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라는 헛소리 - 욕심이 만들어낸 괴물, 유사과학 과학이라는 헛소리 1
박재용 지음 / Mid(엠아이디)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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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핸드폰 케이스를 샀는데 그 안에는 필름과 더불어 전자파를 막아준다는 안드로보이가 있었다. 흐뭇해하며 핸드폰에 부착했다. 순금도금에 100%막아준단다. 아내를 따라갔던 산부인과에는 수소수 정수기가 있었다. 몸에 좋다고 생각하고 여러번 마셨다. 추운 겨울이었는데 그랬다. 몸을 알칼리로 바꿔준다는데 어릴적 산성체질이면 쉽게 비만해진단 이야길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많이 마셨다. 전자렌지를 돌릴때면 아직도 안의 뻘건 전파가 무서워 좀 떨어져있는데 우리 아이도 못보게 한다. 눈도 멀수 있다고 들은 것 같다.

 내가 일상에서 경험한 이 같은 일들. 그리고 사람들도 그렇게 알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은 사실 유사과학이다. 과학이 아니라는 것으로 책 과학이라는 헛소리는 이런 유사과학의 여러 사례와 위험성, 그리고 올바로 과학하는 자세를 알려준다.

 유사과학에 관한 책은 너무나도 많은데 정작 그것을 비판하는 책은 드물다는 점에서 책은 가치가 있었다. 저자는 과학으로서 인정받으려면 우선 자신의 연구를 학회지나 논문을 통해 발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동료와 그 분야의 전문에게 검증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수의 과학자들이 자신의 견해를 그냥 책으로 내거나 언론에 발표하기도 하는데 이런 것은 유사과학일 가능성이 크다. 검증비판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몇몇 제품들에는 연구기관에 의해 인증받았음이 표기되기도 하는데 이 역시 유사과학일 가능성이크다. 그 연구기관이라는 것들이 대개 그 회사의 기관일 가능성이 크며 그렇지 않더라도 과학자가 연구비를 받아 올바른 연구를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책에서 말하는 유사과학의 사례도 재밌다. 앞서 말한 것처럼 상당히 찔리는 것이 많았다. 요즘 효소가 들어간 건강제품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효소라는 것은 단백질의 형태를 갖고 있으므로 먹어서 흡수하면 강력한 소화력을 가진 우리 소화기관에서 아미노산단위까지 분해된다. 결국 고기를 먹는 것과 다를바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제품들이 효소가 몸에 도달하여 작용하는 것처럼 설명한다. 유사과학이다.

 콜라겐도 그렇다. 콜라겐도 단백질인데 그 분자결합이 매우 강하여 먹어도 잘 소화가 되지 않는다. 90%정도가 소화되지 못하고 몸밖으로 그냥 배설되므로 콜라겐은 많이 먹는 것은 별 효과가 없다. 게다가 역시 소화되는 10%역시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므로 결국 콜라겐은 아닌 셈이다. 피부에 바르는 것은 더욱 기가막힌데 콜라겐의 분자가 커 피부를 침투하는 건 불가능하다. 콜라겐 정도에 뚫린 피부라면 우린 이미 세균 감염에 속수무책인 셈이다.

 얼마전 나왔던 글루텐의 공포도 지적한다. 글루텐의 함량에 따라 밀가루는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으로 나누는데 함량이 많을 수록 끈기가 있고 잘 끊어지지 않는다. 글루텐이 몸에 매우 부정적인 것처럼 몇몇 언론이 다루었지만 글루텐에 알러지 반응이 있지 않다면 아무 상관이 없다. 거기에 글루텐은 보리, 다른 채소류에도 들었다고 한다.

 전자기파도 지적한다. 일단 올바른 용어는 전자파가 아니라 전자기파가 맞다. 전자기파는 진동수가 높고 에너지가 클수록 침투력이 좋은데 그래서 감마선은 우리 몸을 아예 투과해버리고 엑스선은 뼈를 제외하고 투과한다. 몇몇 전자제품에 전자기파를 막아주는 물질이 있다고 하는데 만약 그런 물질이 실제로 전자기파를 차단 및 흡수한다면 그 전자제품은 작동자체가 잘 되지 않게 된다. 특히 스마트폰은 완전히 먹통이 된다. 대부분의 전자제품의 전자기파는 인체의 이렇다할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강하지 않다고 한다.

 유사과학은 과거에도 맹위를 떨쳤는데 충격적인 사건은 동성애자에게 가했던 폭력이었다. 불과 20세기 초중반까지도 사람들은 동성애자나 소수성애자를 비정상으로 취급했다. 그래서 강제로 감금하여 성적지향을 인위적으로 바꾸려는 여러시도가 있었는데 그 방법이 가히 충격적이다. 자궁절제술, 난소절제술, 음핵절제술, 거세, 정관수술등 갖은 외과적 방법에 자행되었다. 특히, 레즈비언에게는 교정강간까지 행해졌는데 강제로 남자와 성관계를 맺게하면 성적지향이 남성지향적으로 바뀔것이라는 헛된 망상에 시행된 것이었다.

 장애인에 대한 유사과학도 대단하여 상당수 국가에서 굉장히 오랫동안 사회진화론적 관점에서 장애인을 제거 대상으로 삼거나 혹은 후손을 남겨서는 안되는 도태된 존재로 생각했다. 일본에서는 무려 1990년대까지 장애인을 이렇게 대하는 법이 남아있었다고 하니 가히 야만의 역사다.

 책에는 이 외에도 다양한 유사과학이 사례가 나온다. 살펴보며 재미를 느끼고 반성하는 경험이 좋았다. 쉽게 써서 재밌고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창조론이나 지적설계론에 대한 비판, 백신을 맞지 않는 행태에 대한 비판도 있어 더욱 의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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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2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2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 털보 과학관장이 들려주는 세상물정의 과학 저도 어렵습니다만 1
이정모 지음 / 바틀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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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의 전작인 공생멸종진화를 작년에 재밌게 본 기억이 있다. 그래서 다음작인 이 책을 자연스레 접하게 되었다. 전작과 좀 다른 점이 많았는데, 전작이 비교적 과학에 집중한다면 이번 작은 과학을 어느 정도 토대로하고 사회와 인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모았다는 점이다. 아마 이 책은 어딘가에 수록한 글들을 모은 책인 듯 하다.

 이런 점 때문에 이정모 저자의 전작을 재밌게 보고 비슷한 것을 기대한 사람은 조금 실망할 수 도 있을 것 같고, 반면에 이 책으로 처음 이정모 저자를 만난다면 오히려 접근 장벽이 낮아 더 나을 수 도 있겠다.

 나는 비교적 전자인 편이라 책이 그리 재밌진 않았는데, 그래도 몇가지 재밌는 과학 상식을 건질 수 있었다. 저자는 강연을 갈때마다 주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는 방귀이야기를 자주 한다고 한다. 이유는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기 때문이라는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방귀이야기만 나오면 재밌어 하고 강연에 집중한다고 한다. 사람은 하루에 14-25번 정도 방귀를 뀌는데 산에 올라가면 유독 방귀가 잦아진다고 한다. 산에거의 가지 않아 잘 몰랐던 사실인데, 이는 대기압의 변화와 관련한다. 산에 오르면 기압이 낮아지고 대장에 대한 기압도 약해져 대장이 내부의 가스로 인해 팽창하고 이로 인해 방귀가 잦아진다는 것이다.

 지저분한 방귀 이야기 다음으로는 꽃이 재밌었다. 꽃들은 크기도 하고 작기도하는데 저자는 작은 꽃의 생존전략을 말한다. 대개 곤충입장에선 작은 꽃보다는 꿀이 보다 많고 발견하기도 쉬운 큰 꽃이 보다 탐스러울 것이다. 이렇기에 작은 꽃이 세운 전략은 두가지다. 하나는 대규모로 군락을 이루어 함께 꽃을 피우는 것이다. 큰 과일 하나와 작은 과일 수십개가 대결하는 셈이다. 다른 전략은 큰 꽃과 개화시기를 달리하는 것이다. 겨울을 난 상태에서 작은 꽃들은 새잎파리를 내기도 전에 온몸을 꽃으로 먼저 뒤덮는다. 개나리나 벚꽃 등이 그러한 예일 듯 하다.

 마지막은 모기였다. 자연을 사랑하는 저자지만 모기로 인해 한해 전세계 80만의 인구가 운명하기에 감히 모기의 존재를 긍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모기의 입장을 살피는데 모기가 사람의 피를 빠는데 걸리는 시간은 무려 8-10초 정도란다. 인간입장에선 모기를 알아차리고 죽이는데 짧은 시간일 수 있으나 모기 입장에서는 목숨을 건 그야말로 지옥같이 긴 시간이다. 모기는 살기위해 마취제도 살포하고, 공기중에 노출된 혈액이 응고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 히루딘이란 응고억제제를 분비한다. 하지만 사람몸 역시 이런 모기의 존재를 본체에 알리기 위해 히루딘이 몸에 들어오면 여기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히스타민을 분비한다고 한다.

 알레르기 반응물질이니 몸은 자연스레 부어오르고 간지러워진다. 통념과는 다르게 모기로 인한 것이긴 하나 물린 부위기 부어오르는 것은 사실 사람 몸에서 만든 물질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에는 다른 과학적 이야기. 그리고 관련한 사회 이야기, 정치에 대한 비판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난 좀 그랬지만 이런 부분에 재미를 느낄분도 많을 것이란 생각이다. 자연사박물관장 답게 자연사 박물관에 대한 소신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전체적으로 가볍게 보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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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내전 -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
김웅 지음 / 부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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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말한 대로 검사는 애증의 대상이다. 아내의 사촌이 검사가 되어 결혼을 하였는데 그의 아내될 사람 역시 변호사였다. 폼나게 법원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주례를 맡은 로스쿨 법대교수의 주례사도 인상적이었다. 두사람다 법조인으로 주변의 시기와 질투를 쉽게 받을 수 있으니 조심하며 겸손하게 살라는 것이었다. 여러 주례를 들어봤지만 너무 잘난걸 티내지 말라는 주례는 처음이어서 색달랐다. 그만큼 법조인 특히 검사는 우리 사회에서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검사는 의외로 사실 공무원인데 일반 행정적과는 다르게 급수가 없다. 공무원들 중에는 이렇게 급수가 없는 공무원이 좀 있는 편인데 검사의 경우는 책을 보니 무려 3급공무원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고 있었다. 공립학교의 평교사들이 7급 정도의 대우를 그리고 지역의 면장이 5급인걸 생각한다면 상당한 대우다. 하지만 권력이 강하면 부패도 일어나는지라 저자가 말한 것처럼 재벌이나 정권과 결탁하여 떡검소리를 듣는 것도 검사다.

 저자는 이런 본인의 검사생활을 썼다. 읽다보니 검사생활에 대해 좀더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평검사-부장검사-차장검사-검사장으로 이어지는 라인이나 지청 등의 개념도 알게 되었다. 그들이 겨우 2년마다 자리를 옮겨야 하고 그로인해 그 빈큼이 수사 공백으로 이어지거나 이를 악용하는 범죄자들의 케이스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악랄한 범죄자들의 수법은 정말 치가 떨릴 정도로 어이가 없었는데 이런 이들의 생태와 정신세계를 여러 가지 비유로 재밌게 표현하는 서술의 이 책의 독특한 재미였다.

 하지만 여기서 끝났다면 이 책 역시 그저 사회적으로 관심받는 직종세계를 표현한 여느 평범한 드라마들과 차별성이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의 차별성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법조계의 근원적 문제점을 잘 드러낸 점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지나친 고소인 중심의 법체계다. 주진우 기자도 그의 책 사법활극에서 지적했듯 사람이 마음 먹고 다른 사람을 고소하기 시작하면 엄청나게 괴롭히기 쉽다. 고소는 자유롭고 그들의 고소할 권리는 무한정 보장되는 반면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의 권리는 크게 보호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불균형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도 드러난다. 우리나라는 법체계에서 가해자의 권리는 상당히 보장하는 한편 피해자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비교적 당연하게 생각하는 형법의 경우도 그렇다.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에게 피해자는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 보복할, 혹은 응징할 자신의 권리가 모두 국가에 위임된채 일이 진행되는 것이다. 상당수 선진국에서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그 회복과정에서 피해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적극 참여시킨다고 한다.

 이처럼 가해자나 고소인 중심의 체계는 과거 국가권력이 지나치게 강대하여 생겨난 부작용인데 세월이 충분히 지났고, 어느 정도 민주사회가 성숙한 만큼 돌이켜볼 제도인 듯 하다.

 또 다른 것은 사법부의 비 민주성이다. 민주국가는 삼권분리의 체제로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로 구성된다. 행정부의 최고 수반인 대통령과 각 지자체의 단체장, 그리고 입법부의 구성원인 국회의원과 지자체 의원은 모두 국민의 손으로 뽑히며 견제된다. 반면 사법부는 전혀 국민의 손을 거치지 않고 시험을 통해 선발된다. 김웅검사는 이것의 비민주성을 지적한다. 이런 부분을 오랫동안 당연히 생각해 와서 읽으면서 무척 부끄러웠고 깨달음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판사의 80%가 임명직이 아닌 선출직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행정권력인 검사를 판사가 견제하며 사법 권력인 이 판사를 국민인 배심원이 견제하는 것이다. 우리 역시 뒤늦게나마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했지만 판사가 배심원들의 판결을 거부할수 있다는 점에서 큰 한계가 있다.

 마지막 하나는 국민의 재판을 결과에 불복할 권리다. 우리나라의 재판은 행정은 2심 일반 민사나 형사는 3심제다. 물론 재판이 3심까지 갖어도 재판에서 판결의 근거가 된 증인이나 증거에 대한 재판을 새롭게 걸수는 있다.(이런 식이면 사실 무한의 게임인 셈이다.)  그러나 대부분 3심재판이면 사실상 개인이 더 나아가기는 힘든 형국인데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재판결과에 대하여 헌재에 불복소원을 할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재판결과가 헌법재판소의 소관이 아닌데 이 것이 결정된 것도 87년체제에서 전두환의 잔당인 민정당이 한 짓이라 개선이 필요해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검사의 생활과 기가 막힌 범좌자들 우리나라의 비균형적인 가해자 중심과 고소인 중심의 법체계, 그리고 사법체계 자체의 비민주적 요소를 많이 깨달을 수 있었다. 문체도 상당히 재밌지만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김웅검사는 진화론과 행동경제학, 그리고 여러 사회과학 및 철학적 인용을 본문에서 많이 한다.)이 드러나 있어 책이 더욱 깊이가 있었다. 아무래도 다양한 사람을 접하다보니 인간에 대한 깊은 호기심과 통찰력이 그를 다양한 독서의 길로 이끈 것 같다. 물론 본문을 보면 어릴적부터 책 귀신이긴 했지만.

 생각보다 유익한 책이었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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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 2018-03-18 2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굿
 

 

 이 책을 무려 14년만에 봤다. 14년전엔 군대를 막 제대하고 대학에 복학한 상태였는데 당시 수강한 교양과목 교수님이 한 학기동안 10여권의 책을 읽게하였고, 이 책은 그 중 하나였다. 어릴 적 중학교 선생님께서는 어릴 적 본 책과 나이가 들어서 본 책은 새롭고 다르다는 아주 당연한 말씀을 절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나이의 나에게 하셨던 기억이 있다. 이젠 그 말씀을 제법 이해할만큼 세월을 느껴서인지 책은 새롭게 다가왔다. 어쩌면 14년 전을 기억하지 못해서 일수도 있다. 과제로 읽은 책이 다 그렇지 않던가.  실제로 책을 다시 다 보고나서야 새로운 표지의 거북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되었으니 말이다.

 조금 더 나이가 든 나에게 이 책은 자본주의 비판서로 다가왔다. 책이 바로 시간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생산이 중요하고 우주 만물이 그러하듯 자본주의 사회 역시 시간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즉, 뭔가를 만들어내는데 시간이 반드시 소요되므로 동일 시간 내에 최대한의 생산을 하는 것이 관건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생산성이라 부르며 매우 중시한다.

 그렇다 보니 자본은 항상 사람을 시간적으로 짜내며 그걸 효율성이라던가 생산성이 높다며 포장한다. 시계란걸 만들어내어 시간을 쪼개어 통제하고, 매우 장기간의 노동을 시키며 정해진 시간안에 누가 가장 문제를 잘 푸는가로 어려서부터 사람을 재단한다. 그리고 몇년전 시간이 자본주의의 핵심임을 잘 파악한 영화도 하나 있었다. 바로 인타임이다.

 

 

 출처-위아래 사진 둘모두 네이버 카페

 

인타임은 썩 잘만든 영화 같진 않았지만 굉장히 기발한 소재의 영화였다. 상당히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 영화를 인상적으로 평가하였는데 아무래도 자본의 핵심인 시간을 찔렀기 때문인 듯하다. 현재 자본은 직접 빼앗는 것이 불가능한 노동자들의 시간을 비교적 간접적 착취 방식인 노동과 돈으로 환산하여 착취한다. 노동과 돈을 만드는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타임의 세계는 다르다. 여기선 과학기술의 발달로 직접 시간을 주고 받는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화폐는 사라지고 자본가들은 직접 노동자들에게 착취한 시간으로 영겁의 시간을 누리게되며, 노동자는 착취당한 시간으로 직접적인 생명의 위기를 느끼게 된다. 영화는 더 나아가서 시간마져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노동자들을 더욱 곤경으로 몰아넣는다. 어제까지 1잔에 5분이던 커피가 다음날엔 7분이 되고 마는 것이다.

  다시 소설 모모로 돌아간다. 모모는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다. 신비한 소녀로 부모도 없고 고향도 없으며 소녀자신조차 그걸 모른다. 한 허름한 도시의 상징처럼 더욱 허름한 원형극장에 소녀 모모는 자리잡는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엔 모모를 이상하게 여겼지만 점차 소녀에 빠져든다. 소녀는 이상한 매력이 있었는데 보고 있으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본심을 말하게 만드는 것과 오랜 시간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모모를 돕는다. 미장이나 집을 고쳐주고, 음식가게 사장은 먹을 것을 주었다. 그리고 모모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아이들도 모모를 좋아한다.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모모와 함께 있으면 손쉽게 환상의 세계로 빠져 즐거운 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회색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마을 어른들을 하나씩 꼬드기기 시작한다. 마치 소크라테스라도 되는냥 마을 사람들 하나하나의 허름한 인생을 꼬집고, 성공하지 못한 인생을 꼬집고, 친구들과 떠들고 이야기 하고 노느라 허비한 시간을 지적한다. 이에 자극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짜내기 시작하고 생산성을 높여나가기 시작한다.

 마을의 생산성은 급격히 높아져 1년만에 그럴싸한 현대적 도시로 변모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서로를 보지 않고 이야기도 하지 않으며 진정한 자신을 잃어간다. 그리고 모모도 더이상 찾지 않게 된다. 모모는 그런 마을 사람들을 다시 찾으려고 노력하고 회색신사들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이 짜낸 시간을 착취해 살아가는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즉, 자본인 것이다.  

 이 부분이 영화 인타임과 소설 모모가 닿아있는 지점이다. 때문에 소설 모모와 영화 인타임은 자본주의 비판서가 된다. 요즘 교육 현장에선 온책읽기를 하고 사후활동을 하는 교육활동이 국어교육과정에 정식으로 도입될 정도로 활성화 되고 있다. 때문에 모모같은 책을 읽고 작가와 이야기하는 것도 좋은 활동이 될거란 생각이었는데 책 모모가 출간된 것이 이미 1970년이고 작가 미하일 엔데는 고인이 된지 오래였다. 안타까운 일이다. 모모에서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남기고 페이퍼를 마친다.

 

p151

우리는 시간을 갈망하지. 아 너희들은 그게 뭔지 몰라. 너희들의 시간을 말이야.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어. 그래서 뼛속까지 너희들의 진을 빨아들이는 거야.

 

p153

아이들은 우리들의 천적이에요. 아이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벌써 오래전에 전 인류를 수중에 넣을 수 있었을 겁니다. 아이들에게는 그 어떤 사람보다 시간을 아끼게 하기가 힘들어요.

 

p240

죽은 것으로 목숨을 이어가기 때문이지. 너도 알다시피 그들은 인간의 인생을 먹고 살아간다. 허나 진짜 주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시간은 죽은 시간이 되는게야.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시간을 갖고 있거든 시간은 진찌 주인의 시간일때만 살아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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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8-03-17 0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타임을 한번 봐야겠네요

닷슈 2018-03-17 00:32   좋아요 0 | URL
재미만으로도 볼만한 영화입니다 의미도 있구요

cyrus 2018-03-17 0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마저 자본가가 통제하는 세상. 정말 암울합니다. 이런 상황이 영화 속 얘기는 아닌 것 같아요. 직원이 일찍 퇴근하지 못하도록 윗선이 무언의 압박을 주는 것도 시간 통제입니다.. ㅠㅠ

닷슈 2018-03-17 17:23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입니다

희망찬샘 2018-03-18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예쁘게 옷을 입은 책이 나왔네요. 하날 사야하나? 산 기념으로 또 읽어주어야 하나? 하는 갈등을 하게 되네요. ^^ 또 읽으면 또 다른 이야길 해 주겠지요?

닷슈 2018-03-18 09:47   좋아요 0 | URL
네 그럴겁니다
 
과학자의 철학 노트 - 철학이 난감한 이들에게
곽영직 지음 / Mid(엠아이디)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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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초년 시절 뭣도 모르고 철학을 집어들었던 기억이 난다. 알고는 싶었지만 너무 어려웠고, 의미를 찾기도 힘들었다. 남들은 원전을 본다는데 2차 서적도 보기가 버거웠다. 그후로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철학은 내게 어렵다. 그전만큼 관심은 없지만 여전히 흥미롭고 해야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의 부채나 의무같기도하다. 더구나 최근엔 과학에 보다 관심이 많아 철학은 좀 많이 뒷전이었다.

 그래서인지 과학자의 철학노트란 제목이 확 다가왔다. 과학자의 관점으로 본 서양철학사라면 서양철학을 살펴보는 또 다른 관점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어느 정도 그러한 눈을 준것 같기도 하다.

 책의 구성은 연대순이다. 다른 철학서적 처럼 그리스로마시기-헬레니즘-종교시대-르네상스-절대왕정시기-계몽주의-과학혁명으로 나아가는 순이다. 개별장마다 각 주요 시기의 철학자가 나오는데 독특한 점은 그들의 실제 얼굴은 아닐지언정 일단 알려진 얼굴이 나오고, 삶이 간략히 소개되며 그 후 철학이 펼쳐진다는 점이다. 하나의 철학자마다 철학의 내용을 제법 압축해서 소개한다. 물론 저자의 생각에 따라 철학자들의 분량이 꽤 차이나긴 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렇다 보니 많은 철학자가 소개되고 책의 볼륨도 제법이다.

 나 역시 시대 흐름을 느껴가며 읽었다. 이번 리뷰는 그 와중에 나름 인상적인 사람들 중심으로 써보려고 한다. 가장 처음 나오는 그리스로마시기는 사실상 서양철학의 씨앗을 뿌린 시기다. 물론 그 대개의 내용이 지금의 관점에선 터무니 없지만 이들의 통찰력은 사실 상당한 수준이라고 느껴진다. 이 사람들이 지금의 문명수준으로 세계를 볼 수 있었다면 상당히 엄청났을 것이란 건 분명해 보인다. 뭔가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신, 법칙, 로고스, 숫자 등)등에 대한 생각이 나타났고, 물질이 세계를 구성한다는 생각도 나타났다.(4원소설이나 원자, 등) 어찌보면. 이후의 철학은 이 생각들이 서로 주도권을 주고 받으며 발전하는 과정이기에 사실 토대는 이미 완성된 셈이라고 볼수도 있다.

 종교시대도 생각보다 재밌었다. 다른 철학책이 주로 아퀴나스나 신학을 위해 철학을 사용하는 부분을 많이 거론한다면 이 책에서는 기독교의 교리의 완성과정을 잘 소개한다. 종교시대에 기독교의 문제는 크게 두가지였는데 하나는 예수를 어떻게 볼 것인지의 기독론과 어떻게 하면 구원이 가능한지의 구원론 두가지였다.

 예수는 신적인 존재이면서 인간이었기에 문제가 되었다. 양자를 모두 인정하기도 부인할수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인데 무수한 많은 이론이 오랜 시간을 걸쳐 결국 익히 알려진 삼위일체론으로 정리되었다. 구원론은 인간이 원죄를 지은 결과 선행능력을 상실하여 결국 신의 은총에 의한 구원만 가능하다는 설과, 자유의지지가 있어 자신의 선행으로 구원이 가능하다는 설이 있었다.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기독교가 부패하고, 종교개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으로 볼 때 전자에서 후자로 점진적으로 생각이 이행한 것으로 보인다.

 르네상스 시기 인상적인 사람은 단연 데카르트였다. 그리스로마시기의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을 보다 체계화 했으며 그로 인해 근대철학의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책은 평가한다. 데카르트는 세계를 형이상학적인 영역에 속하는 정신의 세계와 역학법칙의 지배를 받는 자연으로 나누었다. 그는 물질의 속성으로 연장개념을 제시하였는데 연장은 물질이 공간을 차지하는 속성이다. 즉,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 물질인 것이다. 이런 연장개념은 과학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당시 자연계에 만연한 정령이나, 영혼등의 전통적 사고를 물질에서 제외하는 성과를 낳았으며 이는 자연과학이 발전하는 밑거름이 된다.

 데카르트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개념에서 착안하여 자신의 철학을 전개시켰는데, 증명할 필요가 없는 의심을 여지없는 제1원리를 찾는 것이 그것이었다. 이로 인해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제1원리가 생성된다. 문제는 제1원리에서 다른 원리로 이행되는 과정이었는데 데카르트는 다소 어이없게도 선한 신이 있어 나를 속여 존재하지 않는 다른 것을 인식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르네상스시기를 거쳐 도래한 계몽주의는 절대왕정과 로마카톨릭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되었다. 계몽주의의 성향은 당시 각 유럽 국가의 정치적 상황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었는데 프랑스의 경우는 대혁명의 계기가 되었고, 영국은 이신론과 자유주의에 영향을 독일에서는 국가건설을 위한 문명화의 일환으로 이용되었다.

 영국에서는 이시기 경험론이 발달하여 과학적 사고가 발달하는데 이바지 하였고, 새로운 윤리사상으로 공리주의가 등장하였다. 책은 공리주의를 일컬어 역사상 처음으로 신이나 종교에 의지하지 않은 새로운 윤리기준으로 평가한다. 공리주의를 우습게 보거나 비판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지만 이것은 근대시민 사회의 윤리기준으로 자리잡았고, 고전경제학과 자본주의의 사상적 기초이자 현대복지국가의 이념적 바탕이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공리주의의 시작은 벤담으로 그는 인생의 목적은 결국 쾌락이고 이를 행복과 동일시 하였으며 이것을 도덕적인 것으로 보았는데 공리주의가 이토록 강력한 것은 이런 벤담의 통찰력이 인간 본성의 한부분을 제대로 관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독일에서는 칸트가 가장 인상적이다. 이성의 시기에 칸트는 이성을 비판하는 세가지 서적을 만드러냈다.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 판단력 비판이다. 칸트는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이 각각 한계가 있다고 파악하고 이들을 종합하려고 시도하였다.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는 합리론은 인간의 인식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음을 그리고 경험론은 귀납적으로 얻어진 상대적 진리만을 인정하여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지식으로의 길을 막았음을 각각 비판한다.

 해결책으로 칸트는 인간이 지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외부에서 얻어진 감각경험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이것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 판단하는 선천적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통해 양자가 조화되게 된것이며 지식은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일수 있게 된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칸트는 우리가 인식하는 현상에는 결국 우리의 주관적 기능이 있어 물질 자체인 물자체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인간지성으로 사물의 현상을 분류하고 정리할수는 있으나 그 현상 너머의 본질파악을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이는 인간의 이성의 능력을 한계지은 것으로 볼 수 있기도 하다.

 실천이성비판에서는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려 욕망의 지배를 받으나 내적인 도덕법칙으로 인해 갈등상황에 놓인다고 말한다. 때문에 칸트는 인간의 진정한 자유는 현상이 아니라 물자체에서 찾아야하며 결국 이를 통해 순수이성비판에서 이성의 능력 한계로 버린 형이상학적 세계를 다시금 인간에게 이끌어온다.

 판단력 비판은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의 조합이다. 순수이성비판에서는 현실적 과학세계를 실천이성비판에서는 물자체의 초월세계를 다룬 것이라면 판단력 비판은 이들을 종합한다. 이 둘을 연결하기 위해 칸트는 인과율에 따르는 도덕이 자연과 조화를 맺고 있다고 보았다. 즉 ,물질 세계인 자연에서 도덕의 목적과 일치하는 모습을 발견할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계몽주의와 논리철학자 및 실존주의 철학의 현대철학 부분을 다룬후 과학철학 쪽으로 넘어가며 마무리된다. 사실 결론 부분에서의 언급이 없고, 전체적인 흐름을 말하는 종합이 없었기에 전체적으로 과학을 향한 혹은 과학자로서 서양철학을 바라보는 눈이 생각보다 약한 점은 이 책의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책을 보면서 느낀점은 서양철학에서 절대적 법칙을 추구하는 형이상학적, 절대주의적 사고와 감각경험을 추구하고 상대적이면서도 과학에 있어서는 법칙을 찾으려는 상대주의가 대비된다는 점이다. 이는 개인적으로 인간의 특성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하는데 인간에게는 종으로서 공통되는 생물학적 특성과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되는 부분들이 있으면서도, 개체로서 살아가면서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 부여된 자율적 지능과, 개체마다 주어지는 상대적 환경이 동시에 공존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에게 부여된 이런 절대성과 상대성으로 인해 세계 역시 결국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으로 파악하게 되는 것은 아닐런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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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3-13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이 현대라고는 하지만, 고대, 근대의 특성, 잔재(?)들이 여전히 많다고 생각해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이어져온 엘리트주의, 대중을 일깨워야 한다는 계몽주의, 인공 지능이 나오자 어떻게든 인간 이성을 우월시하려는 자세,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종교와 미신 등등등. 이 혼재가 당연한 건가 싶기도 하고요...

닷슈 2018-03-13 21:10   좋아요 1 | URL
저도 철학을 잘 모르지만 조금이나마 알수록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많이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