에 이르러 길가에는 죽은 사람들의 뼈가 잡초처럼 흩어져 있었다
- P185

이순신이 한산도에 머무르고 있을 때 운주당이라는 집을 지었다. 그는 그곳에서 장수들과 함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투를 연구하면서 지냈는데, 아무리 졸병이라 하여도 군사에 관한 내용이라면 언제든지 와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했다. 그러자 모든 병사들이 군사에 정통하게 되었으며,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는 장수들과 의논하여 계책을 결정하였던 까닭에 싸움에 패하는 일이 없었다.
- P192

이순신은 말과 웃음이 적었고, 용모는 단정하였으며 항상 마음과 몸을 닦아 선비와 같았다. 그러나 속으로는 담력과 용기가 뛰어났으며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행동 또한 그의 뜻이 드러난 것이었다
- P215

그리고 지옥의 전쟁 임진왜란은 끝이 났다. 명나라 장군 진린은 이순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의자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주저 앉으며 통곡했다. 우리 군사와 명나라 군사들은 각 진영에서 통곡을 그치지 않았는데, 마치 자기 부모가 세상을 떠난 듯 슬퍼했다. 그의 영구 행렬이 지나는 곳에서는 모든 백성이 길가에 나와 제사를 지내면서 울부짖었다.
- P218

훗날 나라의 앞날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나같은 사람의 말이라고 해서 그냥 지나치지 말고 활용하기 바란다. 적을 막는 방법으로는 꽤나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 P229

병법에는 정해진 형식이 없고 전투에는 특별한 법칙이 없다. 때에 따라서 그에 적절한 법을 시행하면서 나아갔다가는 물러나고 모였다가는 흩어지면서 특별한 묘책을 끝없이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결국 지휘관의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천 마디 말이나 만 가지 계략이 다 필요 없고, 오직 뛰어난 장수 한 사람이 중요하다. 거기에 조조가 말한 세 가지 요소가 누락되지 않고 더해진다면 다른 어떤 것도 필요 없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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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록 - 최신 언어로 읽기 쉽게 번역한 뉴에디트 완역판, 책 읽어드립니다
혜경궁 홍씨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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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조선왕실의 역사에서 최악의 비극으로 꼽히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사도세자의 비극에 대해서 지금까지 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제작됐지만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 모든 것을 겪은 '혜경궁'의 기록을 읽는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일 것입니다.

이 책은 6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권에서는 혜경궁 홍씨가 세자빈으로 궁에 들어온 뒤 시아버지와 남편의 사랑을 받은 일, 이후 정조를 낳고 환갑을 맞기까지의 여러 가지 일들을 순차적으로 나열하고 있습니다.

2,3권은 임오화변의 주체인 영조와 사도세자 부자간의 위태했던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세자의 비범한 탄생과 뛰어난 자질, 죽은 경종의 궁인들에게 세자를 보육하게 한 영조와 선희궁에 대한 원망, 사도세자의 비행으로 겪었던 마음고생, 임오화변 당시의 상황 등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1권에 비해 사건에 대한 혜경궁 홍씨의 주관적인 생각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4권에서 혜경궁 홍씨는 영조의 총애를 받던 화완옹주에게 세손을 돌봐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모자 사이가 서먹해지고 친정집에는 안 좋은 일만 계속됩니다. 이에 혜경궁 홍씨는 이 일들이 모두 모함이며, 그녀의 친정은 나라와 집안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5권은 화완옹주의 양자인 정후겸과 김귀주의 이간으로 혜경궁 홍씨 집안이 겪게 된 일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벼슬을 시켜주지 않은 일로 아버지 홍낙춘에게 앙심을 품은 홍국영이 훗날 정조의 신임으로 권력을 손에 쥐자, 혜경궁 홍씨의 중부 홍인한과 동생 홍낙임을 대역 죄인으로 몰고 간 일에 대해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홍국영이 자신과 정조, 중전과 정조 사이를 이간하며 세도를 누리려 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마지막 6권은 1~5권의 내용을 다시 정리하고 정조에게 후사가 없던 것을 걱정하던 중 가순궁이 순조를 낳은 일과, 정조가 순조에게 왕위를 양위한 후에 사도세자의 일과 외가의 죄를 씻어 주겠다고 그녀에게 약속했다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영조에서 정조, 순조에 이르는 조선 왕조 3대에 걸친 권력투쟁의 궁중정치는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욱 드라마틱한 현실의 역사입니다. 그녀가 체험한 역사적 사건 그 자체가 너무나도 기구하고 극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자신이 겪은 비극적인 사건을 아무리 말을 바꾸어 설명하려해도 그렇지 못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담담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과거를 회고합니다. 비록 안타까운 남편의 죽음과 몰락한 가문에 대한 억울함에 대해 호소하고 있지만, 그녀 특유의 섬세하고 우아한 표현, 담담함으로 당시의 정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건의 정황이나 인물들의 움직임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점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녀의 글에서는 애끓는 심정이 절절하게 드러납니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혜경궁과 가문의 인생이 휘둘리는 데도 속 시원하게 항변할 수 없었던 지난 세월이 있었으니 당연히 그랬을 것입니다.

혜경궁 홍씨는 왕비가 되기 위해 아홉 살 어린 나이에 궁으로 들어왔지만 왕후, 대비가 될 수 없는 신분으로 비운의 삶을 살다가 생을 마칩니다. 남편이 죽게 되었을 때도, 아버지가 귀양을 갈 때도 조용히 하늘의 뜻을 인정했습니다. 자기의 옮음을 버리고 궁중의 피 비린내 나는 싸움을 막고 자손을 지킨 혜경궁 홍씨의 지혜는 본받을 만합니다.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매정한 아버지로, 그의 아들은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아들로 역사에 남았지만, 이 작품은 사실에 근거하여 역사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축이 되어줄 소중한 작품이었습니다.

천지가 맞붙고 일월이 캄캄하게 막히는 변을 만나, 내 어찌 한시라도 세상에 머물 마음이 있으리오...한편 생각하면 열한 살 된 세손에게 크나큰 아픔을 주지 못하겠고, 내가 없으면 세손의 앞날은 어찌하리오. 참고 참아 모진 목숨을 보전하고 하늘만 보고 부르짖었다.
- P61

새롭게 기억을 더듬으니 마음과 정신이 놀랍고 답답하며 간과 폐가 찢어지는 듯하여, 한 글자 한 글자가 눈물이 쏟아져 글씨가 써지지 않는구나.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또 어디 있으리오. 원통하고 억울하다
- P72

하지만 내가 본 것은 눈 앞에 생생하고 고통이 가슴에 박히어 어찌 써내라. 이제 이것을 써내려고 하니, 영조와 경모궁께서 하시던 일이 세상에 부족한 덕이 드러나실 듯하여 죄스럽지만 실상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으니 종이를 대하여 가슴이 막힐 뿐이다
- P92

무릇 하늘이 부자 두 분 사이를 그렇게 만드신 듯 하다. 아버니께서는 말고자 하시다가도 누가 시키는 듯 도로 미운 마음이 생겨나시고, 아드님은 아버지를 뵈올 때마다 숨기는 일 없이 당신의 잘못을 감추지 않으셨다... 하늘의 뜻이 어찌하여 이 조선에 만고에 없는 슬픔을 주시는지 애통할 뿐이로다
- P137

세손이 어린 나이에 세상에 없는 큰 아픔을 당하고, 또 왕가의 당치않은 변고를 당하셔서 지나치게 애통해 하셨다. 상복을 벗으실 때 곡읍하는 소리가 천지에 사무쳐 초상에 천지가 깜깜하게 꽉 막히던 때의 설움보다 더하셨다
- P195

모년의 일은 내가 차마 기록할 마음이 없었다. 다시 생각하니 주상이 자손으로서 그때의 일을 모르는 것이 망극하고 또한 옳고 그름을 분별치 못 하실까 민망하여 마지못해 이렇게 기록한다
- P201

임오화변의 계기는 부자간의 사이가 예사롭지 않으시기로 전전하여 된 일이니, 내 평생의 뼈에 사무친 지극한 한이요 원이로다. 영조 대왕께서 아드님께도 그러하셨으니 한 다리 먼 손자에게 또 어떠하실지 알리오.
- P258

주상이 나이 어리시고 나라의 위태로움이 한 터럭 같은데 인심과 세태가 갈수록 이러하여, 마침내 어미도 몰라보는 세상이 되기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참으로 나라와 인륜을 생각하여 통곡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 P322

서럽고도 서롭도다!
차마 갑신년의 일을 어찌 다 일컬을 수 있으며 그때 몹시 애달프고 망극하여 모자가 서로 붙들고 죽을 바를 모르던 모습이야 어찌 다 기록할 수 있겠는가? 선왕께서 겪으신 지극한 아픔이 예로부터 제왕가에 없는 일이니, 비록 나라를 위하여 임금의 자리에 임하시나 한평생 아픔을 품으시고 추모하심이 해가 갈수록 더욱 깊어지셨다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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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 - 우리 모두의 진짜 자존감을 찾는 심리학 공부
김태형 지음 / 갈매나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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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나온 '자존감 수업'을 비롯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미움받을 용기' '신경 끄기의 기술' 등 매력적인 책들은 자존감 회복의 다양한 방식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자존감을 주제로 한 책들이 정말 많이 출간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것은 그만큼 현재 대한민국의 현대인들의 대다수가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이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칠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존감이란 사전적 정의로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입니다. 자존감이 잘 형성된 사람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며, 다른 사람과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을 보입니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있습니다. 1부에서는 최악의 자본주의사회를 보여주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2부에서는 성장기에서 노년기까지 우리 삶에서 자존감이 무너진 원인을 다양한 시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3부에서는 드디어 가짜 자존감과 진짜 자존감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잘못된 자존감이 만들어내는 많은 부정적 감정들을 설명하면서 진짜 자존감의 바탕인 자기수용 – 자기사랑 – 자기존중에 관해서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이런 개인의 자존감 회복에는 ‘가짜 자존감’에 사로잡힌 우리 사회의 변화가 꼭 필요하고 개인의 의식 변화와 함께 우리 사회의 변혁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낮은 자존감이 아닌 누구의 자존감도 지켜주지 못하는 한국 사회 전반에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일시적인 힐링에만 매달리지 말고 타인과의 연대를 추구하는 진짜 자존감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각종 뉴스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혐오 문화'의 원인도 사회 각계각층이 서로 존중하지 못하는 세태가 개개인의 자존감을 손상시킨 것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나의 자존감을 강화시키는 방법 역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세상을 바꿔야 하고, 그것을 위한 연대와 실천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주장입니다. 자존감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순간, 잘못된 기준에 치중하는 '가짜 자존감'에 사로잡힐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자기능력을 과소평가하면서 생기는 마음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에서 높이 평가하는 가치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진짜 자존감', 건강한 관계에서 비롯된 진정한 행복을 쫓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독창적인 관점으로 자존감에 대해 새롭게 분석해냈습니다. 자존감의 심리학에서 주목하지 못한 자존감의 이면을 조명하는 동시에 건강한 자존감을 위한 실천적인 방안을 제시한다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사회적인 문제로 비롯된 가짜 자존감, 하지만 나부터 과감하게 버리기는 쉽지 않은 듯합니다. 나 스스로도 건강하고 올바른 자존감을 가지기 위해 용기를 내고 당당해져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핀란드의 아이들은 자신의 가치가 성적에 따라서 평가된다고 믿지 않으며,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신이 잘하는 것을 발견하면서 자기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 ‘나는 축구를 잘해’, ‘나는 그림을 잘 그려’, ‘나는 조립을 잘해’와 같은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의 사회적 가치와 능력을 높이 평가함으로써 자존감이 정상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 P66

반면 자존감이 낮으면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대인 관계에서 전반적으로 자신이 없어서 사회적 장면에서 위축되며, 매사 수동적이다. 특히 자신의 부적절함을 항상 의식한다. 내가 못난 사람이라서 이 사람,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일종의 자격지심 혹은 자신이 현재의 사회적 장면에서 정상적인 역할이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여 타인들을 실망시킬 것이라는 대인 관계에서의 불안이 심한 것이다. 또한 열등감이나 자기혐오가 심해서 저항이나 자기주장을 거의 하지 못하며, 방어적이고 폐쇄적인 태도로 외부 세계를 대하고 부정적인 사고를 한다.
- P113

잘못된 기준으로 사회적 비교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사람을 차별 대우하는 것이 잘못이며, 이야말로 자존감의 요건인 자기존중의 가치를 손상시키는 주범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건강한 자존감을 세우는 첫걸음은 사회적 비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서 시작될 것이다
- P201

자존감을 정상화시키는 첫걸음은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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