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as Grace (Paperback) - 마거릿 애트우드 『그레이스』원서
마거릿 애트우드 / Little, Brown Book Group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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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 소녀가 두 사람을 죽인 죄로 갇혔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그날의 기억이 없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이라면 이 말을 믿으시겠어요?

오늘 소개할 책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Alias Grace》입니다. 한국에는 《그레이스》로 소개되었습니다. 실제 사건에서 출발한 역사 심리 소설이고, 영어 원서로는 중상급 이상의 난이도입니다. 


기억이 없는 살인범

주인공 그레이스 마크스는 아일랜드에서 캐나다로 이민 온 하녀입니다. 어머니는 이민선에서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폭력적인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일찍부터 남의 집에서 일하던 그레이스는 같은 하녀 메리 휘트니와 가까워지지만, 메리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납니다.

이후 그레이스는 토머스 키니어의 저택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1843년, 키니어와 그의 가정부 낸시가 잔혹하게 살해됩니다. 함께 일하던 하인 제임스 맥더모트와 그레이스가 체포됩니다. 맥더모트는 교수형을 받았고, 그레이스는 종신형을 받았습니다.

소설은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난 1859년에 시작됩니다. 그레이스는 여전히 수감 중이고, 사건 당일의 기억만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레이스를 사면하려는 사람들은 젊은 정신과 의사 사이먼 조던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조던은 그레이스와 마주 앉아 그의 삶을 이야기하게 합니다.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소설의 긴장이 생깁니다. 그레이스가 이야기를 풀수록 독자는 오히려 더 헷갈립니다. 그는 순진한 피해자일까요, 영리한 거짓말쟁이일까요? 결말은 스포일러가 되니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책을 덮을 때까지 확실한 답을 쉽게 주지 않는다는 점만 알려 드립니다.

비슷한 스릴러와 무엇이 다를까

이 소설은 범인을 맞히는 추리물이 아닙니다. 사건의 진상보다 '누가 이야기를 쥐고 있는가'가 중심에 있습니다. 그레이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조던에게 들려줍니다. 조던은 그것을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려 하고, 신문과 재판 기록은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듭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여러 개의 서사가 부딪힙니다.

또, 반전의 짜릿함보다 의심이 오래 남는 쪽에 가깝습니다. 당시 하녀의 삶, 계급, 여성에게 씌워진 편견도 함께 읽을 수 있어서 시대 소설로서의 깊이도 있습니다.


영어 원서로서의 가치와 난이도

분량이 만만치 않습니다. 보통 판본으로 450쪽 안팎이라 끝까지 읽으려면 꾸준함이 필요합니다. 체감 난이도는 중상급 이상으로 보시면 됩니다.

문장 구조만 놓고 보면 지나치게 복잡한 문장 때문에 어려운 책은 아닙니다. 다만 시대적 표현과 생활 어휘가 등장하고, 1인칭 서술과 편지, 신문 기사 등 여러 형식이 교차해 읽는 데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의도적으로 감춰진 정보와 모호한 서술을 해석해야 한다는 점에서 체감 난이도가 높습니다.

첫째는 시대 어휘입니다. 19세기 캐나다가 배경이라 바느질, 살림, 옷감, 집안일과 관련된 단어가 자주 나옵니다. 일상 영어 학습용 어휘와는 결이 다릅니다. 둘째는 형식입니다. 그레이스의 1인칭 독백, 조던의 시점, 편지, 신문 기사, 시가 번갈아 나옵니다. 장마다 말투와 분위기가 달라서 처음에는 적응 시간이 필요합니다. 셋째는 의도적인 모호함입니다. 말하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문장을 이해해도 '그래서 무슨 뜻이지?' 하고 멈추게 됩니다.

반대로 장점도 분명합니다. 대화가 자연스럽고, 인물의 목소리가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한 문장 한 문장이 해석의 여지를 남기기 때문에, 천천히 읽을수록 얻는 것이 많은 책입니다.


솔직한 평가와 추천 독자

빠른 전개와 확실한 반전을 기대하는 분께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중반까지 이야기가 느리게 흐르고, 결말에서도 모든 것이 정리되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믿을 수 없는 화자가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 문학성이 있는 영어 원서에 도전하고 싶은 분께는 추천드립니다.

이 작품은 살인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이야기이면서, 우리가 타인의 말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 묻는 소설입니다. 그레이스의 기억과 진술을 따라갈수록 진실에 가까워지는 듯하지만, 오히려 확신하기 어려운 부분이 늘어납니다. 사건의 결말보다 그레이스라는 인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빠른 전개와 명확한 해답을 기대한다면 다소 느리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심리 묘사와 모호한 진실을 탐색하는 문학소설을 좋아한다면 충분히 읽어볼 만합니다. 영어 원서로는 분량과 시대적 어휘가 부담스럽지만, 다양한 서술 방식과 인물의 목소리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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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ity (Paperback) - 콜린 후버『베러티』원서/<베러티> 영화 원작
Grand Central Publishing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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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싶었는데, 왜 저는 새벽까지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을까요?

누군가의 고백을 읽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확신한 적이 있으신가요?

잠시 생각해 보셨다면, 이 책을 펼칠 준비가 된 것입니다.

로맨스 소설로 이름을 알린 콜린 후버가 선보인 《베러티(Verity)》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미완성 원고를 대신 쓰게 된 무명 작가가 저택에 숨겨진 비밀 원고를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심리 스릴러입니다.

귀신이나 괴물 대신 사람의 마음속에 숨겨진 어두운 면을 파고드는 이 작품은 '기록된 진실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독자를 끌고 갑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인물의 말과 행동을 의심하고,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정말 진실인지 되묻게 됩니다.

주인공 로웬 애슐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무명 작가입니다. 그러던 중 교통사고로 활동이 어려워진 베스트셀러 작가 베러티 크로퍼드의 남은 시리즈를 대신 집필해 달라는 제안을 받습니다. 자료를 조사하기 위해 로웬은 베러티의 가족이 사는 저택으로 향합니다. 그곳에는 사고 이후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는 베러티와 그녀의 남편 제레미가 있습니다. 제레미는 연이은 비극 속에서도 가족을 지키려는 다정한 사람으로 보이고, 로웬은 그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로웬은 집 안에서 베러티가 외부에 공개할 목적으로 쓰지 않은 자서전 원고를 발견합니다. 그 안에는 가족에 관한 충격적인 고백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들이 담겨 있습니다. 문제는 원고의 내용이 너무나 생생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베러티의 내면을 직접 들여다보는 듯하지만, 그 고백을 사실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원고 속 이야기와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 사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간극이 존재합니다.

로웬은 점점 더 깊은 혼란에 빠집니다. 제레미를 향한 마음이 커질수록 자신이 발견한 비밀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하게 됩니다. 진실을 밝혀야 할까요, 아니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침묵해야 할까요?

이처럼 이 작품은 단순히 비밀을 밝혀내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인물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작품입니다.


진짜 공포는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초자연적인 현상 없이도 불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낯선 저택, 침묵하는 인물, 설명되지 않는 행동, 그리고 누군가의 손으로 기록된 고백이 긴장감을 쌓아 갑니다.

특히 말할 수 없는 존재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관계가 만들어 내는 불안이 흥미롭습니다. 겉으로는 다정하고 평온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독자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누구를 의심해야 하는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강력한 장치는 바로 기록입니다. 글로 남겨진 이야기는 구체적이고 생생할수록 사실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글을 쓴 사람이 진실만을 이야기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기억을 왜곡할 수 있고, 누군가는 타인을 속이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독자는 원고를 읽으며 베러티의 진심을 추측하지만, 동시에 그 고백을 믿어도 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됩니다. 진실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의심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이 책은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습니다. 일부 장면에는 성적 묘사와 폭력적이고 불편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가벼운 분위기의 스릴러를 기대한다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에 민감하다면 미리 고려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럼에도 인물의 심리와 반전, 그리고 진실을 둘러싼 의심이 맞물리는 전개는 강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책을 잠시 내려놓으려다가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다시 펼치게 만드는, 이른바 페이지터너의 매력을 지닌 작품입니다.

읽기 전과 읽은 후, 스스로에게 던져 볼 질문

책을 읽기 전에는 다음 질문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털어놓으면 쉽게 믿는 편일까요, 아니면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편일까요? 그리고 선과 악이 분명하지 않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심리 스릴러에도 몰입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들은 책을 읽는 동안 인물들을 바라보는 나만의 기준이 되어 줍니다.

책을 덮은 뒤에는 조금 더 복잡한 질문들이 남습니다.

첫째, 아무리 생생하게 기록된 고백이라도 그것을 완전한 진실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구체적인 묘사와 솔직해 보이는 문장에 쉽게 설득됩니다. 하지만 생생함과 진실성은 반드시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둘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집착과 자기기만은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을까요? 작품 속 인물들은 각자의 욕망과 두려움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들의 선택을 따라가다 보면 사랑이 언제든 소유욕이나 자기합리화와 뒤섞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셋째, 내가 믿고 싶은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사람은 때로 복잡한 사실보다 자신이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를 선호합니다. 누군가를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싶다면 그의 행동을 유리하게 해석하고, 반대로 의심하기 시작하면 모든 행동에서 수상한 점을 찾기도 합니다.

저는 이 마지막 질문이 가장 서늘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실을 알아내는 일만큼이나 내가 무엇을 믿고 싶어 하는지 돌아보는 일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만큼이나 진실을 믿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하는 소설입니다. 한 편의 고백이 독자의 판단을 흔들고, 인물의 다정한 모습마저 다른 의미로 해석하게 만듭니다.

읽는 동안에는 누구를 믿어야 할지 고민하게 되고, 책을 덮은 뒤에는 내가 내린 판단이 과연 옳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쉽게 하나의 결론으로 정리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모든 의문에 명쾌한 답을 얻어야 만족하는 독자보다는,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여러 가능성을 떠올리고 스스로 해석하는 과정을 즐기는 독자에게 잘 어울립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책을 읽는다면 누구의 이야기를 믿게 될까요?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뒤에도 처음의 판단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요?

이 작품은 바로 그 확신을 흔들어 놓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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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crawling (Book)
Leila Mottley / Random House USA Inc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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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으로 뭘 먹을지 고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동시에, 당장 내야할 월세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같은 하루지만, 완전히 다른 무게의 하루입니다.

여기, 미국 오클랜드의 한 허름한 아파트에 사는 소녀가 있습니다. 이름은 키아라(Kiara), 나이는 열일곱 살입니다. 소설 《나이트크롤링(Nightcrawling)》은 바로 이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은 출간되자마자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도서로 선정되었고, 영국 부커상 롱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평단과 독자 모두에게 인정받은, 흔치 않은 케이스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는 더 놀라운 사실이 숨어 있습니다. 작가 릴라 모틀리(Leila Mottley)가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을 때, 그녀의 나이는 단 17세였습니다. 자신이 그려낸 주인공과 같은 나이였던 셈이죠.

10대 작가가 써 내려간 10대 소녀의 이야기, 이것만으로도 이 책을 펼쳐볼 이유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이 소설은 완전한 허구가 아닙니다. 2010년대 중반, 미국 오클랜드 경찰을 뒤흔든 실제 성착취 스캔들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여러 명의 경찰관이 한 미성년 여성을 조직적으로 착취한,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작가는 이 사건을 그대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대신, 한 소녀의 시선으로 다시 썼습니다. 자극적인 폭로가 아니라, '왜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입니다.

소설의 제목, '나이트크롤링(Nightcrawling)'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습니다. 밤거리를 떠돌며 몸을 파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제목부터 이 소설이 가볍지 않은 이야기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주인공 키아라는 고등학교를 중퇴했습니다. 변변한 직장 경력도 없습니다. 집안 형편을 도와줄 어른도 곁에 없습니다.

오빠 마커스가 있긴 하지만,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는 래퍼가 되겠다는 꿈에 빠져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결국 집안의 생계는 고스란히 키아라의 몫으로 떨어집니다.

설상가상으로 살고 있는 아파트의 월세가 갑자기 치솟습니다. 당장 다음 달 월세를 마련하지 못하면 거리에 나앉을 처지입니다. 열일곱 살이 짊어지기엔 너무 무거운 현실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짐이 더해집니다. 바로 이웃집에 사는 아홉 살 소년, 트레버입니다. 부모에게 사실상 방치된 이 아이를, 키아라는 차마 외면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앞가림도 버거운 상황에서, 그녀는 한 아이의 보호자 역할까지 떠맡게 됩니다.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키아라에게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이렇게 막다른 골목에 몰린 키아라가 결국 선택한 것이 '나이트크롤링'입니다. 도덕적 판단을 내리기에 앞서,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녀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까요?

그런데 이 소설의 진짜 충격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거리의 위험으로부터 시민을 지켜야 할 존재, 바로 경찰입니다.

소설 속 경찰은 키아라를 보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 그녀를 착취합니다. 법을 집행해야 할 사람들이, 법의 보호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을 짓밟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단순한 분노를 넘어선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가장 약한 사람을 보호해야 할 시스템이, 오히려 그 사람을 가장 먼저 무너뜨린다면. 우리는 그 시스템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작가 릴라 모틀리는 이 모든 과정에서 키아라를 단순한 '불쌍한 피해자'로 그리지 않습니다. 이 점이 이 소설을 특별하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키아라는 무너지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지키려 합니다. 오빠의 꿈을 응원하고, 트레버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차려줍니다. 자신의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는 순간에도, 그녀는 다른 사람을 챙기는 사람입니다.

이런 모습은 독자에게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안타까움과 동시에, 이상한 존경심 같은 것입니다. 가장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응원하게 됩니다.

작가의 문체 또한 이 소설의 큰 매력입니다. 전체적으로 담담하고 절제된 문장으로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시(詩)와 같은 리듬과 이미지가 살아 있습니다.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읽는 사람의 마음을 깊이 건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17세 작가가 만들어낸 독특한 문학적 성취입니다.

이 책을 단순히 '미국 흑인 사회의 비극을 다룬 소설'이나 '경찰 부패를 고발하는 소설'로만 정리하면, 이 작품의 절반밖에 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 책의 진짜 중심에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는 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이야기를 '나와는 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면, 우리 사회 어딘가에도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지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이 책은 그런 존재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불편하고, 때로는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외면해도 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가장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인간성. 그것을 마주하고 나면, 책장을 덮은 후에도 한동안 마음 한구석이 묵직하게 남을 겁니다. 차가운 현실 속에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에 위로받고 싶다면, 이 책의 첫 페이지를 열어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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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oklyn (Paperback)
콜럼 토빈 / Penguin Books Ltd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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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는 것, 그리고 오랜 그리움 끝에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자신이 이미 예전의 자신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 — 그 씁쓸하고도 아름다운 감정을 이토록 섬세하게 포착한 소설이 있을까요? 아일랜드 작가 콜럼 토빈의 소설 『Brooklyn』이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1950년대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에니스코시에서 변변한 일자리조차 찾지 못하던 스물 남짓의 젊은 여성 에일리스 레이시. 그녀는 언니의 주선으로 미국 뉴욕 브루클린으로 건너가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고향을 떠나 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혹은 떠나고 싶지만 두려움에 망설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이 유독 가슴에 와닿을 것입니다. 낯선 나라, 낯선 사람들, 그리고 낯선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는 에일리스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볼까요?


소설의 전반부는 에일리스의 이민 초기 생활을 촘촘하게 그려냅니다. 대서양을 건너는 배 안에서부터 시작되는 뱃멀미와 낯선 승객들의 냉담함, 브루클린 하숙집에서의 어색한 공동생활까지 — 이민자의 삶은 낭만과는 거리가 멉니다. 처음에는 극심한 향수병으로 직장에서도 문제가 생길 지경이지만, 그녀를 도운 신부님의 따뜻한 조언과 부기 학원 등록 덕분에 에일리스는 조금씩 브루클린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소설이 슬쩍 던지는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다양성'과 '정체성'의 충돌입니다. 에일리스가 일하는 백화점에서 흑인 여성용 스타킹 판매 코너를 맡게 되면서 동료들의 편견과 맞닥뜨리는 장면, 그리고 유대인 강사의 가족이 홀로코스트로 희생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장면은, 균일한 아일랜드 소도시에서 자란 그녀가 세상의 넓이를 서서히 배워가는 성장의 순간들입니다.

소설의 중심에는 사랑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구 댄스 파티에서 만난 이탈리아계 청년 토니와의 연애는 처음에는 가볍고 설레는 감정으로 출발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에일리스에게 안정과 소속감을 선물합니다. 토니는 거짓이 없고 솔직하며, 에일리스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함께 그려나가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롱아일랜드에 집을 짓고 둘만의 삶을 꾸리겠다는 그의 다짐은 어딘가 촌스럽고 순박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진심으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소설은 달콤한 로맨스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언니 로즈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에일리스를 다시 아일랜드로 불러들이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인 갈림길에 접어듭니다. 고향에 돌아온 에일리스는 예전에 무시당했던 남자 짐 패럴이 자신에게 구애하는 상황, 어머니의 암묵적인 기대, 친구들과의 재회 속에서 자신이 이미 비밀리에 토니와 결혼한 사실을 숨긴 채 조금씩 옛 삶 속으로 흡수되어 갑니다. 마치 브루클린에서의 삶이 한낱 꿈이었던 것처럼, 에이니스코시의 일상이 그녀를 다시 감싸 안는 것입니다.

결국 에일리스를 현실로 끌어당긴 것은 낭만도, 이성도 아닌 지역 유지의 협박이었습니다. 자신의 결혼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위협 앞에서 그녀는 마침내 스스로 선택을 내립니다. 브루클린으로 돌아가는 배표를 끊고, 어머니에게 진실을 고하며, 짐에게는 편지 한 통을 우편함에 남기고 떠나는 장면 — 그 마지막 장면이 이 소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에일리스는 완벽한 인물이 아닙니다. 우유부단하고, 때로는 비겁하며, 자신이 저지른 일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진짜처럼 느껴집니다. 삶이란 언제나 깔끔한 선택보다 어중간한 감정들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니까요.

이 작품은 단순한 이민 소설도, 순수한 연애 소설도 아닙니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의 심리, 그리고 그 불완전한 자리에서 스스로의 삶을 선택해 나가는 과정을 담은 성장 소설입니다. 고향과 새 삶,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흔들리는 에일리스의 이야기는 낯선 곳에서 뿌리를 내려 본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조용하지만 깊게 울려 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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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ven Year Slip (Paperback)
애슐리 포스턴 / HarperCollins Publishers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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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7년의 시간차를 두고 만난다면 어떨까요? 그 사이 변화한 서로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클레멘타인은 고모의 아파트를 상속받은 출판사 홍보 담당자입니다. 고모는 이 아파트가 주민을 정확히 7년 전으로 보내는 마법 같은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클레멘타인은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아파트가 실제로 과거로 돌아가고, 그곳에서 이완이라는 낯선 남자를 만납니다.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아파트는 곧 현재로 돌아옵니다.

회사에서 클레멘타인은 유명 레스토랑 운영자이자 잠재적 베스트셀러 작가인 제임스 애쉬튼을 영입하는 임무를 맡습니다. 알고 보니 제임스는 중간 이름인 이완으로 불리던 바로 그 남자였습니다. 이완은 클레멘타인을 기억하지만 그녀의 현재 감정을 확신하지 못하고, 클레멘타인은 이완이 왜 자신을 찾아오지 않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클레멘타인은 현재의 이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7년 전 이완을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진실을 털어놓고 7년을 기다려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 경험은 클레멘타인에게 더 의미 있는 일을 추구하도록 영감을 줍니다.

현재의 이완과 재회했을 때, 그는 변화했지만 과거의 자신을 상기시켜준 것에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둘은 서로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새로운 시작을 향해 나아갑니다.


작가가 슬픔을 다루는 방식이 정말 좋았습니다. 클레멘타인의 슬픔은 단순히 극복해야 할 단계가 아니라 그녀의 여정에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그녀는 이모의 죽음을 깊이 이해하고 싶어 하지만, 우리가 결코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도 있습니다. 이야기 후의 노트에서 애슐리 포스턴은 소설을 쓰는 동안 자신의 할아버지가 클레멘타인의 이모와 같은 방식으로 돌아가신 자신의 경험에 대해 씁니다.

책의 끝에서 클레멘타인은 모든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더 나은 무언가에 대한 기회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제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제가 삶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아니면 평범함을 위해 살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삶과 사람들이 변화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습니다.

처음에는 더 가볍고 밝은 내용을 기대했지만, 대신 엄청난 감정, 가족을 찾은 재미있는 일화들, 최고의 현대적 스토리텔링, 그리고 자신의 슬픔을 헤쳐나가는 깊은 감정의 이야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또한 자신의 변화를 허용하고 그 변화를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가고, 다른 사람들이 당장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찾을 때까지 시도해 보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깨닫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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