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는 논어 한마디 - 거친 물결에 흔들리는 삶을 잡아줄 공자의 명쾌한 해답
판덩 지음, 이서연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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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를 읽다보면 우리가 아는 좋은 말, 좋은 표현들을 발견하고 놀라는 일이 많습니다. 아마 그 당시에 널리 쓰이던 말들을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사용한 것이겠지만, 그 말들이 지금까지 전승되고 널리 쓰여지고 있는 데는 논어의 덕도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공문십철에 해당하는 제작들의 이야기 속에 담긴 공자의 명언들이 담겨있습니다. 공자가 늘 강조했던 어짊, 중용, 효와 충, 그리고 군자다움에 이르기 위해 갖추어야 할 덕목들을 알 수 있습니다.

p36 공자가 말하는 ‘어진 사람’과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외부 환경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다

어진 사람 vs 지혜있는 사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와 원래의 의미가 다른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어진 사람’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어진 사람이란 ‘사람이 좋다’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공자는 오직 인자(仁者)만이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고 사람을 싫어할 수도 있다고 하니 공자에게 어진 사람은 부드럽기보다 단호합니다.

세상에 지혜로운 사람 있으면 어진 사람도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호기심이 많아 물처럼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고 항상 돌아다니며 새로운 곳에서 즐깁니다. 반면 어진 사람은 의리를 편안히 여기고 산처럼 중후하여 한 곳에 가만있기를 좋아하고 마음이 고요해 물질에 집착하지 않아 오래 삽니다.


p107 어진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스승처럼 생각해서 닮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어질지 못한 사람을 보면 타산지석으로 여겨 그를 닮지 않기를 다짐해야 한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함께 살아가려면 갖추어야 할 덕목이 필요한데 그 덕목이 바로 인(仁)입니다. 인(仁)은 ‘어질게 살다’ 는 뜻이고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도움을 주면서 협력해서 살아가는 방법을 말합니다. 그런데 서로를 어질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법도가 있는데, 그것을 공자는 예(禮)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인(仁)과 예(禮)만 있으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인(仁)을 강조했습니다.

p213 공자가 강조한 것은 배움에 대한 애착이다. 어짊의 경지가 높든 낮든 누구나 배울 수는 있다. 그리고 배움을 좋아한다는 것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다

공자의 仁은 배움(學)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많이 배울수록, 많이 알수록, 많이 사색할수록 그런 사람은 첫째,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청빈을 좋아하게 되고, 둘째,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려서 노여움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고 같은 잘못을 두 번 범하지 않으며, 셋째, 항상 마음에 ‘기쁨’(樂)이 스며 있어서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그 존재의 즐거움이 변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p293 공자는 배움을 ‘아는’사람보다는 ‘좋아하는’사람이,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즐기는’사람이 더 낫다고 말한다

학문(學問)이란, 말 그대로 ‘물을 문(問)’, 묻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인지 논어는 제자들과 공자가 서로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공자는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은 신분을 따지지 않고 누구라도 배울 수 있게 해주었지만, 질문하는 사람에게만 가르침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냥 듣고 배우는 과정은 지식은 쌓을 수 있지만 지혜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 알고 싶고 궁금한 문제에 대해 묻고 답을 얻어가는 과정에서 지혜가 만들어집니다.

공자는 배움에 있어서 중요한 세 가지를 알려주었습니다. ‘묻고, 배우고, 생각하기’ 이것이 논어를 통해 공자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공부마인드입니다

p86 우리 인생의 수련 목표는 군자의 부분을 키우고 소인의 부분을 줄이는 것이다. 군자의 궁극적인 경지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상태일 것이다

군자 vs 소인

군자는 의(義)를 밝히고 소인은 이(利)를 밝힙니다. 논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공자의 말씀 중 인(仁)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말은 군자(君子)입니다.

군자와 소인의 차이는 의(義; 의로움, 올바름)와 이(利; 이로움)의 차이라 했듯이, 군자는 ‘올바름’을 기준으로 처신하고 소인은 ‘이로움’을 기준으로 처신합니다. 인간 관계를 맺는데도 군자는 올바름으로, 소인은 이로움으로 관계를 맺습니다

군자와 소인의 차이는 결국 크게 나누어서 의리관계와 이해관계로 구별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군자는 정의를 위해서는 목숨마저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소인은 마찬가지로 자기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는 생명을 건 모험도 서슴치 않는 것입니다.


p119 공자의 최종목표는 방탕하게 행동하지도 않고 자신을 너무 구속하지도 않는 평온한 ‘중용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유학에 대한 소양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에게 유학의 최고 덕목이 뭐냐고 물으면 거의 ‘仁’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공자는 중용이 최고 덕목이라고 말한 바는 없지만, 공자의 사상에서 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p313 중용은 가장 알맞은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다. 모든 일을 알맞게 하려면 끊임없이 고민하고 탐구하고 연구해야 한다

공자가 말하는 중용이란 것은 태도로서의 규범입니다. 그것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닙니다. 中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기'라는 뜻이고, 庸은 '평범하기'라는 뜻입니다.

아랫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공자는 3천 명의 제자를 두었다고 전합니다. 제자들 중에는 여러 가지 재주를 가진 이들이 많았는데, 특히 자공(子貢)은 재산을 모으는데 뛰어난 재주가 있어서 공자가 생활하는데 대부분의 자금을 부담했습니다.

공자에게는 권위주의가 없습니다. 모르는 것은 누구에게든지 묻는 것이 곧 호학입니다. 배움(학學)이란 묻는 것(문問)입니다. 물음이란 묻는 대상을 가리지 않습니다. 아랫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진솔하게 물을 줄 아는 성품이 지도자의 제일의 덕성입니다.

우리는 말이 많은 시대에 살고 있다. 타인이 칭찬하고 인정해 주어야 올바른 일임에도, 자기 입으로 자기를 자랑하고 다니면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신을 한 인간으로 생각하기보다는 하나의 상품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을 타인에게 스스로 내다 팔고 있는 것입니다.

안다는 것은 단순히 머릿속에 지식을 많이 지니고, 남에게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통해 조금이라도 이웃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도움을 주는 의미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p258 인생을 열심히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일상을 부지런히 사는 것이다. 그리고 어짊은 매일 매일 그 부지런한 수신과 성찰의 노력 끝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흔히 당연한 얘기를 ‘공자님 말씀’이라고 비유하듯이 ‘논어’에 등장하는 공자의 말은 너무나 당연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논어를 읽는 즐거움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인간다움을 깨닫는데 그 뜻이 있습니다.

현실의 삶이 팍팍하고 힘들수록 고전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다. 고전 속에는 그 길이 있습니다. 길을 알면 살아갈 삶에 대한 답이 보이고 의욕과 용기가 생길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논어와 같은 고전을 한 번 읽어 보지 못하고 죽는다면 정말 억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가져 보면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고 말한 공자의 힘찬 문장을 다시 한 번 마음 속에 새겨봅니다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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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5-16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