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 완결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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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자연과 교류해온 것은 태고서부터 있어왔던 일입니다. 인류는 숲을 산책하거나 바다와 같은 거대한 자연을 접하면서 그 자연 안에서 불안을 해소하고, 또한 원기를 회복하면서 자연의 힘으로부터 나오는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해왔습니다. 그러나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 등으로 인해 인간이 자연을 접할 기회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1845년 소로우는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 있는 월든 호수가로 도끼 하나 들고 들어가 통나무집을 짓고 살기 시작합니다. 소로우가 직접 지은 집의 살림살이는 벽난로·철제 침대, 그리고 의자3개가 전부였습니다. 그는 호수가 숲 속에서 6주만 일하여 1년을 사는 새로운 경제원리를 터득합니다.

이 책은 저자 소로우의 ‘숲생활’의 산물입니다. 그의 정신적 자서전이라 할 이 책은 소로우 생전에는 그닥 빛을 보지 못하였지만 사후 찬란한 빛을 발합니다.

고독하지만 자유롭게 살아가는 방식을 경험한 소로우는 그 생활을 꼼꼼하게 기록하여 20세기의 우리들에게 남겨주었습니다. 그의 기록은 숲에서 만난 사람들, 가계부, 독서, 동물들의 생태, 계절의 변화 등 어느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정밀하게 포착합니다.

법정스님이 이 책을 읽고 권했다고 하기도 하고, 하도 유명해서 저도 한 번 제대로 읽어보고 싶어서 사놓은 책이었습니다. 책으로 만나본 소로는 생각보다 훨씬 강직한 내면의 소유자였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삶의 방식을 고수하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경험하고 지혜를 발견해냅니다. 문장들이 수려하고 자연의 아름다움, 심플한 삶의 모습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읽을 가치 충분한 책이고, 그의 철학과 실천하는 용기에 감탄은 하지만, 감히 흉내도 못낼 것 같습니다. 그래도 노년에는 저도 제주도나 강원도 같은 곳의 숲 속에서 1~2년 정도 살면서 전원생활을 누리고 싶다는 바램을 가지게 됩니다.

인간이 향상하려면 자신의 무식을 항상 기억해야 하는데, 자기가 아는 바를 수시로 사용해야만 하는 그가 어떻게 항상 자신의 무식을 기억할 수 있겠는가?
- P20

그곳에서는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세계를 관찰하는 법은 가르치지만, 육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화학은 공부하되 자기의 빵이 어떻게 구워지는가는 배우지 않으며, 기계학은 배우되 빵은 어떻게 버는가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는다. 해왕성의 새로운 위성은 발견해내지만, 자기 눈의 티는 보지 못하며 또한 자기가 지금 어떤 악당의 위성 노릇을 하고 있는지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한 방울의 식초 안에 사는 괴균들을 연구하면서 자기의 주위에서 우글거리는 괴물들에게 자신이 잡아먹히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 P75

내가 숲속에 들어간 이유는 신중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하기 위해서, 그리고 인생에서 꼭 알아야 할 일을 과연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 P108

나는 각자가 자기 자신의 고유한 길을 조심스럽게 찾아내어 그 길을 갈 것이지, 결코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이웃의 길을 걸어 가지는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 P111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다
- P129

우리 뉴잉글랜드 주민들이 현재와 같이 비천한 생활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물의 표면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지지 못했기 떄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오직 진실만을 본다고 한다면 이 마을의 중심부인 ‘밀담‘은 어디로 가겠는가?
- P139

자연 가운데 살면서 자신의 감각 기능을 온전하게 유지하는 사람에게는 암담한 우울이 존재할 여지가 없다. 건강하고 순수한 사람의 귀에는 어떤 폭풍우도 ‘바람의 신‘의 음악으로 들릴 뿐이다. 소박하고 용기 있는 사람을 속된 슬픔으로 몰아넣은 권리를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 P188

흙은, 특히 신선한 흙은 그 안에 어떤 자력 같은 것이 있어서, 그 자력으로 생명력을 주는 염분과 힘을 흡수한다. 우리가 늘 흙을 뒤집고 파헤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인분 비료나 기타 다른 더러운 퇴비를 쓰는 것은 이 개량법에 대한 차선책에 불과하다
- P197

9월이나 10월의 이런 날 월든 호수는 완벽한 숲의 거울이 된다. 그 거울의 가장자리를 장식한 돌들은 내 눈에는 보석 이상으로 귀하게 보인다 지구의 표면에서 호수처럼 아름답고 순수하면서 커다란 것은 없으리라. 하늘의 물, 그것은 울타리가 필요 없다. 수많은 민족들이 오고 갔지만 그것을 더럽히지는 못했다. 그것은 돌로 깰 수 없는 거울이다. 그 거울의 수은은 영원히 닳아 없어지지 않으며, 그것의 도금을 자연은 늘 손질해준다. 어떤 폭풍이나 먼지도 그 깨끗한 표면을 흐리게 할 수는 없다. 호수의 거울에 나타난 불순물은 그 속에 가라앉거나 태양의 아지랑이 같은 솔이, 그 너무나도 가벼운 마른 걸레가 쓸어주고 털어준다. 이 호수의 거울에는 입김 자국이 남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입김을 구름으로 만들어 하늘로 띄어 올리는데, 그 구름은 호수의 가슴에 다시 그 모습이 비친다 - P283

단 한 차례의 이슬비에도 풀빛은 한층 더 짙어진다. 마찬가지로 보다 나은 생각을 집어넣을 경우 우리의 전망도 더 밝아진다. 만일 우리가 언제나 현재에 살면서, 조그만 이슬 하나로부터 받은 감화까지도 고스란히 털어놓는 저 풀잎처럼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일들을 이용한다면, 그리고 과거의 기회를 무시한데 대한 보상을 의무로 여기고 거기에 송두리째 시간을 보내지만 않는다면 분명 축복을 받을 것이다.
- P382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라. 그 북소리의 박자가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 P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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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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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공부'는 입시나 취업 등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스트레스와 압박을 동반하면서도 세속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무언가 이득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그게 진짜 공부일까요?

책의 저자인 타라는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믿는 모르몬교 근본주의자 아버지와 산파이자 동종요법 치유사로 남편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어머니 아래서 1986년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자녀의 학교 교육을 거부하고, 의사를 믿지 않는 아버지로 인해 그녀는 9살이 돼서야 ‘생후 출생증명서’를 받습니다. 또래 아이들이 친구들과 관계를 맺으며 학교에 다닐 때에도 그녀는 아이다호의 산골에서 아버지를 도와 폐철 처리장에서 일하거나 어머니를 거들며 삽니다.

하지만 교육에 관심이 많고 먼저 대학에 진학한 오빠 덕분에 그녀 또한 대학을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의 대학 진학을 반대합니다. 결국 대학에 진학을 했지만 그녀가 마주친 대학이라는 세상은 그동안 그녀가 살아왔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습니다. 그녀는 대학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녀는 최우등으로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교에 매료된 그녀는 게이츠 장학금을 받고 캠브리지 대학원에서 다시 공부를 하기 위해 영국으로 떠나고,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했고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사실 기초교육을 전혀 못받은 사람이 독학으로 이런 성과를 이루어 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엄마에게 글을 읽는 법과 간단한 수학 풀이 정도만을 배운 그녀가 혼자의 힘으로 공부를 해 나갈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일까요? 책을 읽으면서 그 비결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결국 그녀의 비결도 '끈기'와 '성실함' 이었습니다. 즉, 일기를 매일 쓰는 성실함과 자연을 통해 배운 성실함이었습니다. 산에서 자란 그녀는 거대한 자연이 순환되는 모습을 보며 자라났고, 그 성실함 속에서 많은 배움의 진리를 자연스레 체득했을 것입니다. 또한 그녀는 유년시절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고 합니다. 학교를 다니지 못했지만 일기를 쓰는 동안 '사색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매일의 '사색과 글쓰기'가 어려운 공부를 이겨 내게 만든 '비장의 무기'가 되었으리라 짐작해봅니다.

주인공이 대단하게 느껴진 이유는 그녀가 공부를 하며 이루어 낸 결과물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포기하지 않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정신적으로 세뇌되어진 채, 세상과 단절되어 무지했고 자존감이 낮아 두려움에 떨어 왔습니다. 그런 그녀가 두려움을 통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은 너무나 힘들어 가슴 아프고 안타까웠지만 그만큼 감동적이었습니다.

가정이 나의 둥지가 되지 못하고, 부모가 보호막이 되지 못한채, 신체적, 정신적 학대에 그대로 노출 된 어린시절을 겪었음에도,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교육계에서 최고의 위치까지 올라간 부분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직 굉장히 젊은 나이인데 자신의 기억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못하고 갈팡지팡하는 작가의 모습도 뭔가 불안정했고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새삼 정말 어린시절 부모의 인정과 보호가 아이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는 책이었습니다. 또, 타일러, 리차드, 타라를 보면서 결핍이 때로는 성장에 대한 굉장한 동기가 될 수도 있구나 하는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자신의 꿈에 대한 분명한 목표의식을 세운 후에,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남의 도움이 아닌, 자신의 엉덩이로, 자신의 몸으로 해나가면서 자기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산에서 살면 뭔가 주체적인 인상을 풍기게 된다. 프라이버시와 고립감, 심지어 지배에 대한 감각이 몸에 배어서일 것이다. 산이라는 광대한 공간에서는 아무도 없이 혼자서 소나무와 덤불과 바위들 사이를 몇 시간이고 누빌 수 있다. 그곳에는 광대무변한 공간감에서 나오는 고요함이 있다. 그 엄청난 규모 앞에서는 차분해지고, 인간과 같은 하찮은 존재는 전혀 중요치 않아 보인다. 진은 그렇게 산이 거는 최면, 인간 세상의 드라마를 뛰어넘는 깨달음으로 만들어진 사람이었다
- P55

삶을 이루는 모든 결정들, 사람들이 함께 또는 홀로 내리는 결정들이 모두 합쳐져서 하나 하나의 사건이 생기는 것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모래알들이 한데 뭉쳐 퇴적층을 만들고 바위가 되듯이
- P75

이것은 그날 밤의 기억, 이후 10년 동안 그와 같은 수많은 밤들의 기억을 규정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나 스스로를 부서뜨릴 수 없는 돌과 같은 존재로 보게 됐다. 그런 다음에야 나는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그 경험이 내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오빠는 내게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내게 영향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생각이 얼마나 소름끼치도록 맞았는지 그때만 해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나 자신을 내 안에서 비워 낼 수 있었는지를. 그 밤의 경험이 끼친 영향에 대해 집착적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장 중요한 진실을 잘못 이해했던 것이다. 그 경험이 나에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 그 자체가 그 경험의 영향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 P182

대학은 나랑 상관이 없는 곳이었다. 나는 내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이미 알고 있었다. 열여덞이나 열아홉살이 되면 결혼을 할 것이고, 아버지는 농장 한 구키퉁이를 떼어 줄 것이고 내 남편은 거기다 집을 지을 것이다. 엄마는 내게 약초와 산파 일을 가르쳐 줄 것이다. 이제 편두통을 앓는 빈도가 줄어들면서 다시 산파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를 낳을 때가 되면 엄마가 분만을 도와줄 것이고, 언제가, 아마도 나도 산파가 될 것이다. 그 인생 어디에 대학이 들어설 자리가 있을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 P200

모든 것이 지워지고 나면 그 자리에 무엇이 메울까? 나는 미래를 상상해보려고 애썼다. 교무들, 과제, 교실들로 가득 찬 미래. 그러나 어떤 그림도 머리에 떠오르지가 않았다. 내 상상 속에는 미래가 없었다. 12월 31일이 올 것이고 그다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P241

그 단어와 그 단어를 사용하는 숀 오빠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오직 그 단어를 듣는 내 귀뿐이었다. 내 귀는 그 안에 담긴 농담을 더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내 귀에 들린 것은 시간을 관통해서 울리는 신호음이자 호소였고, 나는 거기에 점점 더 강해지는 확신으로 응답했다. 이제 다시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갈등에 내가 꼭두각시로 이용되도록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 P288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확실히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에 휩쓸리길 거부한 것은 내가 그때까지 한번도 나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은 특원이었다. 그때까지의 내 삶은 늘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로 서술되어져 왔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강하고, 단호하고, 절대적이었다. 내 목소리가 그들의 목소리만큼 강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 P312

모두들 자기도 모르게 뭔가를 벌충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높이 때문에 겁이 나니까 몸을 낮추고 있잖아요. 하지만 몸을 웅크리거나 옆으로 걷는 건 부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그렇게 하면 오히려 더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킬 뿐이에요. 두려움만 통제할 수 있으면 이 바람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 P372

그에 따르면 적극적 자유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는 것, 스스로를 스스로가 다스린다는 의미였다. 그는 적극적 자유를 갖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이성과 감성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비이성적인 두려움이나 믿음, 중독, 미신을 비롯한 모든 형태의 자기 강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말이다.
- P399

내 수치심은 철컥철컥 돌아가는 전단기의 칼날로부터 나를 밀어 내는 대신, 오히려 그쪽으로 나를 밀어 넣는 아버지를 가졌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었다. 내 수치심은 내가 바닥에 엎드려서 목을 눌리고 있는데도 바로 옆방에서 엄마가 눈과 귀를 막고, 그 순간 내 엄마가 내 엄마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었다.
- P424

이유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내가 거울로 들어가고 나 대신 거울 속의 열여섯 살짜리 소녀를 내보내지 못한 그 순간이 바로 극의 절정이었다.
내 학업 성적이 아무리 우수하고 내 겉모습이 아무리 많이 변했어도 나는 여전히 그 소녀였다. 좋게 봐준다 해도 나는 두 사람이었고, 내 정신과 마음은 둘로 갈라져 있었다. 그 소녀가 늘 내 안에 있으면서, 아버지 집 문턱을 넘을 때마다 모습을 드러냈다.
그날 밤 나는 그 소녀를 불렀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떠난 것이다. 그 소녀는 거울 속에 머물렀다. 그 이후에 내가 내린 결정들은 그 소녀는 내리지 않을 결정들이었다. 그것들은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 P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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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 도시로 읽는 세계사 - 세계 문명을 단숨에 독파하는 역사 이야기 30개 도시로 읽는 시리즈
조 지무쇼 엮음, 최미숙 옮김, 진노 마사후미 감수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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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자연을 창조했다면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5500여년 전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형성됐던 인류 최초 도시 수메르에서 고대문명이 탄생했습니다. 계급사회가 만들어지고 부유층과 빈민층이 생기면서 빈부 격차가 발생했습니다. 지적 활동의 산물인 문명도 탄생했습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이들의 편향일수도 있지만, 역사의 큰 줄기가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도시를 통해서 세계사를 엿보는 이런 책은, 어쩌면 단순해 보일지 모르지만 또 찾아보면 그렇게 예가 많지도 않습니다.

이 책의 특징이라면 각각의 장에서 한 도시의 역사만을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공간인 도시의 역사를 중심으로 세계사 주요 흐름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세계 문명의 중심지였던 로마, 아테네, 파리, 베이징, 테오티우아칸, 이스파한, 사마르칸트 등 30개의 역사 이야기가 풍성하게 펼쳐집니다. 간결하면서도 적절한 사진이 같이 실려 있어서 이해가 쉬웠습니다.

백과사전 방식으로 해당 도시의 정보를 순서대로 나열하면서 전개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관심가는 도시를 골라, 다양한 도표와 사진 자료와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해당되는 도판, 지도의 출처를 표시해서 독자의 편의를 고려한 것도 돋보입니다.

학창시절 세계사는 제게 과목이라기보다는 애써서 외워야 하는 골치 아픈 과목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사를 도시를 통해 재정리 할 수 있겠다’ 싶은 책이었습니다.

오늘날 역사 공부, 특히 그중에서도 세계사 공부는 앞으로 도래할 시대에서 필요한 지식이 갖추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학교와 학원을 통해 접한 역사는 대체로 암기 형식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시대에 따라 일어난 사건을 달달 외우고, 그 역사적 사건의 속에 있는 시대적 정치적 배경을 이해하는 일은 서툴렀습니다. 그렇게 역사는 곧 외우는 일이 되어버려 재미없는 일로 굳어졌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암기를 하는 역사가 아니라, 각 도시의 역사를 하나의 줄기로 엮은 '이야기로서의 세계사'를 이해한다면 세계사 공부가 더 이상 어렵기만 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세계사를 처음 접하는 학생들은 물론, 세계사를 전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성인들까지 세계사를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줄만한 책입니다.

*본 포스팅은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고대 그리스 건축양식은 대체로 힘차고 장엄한 느낌이 특징인 도리아식, 우아한 소용돌이 모양이 특징인 이오니아식, 화려한 장식이 특징인 코린트식으로 나뉜다. 파르테논신전은 도리아식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 P48

베이징을 수도로 정한 이유는 중화민국의 수도 난징이 국민당의 거점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적 이유로 마오쩌둥은 베이징을 수도로 선택했는데, 항간에는 같은 사회주의를 내건 소련이나 몽골과 가깝기 때문이라는 설도 떠돌았다
- P168

1889년에는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계 만국박람회가 열렸다. 이때 7구의 센 강변에 높이 300미터가 넘는 ‘에펠탑’이 세워졌다. 석조 건축물이 대부분이었던 당시에 철골 노출형의 이 거대한 탑이 공개되자 파리의 경관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하지만 이 탑은 점차 관광명소로 자리잡으며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게 되었다
- P251

미국은 20세기 냉전체제의 종결과 동시에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되었지만, 2001년 9월 11일에 일어난 동시다발적 테러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이때 뉴욕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곧 다시 부흥에 힘써 새로운 세계무역센터빌딩을 세웠다
- P289

1973년에는 독특한 외관으로 유명한 시드니오페라하우스가 완공되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현상공모전에서 채택된 덴맠 건축가 예른 웃손의 도안으로, 직경 75미터의 구체를 분할한 곡면을 겹친 독특한 형상의 건물을 수작업으로 설계한 것이었다. 장장 14년의 공사기간을 들여 완공된 이 오페라하우스의 개장식에는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도 참석했다
- P320

2010년에는 상하이 만국박람회가 열렸고, 높이 632미터의 상하이타워를 필두로 상하이세계금융센터 등 여러 고층건물이 세워졌다. 이어 상하이 디즈니랜드나 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벅스 매장이 출점하는 등 상하이는 세계적인 대도시로 성장했다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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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12가지 신소재 - 문명의 기반이 된 '철'부터 미래를 이끌 '메타물질'까지!
사토 겐타로 지음, 송은애 옮김 / 북라이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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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는 만물의 기초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인간의 발전에 끼친 막대한 영향에 비해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신소재로 둘러싸여 있지만 그것의 역사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이 책은 금, 도자기, 콜라겐 등 다양한 재료들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바꿨는지에 대해서 흥미롭게 다루고 있습니다. 세계 속에서 삶의 변화를 일으킨 재료에 대한 전반적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설명과 역사적 이야기를 함께 다루고 있어서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1. 금

금의 색이 은백색이나 청색이었다면 세계 역사와 경제는 바뀌었을 것이며, 지금보다 평

화로웠겠지만 따분한 세상이 아니었을까요? 세계를 움직이는 금, 은, 동은 반짝 거리며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물질들입니다.

특히 금을 차지하기 위해 수 많은 전쟁이 일어났고, 손에 닿는 것은 모조로 금으로 변화

시키는 미다스의 왕에 대한 신화이야기까지도 만들어졌습니다. 앞으로도 금에 대한 가치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금 값이 수시로 변동되기는 하지만 ‘금=현금’이라는 말이 있듯

이 유사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금을 확보하려고 할 것입니다.

2. 도자기

우리 집에서도 식사를 할 때 여러 종류의 도자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두께도 모두 다르고

형상도 모두 다릅니다.

인류 최초이 발명품이 그릇이란 사실은 매우 당연해 보입니다. 어느 박물관에 가더라도

시대별로 그릇의 진화과정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도자기의 역사는 얼마나 하얀 그릇

을 만들어 내느냐의 역사라고 합니다.

도자기는 우리 생활에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입니다. 최근에는 화학 합성기술로 파인세라

믹을 만들어 냈고, 매우 강도가 높은 도자기가 만들어 지고 있습니다.

3. 콜라겐

콜라겐이 구석기시대부터 사용되며 여러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내용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콜라겐은 피부뿐만 아니라 뼈의 주요성분이기도 한데, 동물의 뼈와 힘줄은 인류에게 중

요한 재료였습니다. 인간이 먹이사슬의 꼭대기로 올라설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도 콜라겐을 사용한 무기 덕분입니다.

최근에 콜라겐은 의료분야에도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세포와 세포를 붙이는 재료로, 상

처를 꿰매는 실로, 성형수술이후에도 콜라겐을 주입하거나 인공 연골을 만드는 재료로

도 사용됩니다. 동물이 만들어낸 최고의 재료는 단연 콜라겐이라 하겠습니다.

4. 플라스틱

인류 역사에서 다른 재료의 영역을 가장 많이 빼앗은 플라스틱은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재료입니다. 우리는 플라스틱 섬유로 된 옷을 입고, 플라스틱 식기로 음식을 먹으며 플라스틱 카드로 돈을 냅니다. 가볍고 튼튼하며 적은 비용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장점으로 우리 일상이 윤택해지고 간편해졌지만 지금 세계는 플라스틱 아일랜드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해양에 유출돼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특이했던 점은 분명 세계사 책인데 과학, 거기서도 특히 화학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금에 대하여 어떻게 금이 생겨났는지 신화 속 이야기나 그곳에 얽힌 실제 역사, 그리고 모두가 갈망하는 금이지만 금 자체는 어떤 일에 딱히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삶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 쉽게만 생각하고 있지 않았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성질을 가진 재료의 등장에 사회가 뿌리째 바뀔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지금 전 세계 과학계는 새로운 재료의 발견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국가마다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어떠한 재료를 찾고 개발하느냐가 나라의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입니 다. 앞으로 세계는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한 재료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 갈 것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의 위대한 발견에 감사하고 미래의 새로운 발견을 기대하며 무한 경쟁 시대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책입니다.

역사적으로 신소재와 기술의 발전은 인류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미래를 더욱 편리하고 안전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신소재로 정의되는 새로운 시대를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미래에는 어떤 신소재가 우리의 역사를 바꿀지 궁금해집니다.

문명이 한 단계 위로 나아가려면 다양한 요인이 필요하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 사람들의 의식 변화, 정치와 경제, 기상과 재해 등 수많은 요소가 얽혀서 필요한 조건이 하나라도 빠지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훌륭한 신소재는 다른 요인보다 출현하기가 극히 어렵다. 그래서 ‘시대가 원하는 재료의 등장이 바로 세상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결정타, 즉 속도결정단계가 아닐까‘라는 것이 내가 세운 가설이다
- P9

근래에 탄생한 인공지능은 점점 더 우수한 신소재를 만들어내고 있다. 요즘 인공지능이 인류의 능력을 뛰어넘어 더 우수한 인공지능을 설계하는 ‘싱귤래리티‘가 자주 거론되는데, 이미 재료의 세계는 이와 비슷한 상황이 되었다
- P257

재료란 ‘물질 중에서 인간 생활에 직접 도움이 되는 것‘이다. 여태까지 알려진 물질의 수는 1억 4,000만 개가 넘지만 그중 ‘직접 도움이 되는 것‘은 극소수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재료는 인류가 오랜 시간을 들여 찾아내고, 가려내며, 개량함으로써 무에서부터 창조해온 흡사 슈퍼 엘리트 같은 물질이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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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보다 강한 실 - 실은 어떻게 역사를 움직였나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지음, 안진이 옮김 / 윌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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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최고의 발명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보통 전기가 1번으로 많이 언급되고, 먹는 피임약도 빠지지 않습니다. 피임약은 여성인권과 인구제한을 통한 식량과 질병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했다고 합니다.

누에의 똥과 양의 털 그리고 목화의 꽃같이 허접해보이는 먼지뭉치를 풀어서 실을 만들고, 그 거미줄보다 변변치 못한 실을 다시 엮어서 옷감을 만든 것 말입니다. 이제는 나일론을 거쳐 고텍스, 기능성 섬유에 이르기까지 발전한 천(fabric)은 정말 위대한 발명입니다.

몸에 난 털이 짧아 외부온도에 약한 인간은 반드시 옷을 입어야 하는데, 이 옷을 만드는 천이 너무 튼튼해서 인류는 의식주 중에서 맨 앞에 나오는 ‘의’는 확실히 극복했습니다. 튼튼하다보니 버려진 옷들도 입을만 해서, 아사 직전의 빈국 사람들이나 전쟁 피난민들 사진을 봐도 의복만큼은 크게 험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그들이 처한 어려움이 혹시 엄살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생길 지경입니다. 이제 옷은 보온기능을 넘어 자신을 나타내는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튼튼한 청바지를 찢어 구멍을 내고는 인습으로부터의 자유를 표현하고, 옷감을 절약할 목적이 아님에도 몸을 간신히 가리는 옷을 입고는 자신의 섹시미를 어필하는 세상입니다. 현대의 과학기술이 의복 문제는 완전히 해결했다고 생각합니다. 의복에 가장 기본 바탕이 되는 것이 실입니다.

이 책은 직물과 실에 대한 13가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리넨으로 시체를 감싼 이집트인들, 고대 중국의 비단 제작의 비밀, 중세 유럽 왕족들의 레이스 경쟁 등 특별한 직물과, 인간 한계를 넘기 위한 우주복 이야기, 전신 수영복 이야기도 다루고 있습니다. 힘과 권력에 가려졌던 그 뒤에 숨은 인간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실과 직물로 떠올릴 수 있는 제품은 옷이나 가구의 가죽 정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실이 익숙하게 존재하지 않았던 ‘발견’과 ‘발명’의 의미가 있던 때 직물은, 어떤 일의 가능과 불가능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정 장소에서 예측 가능한 옷의 기능 외에 직물은, 사람과 일종의 상호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책 곳곳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실과 직물은 잘 썩기 때문에, 또 주로 여자가 취급하기 때문에 역사에 기록되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류에 미친 영향이 작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실을 통해 역사를 보는 것은 권력과 힘이 만들어낸 역사의 한 장면만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작지만 끈질기게 역사를 움직여온 일상을 발굴하는 일입니다. ‘실과 직물의 역사’가 남성 중심적 역사의 뒤편으로 밀려났다는 것이 이 책의 관점입니다. 당연히 저자는 그것을 다시 복구하겠다는 의지를 책 곳곳에서 내비치곤 합니다.

옷은 외적인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게 해주었지만, 정작 레이스를 뜬 사람에겐 그것을 걸칠 기회는 아예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자유와 화려함을 과시하는 매체인 직물이 노예에게는 그들을 더욱 강하게 속박하는 일종의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어떤 이는 면 제조업 성공으로 부와 직업적 성공을 이뤘지만, 어떤 이는 그 공장에서 강도가 심한 노동으로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인류가 이렇게 여러 천들의 혜택을 받고 살 수 있도록 실과 바늘을 만든 위대한 발명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최초의 직물은 식물에서 추출한 섬유 또는 양과 염소에서 뽑은 털로 만들어졌으며, 원시시대 인류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도구였다. 직물은 무기보다도 중요했다. 직물은 몸을 보호하고, 따뜻하게 해주고, 나중에는 지위의 시각적인 상징물이 됐다. 또 직물은 인류의 가장 매력적인 자질 중 하나인 창의력을 발휘하는 통로를 제공했다. 불에 타버린 트로이의 어느 집에서 만들어지고 있었을 윤기 흐르는 천과 줏주아나 동굴의 섬유로 만들어진 물건들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우리는 앞으로도 그 물건들을 직접 볼 수 없을 것이고 그 물건들이 제작자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도 알지 못할 것이다. 다만 그 물건들을 만든 사람이 고민을 하고 정성을 기울였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다
- P58

비단은 대부분 중국에서 수출했다. 중국은 누에나방의 서식지인 동시에 누에의 먹이인 뽕나무가 많이 자라는 나라였으므로 자연스럽게 세계 최초로 양잠을 시작했다
- P120

고고학자들은 붓, 수건, 양동이 같은 도구를 가장 많이 쓴다. 사라 파칵에게는 다소 특이한 도구 하나가 더 있었다. 그 도구는 바로 인공위성이었다.
- P137

사각형 리넨을 돛으로 쓴다는 발상은 배의 중앙에 가림막을 높이 매달던 풍습에서 유래했다고 추측된다. 이런 풍경은 고대 유적에 묘사된 종교적 기념 의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배에 내걸린 가림막이 바람을 붙잡았기 때문에 배가 물살을 거슬러 움직일 수 있었을 것이다
- P143

양모 교역은 12세기와 13세기 시토 수도사들을 부유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들을 세속화했다. 그들이 거래하는 ‘하얀 금’의 양이 늘어날수록 수도사적인 이상과는 멀어졌다.
- P176

레이스는 그것을 두른 사람의 지위와 취향, 부를 과시하는 것 외에 별다른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 (...) 하지만 17세기 유럽 사회 사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레이스를 통해 겉치레를 하려는 욕구에 사로잡혀 있었다. 옷에 레이스가 없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고 한 마디씩 할 정도였다. 레이스가 인기를 끌고 비싼 가격에 팔리게 되자 레이스는 특권의 상징이 되었으며 고용을 창출했다. 레이스 생산량과 소비량의 증감이 국가들 간 외교 관계에 긴장을 초래하기도 했다.
- P187

푸앵 드 프랑스(베네치아산 레이스는 대체한 프랑스산 레이스의 이름)가 유럽 패션의 정점에 섰을 때 프랑스 레이스 직공들은 콜베르에게 감사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콜베르의 후임자들은 레이스 직공들을 그만큼 살뜰하게 보살피지 않았다.
- P201

데님이라는 이름은 그 직물이 처음 만들어진 장소에서 따온 듯하다. 원래 데님은 프랑스의 님Nimes이라는 도시에서 만들던 두꺼운 모직 서지serge(짜임이 튼튼한 모직물) 직물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장소에서도 값싼 면을 이용해 데님을 점점 많이 만들었고 ‘서지 데 님스serge de Nimes(님스의 서지)‘라는 말이 축약되어 ‘데님denim‘으로 변했다
- P242

면을 사용 가능한 직물로 가공하는 과정에서도 낭비가 많다. 청바지 1벌을 만드는 데 물 11,000리터가 소요된다. 게다가 청바지 염색에 사용되는 식물인 쪽도 이제는 대부분 합성해서 만든다. 청바지의 제작과 염색 과정에 사용된 후 배출되는 화학 물질은 시내와 강으로 흘러간다
- P246

두 원정대의 가장 큰 차이는 겉옷이었다. 영국 원정대는 개버딘(한 가닥 한 가닥 방수 코팅이 된 실로 촘촘하게 짠 가벼운 면 직물) 하의와 외투에 절대적으로 의존한 반면 로알 아문센의 원정대는 개버딘 위에 사슴 가죽이나 물개 가죽으로 만든 모피 웃옷과 바지를 입었다
- P253

거미줄은 경이로운 공학 기술과도 같다. 오직 단백질로만 구성된 거미줄은 대단히 질기고 원래 길이의 40퍼센트까지 늘려도 끊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의학과 군사용 바이오 기술에서 혁신을 일으키려는 사람들은 거미줄에 관심을 가지고 신경 재생술, 화려한 의류, 방탄조끼의 소재인 케블라의 대용품에 이르는 다양한 활용 방도를 제시한 바 있다.
- P368

이제 우리초창기 이집트 연구자들처럼 미라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보물을 찾기 위해 미라에 감긴 리넨을 북북 찢어낼 것이 아니라 고대 이집트인이 가지고 있었던 정성과 솜씨를 배워야 할 것 같다. 실제로 인류는 3만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섬유에서 실을 뽑아내고, 그 실로 옷감을 짜고, 뜨개질을 하고, 매듭을 지어 경이로운 물건들을 수도 없이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자잘한 곳까지 조금만 더 신경을 쓰자는 것은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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