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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ㅣ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평점 :
한국 사람 중에 임진왜란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만큼 우리 역사에서 주요한 사건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 임진왜란을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도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쓰디쓴 침략의 역사이면서 이순신의 전투 기록을 본다면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은 조선 중기 문신 류성룡이 임진왜란 동안에 경험한 사실을 기록한 책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이었던 류성룡이 전쟁이 끝난 뒤, 뒷날을 경계하고자 하는 뜻에서 1592년(선조245년)에서 1598년까지의 일을 직접 기록한 것입니다.
무력한 조선군. 자기 살 길만 쫓아 달아나는 관리들. 병법도 모르고 덤벼드는 조선의 장군들. 왜적이 10일 만에 한양까지 들어왔습니다. 그 동안 조선이 한 일이라고는 ‘도망’과 ‘무모함’, ‘탁상공론’이 전부였습니다.
백성들이 매순간 죽어갈 때 왕과 대신들은 피난가기에 바빴고, 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위와 같은 현실성 없는 대책뿐이었습니다. 도망가기에 바빠 전략적 요충지도 다 버렸습니다다.
왜적의 침입에 이미 예견되어 있었고 전쟁 준비에 대한 이야기는 많았지만 번번이 묻혔습니다. 임진왜란이 진행되는 기간에 백성들은 농사를 짓지 못해 굶었습니다. 아비는 아비 노릇하기 힘들어졌고, 어미는 제 자식 젖조차 물릴 힘이 없었습니다.
그때도 ‘정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 파직되고 서로 복권되었습니다. 나라가 찢겨가는 전쟁 중에도 대신들은 서로를 헐뜯으며 찢기 바빴습니다. 안에서부터 썩은 나라는 전쟁을 준비할 힘이 없었습니다. 전쟁도 정쟁에 묻혔습니다.
류성룡이 이 책을 기록한 이유도 누구를 헐뜯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시는 이런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속에는 잘못한 과거가 들어 있습니다. 장수들의 무능함과 대신들의 잘못이 들어 있고, 류성룡 자신의 실책도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만 들어 있지 않습니다. 군주는 도성도 버리고 도망갔지만, 내 고장 버리지 않고 지킨 의병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성을 지키다 죽은 함안 군수 조종도, 자신의 죽음조차 승리에 방해가 된다며, 버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임진왜란은 국가의 무능이 부른 미증유의 대재앙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이 언급된 문집은 있지만, 사건의 과정을 총체적으로 기술한 동시대의 서적은 이 책이 사실상 유일할 것입니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읽는 내내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류성룡의 시점에서 임진왜란이 어떻게 일어나고 당시 참혹했고 위험했던 상황들을 생생하게 느끼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전쟁의 기록들을 보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상황과 비교하게 됩니다. 특히, 사건의 발달은 문신과 당파 싸움에서 일어나는 것은 지금도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것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나 똑같은 일을 겪어야 과거의 잘못을 경계하고 삼갈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씁쓸한 생각을 해봅니다.
징비란 시경의 소비 편에 나오는 문장인 ‘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로부터 유래한다고 한다. 즉 자신이 겪은 환란을 교훈으로 삼아 후일 닥쳐올지도 모를 우환을 경계토록 하기 위해 쓴 글이다. 이러한 집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저자는 자신의 잘못으로부터 조정 내의 분란, 나아가 임금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 등 임진왜란을 둘러싸고 발생한 모든 일을 더하고 뺌 없이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 P10
4월 1일, 두 사람은 서울로 돌아와 임금께 보고했다. 그 무렵 집으로 찾아온 신립에게 내가 물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큰 변이 일어날 것 같소. 그렇게 되면 그대가 군사를 맡아야 할 터인데, 그래 적을 충분히 막아낼 자신이 있소?" 신립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까짓 것 걱정할 것 없소이다." 나는 다시 말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과거에 왜군은 짧은 무기들만 가지고 있었소. 그러나 지금은 조총을 갖고 있습니다.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닌 것 같소." 그러나 신립은 끝까지 태연한 말투로 대꾸했다. "아, 그 조총이란 것이 쏠 때마다 맞는답디까?" 신립은 내 말은 무시한 채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 P42
후에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왜군을 쫓아 조령을 지나다가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이런 천혜의 요새지를 두고도 지킬 줄을 몰랐으니 신총병(신립)도 참으로 부족한 사람이로구나."원래 신립은 날쌔고 용감한 것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전투의 계책에는 부족한 인물이었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장수가 군사를 쓸 줄 모르면 나라를 적에게 넘겨준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는데,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나 후손들에게 경계가 될것이라 생각해 상세히 적어 둔다. - P68
당시 요동에서는 왜적이 우리 나라를 침략했다는 말을 엄자 전에 들었다. 그런데 다시 임금이 서울을 버리고 서쪽으로 피란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더니, 이윽고 왜적이 평양까지 닿았다는 소식을 접하자 의심을 품기까지 했다. 아무리 왜적이 강하다 하더라도 이렇게 빨리 올라올 수는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조선이 왜구의 앞잡이가 되어 이끌고 온다."고도 했다. - P90
"이 모습을 본 성 안의 아전과 백성들이 난동을 부렸다. 그들은 칼을 빼어 길을 막고 나서며 폭행했다. 신주는 길에 떨어지기도 하였는데, 그들은 재신을 지목하며 말했다. `너희들은 평소에는 편히 앉아 국록만 축내더니 이제 와서는 나라를 망치고 백성마저 속이는구나?‘ 이 무렵 연광정에서 임금께로 향하던 나는 아녀자와 어린 아이까지 분노를 감추지 않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았다. `성을 버리고 갈 거면 왜 우리는 성 안으로 들어오게 했소? 이야말로 우리를 속여 적의 손에 넘겨주려는 속셈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오?‘" - P92
결국 전라도와 충청도를 보전하고 아울러 황해도와 평안도 연안 지방까지 지키게 됨으로써 군량의 조달과 통신체계가 확립될 수 있었다. 이는 곧 나라를 회복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요동과 천진 지방에 왜적의 손길이 닿지 않게 되어 명나라 군사들이 육로를 통해 우리나라를 구원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이순신이 한 번 이긴 결과였다 - P122
언젠가 큰비가 내린 날이었다. 굶주린 백성들이 밤중에 내 숙소 곁에서 모여 신음 소리를 내는데 차마 들을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주위를 살펴보자 굶어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 P165
게다가 조선 전역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었으며, 군량 운반에 지친 노인과 어린아이들이 곳곳에 쓰러져 있었다. 힘이 있는 자들은 모두 도적이 되었으며 전염병이 창궐해 살아남은 사람도 별로 없었다. 심지어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잡아먹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 죽이는 지경에 이르러 길가에는 죽은 사람들의 뼈가 잡초처럼 흩어져 있었다 - P185
이순신이 한산도에 머무르고 있을 때 운주당이라는 집을 지었다. 그는 그곳에서 장수들과 함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투를 연구하면서 지냈는데, 아무리 졸병이라 하여도 군사에 관한 내용이라면 언제든지 와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했다. 그러자 모든 병사들이 군사에 정통하게 되었으며,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는 장수들과 의논하여 계책을 결정하였던 까닭에 싸움에 패하는 일이 없었다. - P192
이순신은 말과 웃음이 적었고, 용모는 단정하였으며 항상 마음과 몸을 닦아 선비와 같았다. 그러나 속으로는 담력과 용기가 뛰어났으며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행동 또한 그의 뜻이 드러난 것이었다 - P215
그리고 지옥의 전쟁 임진왜란은 끝이 났다. 명나라 장군 진린은 이순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의자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주저 앉으며 통곡했다. 우리 군사와 명나라 군사들은 각 진영에서 통곡을 그치지 않았는데, 마치 자기 부모가 세상을 떠난 듯 슬퍼했다. 그의 영구 행렬이 지나는 곳에서는 모든 백성이 길가에 나와 제사를 지내면서 울부짖었다. - P218
훗날 나라의 앞날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나같은 사람의 말이라고 해서 그냥 지나치지 말고 활용하기 바란다. 적을 막는 방법으로는 꽤나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 P229
병법에는 정해진 형식이 없고 전투에는 특별한 법칙이 없다. 때에 따라서 그에 적절한 법을 시행하면서 나아갔다가는 물러나고 모였다가는 흩어지면서 특별한 묘책을 끝없이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결국 지휘관의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천 마디 말이나 만 가지 계략이 다 필요 없고, 오직 뛰어난 장수 한 사람이 중요하다. 거기에 조조가 말한 세 가지 요소가 누락되지 않고 더해진다면 다른 어떤 것도 필요 없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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