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 유쾌하고 신랄한 여자 장의사의 좋은 죽음 안내서 시체 시리즈
케이틀린 도티 지음, 임희근 옮김 / 반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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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죽음에 대해 터놓고 얘기하는 것은 일종의 공포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일이며, 우리에게 일어나기 전에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도 일어날 것입니다.

p21 우리는 최선을 다해 죽음을 가장자리로 밀어내고, 시신을 강철 문 뒤에 두고, 환자와 죽어가는 사람들을 병실에 몰아넣는다. 죽음을 너무나 잘 숨기는 바람에, 우리가 죽지 않는 첫 세대라고 거의 믿어도 될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며 우리도 그 사실을 안다

 

책의 저자인 케이틀린 도티는 20대에 여성 장의사로서 장례업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그녀가 20대 여성으로서 장의사라는 직업을 택한 이유는 어린 시절 목격한 죽음 때문입니다. 우연히 쇼핑몰에서 추락사한 아이를 보고 당시 여덟 살이었던 그녀는 큰 충격에 빠집니다. 그러나 죽음을 부정하는 문화 안에서 그녀는 어떤 설명도, 위로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죽음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 시작되었습니다. 대학에서 중세사를 전공한 것도 죽음을 학문적으로 가까이 접하고자 했던 욕망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졸업 후 그녀는 화장터에서 일하며, 이 경험을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스스로 치유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습니다.

p200 유해가 납골함에 담겨 나오면 누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손자손녀가 있었는지, 대역죄인이었는지 말할 수 없다. “너는 먼지였으니, 먼지로 돌아갈지어다.” 한 명의 성인으로서 당신의 재와 나의 재는 같고, 남는 것은 1.8-3.2킬로그램의 회색 재와 뼈뿐이다.

 

책에는 화장터에서 일하며 죽음과 함께한 경험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시체 한 구 한 구에 얽힌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와 함께, 시신을 운반하고 화장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와 함께 재로 가득한 화장장을 거니는 듯한 간접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방부 처리와 화장을 명확하고 생생한 이미지로 묘사하여 우리가 죽은 후에 우리가 어떻게 되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p240 시신들을 대하다 보면, 나 자신의 죽음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대면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영광스럽게 포장해도 시체는 우리가 먹고 싸고 끝내 죽을 수 밖에 없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려준다. 우리는 모두 앞으로 시신이 될 사람들인 것이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저자가 샌프란시스코의 장례식장에서 일한 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독자들을 쉽게 슬픔에 빠뜨릴 수 있고 때로는 금기 사항을 접근하기 쉽고 흥미롭게 만듭니다.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면 ‘죽음이 비정상적이거나 숨겨지거나 신비스럽지 않아야한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게 됩니다.

p323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랑하는 누군가가 죽었을 때 충격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건 “왜 사람들은 죽는가?” “이런 일이 어째서 나한테 일어나는가?“ 같은 더 큰 실존적 물음의 짐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슬픔에 초점을 맞출 수 있을 거라는 뜻이다. 죽음이란 당신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죽음의 역사와 죽음의 의식, 그리고 죽음을 다루는 이상적인 방법에 대한 철학적 사고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역사를 엮어 내면서 많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었습니다. 때로는 불편한 이야기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저자의 재치있고 솔직한 문장들은 매력적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길은 모두 다르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끝입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도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죽음 이후에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약간 궁금한 분들을 위해, 이 책은 의심할 여지없이, 알고 싶은 모든 (그리고 아마도 그 이상)을 줄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우리의 병적인 두려움은 죽음을 어둡고 나쁜 운명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데서 오는 것 같다. 해결책은 ‘전통적’인 장례의 모든 비상식적인 것들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 P69

인간의 대단한 승리는, 우리 뇌가 수백 수천년간 진화하여 우리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일이다. 인간은 슬프게도 자의식이 있는 생물이다. 비록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을 부정할 창의적인 방법들을 찾으려고 하루 종일 움직인다 해도, 자신이 아무리 힘 세고 사랑받고 특별하다 느낀다 해도, 언젠가는 죽어서 썩을 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는 이 지상에서 우리 종의 귀중한 일부만이 공유하는 마음의 짐이다.
- P99

죽음은 알려져야 한다. 어려운 정신적, 육체적. 정서적 과정으로서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하고 존중받아야 하며, 있는 그대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 P183

홀로 내버려두면 인체는 썩고 부패하고 분해되어 영광스럽게 원래 나왔던 흙으로 돌아간다. 이 과정을 막기 위해 시신을 방부처리하고, 무거운 보호용 관을 사용하는 관습은, 불가피한 것을 모면해보려는 필사적 시도이며 우리가 명백하게 해체에 대한 공포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 P228

내가 볼 때 좋은 죽음이란, 지금까지 하던 일을 잘 정리하고, 전할 필요가 있는 좋고 나쁜 말을 전하고, 죽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좋은 죽음이란 수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견딜 필요없이 죽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좋은 죽음이란 죽음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죽을 시간이 왔을 때 싸우지 않는다는 뜻이다.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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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0-27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읽었습니다 ^^. 죽음과 늙고 병듦이 자연스럼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에 대항하는 과학과 의학 발전에 열광하는 인간들만 남아있어요. 죽음을 경험하고 그 죽음에 애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모든 사람의 자연스러운 모습일텐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