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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
마르얀 사트라피 지음, 박언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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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란 출신 마르잔 사트라피가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자신이 겪은 삶을 그리고 쓴 자전적인 이야기입니다. 마르잔이 혁명의 산물인 새로운 이슬람 공화국에 적응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혁명의 지지자들은 더 이상 혁명과 관련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황은 악화되었습니다. 이란이 전쟁에 나섰을 때 모든 시위가 금지되었고 반대자들은 고문을 받거나 죽임을 당했으며 드론에 의한 정기적인 폭격이 있었습니다. 마르잔은 날이 갈수록 겁이 없고 호기심이 많아졌습니다. 그녀의 성격은 종종 그녀를 학교 당국과 혁명의 수호자들과 곤경에 빠뜨렸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부모는 14세에 그녀를 오스트리아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녀는 새로 부여된 독립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곧 혼자 사는 것이 차 한 잔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녀의 가족, 문화, 나라를 그리워합니다. 결국 상실감과 죄책감을 느끼고 이란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여성에게는 기회가 거의 없었고 전쟁의 여파로 나라 전체가 황폐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가족을 둘러싼 세상 또한 변했습니다. 혁명 중에 석방된 정치범이었던 그들의 친구들은 다시 한 번 감옥에 갇히거나 거리에서 완전히 살해당합니다. 마르잔 자신도 운동화, 청자켓, 암시장 데프 레오파드 테이프 때문에 곤경에 처할 뻔했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편집증에 빠지게 됩니다.


이 책을 읽고 얻은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믿음의 회복력과 가족의 사랑의 회복력이었습니다. 마르잔의 온 가족이 흔들리고 그들 중 일부가 죽임을 당합니다. 결국 가족들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를 비엔나로 보냅니다. 그들은 딸이 자신이 원하는 여성으로 안전하게 자라는 것을 알고 싶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마르잔은 점점 더 사회적 자유를 잃고, 그녀의 종교적 신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무자비한 정권에 가족을 잃고, 사회 계급에 대한 사회의 대우를 합리화하려고 노력하고, 여성의 억압과 그녀의 국가에 퍼진 이데올로기적 광신주의에 반항합니다.

책의 후반부에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조국을 떠나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부모가 그녀를 보냈던 오스트리아에서의 4년을 연대순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최근 몇 년 동안 전쟁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회의 변덕스러움을 이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서구의 사회적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그녀의 부모는 여전히 매일 폭격의 위험에 처해 있다는 죄책감을 느낍니다. 그녀는 악몽과 불안에 시달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감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심각한 비통함을 겪은 후 그녀는 나선형으로 내려가고 그녀의 유일한 구원은 고향 테헤란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믿도록 자신을 속입니다.

물론 그녀의 복귀가 그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이란에 남아있던 그녀의 친구들 대부분이 그들에게 부과된 많은 정부 규칙에 적응하는 법을 시간이 지나면서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국가에서 억압이 숨이 막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마지막 부분은 마르잔의 18세에서 24세 사이의 젊은 성인의 삶을 연대기입니다. 우리는 그녀가 이란 여성으로서 정권이 그녀에게 기대하는 엄격한 기준에 맞서면서 자신을 재발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녀가 사랑을 찾고, 대학에 다니는 것을 지켜보고, 가장 중요하게는 그녀가 마침내 그녀가 미래에 대해 원하는 것(또는 더 나아가 그녀가 원하지 않는 것)을 깨닫는 것을 지켜봅니다. 결국 그녀는 대학원에 가기 위해 프랑스로 떠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녀 역시 현실 앞에서 자유롭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년의 모습이 바로 우리 중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마르잔은 세상을 흑백으로 보기 때문에 이 책은 흑백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채로운 컬러로 채워진 책에 비한다면 투박하고 단순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오히려 흑백이기 때문에 빛과 어둠의 대조가 분명하고, 감정의 깊이와 그래픽의 무게감을 전달하는데 효과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단지 흑과 백, 명암만 존재하는 그림은 다양성을 거부하는 이분법적인 사회를 상징하는 듯 했습니다.

또한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동시에, 독자들이 스스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습니다. 책 전반에 걸쳐 마르잔은 다른 이란 여성들과 함께 가부장제에 맞서 끊임없는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베일을 쓰지 않고 파티에 참석하지 않고 학교 당국에 대해 반항적인 태도를 보였거나, 자신이 행복하지 않고 덫에 걸렸다는 것을 깨닫고 남편을 떠나는 등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리는 등의 그녀만의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저자는 그녀의 변화하는 이상, 충동적이고 무모한 결정, 대담한 저항 행위를 잘 포착해 그렸습니다.


산문집이라기보다는 만화책이라 읽기 쉬웠습니다. 많은 이야기가 마르잔의 나레이션과 함께 이미지를 통해 전달되었지만, 산문 책만큼 텍스트가 많지 않아 흐름이 매우 좋았고 한 번에 많은 것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만화에서 패널 사이의 공간인 여백은 이야기의 일부가 산문 책에 있는 것보다 더 암묵적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고 머리 속에서 자동으로 이미지 사이의 연결을 만들어 줍니다.

실제로 이란에서 나고 자라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한 저자 사트라피의 자전적 경험이 대부분 녹아 있었습니다. 비단 그녀만의 이야기일 수 없습니다. 그 시절을 견디고 버틴 숱한 이란인들을 대신한 초상화일 것입니다. 결코 짧지 않은 격동의 세월을 함축적인 이야기와 그림으로 잘 묘사했고, 무겁지만 가볍고, 또 쉽게 읽히지만 묵직한 울림을 남기는 책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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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표류기 - 조선과 유럽의 운명적 만남, 난선제주도난파기 그리고 책 읽어드립니다
헨드릭 하멜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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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3년 8월 조선에도 아주 사소한 ‘뜻밖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스페르베르호가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다가 제주도 해안에서 폭풍우로 난파되었습니다. 선원 64명 가운데 선장을 포함하여 28명이 사망하고 36명이 살아남아 가까스로 뭍에 표착합니다. 그 이후 이들은 무려 13년 동안 억류 생활을 하다가 생존자들이 탈출해 귀향합니다. 이 중에는 그 배의 서기였던 헨드릭 하멜(Hendrick Hamel· 1630~1692)도 끼여 있었습니다. 그는 1666년 9월 조선을 탈출해 이듬해까지 나가사키에 머물렀습니다. 그때 그는 회사에 밀린 급료를 요구하기 위해 그동안 일행이 공무를 수행하다 겪은 재난을 연도별로 꼼꼼히 기록했습니다. 이 책이 바로 ‘하멜 표류기’라고 부르는 책입니다.

하멜 일행은 표착 직후 체포되어 제주도에 억류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조정이 통역 겸 조사관으로 파견한 사람이 바로 박연이었습니다. 그 역시 1627년 조선 해안에 표착했다가 붙잡힌 네덜란드인이었습니다. 그는 조선에 귀화하여 훈련도감의 장교로 있었습니다. 하멜은 당시 박연의 나이를 57~58세로 추정했습니다.

이듬해 5월, 조정은 그들을 한양으로 올려보내라고 명령합니다. 호송 도중에 한 명이 사망하여 한양에 도착한 것은 35명이었습니다. 며칠 후 그들은 국왕(효종) 앞에 불려 나가 고국으로 송환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국왕은 이를 거부하면서 대신 “죽을 때까지 부양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이튿날 그들은 박연이 소속된 훈련도감에 배치되어 호패와 화승총을 지급받았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대항해 시대를 주도하던 나라였습니다. 하멜 일행도 항해사, 조타수, 포수, 갑판원, 선의, 서기 등 다양한 직군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배에는 대포만 수십 문이 있었습니다. 1666년 조선을 탈출할 당시의 생존자(16명) 중에도 포수만 4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이 그들의 근대적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시도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p53 저희들은 날마다 여러 귀족들의 잔치에 초대받았는데, 그것은 저희들의 검술과 춤추는 것 등 노는 솜씨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과 그들의 처자들은 저희들을 구경하고 싶어 했는데 그것은 제주도 사람들이 저희들을 괴물로 본다든가, 무엇을 마실 때는 코를 귀의 뒤똑에 돌리고 마실 것이라든가, 머리카락이 갈색이기 때문에 사람이라기보다는 물속의 헤엄쳐 다니는 새처럼 보인다든가 하는 소문이 돌았고, 또 그들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듣고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그들을 처음 접견한 국왕은 그들에게 ‘네덜란드 식으로’ 춤을 추게 하고 노래도 부르게 했습니다. 이어서 그들은 ‘매일 고관들의 집을 방문하도록 명령을 받고’ 그 집 식솔들 앞에서 광대 노릇을 해야 했습니다. 큰 코, 붉은 머리, 흰 피부를 가진 ‘남만인’들은 당시 한양 사람들에게 대단한 볼거리였습니다.

청나라 사신이 올 때마다 그들은 가택에 연금되거나 남한산성으로 격리되었습니다. 그런데 1655년 3월 그들 중 두 명이 몰래 숨었다가 사신의 행렬로 난입하는 충격적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조정은 사신에게 뇌물을 주어 사건을 무마하고도 상당 기간 청나라의 트집을 염려했습니다. 두 명은 투옥되었다가 모두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돌발적 사건을 계기로 조정은 이들의 존재에 부담을 갖게 되었습니다. 청나라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일본과의 관계도 문제였습니다. 임진왜란 후 양국은 외국인의 표착을 상호 통보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강경파들은 아예 이들을 처형해서 없애자고 주장했으나 국왕은 호남으로 보내도록 조치했습니다. 호남은 청나라와 일본의 눈길로부터 가장 먼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1656년 봄, 생존자 33명은 전라병영(강진 소재)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그들은 잡다한 부역에 시달리며 땔감을 구하고 심지어 구걸까지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5~6년 동안 그들 중 무려 11명이 죽고 1662년에 생존자는 22명으로 줄었습니다. 재정이 피폐해진 전라병영의 요청으로 그들은 다시 여수(12명)·순천(5명)·남원(5명)으로 분산배치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가뭄·혹한과 같은 자연재해가 잇따라 그들뿐만 아니라 조선 민중 전체가 도탄에 빠졌습니다. 더구나 임진왜란·병자호란을 겪은 조선 사회는 피폐하여 근본적인 변화가 절실했습니다. 주자학도 이미 순기능을 다했습니다. 그럼에도 엘리트들은 시대 변화를 외면한 채 수구적인 예학을 통해 기득권을 강화하려고 했습니다. 다시 3~4년이 흘러 생존자는 불과 16명으로 줄었습니다. 그들은 ‘배를 구하려고 온갖 수단을 다한’ 끝에 1666년 9월 웃돈을 주고 산 배를 타고 8명이 일본으로 탈출했습니다. 1668년에 잔존자 7명이 일본을 통해 송환되었습니다. 잔존자 8명 중 1명은 그 사이 사망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리하여 최후의 생존자 15명은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항해술, 조선술, 포술과 같은 그들이 보유한 선진적 기술을 별로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돌발적 사건을 겪고 나서야 그들의 신병 처리를 고민했습니다. 아울러 사건의 대목마다 늘 온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처럼 조선은 이 사건을 둘러싸고 피상적인 호기심, 무전략, 온정주의 등으로 일관했습니다. 아쉽게도 세계사적 흐름에 대한 안목은 전무했습니다. 조선을 탈출해 규슈 해안에 표착한 하멜 일행은 일본의 개항장인 나가사키로 압송되었습니다. 그들이 도착하자 그곳의 일본 행정 책임자는 그들에게 난파선 규모 및 항해 목적, 조선의 군사·경제·풍습·종교, 탈출 경위 등을 비롯해 5개 분야 총 54개항을 집중적으로 심문했습니다. 조선 측이 이렇게 그들을 체계적으로 조사했다는 이야기는 ‘하멜 표류기’나 조선 측 기록 어디에도 없습니다. 조선이 13년 동안 하지 않은 일을 일본은 단 하루 만에 한 셈입니다.

p149 국왕에게 반항한 사람과 이 왕국을 배반한 사람은 그 일가친척까지 모두 사형을 당합니다. 그들의 집은 주춧돌에 이르기까지 헐리며 그 자리에는 아무도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재산과 노예는 국가 재산으로 몰수되던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갑니다. 국왕이 어떤 결정을 내렸을 때 복종하지 않은 사람 역시 사형됩니다.

외국인의 눈으로 볼 때 조선의 형벌제도는 가혹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하멜의 시선은 전반적으로 부정적이지만 객관적이고 정확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적잖게 충격을 받은 점은 각 마을마다 거북선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또, ‘조선 사람들은 대체로 선량하며 성품이 좋으나 남을 속이고 훔치는 일이 많으며, 피를 보기 싫어한다’ 는 기록도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한편, 사대주의적인 조선인의 시각에 대한 기록도 있었는데 ‘조선인들은 세상에 12개의 국가만 있으며 모두 중국 황제에게

공물을 바친다‘는 기록도 있었습니다.

이 책 가운데에는 일부 잘못 관찰된 내용이나 피상적으로 서술된 부분이 적지 않았습니다. 물론 억류에 대한 반감도 작용했겠지만 그의 눈에 비친 조선의 단면이어서 씁쓸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17세기중엽 우연히 조선에 표착했던 외국인 관찰자가 최선을 다하여 기록할 수 있었던 내용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그의 기록에서 당시의 서양인들에게 뿐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흥미 있는 여러 부분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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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 미친 듯이 웃긴 북유럽 탐방기
마이클 부스 지음, 김경영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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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은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 일뿐만 아니라 살기 좋은 곳, 여성이 될 곳, 나이가 들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반복해서 불려왔습니다. 이 국가들이 과연 살기 좋은 곳으로 불릴 만큼 완전한 사회의 집합체일까요?

저자 마이클 부스는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북유럽에 대한 설명을 시작합니다. 북유럽인들이 교육에서 양성 평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탁월하다는 것을 실제로 확인하는 수많은 연구, 여론 조사 및 설문 조사를 소개합니다.

이 책은 각 국가별로 하나씩 총 5개의 부분으로 나뉩니다. 예절과 관습에서 정치와 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살펴 보며, 현재 국가 생활의 즐거움을 과대 평가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국가에서의 경험과 현지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흔히 알려져 있는 밝은 면 뿐만 아니라, 가려져있는 어두운 비밀들을 낯낯이 파헤칩니다

 

p136 덴마크의 인류학자 예페 트롤레 린네트는 언젠가 이렇게 썼다. "사람들은 휘게를 할 때 경쟁과 사회적 평가의 부담으로부터 서로를 보호한다." 이런 식으로 휘게는 스스로 무는 사회적 재갈처럼 보이며, 유쾌한 분위기를 공유한다는 개념보다는 자기만족의 느낌이 더 강하다. 또한 린네트는 휘게가 "사회 통제의 수단 역할을 하고 고유한 태도의 위계를 만들어 휘게를 할 수 없다고 간주되는 사회집단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을 암시한다"고 이야기한다

덴마크는 엄마들이 아기를 카페 밖에서 잠들게 할 수 있을 만큼 안전한 나라입니다. 72%까지 세금이 부과(자동차, 가스, 도로, 재산, 교회, 부가가치세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소득세 42-56% 사이)되어 세금이 가장 높다는 악명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휘게의 일환으로 다양한 사회, 경제적 지위의 친구들이 모여서 먹고 마시고 노래를 부릅니다. 이러한 아늑한 모임은 미국이나 영국의 일중독과 기술적 고립에 대한 사회적 유향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p422 '라곰'은 스웨덴 사회의 다양한 행동 양상을 규정한다. 한결같이 비과시적인 소비 패턴부터 타협, 온건, 합의에 주로 의지하는 정부 체제까지, '라곰'은 덴마크의 허구적인 사회 선언문이자, 덴마크 이상은 아니더라도 스웨덴 사회를 규정하는 얀테의 법칙과 확실히 관련이 있다. 스웨덴인은 위험을 무릅쓰는 것을 더 무서워하고,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거나 뽐내는 것을 더 싫어하며, 더 절제된 표현을 쓰고 겸손한 경향이 있다

한 나라와 국민은 자신의 이상에 따라 진정으로 가장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지에 관계없이 자신의 필요가 충족되거나 초과 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평가됩니다.

스웨덴은 여성에게는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꼽힙니다. 실제로 유아의 8%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인 스웨덴 탁아소에 있지만 탁아소를 이용하고 즉시 직장에 복귀하라는 사회적 압력이 있습니다.

북유럽에 대한 막연한 부러움이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그 환상을 깨보고 싶었고, 북유럽국가들 사이의 차이점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인종차별, 너무나 높은 세금, 서서히 약화되는 사회적 평등 등 각 국가가 가진 사회적 문제는 결코 가볍게 지나칠만한 문제들은 아니었습니다. 한국과 비교하여 너무나 따분한 삶과 단일주의도 꽤나 숨막혀 보이기도 했습니다.

p239 중립국 스웨덴은 핀란드과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는 동안 과거 영토였던 핀란드를 거의 지원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전쟁 초반에 국제연맹과 연합국이 핀란드를 지원하러 오는 길도 막았다. 당연히 일부 핀란드인에겐 앙금이 남아 있다... 한 핀란드인은 이렇게 말했다 "스웨덴은 핀란드가 소련과 맞서 싸우는 동안 기회를 한껏 이용했습니다."

결국 책을 읽고나면 북유럽에 대해 다소 모순적인 이미지를 갖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들은 지루함, 너무 만연한 인종 차별, 엄청나게 높은 세금, 과도하게 늘어난 공공 부문의 국가들입니다.

 

p538 나는 서양 언론이 북유럽 지역에 대해 늘어놓는 불균형한 장밋빛 보도를 바로잡고 마음에 담아둔 몇 가지 불만을 털어놓으려고 이 책을 시작했지만, 스칸디나비아의 몇 가지 더 긍정적인 측면, 즉 신뢰, 사회적 결속, 경제평등과 남녀평등, 합리주의, 겸손, 균형이 잘 잡힌 정치제도 등에 관한 새로운 정보도 같이 전해지기를 바란다.

북유럽, 훌륭한 곳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책 어디에도 이처럼 노골적으로 북유럽 나라의 제도와 문화와 사회와 북유럽인들을 칭찬하는 문장은 없습니다. 저자는 이 책 전체를 통해 일관되게 에둘러서, 때로는 음흉하게 북유럽 나라들을 비꼬고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이 책은 ‘머리말’부터 ‘감사의 말’까지 거의 550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두껍다면 두꺼운 책입니다. 그동안 알고 있는 사실보다 몰랐던 사실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동안 북유럽 국가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던 것도 있지만, 왜곡되어 잘못 전달되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도 적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북유럽에 대해 알고 싶으신 분들께 한번 읽어보길 권합니다.

물론 수많은 요인이 합쳐져 국민 정서를 만든다. 내가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있기는 하지만, 고립성을 향한 이 같은 편협주의 적 충동과 그에 수반되는 민족낭만주의 성향은 덴마크스러움의 결정적 요소다. 이는 모든 덴마크인이 지금도 외우는 다음의 말로 요약된다.
"밖에서 잃은 것은 안에서 찾을 수 있다."
- P40

거의 의심할 여지 없이 덴마크는 두 계급으로 양분된 양극 사회가 되고 있다. 여유 있는 덴마크인이 점점 더 개인 의료보험으로 눈을 돌리는 중이며, 최근 집계로는 이런 사람이 85만명에 이른다. 그리고 여론조사 결과 덴마크는 1인당 공공 부문이 세계에서 가장 크지만 복지제도에 대한 만족도는 급격히 떨어지는 중이다. 덴마크 국민이 내는 세금을 생각하면 특히 기대치가 높겠지만, 컨설팅 기업 액센추어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덴마크인 중 불과 22퍼센트만이 공공 부문이 잘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 P81

노르웨이는 우익 백인 우월주의 집단 KKK단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설명을 확인시켜 주는 것 같았다. 가령 노르웨이는 덴마크나 스웨덴보다 훨씬 적은 이민자를 수용했으며, 최근에는 거부된 망명 신청자들을 한 해 약 1500명씩 본국으로 송환했다. 브레이비크 테러 사건을 다루는 언론 보도 역시 수많은 노르웨이 우익 단체와 활동가, 블로거를 언급했고, 노르웨이에서 이슬람 공포의 불온한 하위문화처럼 보이는 현상을 소개했다
- P347

노르웨이에서 일하는 스웨덴인은 3만5000명으로, 시간당 최고 47달러의 보수에 혹해서 노르웨이 가게 등에서 반숙련직으로 일한다). 특히 많은 덴마크인이 즐거워한 이야기는 몇몇 스웨덴인이 노르웨이 가공 공장에서 바나나 껍질 까는 일을 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사실이다! 내가 확인한 결과 바나나는 유명한 노르웨이 샌드위치용 스프레드에 들어갈 재료였다. 게으른 노르웨이인과 착취당하는 스웨덴인이 한 일화에 다 등장한다. 덴마크 사람들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다.
- P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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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사토 겐타로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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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상처가 났을 때 상처를 소독하거나 반창고를 붙이며 머리가 아프거나, 열이 나거나, 모기에 물렸거나 할 때에도 각각에 맞는 구비 상비약을 사용합니다. 그러면 대부분은 이 같은 처방으로 중독, 화상, 두통, 발열, 가려움 등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즉, 우리들은 일상적으로 대부분을 의식조차하지 않고 가지각색의 약을 잘 이용하며 능숙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류가 남긴 옛 기록에는 약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독이라 생각했던 것을 약으로 쓰는 경우도, 반대로 약으로 쓰던 것이 독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책은 이러한 약이 어떻게 인류역사에 등장하고 인류와 함께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즉,많은 국가와 사회를 치명적 위기에 빠뜨렸던 10가지 질병과 결정적 고비마다 인류를 무서운 질병의 위협에서 구한 약 10가지에 대해 담았습니다.

p40 인류 역사 속에서 비타민 C는 그저 여러 필수 의약품의 하나 정도가 아니라 때때로 세계사의 흐름을 뒤바꾸어놓을 정도로 대단히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을 만하다.

1. 비타민C

대항해 시대에 괴혈병은 뱃사람들에게 거센 풍랑이나 해적의 습격보다 치명적이었습니다. 인류는 비타민C의 발견으로 괴혈병이 초래한 끔찍한 비극에서 영원히 해방되었습니다. 18세기 후반, 제임스 쿡 선장은 세계 일주 항해에 성공하여 영국이 최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비타민 C는 콜라겐 합성에 필요합니다. 콜라겐 결합이 느슨해지면 혈관과 각종 조직이 약해져 치아 손실과 출혈 후 사망에 이르게 되는데, 이것이 괴혈병입니다. 비타민 C를 먹음으로써 괴혈병을 예방하고 활성산소와 유해물질을 제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타민 C를 선원들에게 먹인 것이 영국이 아니라 스페인이었다면, 지금의 세계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p85 '말라리아 박멸‘이라는 인류의 도전적인 과제 앞에 놓인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이 병에 대한 선진국 사람들의 무관심이 될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2.퀴닌

말라리아는 투탕카멘왕과 알렉산드로스 대왕, 단테와 크롬웰의 목숨을 앗아가고, 수많은 교황과 추기경들을 쓰러뜨린 질병입니다. 말라리아에 걸리면 40도의 고열에 시달리다 황달로 사망하게 됩니다. 발병자 3~5억 명 가운데 100만 명 이 사망하는 이 병은 에이즈, 결핵과 함께 세계 3대 감염병 중 하나입니다. 지금까지 태어난 인류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습니다. 이 병의 위협에서 인류를 구해낸 것은 페루의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키나 나무 껍질로 만든 퀴닌이었습니다. 17세기 중반 카톨릭 선교사들이 유럽으로 들여왔고, ‘예수회의 가루’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p99 모르핀의 금단 증상은 몹시 고통스러워서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탄 것에 비유되곤 한다. 온몸이 나른해지고 불면증, 콧물, 오한, 극심한 두통과 복통, 구토감 등 지옥과 같은 고통과 끔찍한 증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3. 모르핀

역사상 최강의 진통제라 할 수 있는 모르핀은 인류가 사용한 가장 오래된 의약품 중 하나입니다. 다원자 40개 덩어리 모르핀은 인류를 끔찍한 통증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약으로 등장한 것은 17세기 후반 영국에서였습니다. 적포도주에 적정량의 아편을 섞어 만든 ‘아편팅크’는 감기, 콜레라, 생리불순, 원인불명의 통증 등 만병통치약처럼 쓰였습니다. 이는 18~19세기 아편중독자가 급증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p164 살바르산의 등장은 수없이 많은 다른 세균 감염증에 대해서도 같은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화학 요법의 시대에 막을 올린 역사적 연구의 현장에서 노력한 사람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4. 살바르산

매독은 15세기경 남아메리카로부터 전파되었다. 매독이란 이름은 이병의 부스럼이 소귀나무 열매인 양매를 닮았기에 양매창이라고 불리던 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샤를 8세가 나폴리를 포위했을 때 크게 유행해, ‘나폴리 병’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에를리히 연구팀의 하타 사하치로가 불굴의 의지와 놀라운 끈기로 개발한 606번째 비소 화합물 살바르산. ‘구세주’를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 ‘살바토르(Salvator)’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인류가 수백 년 동안 매독 치료제로 사용한 수은은 참혹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1910년 처음 발매된 살바르산은 위험한 가짜 약 수은을 의약품 목록에서 몰아냈으며, 수많은 매독 환자를 죽음의 늪에서 건져내 주었습니다.

 

5.페니실린

1928년, 스코틀랜드 출신 미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개발한 페니실린. 비타민C와 함께 인류사를 뒤바꾼 가장 중요한 약 중 하나로 꼽힙니다. 특수한 푸른곰팡이를 배양하여 만든 기적의 약 페니실린은 1941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만 50만 명 이상의 생명을 구했으며, 수많은 사람의 병을 낫게 해주었습니다.

p221 아직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암 예방을 위해 아스피린을 대중적으로 권장할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저렴한 약인 아스피린으로 현대의 최대의 숙적인 이들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는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6. 아스피린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약은 진통,소염제 아스피린이다. 생산량은 5,000mg 알약 기준으로 1,000억 알 분량이며, 지구에서 달까지 한 번 반 왕복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1899년에 처음 출시된 아스피린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극심한 스트레스에 내몰리던 1920~30년대에 특히 대단한 인기를 구가했으며, 역사가들에 의해 ‘아스피린 에이지’로 기록되었습니다.

요즘은 항혈전제로도 쓰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알츠하이머 치매예방, 대장암, 유방암, 폐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가설도 나와 있다고 합니다.

해리포터에도 등장한 맨드레이크 뿌리에서 유래한 마취약과 구강청결제 ‘리스테린’의 기원을 품고 있는 ‘조지프 리스터’의 소독제의 발견은 수술을 통한 인류의 생명연장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악마가 놓은 에이즈의 덫에서 인류를 구한 에이즈 치료제가 불치의 병인 에이즈를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바꾸어 놓기도 했습니다. 결국, 인류는 식물과 세균에서 의약품을 추출하거나, 화학적 합성을 통해 새로운 의약품을 만들어 냈으며, 그 의약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대사과정을 연구함으로 처음의 발견과 발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왔습니다.

약의 특성은 이중적입니다. 어떤 용량에서 효과가 있고 용량이 넘치면 당연히 부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에,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합니다.

코로나치료제와 백신 상용화는 아직 시기상조이지만,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인류는 의약품을 통해 생명연장의 꿈을 꾸며, 통증이 없는 질적으로 향상된 삶을 살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역사를 통해 의약품이 어떠한 부작용을 일으키고,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일으켰는지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약국을 한 바퀴만 둘러 봐도 과학적으로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건강식품이 버젓이 팔리고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엄격한 임상시험을 거쳐 심사를 통과한 의약품조차 약효보다는 부작용이 더 크다는 판정이 내려져 판매가 중지되는 사례도 끊이지 않는다.
- P35

대항해 시대 뱃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질병은 괴혈병이라는 질병이었다. 이 무서운 병에 걸린 사람은 심각한 피로에 시달리며 차츰 쇠약해졌다. 손가락으로 살을 누르면 쑥 들어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을 정도로 탄력을 상실했다. 입에서는 쉴 새 없이 피가 흘렀고 병든 닭처럼 시름시름 앓다가 천천히 죽어갔다.
- P41

그리스,로마 시대의 문헌에는 아편의 효능과 용도가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동시에 그 독성에 대해서도 엄중한 목소리로 경고하고 있다. 아편은 강력한 효과로 말미암아 의사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동시에 부정적인 측면도 고려해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되는 약물로 여겨졌다.
- P93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외과수술은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몸부림치는 환자를 몇 명의 의료진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힘으로 제압하는 동안에 이루어졌다. 19세기 초반까지 수술실은 지하실이나 높은 탑 맨 꼭대기에 설치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환자의 비명이 밖으로 새어나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 P114

한 세기 반 가까이 세계 곳곳에서 마취약을 사용했지만 지금도 마취의 원리를 속 시원히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정확한 원리를 모르고서야 장님 코Rlf리 더듬는 격의 연구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다.
- P128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바이러스가 공통으로 지닌 ‘급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바이러스제는 각각의 종을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으며, 현재 기준으로 인플루엔자나 감염 등 몇 종류의 바이러스에 대한 약품만 개발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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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에 없는 약 이야기 - 가짜 약부터 신종 마약까지 세상을 홀린 수상한 약들
박성규 지음 / Mid(엠아이디)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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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아픈 데가 많아지고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당뇨, 관절염과 같은 만성 질환을 한두 개쯤은 달고 지내게 됩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복용하는 약의 수도 많아지기 마련입니다.

물론 여기저기 아프니 많은 약을 사용하게 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병원에서 처방 받은 필수적인 약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권하는 건강식품, 보조제, 비타민 등 정말 약만 먹고도 배부를 지경에 이릅니다.

이 책은 가짜나 엉터리, 또는 수상해서 '약국에 없는 약'에 대한 일화를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는 책입니다. 역사를 보면 어처구니없는 이유와 황당한 재료들이 모여 만병통치약과 만능해독제라는 이름으로 '발명'되곤 했습니다. 진시황과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사랑한 수은은 그 모양과 희소성 때문에 약이 되었고, 이집트의 미라는 번역의 실수로 인해 유럽에서 의약품으로 사용됐다. 조선의 왕 정조는 담배의 효험을 예찬했고, 프로이트는 코카인을 획기적인 신약으로 조명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히로뽕은 20세기 초 독일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고, 대마는 종교의식에 쓰이는 신성한 식물이었지만 지금은 '나쁜 것'이 되었습니다.

1부에서는 인간이 '가짜 약'을 거쳐 '좋은 약'을 얻기까지의 험난하면서도 요상했던 에피소드를 살펴보고, 2부에서는 생존에서 불로불사의 도구로 활용된 약재로 시작해 '중독과 쾌락'의 수단인 담배 아편 코카인 대마의 효능과 폐해 등을 다룹니다. 마지막에는 이른바 '생산적인 마약'을 둘러싼 논란과 '약으로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철학적인 문제를 제기합니다.

p207 코카콜라는 1886년 미국에서 처음 출시되었는데, 당시의 코카콜라는 미국의 모르핀 중독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일상적인 음료수가 아닌 일종의 약품이었다. 1800년대 말, 미국은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였고, 전쟁 중 약으로 사용하던 모르핀에 중독된 환자들이 상당히 많았다. 코카콜라의 '코카'가 암시하듯 처음 출시되었을 당시의 코카콜라에는 코카인이 함유되어 있었다. 프라이슐이 아편에 중독되었을 때 중독 치료를 위해 프로이트가 코카인을 권유하였던 것처럼 코카인은 각성효과덕분에 질병치료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줄 획기적인 신약으로 여겨졌다

최초의 약은 가짜 약이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중세의 연금술사들이 존재하지 않는 ‘현자의 돌’을 찾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고도 실패했지만, 그것이 단순히 실패로 끝난 게 아니라 근대 의약학 발전의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또 조선 정조가 효험을 예찬한 담배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획기적인 신약으로 조명했던 코카인이 오늘날 ‘나쁜 약’이 된 가장 큰 이유는 중독성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또한, 저자는 ‘마약은 정말 나쁘기만 한 것인가’ 또는 ‘좋은 약은 과연 좋기만 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좋고 나쁜 약이 되는 데에는 나름의 속사정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마약이라고 해서 다 같은 마약이 아닙니다. 의학적인 치료와 시술을 목적으로 사용되는 즉, 그야말로 ‘약’이 되는 마약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치료를 목적으로 사용하는 마약은 중독의 위험도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의력결핍장애 치료제, 식욕억제제, 간질치료제, 신경안정제, 마취제, 수면제, 진통제 등 상당수의 치료용 약제가 ‘마약류’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치료제는 중독의 문제가 거의 없습니다. 이로 인해 잘못된 편견과 오해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해, 질병 치료를 위해 해당 약물을 복용해야만 하는 환자와 가족, 그리고 처방하는 의사들까지도 괜한 뭇매를 맞고 있으며 심각할 경우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합니다. 이런 설명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광고에서 주워들은 약을 사거나 인터넷 정보를 뒤적이며 정보를 찾아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마저도 자신에게 딱 맞는 정보를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그 정보가 제대로 검증을 받은 것인지, 어디에서 온 것인지 분명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너무 많은 종류의 약을 먹다 보면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헷갈리기도 하고, 더 먹기도 하고 덜 먹기도 합니다. 제대로 된 용량을 복용하지 않아 적절한 치료 효과가 나오지 않거나 부작용이 생기기도 하고, 같이 먹으면 안 되는 약 또는 같이 먹으면 안 되는 음식 등의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약을 중심으로 한 세계의 문화사뿐만 아니라 과학적인 설명도 함께 담고 있습니다. 약국에 없는 약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약에 대해 새로운 인사이트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좋은 약과 나쁜 약의 기준은 무엇이며 옳은 약과 옳지 못한 약의 기준은 무엇인지 다시금 살펴볼 수 있는 성찰의 근거를 역사 이야기를 통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과거를 지나 현대에 이르면서 더 복잡해진 약과 질병을 역사와 함께 되짚어보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의사들은 문자를 사용해 처방과 치료법 등을 기록했는데, 오늘날 이 문서들을 에베르스 파피루스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주술은 약과 함께 사용할 때 효과가 있으며, 약은 주술과 함께 사용할 때 효과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 P24

현대에 이르러 제약회사들은 커다란 문제에 직면하였다. 앞으로 정복해야 할 질병들은 과거처럼 많지 않을뿐더러, 아스피린처럼 크게 대박을 터트릴만한 혁신 신약의 가능성도 줄어들었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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