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중록 - 최신 언어로 읽기 쉽게 번역한 뉴에디트 완역판, 책 읽어드립니다
혜경궁 홍씨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3월
평점 :
500년 조선왕실의 역사에서 최악의 비극으로 꼽히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사도세자의 비극에 대해서 지금까지 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제작됐지만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 모든 것을 겪은 '혜경궁'의 기록을 읽는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일 것입니다.
이 책은 6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권에서는 혜경궁 홍씨가 세자빈으로 궁에 들어온 뒤 시아버지와 남편의 사랑을 받은 일, 이후 정조를 낳고 환갑을 맞기까지의 여러 가지 일들을 순차적으로 나열하고 있습니다.
2,3권은 임오화변의 주체인 영조와 사도세자 부자간의 위태했던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세자의 비범한 탄생과 뛰어난 자질, 죽은 경종의 궁인들에게 세자를 보육하게 한 영조와 선희궁에 대한 원망, 사도세자의 비행으로 겪었던 마음고생, 임오화변 당시의 상황 등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1권에 비해 사건에 대한 혜경궁 홍씨의 주관적인 생각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4권에서 혜경궁 홍씨는 영조의 총애를 받던 화완옹주에게 세손을 돌봐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모자 사이가 서먹해지고 친정집에는 안 좋은 일만 계속됩니다. 이에 혜경궁 홍씨는 이 일들이 모두 모함이며, 그녀의 친정은 나라와 집안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5권은 화완옹주의 양자인 정후겸과 김귀주의 이간으로 혜경궁 홍씨 집안이 겪게 된 일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벼슬을 시켜주지 않은 일로 아버지 홍낙춘에게 앙심을 품은 홍국영이 훗날 정조의 신임으로 권력을 손에 쥐자, 혜경궁 홍씨의 중부 홍인한과 동생 홍낙임을 대역 죄인으로 몰고 간 일에 대해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홍국영이 자신과 정조, 중전과 정조 사이를 이간하며 세도를 누리려 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마지막 6권은 1~5권의 내용을 다시 정리하고 정조에게 후사가 없던 것을 걱정하던 중 가순궁이 순조를 낳은 일과, 정조가 순조에게 왕위를 양위한 후에 사도세자의 일과 외가의 죄를 씻어 주겠다고 그녀에게 약속했다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영조에서 정조, 순조에 이르는 조선 왕조 3대에 걸친 권력투쟁의 궁중정치는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욱 드라마틱한 현실의 역사입니다. 그녀가 체험한 역사적 사건 그 자체가 너무나도 기구하고 극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자신이 겪은 비극적인 사건을 아무리 말을 바꾸어 설명하려해도 그렇지 못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담담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과거를 회고합니다. 비록 안타까운 남편의 죽음과 몰락한 가문에 대한 억울함에 대해 호소하고 있지만, 그녀 특유의 섬세하고 우아한 표현, 담담함으로 당시의 정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건의 정황이나 인물들의 움직임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점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녀의 글에서는 애끓는 심정이 절절하게 드러납니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혜경궁과 가문의 인생이 휘둘리는 데도 속 시원하게 항변할 수 없었던 지난 세월이 있었으니 당연히 그랬을 것입니다.
혜경궁 홍씨는 왕비가 되기 위해 아홉 살 어린 나이에 궁으로 들어왔지만 왕후, 대비가 될 수 없는 신분으로 비운의 삶을 살다가 생을 마칩니다. 남편이 죽게 되었을 때도, 아버지가 귀양을 갈 때도 조용히 하늘의 뜻을 인정했습니다. 자기의 옮음을 버리고 궁중의 피 비린내 나는 싸움을 막고 자손을 지킨 혜경궁 홍씨의 지혜는 본받을 만합니다.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매정한 아버지로, 그의 아들은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아들로 역사에 남았지만, 이 작품은 사실에 근거하여 역사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축이 되어줄 소중한 작품이었습니다.
천지가 맞붙고 일월이 캄캄하게 막히는 변을 만나, 내 어찌 한시라도 세상에 머물 마음이 있으리오...한편 생각하면 열한 살 된 세손에게 크나큰 아픔을 주지 못하겠고, 내가 없으면 세손의 앞날은 어찌하리오. 참고 참아 모진 목숨을 보전하고 하늘만 보고 부르짖었다. - P61
새롭게 기억을 더듬으니 마음과 정신이 놀랍고 답답하며 간과 폐가 찢어지는 듯하여, 한 글자 한 글자가 눈물이 쏟아져 글씨가 써지지 않는구나.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또 어디 있으리오. 원통하고 억울하다 - P72
하지만 내가 본 것은 눈 앞에 생생하고 고통이 가슴에 박히어 어찌 써내라. 이제 이것을 써내려고 하니, 영조와 경모궁께서 하시던 일이 세상에 부족한 덕이 드러나실 듯하여 죄스럽지만 실상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으니 종이를 대하여 가슴이 막힐 뿐이다 - P92
무릇 하늘이 부자 두 분 사이를 그렇게 만드신 듯 하다. 아버니께서는 말고자 하시다가도 누가 시키는 듯 도로 미운 마음이 생겨나시고, 아드님은 아버지를 뵈올 때마다 숨기는 일 없이 당신의 잘못을 감추지 않으셨다... 하늘의 뜻이 어찌하여 이 조선에 만고에 없는 슬픔을 주시는지 애통할 뿐이로다 - P137
세손이 어린 나이에 세상에 없는 큰 아픔을 당하고, 또 왕가의 당치않은 변고를 당하셔서 지나치게 애통해 하셨다. 상복을 벗으실 때 곡읍하는 소리가 천지에 사무쳐 초상에 천지가 깜깜하게 꽉 막히던 때의 설움보다 더하셨다 - P195
모년의 일은 내가 차마 기록할 마음이 없었다. 다시 생각하니 주상이 자손으로서 그때의 일을 모르는 것이 망극하고 또한 옳고 그름을 분별치 못 하실까 민망하여 마지못해 이렇게 기록한다 - P201
임오화변의 계기는 부자간의 사이가 예사롭지 않으시기로 전전하여 된 일이니, 내 평생의 뼈에 사무친 지극한 한이요 원이로다. 영조 대왕께서 아드님께도 그러하셨으니 한 다리 먼 손자에게 또 어떠하실지 알리오. - P258
주상이 나이 어리시고 나라의 위태로움이 한 터럭 같은데 인심과 세태가 갈수록 이러하여, 마침내 어미도 몰라보는 세상이 되기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참으로 나라와 인륜을 생각하여 통곡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 P322
서럽고도 서롭도다! 차마 갑신년의 일을 어찌 다 일컬을 수 있으며 그때 몹시 애달프고 망극하여 모자가 서로 붙들고 죽을 바를 모르던 모습이야 어찌 다 기록할 수 있겠는가? 선왕께서 겪으신 지극한 아픔이 예로부터 제왕가에 없는 일이니, 비록 나라를 위하여 임금의 자리에 임하시나 한평생 아픔을 품으시고 추모하심이 해가 갈수록 더욱 깊어지셨다 - P3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