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 - 진경산수를 개척한 우리나라 화성 새로 쓰는 화인열전 1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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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는 회화가 진경 산수화로 변하고, 그림의 대상과 주제가 성리학적 관념을 넘어서 일상생활, 일반 백성으로 이동하는 한국 예술사의 중대한 변곡점이었다. 그 변곡점을 찍은 사람이 바로 겸재 정선이다. 정선이 개척한 진경 산수화에 대해 사실 교과서에서 절반 만을 가르친다. 진경 산수화가 조선의 산수를 실제에 가깝게 그리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산수화의 주제와 대상이 중국의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산수에서 조선의 산수로 옮겨간 것은 맞지만 진경산수는 그것을 실제에 가깝게 치밀하게 그리기 보다는 대상에서 받은 인상을 그리는 것에 가깝다.

 즉, 진경산수화는 조선의 산과, 바다, 강, 자연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리되 실제를 정확히 묘사하기보다는 대상에게서 받은 생각과 느낌 등을 화인이 주관적으로 그리는 것이된다. 서양 예술 사조로 친다면 인상주의나 추상주의로 나아가는 모더니즘 경향과 매우 유사하다 할 수 있다. 

 이 책은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님이 겸재 정신에 대해서 쓴 책이다. 과거에도 이런 책을 쓰셨는데 그간 한국 미술에 대한 연구가 양,질적으로 모두 깊어지며 그간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책을 거의 다시 쓰셨다 한다.  

 정선은 조선시대 사람 치고는 84세까지 장수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젊어서 두각을 나타낸 반면 정선은 40세까지 이렇다할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60이 넘어서야 그 진가를 드러냈다는 점이다. 정선의 대표작인 금강전도, 인왕제색도, 박연폭포는 모두 국보급 문화재로 정선이 70대 이후에 그린 것들이다. 

 그래서 저자는 정선의 회화 발전 시기를 다음의 3단계로 나눈다.

 우선 모색기로 60대 이전으로 진경산수를 개척해나가는 시기다. 신묘년 풍악도첩, 북원수회도, 사계산수화첩, 의금부계회도, 구학첩, 내연산 삼용추 등이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다음은 60대로 확립기이다. 진경산수 화풍을 완성한 시기다. 대표작은 청풍계도, 서원소정도, 경교명승첩, 연강임술첩이 있다. 마지막은 완숙기로 70대 이후다. 진경산수의 경지에 이르러 필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시기다. 대표작은 계상정거도, 정묘년 해악전신첩, 인왕제색도이다.

 정선은 평생 그림을 쉬지 않고 그렸다. 예술을 사랑하기도 하고 여기 저기서 밀려드는 그림 요청을 대개 수락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우 다작한 작가이며 작품도 현재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정선은 다른 화인들과 다르게 양반 출신이다. 광주 정씨로 증조부 정창문이 벼슬하지 못했고 그 아들 3형제도 급제를 못했다. 조선시대 양반가에서 3대가 벼슬을 하지 못하면 한미한 집안으로 추락했는데 정선의 가세가 딱 그러했다. 그래서 정선은 40세까지 궁핍한 삶을 이어간다. 그런 정선에게 관직의 길을 열어준 것이 안동김씨 집안이다. 이들은 청운동 일대에 살았고 이 지역을 장동이라 불러 다른 안동김씨와 구분해 장동김씨라 불렸다. 순조, 헌종, 철종의 장인인 김조순, 김조근, 김문근이 바로 이 장동김씨다. 이들은 김상용, 김상헌 형제의 후예다. 김상헌의 손자 김수증이 공조참판, 김수항이 영의정, 김수증도 영의정에 오르며 집안이 궤도에 오른다. 그리고 김수항의 아들 6인이 창자 돌림으로 겸재와 인연이 깊다.

 이들 중 김창집이 영의정에 올랐는데 이들의 고조부가 겸재의 고조부와 매우 친했다. 그래서 집안이 가까웠던 것이다. 김창집의 동생 김창흡은 형과 다르게 진사시에 합격하도고 관직에 나가지 않고 평생 학문에 전념한다. 그는 진경산수화와 비슷하게 진경시를 추구했는데 이게 정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김창흡은 정선의 학문적 스승이었다. 장동김씨 들은 회화에 관심이 깊어 많은 작품을 수장했는데 정선도 이를 감상하며 회화에 대한 조예가 생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겸재는 학문에도 밝았는데 대학과 중용 등 경학에 능했고 주역에도 조예가 깊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관직엔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다 가세가 힘들어 김창집에 관직을 요청해 그의 추천으로 41세가 되어서야 종9품의 말단직 천문학겸교수가 된다. 당시 김창집이 좌상으로 관상감의 제조였기에 가능했다. 관상감의 직책은 대개 중인이 맡았지만 이처럼 한미한 양반들이 진출하기도 했다. 

 겸재는 36세에 처음 금강산을 유람하고 신묘년 풍악도첩을 그린다. 그리고 이듬해 다시 금강산을 유람하고 해악전신첩도 그린다. 겸재 당대에는 중국과 교류가 많아 많은 중국의 화풍이 조선에 들어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정선도 남종문인화풍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이를 묘사하거나 그런 풍으로 그린 그림들이 젊어서는 많다. 겸재는 이처럼 당대의 조선회화의 전통인 절파풍 전통에 신사조인 중국의 남종문인화풍에서 시작해 자신의 개성인 진경산수화로 나아간 셈이다.

 겸재는 신묘년 풍악도첩에서 부감법과 수지법과 점경인물을 보인다. 겸재는 중국과 우리의 자연이 다르기에 중국의 나무 그리는 법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우리 산천에 걸맞는 줄기가 굽은 소나무와 무리짓는 솔방울을 그렸다. 그리고 중국의 점경인물(작은 인물 그리기)은 자세하지 않고 단순한 반면 겸재는 그것을 따르면서도 동작을 실감나게 표현해 차별점을 두었다. 그리고 겸재의 작품에는 유머와 시사성이 있다. 그림을 보면 이게 무슨일인지 추론해볼만한 서사가 있는 경우가 많고, 금강전도 같은 그림에도 곳곳에 사자바위를 그려넣는 등의 해악이 있다.

 겸재는 해악전신첩을 금강산 방문 후 그렸고 35년인 전성기 72세때 이를 다시 그렸다. 둘다 남아 있어 겸재의 화풍이 진경산수로 어떻게 발전하였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해악전신첩의 전신은 대상의 외형뿐만 아니라 그 정신까지 담아내는 것을 말한다. 원래 전신수법은 인물의 정신을 담아내는 초상화의 기법이었으나 그것이 산수까지 확대된 것이다. 

 겸재는 45세인 1720는 하양현감에 제수된다. 하지만 이듬해인 1721년 신임사화가 생긴다. 이는 경종때 노론 4대신이 연잉군(영조)을 왕세제로 책봉하고, 그에게 정무대리까지 맡길 것을 주장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처음에 이 주장은 관철되었으나 훗날 소론이 극렬히 반대하여 이 주장을 펼쳤던 노론 4대신이 화가 미친다. 그들 중 하나가 김창집이었다. 그의 은혜를 입은 겸재로서는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조선시대 화가 주변 사람에게 미치는 일은 흔했기 때문이다. 결국 김창집은 유배되어 사사된다. 하지만 경종이 오래 살지 못하고 영조가 즉위하자 판이 뒤집히고, 김창집은 결국 복권된다. 

 겸재는 50대에 영남의 명승 쌍도정도를 그린다. 이는 성주 관아의 객사인 백화현의 정원에 있는 정자 이름이다. 쌍도인 이유는 정원 내에 연못이 있고 그 가운데 두 개 인공섬이 다리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하양현감 시절 겸재는 환곡을 제대로 걷지 못해 최하위 인사고과를 받는다. 그러다 55세 정기인사에서 종6품 한성부 주부를 제수 받고 이어 의금부 도사가 된다. 의금부 인사들은 자주 계회를 가졌는데 겸재도 의금부계회도를 그린다.

 한편 겸재는 사헌부 지평 김한운의 탄핵상소로 파면된다. 표면적 사유는 겸재가 잡기로 발신하여 전문성이 없다는 이유였다. 실제 겸재는 대과로 입직하지 못했고, 학문이나 관료로서의 재능보다는 환쟁이로서의 명성이 훨씬 컸기에 이와 같은 공격을 평생에 걸쳐 받게 된다. 탄핵 후 겸재는 백악산 아래 인곡정사를 짓고 그림 그리기에 전념한다. 60대에 이곳을 그린게 인곡유거도이다. 

 겸재는 진경산수로 평생 금강산과 영남의 명승, 장동8경으로 대변되는 한양의 명소를 주로 그렸다. 장동은 지금의 인왕산 동쪽과 백악산 서쪽 사이의 지역이다. 오늘날 청운동, 옥인동, 누상동, 누하동, 신교동, 통인동, 통의동, 창신동, 궁정동, 효자동을 아우른다. '

 정선은 1733년 청하현감에 제수된다. 청하는 지금은 포항시의 일부가 되어 지역명이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시대 관리의 고과는 직속상관이 6개월마다 실시해서 보고했다. 이를 일고라 한다. 상중하  3등급으로 평가했는데 다행히 정선은 이번엔 십고십상을 받는다. 이는 10번 연속 상등급 평가를 받은 것으로 순포라 칭했고 보고시 채록하여 승진의 참고자료로 삼았다. 겸재는 청하현감 시절 친우인 삼척부사 이병연과 간성군수 이병성은 만나려 동해안을 거슬러 올랐는데 그러면서 관동8경을 유람하고 이를 화폭에 남긴다. 

 그는 내연산의 삼용추를 그렸다. 내연산은 영덕과 포항사이의 산으로 보경사라는 고찰이 있다. 내연산의 용추계곡에 3연 폭포가 있어 삼용추라 하는데 연산폭포, 관음폭포, 잠룡폭포의 순이다. 

 한편 정선은 60세의 나이에 92세 노모가 돌아가셔 서울로 상경한다. 3년 상을 치루고 이후, 관직에 나가지 않는 동안 관동명승첩과, 청풍계도, 세검정도 등을 그린다. 세검정은 서울에 있는 정자로 지금이야 개울이 있는 주택가에 휩싸여 정취가 없지만 과거엔 개천이 흐르고 산천이 느껴지는 정자로 장안의 선비들이 장마철에 풍류를 즐기러 자주 찾는 곳이었다. 

 겸재는 65세인 1740년 양천현령으로 제수된다. 현령은 현감보다 품계가 높은 곳으로 정선은 승진한 셈이다. 다만 70세가 되자 현령에서 물러난다. 70세가 당시 조선의 현령의 정년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전국의 명소를 돌아다니며 그리는데 이전에 비해 디테일은 생략하고 대상을 과감하게 재구성하여 원숙하고 개성적 필치로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수묵담채에 머무르지 않고 청록채색도 구사하며 산수화가 장엄하고 화려해진다.

 겸재가 그린 계상정기도는 1천원권에 나온 도안이다. 이황의 인물화가 그려진 반대편에 있다. 이는 71세 때 그린 것으로 도산서원 자리에 있던 계상서당에서 조용히 책을 읽으며 않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70대에 정선은 다시 금강산을 그린다. 임진년 그린 해악전신첩을 다시 그려 정묘년 해악전신첩을 그린다. 

 겸재의 대표작 금강전도는 여러 폭이 있다. 정선은 금강산을 여러 번 그렸는데 신묘년 풍악대첩에 금강 내산이 있고, 72세 정묘년 해악전신첩에도 금강내산이 있다. 그래서 같은 대상을 그렸기에 그의 화풍이 얼마나 다르게 발전하였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는 76세에 인왕제색도를 그린다. 인곡정사 너머로 보이는 인왕산의 모습을 그린 대작이다. 묵을 짙게 써서 대비를 이루는데 정선의 그림과 좀 다른 느낌이 든다. 저자는 당시 정선의 친우들이 죽음을 맞이한 시기라 인생에 대한 무상함과 슬픔이 가미된 것을 이유로 생각한다.

 마지막 대작은 박연 폭포다. 이전까지만 해도 겸재는 대상의 디테일을 강조하는 편이었으나 이 작품에 이르러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버리고 과장으로 이미지를 극대화한다. 독특한 묵법과 필법으로 순수 조형의 힘과 아름다움을 보인다. 

 겸재는 79세인 1754년 사용원 첨정에서 사도시 청정 종4품으로 승진한다. 그리고 80세에 정3품 첨지중추부사로 승진한다. 경국대전에 80세에 이르면 양천을 불문하고 한 품계를 승진한다는 규정덕이었다. 그리고 숙종의 비 인원왕후의 칠순이 이듬해 있어서 다시 한 품계 승진한다. 그래서 무려 종2품 동지중추부사가 된다. 당상관이 된 셈인데, 그리 되면 조상들의 품계도 올려주게 된다. 집안의 영광인 셈이다. 

 겸재는 1759년 인곡정사에서 84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대가는 오래도록 살면서 평생을 수련해 발전하여 대기만성한다. 그는 진경산수로 조선만의 산수를 완성했고 18세기 이래로 많은 화인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우리가 일천원권에서 그의 그림을 늘 볼 수 있는 이유다. 정선의 작품은 박물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데 그의 탄생 350년을 기념하여 작품을 모아 전시회가 열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다녀온 분들인 귀한 기회를 놓치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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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우주 3부작
앤디 위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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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션과 아르테미스로 유명한 앤디 위어의 세 번째 우주소설이다. 아르테미스는 재미가 다소 부족했는데 이번 작품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충분히 재밌다. 그래서 영화 제작도 성공한 게 아닌가 싶다. 

 지구의 천문학자들은 항상 외계 먼 곳의 은하와 항성, 블랙홀 등은 관측하려 한다. 이미 지구 가까운 곳은 아마추어들의 몫인데, 이들이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태양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실수인 줄 알았지만 전문가들이 달려드니 곧 사실임이 입증된다. 더 큰 문제는 태양의 어두워짐이 일시적인 것이 아닌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 지도부는 이 문제를 공유하고 세계의 자원을 이 문제 해결에 총동원하기 이른다. 태양이 어두워지면 일조량이 줄어 세계 식량 생산에 큰 차질이 생겨, 결국은 인간이 공멸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선 태양은 어둡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태양 인근으로 우주선을 보낸다. 어둡게 만드는 물질은 페트로바선이라는 특유의 자외선을 내뿜고 있었고, 이상하게도 금성인근으로도 상당량이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이것이 생물임을 알아낸다. 그래서 물 기반 외에도 다른 방식으로 생명이 존재할 수 있다는 요상한 논문을 쓴 라일랜드를 찾아간다. 그는 학계에서 이단아로 취급받아 쫓겨나고 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그리고 각국 정부로부터 모든 권한을 위임받은 스타라트는 라일랜드와 대화 후 그를 이 외계생물 연구 적임자로 여기가 거의 강제로 끌고 간다. 라일랜드는 이들이 외계 미생물임을 밝혀낸다. 이들은 태양 빛을 먹이 삼아 에너지를 얻었고, 이산화탄소를 얻어 번식했다. 그래서 금성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게다가 라일랜드는 이들을 번식시키는데도 성공한다. 그리고 이 미생물을 아스트로파지라 명명한다. 

 아스트로파지는 놀라운 에너지 효율을 갖고 있었다. 96.5도 정도의 체온을 유지했고, 태양 빛을 흡수해 질량을 늘린다음 이 질량을 엄청난 에너지로 바로 변환할 수 있었다. 이 능력으로 항성계를 이동해 나간 것이다. 인간 천문학자들은 12광년 정도 떨어진 외계에서도 아스트로파지 감염현상을 발견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한 행성만이 아스트로파지의 영향을 받고 있지 않았다. 이것이 인간의 희망이 된다. 

 문제는 12광년의 거리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거리였다는 점이다. 광속의 속도로 다녀와도 24년이데 그 사이엔 인간이 식량 부족으로 멸망하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인간의 기술력으로는 광속은 언감생심이다. 두 가지 해결책이 나온다. 하나는 아스트로파지의 능력을 이용하면 광속에 근접한 속도로 비행하는 우주선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왕복에 27-8년 정도가 소요되었다. 그런데 그러려면 연료인 아스트라파지가 대량으로 필요했다. 이는 사하라 사막을 이용한 초 거대 배양 시설을 건축 하며 해결한다. 수백kg의 아스트로파지가 배양된다. 다음 문제는 그럼에도 인간이 버틸만한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남극에 핵탄두를 이용해 빙하를 탈락시켜 급격한 메탄 배출로 인한 인위적 온난화를 유도하기로 한다. 그러면 태양 빛이 어두워져도 어느 정도 시간을 버는 것이 가능했다. 온난화가 생존에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은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헤일메리 프로젝트가 가동된다. 헤일메리 프로젝트는 영어권에서 거의 가망 없는 행위를 가르킨다. 미식축구에서 먼 거리에서 막판에 요행으로 던지는 버저비터를 노리는 공이 그러했다. 우주 비행사 셋이 12광년 거리를 이동해야 했는데, 광속에 가깝게 비행중이라 시간이 느리게 흐린다는 점을 감안해도 우주선 안에서 편도 4년을 견뎌야 했다. 모든 심리학 실험은 인간이 이런걸 견딜 수 없음을 가르킨다. 그래서 수면 상태로 가기로 했고, 그것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특정 유전자를 갖고 있었는데 그 비율이 7천대 1에 불과했다. 자살 여행 지원 의향과 능력이 있는 모든 이들을 합해도 인원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여튼 우여곡절 끝에 준비는 마무리 되고, 발사 시점이 다가온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아스트로파지를 실험하다 거대 폭발이 일어난 것. 지원팀의 오류로 1나노 그램이었던 아스트로파지를 1밀리그램이나 보낸 탓이었다. 그만큼 아스트로파지가 가진 에너지와 폭발력은 상당했다. 이 폭발로 주요 승무원을 잃게되자, 스타라트는 라일랜드에 우주선 합류를 권유한다. 시간이 없었기 때문. 하지만 자살형 편도 비행이기에 라일랜드가 이를 거부하자 스타라트는 그를 우주선에 강제로 태우게 된다. 지원자가 있긴 했으나 그를 수일 내에 인류 운명을 건 미션을 해결할 만한 수준으로 교육할 수는 없었기 때문.

 라일랜드가 저항하자 그는 프랑스가 개발한 약물을 투여해 잠재운 채로 그를 우주선에 태운다. 이 약물은 사람의 기능은 모두 유지하면서도 신기하게도 단기간 기억상실에 걸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라일랜드는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을 하지 못하면서도 우주선에 대한 지식, 과학에 대한 지식은 모두 갖춘채로 잠에서 깨어난다.

 다만 같이 우주선에 탑승한 중국인 야오와 러시아인 일류키나는 죽은 상태였다. 그들은 수면상태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라일랜드는 그렇게 홀로 타우메바 행성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외계인 에리드인이 탑승한 우주선을 만난다. 그들 역시 지구와 같은 고민으로 이곳을 향했다. 이렇게 지구인과 에리드인은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하고 서로의 문화와 언어, 과학, 생리를 배우며 친해진다.

 라일랜드는 거대한 암석으로 이뤄진 개미같이 생긴 그를 로키라 이름 붙인다. 에리드는 기압이 지구 보다 훨씬 높고 대기가 대부분 암모니아이며, 기온도 무척 높았다. 때문에 서로는 서로의 대기에 적응할수 없어, 로키는 자신이 돌아다닐 수 있는 에어로크 같은 것을 라일랜드의 우주선 내에 만들고 같이 여행한다.

 그들은 타우메바에서 아스트로파지를 잡아먹고 사는 천적 미생물을 발견한다. 그런데 이들이 우주선의 연료인 아스트로파지를 잡아먹기에 잘 통제하여 지구로 보내는 문제가 생겨난다. 이 미생물이 너무 퍼지게 되면 우주선이 연료를 잃고 멈추게 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나 라일랜드는 이를 해결한다. 하지만 로키를 구하는 과정에서 연료를 잃어 라일랜드는 미생물과 그 연구 결과를 담은 자료만 지구로 보내고 자신은 어쩔수 없이 행성 에리드로 가게 된다. 거기서 라일랜드는 살게 되며 책이 끝난다.

 이 책의 중심 생각은 생명의 외계 기원설로 판스페르미아 가설이다. 소행성 따위에서도 단백질을 만드는 아미노산이 존재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각 행성들의 생명은 아마도 아스트로파지가 생겨난 곳에서 펴져 나갔다는 것이다. 소설에서 아스트로파지와 그의 천적 미생물, 그리고 인간과 에리드인들은 모두 천문학적 관점에서는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다. 때문에 이런 가설에서 소설을 착안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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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믹 쿼리 - 우주와 인간 그리고 모든 탄생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유쾌한 문답
닐 디그래스 타이슨.제임스 트레필 지음, 박병철 옮김 / 알레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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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는 매우 광대하다. 그 광대함을 알려면 거리를 재야 하는데, 이것이 매우 쉽지 않다. 하지만 영민한 인간은 거리를 재는 두 가지 방법을 알아냈다. 우선 시차다. 어릴 때 다 해본 것이지만 팔을 눈앞으로 쭉 뻗고 엄지를 세운다. 그런 다음 왼, 오른 눈을 번갈아 뜨면 신기하게도 엄지가 이동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오른 눈과 왼 눈으로 들어오는 빛의 각도 차이, 즉 시차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이걸로 별의 거리를 재는 것이다. 특히, 인간은 망원경을 발명해서 매우 먼 거리까지 시차로 측정할 수 있다.

 하지만 시차측정은 한계가 많다. 그래서 발명해낸 것이 표준촛불기법이다. 하버드의 멘리에타 래빗은 천문 관측 데이터를 분석하는 작업을 하다 셰페이드 변광성을 발견한다. 그는 이 별의 밝기가 규칙적으로 변화함을 밝혔는데 변화의 주기가 길수록 많은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것을 이용하면 현재 별의 겉보기 등급과 관련하여 그 별까지의 거리 계산이 가능하다. 

 미천문학자 할로 섀플리는 래빗의 표준촛불기법으로 은하수의 크기를 계산한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은하수의 폭만 무려 10만 광년의 길이가 나왔다. 여기에 그는 태양계가 은하의 중심도 아니고 2/3지점의 변방임도 알아냈다. 

 20세기 초만 해도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성운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 은하의 일부인지 다른 은하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만약 우리 은하의 일부라면 우주 전체가 그냥 우리 은하인 것이고, 다른 은하라면 우주는 수많은 은하로 가득한 것이 될 터였다. 허블은 망원경으로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셰페이드 변광성을 발견한다. 그래서 거리 측정이 가능했는데 그 거리가 무려 200만 광년이었다. 이는 우리 은하의 폭을 아득히 상회하기에 안드로메다 은하는 우리 은하의 일부가 아닌 다른 은하라는 결론에 이를 수 밖에 없었다. 

 은하는 종류가 매우 다양한데 기체가 부족하여 더 이상 별이 생성되지 않는 타원형 은하에서 기체가 풍부하여 수시로 별이 탄생하고 죽는 나선형 은하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은하의 규모는 매우 광대하여 우리 은하에만 행성은 수천 억개에 달한다.

 허블은 적색 편이도 발견한다. 적색 편이로도 우리 은하와의 거리 파악이 가능한데 20세기 말 천체물리학자들은 광범위한 영역에서 적색 편이를 관측하여 우주 전역에 산재한 은하의 3차원 지도를 만든다. 은하 수백만개의 위치를 일일이 추적한 디지털 스카이 서베이로 관측 가능 우주에서만 1000억 개에서 3천억 개의 은하가 존재했다. 

 우주를 관측 하는데는 지구 대기가 방해 요소가 된다. 지구 대기는 두꺼워 가시광선과 전파를 제외하고 모든 전자기파를 차단한다. 그리고 지구에 간신히 도달하는 전파는 매우 약하기에 전파 망원경은 거대해야 한다. 전파 망원경은 움푹 패인 지형에 설치하기 적합하다. 지구가 알아서 자전하기에 움직일 필요는 거의 없다. 세계에서 가장 큰 전파 망원경은 2016년 중국이 설치한 구면전파망원경이다. 10만 석 규모 축구장 4개의 크기다. 

 이러한 전파는 에너지가 작아 매우 쉽게 생성된다. 그리고 은하의 빈 공간이나 가스, 먼지 구름도 쉽게 통과하기에 외계 간 메시지 송출 수단으로도 적합하다.그래서 과학자들은 외계인이 보낼지도 모르는 이 전파를 수신하기 위해 노력한다. 

 분젠과 키르히호프는 화학 원소를 가열할 때 방출되는 빛이 저마다 고유한 스펙트럼을 생성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각 원소의 스펙트럼을 알면 물체에서 방출된 빛으로 그 물체의 구성요소를 추정할 수 있다. 지구 대기의 방해로 인해 망원경은 우주에도 설치한다. 적합한 지점은 중력이 상쇄되는 라그랑주 포인트다. 두 천체에는 라그랑주 포인트가 5개 존재한다. 태양과 지구 사이에도 존재하는데 지구 공전면을 따라 태양과 가까운 쪽에는 태양을 관측하는 망원경을 그리고 지구를 지나 태양 반대편에는 심우주와 태양계를 관측하는 제임스웹 망원경을 설치한다.

 중력파는 질량을 가진 물체가 가속운동을 하면서 시공간 연속체에 일으킨 파동이다. 이를 검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데 중력파가 왜곡하는 시공간의 정도가 원자핵의 지름보다 작기 때문이다.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는 4km 길이의 파이프 2개가 L자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다. 그 안에서 레이저와 거울로 쉼없이 길이를 측정하고 있는데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을 시 중력파가 감지된 것으로 파악한다. 다만 이것이 워낙 미세하여 주변의 약간의 충격으로도 길이 변화가 일어나기에 루이지나애나, 워싱턴 주 두 곳에 설치해 더블체크가 될 때만 발견으로 인정된다. 중력파는 2015년 9월 14일 측정되었는데 그 진원지는 15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태양질량의 37배 짜리 블랙홀이 충돌하여 발생한 것이다.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은 반사경 거울의 직경이 6.5미터로 이러한 것이 18개 이어 붙인 거대한 구조다. 가시광선과 중적외선을 관측하고 적색편이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우주에서 가장 오래된 천체를 관측한다. 언급한 것처럼 L2 라그랑주 포인트에 설치될 예정이며 지구에서 무려 160만 km나 떨어져 있어 인간의 수리가 불가능해 한 방에 설치가 되어야 한다. 

 유럽은 레이저 간섭계 우주 안테나를 구상 중이다. 차세대 중력 감지기로 거대한 정삼각형의 꼭지점에 위치한 3개의 자유비행 위성이 연결된 구조로 각 변의 길이가 지구와 달 거리의 6배에 달한다. 이 자유비행위성은 질량 샘플이 탑재되었는데 이들의 상대적 위치 변화로 중력파를 감지한다. 이 위성들은 편대의 유지를 위해 지구보다 5천만 km 떨어진 태양 주변을 공전할 예정이다.

 우주는 빅뱅 이후 몇 차례 상전이를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우선 빅뱅 후 1분이다. 우주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기본 입자와 광전자로 가득찼다. 그래서 어쩌다 양성자와 중성자가 충돌해 간단한 원자핵을 형성하지만 곧바로 다른 입자와 부딪히기를 반복하는 상태였다. 원자핵이 존재하려면 입자의 속도는 낮아지고 우주의 온도가 떨어져야 했다. 빅뱅 후 3분이 지나자 우주가 충분히 팽창하고 식어 충돌이 거의 사라져 원자핵이 존재할만한 상태가 되었다.

 초기 생성된 원소는 수소가 대부분이고, 수소가 연속 충돌해 헬륨, 그리고 아주 드물게 3번 충돌해 리튬이 생성되었다. 45초간 원자가 급격히 생성되다 팽창으로 인해 원자 간 거리가 멀어져 충돌이 사라지며 원자 생성이 더는 어렵게 되었다. 이렇게 물질이 생겨나자 지금의 은하와 별이 생성되었고, 하전 입자의 방해가 사라져 빛이 펴져 나가 공간이 투명해졌다. 이 때 퍼져나간 빛이 지금 발견되는 우주배경복사다. 

 그런데 이 때 생성된 물질의 양은 이후 여러모로 너무 적다는 것이 밝혀진다. 1930년대 프리츠 츠바키는 관측된 별의 수만으로는 은하가 빠르게 회전하며 형태를 유지할 수 없다고 계산한다. 그래서 그는 은하 내부에 보이지 않는 물질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1970년대 베라 루빈은 은하 안의 별의 궤적을 추적하다가 암흑물질이 존재해야만 별의 궤적이 가능함을 입증한다. 결국 수집된 데이터에 의하면 우주 중력의 85%가 암흑물질에서 기인한다.

 암흑물질은 복사의 영향을 받지 않아 원자 형성 이전부터 안정적으로 축적된 것으로 보이며 이들이 형성한 중력으로 인해 원자들이 쉽게 모여 은하의 별을 형성했다. 별은 중력으로 인해 안으로 끊임없이 수축되어 간다. 그러면 붕괴할 수 밖에 없는데 이를 밀어내는 힘이 핵융합이다. 원자가 모이며 중력으로 인해 지나치게 가까워지고 마침내 결합한다. 고온의 플라스마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정에서 질량이 줄어들며 결합이 생성되는데 이 줄어든 질량만큼 에너지를 뿜어내며 중력과 균형을 이루게 된다. 이런 별은 빅뱅 이후 3억년 무렵 탄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핵융합으로 재료를 모두 소진한 별은 질량에 따라 다른 단계를 맞는다. 질량이 큰 별은 생성한 헬륨으로 제2 핵융합을 하고, 탄소 같은 무거운 원소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이마저도 끝나면 백생외성이나 직경 17km짜리 중성자 별이 된다. 초신성으로 폭발하게 되면 무거운 원소가 우주로 흩어져 다시 새로운 별의 재료가 된다. 

 구름이 중력에 의해 수축하면 내부 온도가 높아지며 핵융합을 하는 항성이 탄생한다. 운동이 전혀 없던 구름들은 중력에 이끌려 중심으로 떨어지고 그 외 구름은 중심에 가까워지기 위해 회전운동을 하게 된다. 그래서 가스들이 전체적으로 납작한 원반 모양을 이루게 된다. 모든 행성의 공전면이 일치하고 공전방향이 같은 이유다. 일반적으로 성운은 질소나 물처럼 쉽게 기화하는 휘발성 물질과 모래알처럼 쉽게 기화하지 않는 비휘발성 물질로 나뉜다. 핵융합이 시작하면 원시행성원반은 강력한 태양풍을 맞게 된다. 휘발성 물질은 그래서 모두 외곽으로 날아가버린다. 그렇게 태양 인근에는 비휘발성 물질만 남아 단단한 지구형 행성을 형성한다. 그리고 외곽은 휘발성 물질로 기체의 목성형 행성을 형성한다. 천문학은 지구형/목성형의 경계를 동결선이라고 지칭한다.

 원시 태양계에서 태양에서 화성까지의 거리에는 무려 30개의 원시 행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서로 부딪혔는데 그러면 작은 것이 큰 것에 흡수되거나 속도가 느려져 태양으로 떨어지거나 속도가 빨라져 태양계 바깥으로 튕겨나가버렸다. 

 목성과 토성은 생성되며 질량이 매우 커지자 태양으로 돌진하게 되었다. 다만 토성의 운동이 더 빨라 양자가 서로의 중력을 받게 되며 오히려 방향을 바꾸어 외곽으로 향하게 되었고 그 사이 형성된 천왕성과 해왕성의 중력의 영향을 받아 안정을 찾아 지금의 궤도에 안착했다. 목성은 과거 태양으로 이동하며 원시행성원반을 가로지르며 이동했는데 그 과정에서 원반의 일부는 태양으로 흡수되었고 일부는 충돌로 바깥으로 이탈했다. 그래서 화성-목성 사이의 소행성 벨트대가 생각보다 질량이 적은 것이다. 

 태양계가 안정을 찾자 얼음행성과 파편들이 중력에 의해 지구방향으로 돌입한다. 그리고 이들이 지구와 자주 충돌하게 되면서 지구에 바다가 형성될 수 있었다.

 해왕성을 지나 먼 곳에 얼음 행성이 집합체인 카이퍼 벨트가 있다. 주로 물, 암모니아, 메탄 같은 휘발성 물질로 이뤄졌다. 여기를 지나면 거대한 구름층이 카이퍼 벨트를 도넛처럼 감싸고 있는데 이게 오르트 구름이다. 

 항성은 중심부의 수소를 모두 쓰면 헬륨으로 핵융합을 다시 하며 양성자 6개인 탄소를 생성한다. 무척 무거운 별은 핵융합으로 여러차례 반복해 양성자 26개인 철까지 생성이 가능하다. 그 이상이 안되는 이유는 철의 원자핵이 핵융합을 하려면 외부에서 에너지 공급이 되어야 하는데 별에서는 이러 조건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부에 철이 누적되며 별은 핵융합이 사실상 종료되고 죽음으로 향한다. 자체 수죽하다 폭발하는데 초신성 폭발이다. 초신성이 폭발하며 막대한 에너지가 발생하여 철보다 무거운 코발트와 우라늄등이 생성된다. 우라늄까지가 자연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 무거운 원소다. 그 이상의 물질은 모두 인간이 실험실에서 생성한 것이다.   

 외계에 생명이 있는 것은 가능할 수 있다. 우주에서 날아온 소행성과 성간기체에서도 아미노산이 발견된다. 지금에도 강한 생물이 있다. 완보동물이다. NASA는 완보동물을 우주선에 묶어 외부에 두고 우주로 날려보냈다. 12일간 극저온과 우주 방사선에 노출이 되었음에도 이 동물은 생존했다. 그래서 우주과학자들은 장기우주여행 생존법을 이 동물에게서 찾고 있다. 지구의 생명체는 탄소기반이지만 실리콘 기반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양자는 전자의 배열상태가 유사하고 실리콘은 최외곽전자가 4개여서 다른 원자와 쉽게 결합한다. 다만 실리콘 결합의 경우, 탄소 결합보다 결합의 강도가 강하여 복잡한 분자로의 변화가 어렵다. 

 우주의 최소단위는 6개의 쿼크와 6개의 렙톤이다. 결국 우주의 물질은 이 12개의 다양한 조합이다. 자연에는 4가지 힘이 있다. 기본입자가 블록이면 힘은 그 블록을 이어 붙이는 모르타르 같은 역할을 하는데,  양자세계에서는 가상 입자가 교환되며 힘이 생성된다. 강력은 글루온 입자, 약력은 벡터보손입자, 전자기력은 광자입자, 중력은 아직 입자가 발견되지 않았다. 

 빅뱅 후 10-43승 초에 하나의 통합된 힘이 중력과 강약전자기력으로 분리 된다. 이 시간은 물리적 의미를 갖는 가장 짧은 시간으로 플랑크 시간으로 불린다ㅏ. 10-35승 초에 6개의 쿼크, 6개의 렙톤이 형성된다. 10-10승초에 우주에는 강력, 중력, 약전자기력이 존재했고 이 때 약전자기력이 약력과 전자기력을 분리된다. 10-5승 초에 쿼크가 모여 하드론을 형성했고, 3분 후 원자핵이 형성, 38만년후 최초의 원자가 생성된다. 

 지구의 미래는 태양에 달렸다. 태양은 수소를 모두 소모하면 제2핵융합을 하는데 2가지 변화가 생긴다. 태양풍이 거세져 태양의 질량 1/3이 날아간다. 그리고 외피가 크게 팽창하여 적색거성이 되어 수성, 금성, 지구가 흡수된다. 팽창한 태양은 질량 대부분이 성간으로 날아가고 질량 붕괴가 일어나서 지구 크기의 백색왜성이 된다. 

 지구입장에서 태양은 점점 밝아지고 있다. 초기 태양은 지금보다 30%어두웠다. 하지만 태양이 헬륨으로 핵융합을 시작하면 지금보다 65%나 밝아진다. 싹 타버리는 것이다. 

 지질학자들은 2억 5천만년 후면 대륙이 하나로 뭉쳐 다시 판게아가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10억년 후면 지구의 평균 기온이 태양이 밝아져 인간 체온 이상으로 올라간다. 그러면 대량의 증발이 생기고 수증기를 자외선이 분해하여 가벼운 수소의 지구 이탈이 본격화한다. 그러면 물이 더욱 부족해져 건조화가 심해진다. 화산 활동으로 이산화탄소는 계속 분출하는데 이를 흡수할 대양이 적어지니 온난화가 더욱 심화한다. 30-40억년 후면 극심한 온난화로 인해 지구는 표면 암석이 용암이 된다. 태양이 적색거성이 되면 지구를 흡수할 만한 위치에 오지만 태양의 중력이 약해져 지구 공전궤도가 커져 잘하면 지구는 흡수를 면할 수도 있다. 

 지구 내부에도 위험요소가 많다. 지구 내부에서 올라온 마그마가 분출되지 않고 지각 아래 고이는 경우가 있는데 결국 압력이 쌓여 대규모 폭발이 일어난다. 이 양은 1000km3에 달하는데 텍사스 주 전체를 1.5미터 깊이 용암으로 덮을 정도다. 이것을 초화산이라 하며 미국의 옐로 스톤 공원이 대표적이다. 이런 초화산이 20개 있다. 과거 초화산은 47회 폭발했다. 

 초화산을 능가하는 초대규모 화산 폭발도 있다. 분출 용암이 수십만 km3에 달한다. 인도의 데칸 고원이 이렇게 형성되었는데 6500만년 전이다. 그리고 시베리아도 2억 5천만년전 생성되었다. 공교롭게 이 시기는 대멸종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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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6-06-09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권투 선수 타이슨인가요? ㅎㅎ

닷슈 2026-06-10 09:26   좋아요 0 | URL
이런 개그를 다하시고ㅋㅋ
 
일본은 어떻게 ‘일본’이 되었나 - 새로운 세대의 일본 문화 디코딩
김유영 지음 / 브라운출판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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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와 일본, 중국은 지리적으로 인접하나 매우 다르다. 그리고 여기에는 지리적 환경과 그것과 상호작용하며 스스로 빚어낸 정치, 사회, 문화 등의 인문적 요소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책은 일본인의 정신과 사회문화적 요인을 빚어낸 지리, 역사문화적 요소를 깊고 흥미롭게 잘 풀어낸다.


1. 일본인은 청결하다?

 한국인은 일본인이 매우 청결하고 궁중도덕 의식이 높다고 여긴다. 지금은 우리도 상당히 깨끗해져 그런 의식이 좀 옅어졌으나 과거에는 상당했다. 아마 지금은 중국인이 한국인과 일본인을 그리 여기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이를 일본의 민도라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한국의 경우처럼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일본은 도쿄올림픽 이전 공중도덕과 거리의 청결도가 엉망이었다. 1950-60년대 길거리를 쓰레기로 가득했고, 지하철이나 수도권행 기차는 새치기에, 먼저타기 등등 공중도덕 의식이 영 엉망이었다. 이런 일본이 바뀐 것은 우리와 같다. 올림픽이다. 일본은 1964년 동경올림픽을 계기로 대대적인 도시환경미화와 공중도덕 의식 캠페인을 벌이며 이것이 먹힌다. 공공장소에 쓰레기통을 만든 것도 놀랍게도 이때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 길을 걸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대대적 거리 미화와 공중도덕 함양 캠페인이 이뤄졌다. 애국주의, 민족주의와 결합행 강한 압박으로 이것이 사회에 자리잡았다. 결국 일본과 우리 사이엔 개발의 올림픽이라는 계기의 시간차만 있었을 분이다. 중국도 모르긴 몰라도 아마 2008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공중도덕 민도라는 것이 많이 올라가지 않았을까 싶다.


2.안과 밖이 다른 이중성

 일본인의 행동을 지배하는 강한 두 축이 있다. 다테사회라고 불리는 수직 사회의 위계질서와 동조압력은 우치와 소토로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분하는 성향이다. 일본은 수평적 요소인 자격보다는 수직적 요소인 인간관계가 자신을 규정하는 핵심원리다. 그래서 일본 사회는 독특한 패션 문화와 서브컬쳐 등 강한 개성을 드러내고 허용하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상 매우 보수적이고 수직적 사회다.

 그래서 일본 만화나, 드라마, 영화에서 머리는 원색으로 물들이고 놀고 방탕한 주인공들도 웬지 가업을 이끌게 되거나 취업을 하게 되거나 사회로 진출하면 놀랍게 머리를 깎고 검게 만드는 모습을 보이는데 실제 사회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한국도 다소 그런 경향이 있지만 일본에 비할바는 아니다.

 이는 강한 위계와 강한 동조압력 때문이다. 일본의 우치는 내집단으로 가족, 회사, 동료, 동창이다. 그리고 소토는 외집단으로 고객, 타사직원, 타인이다. 일본은 극진한 예의, 오모테나시 문화는 소토를 대함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외부를 존중하기보다는 그들과의 마찰을 피해 내부의 안녕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개인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정해진 형식에 맞는 진중함을 보인다. 하지만 소토라도 우리 내부를 위협할만한 것이 아닌 만만한 대상은 극진한 예우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만만한 어린 아이나, 만만한 국력의 외국인에 대해서는 갑질과 무시가 자행된다. 

 일본어에서 주다는 아게루다. 우치에서 우치, 우치에서 소토, 소토에서 소토간에는 아게루라는 동사를 쓰지만 유독 소토에서 우치는 쿠레루라는 다른 표현을 쓴다. 

 일본이 이렇게 된데는 섬이라는 지정학적 요건이 크다. 일본은 과거부터 동북아 문명의 종착지로 가장 문명이 들어오는 시점이 늦었다. 그리고 중국과는 멀리 떨어져있고 한반도는 일본보다 작은데다 중국과의 대결에 나라를 지키는데 급급해 삼국시대 외에는 일본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어찌보면 막강한 대륙 및 북방세력을 한반도가 막아준 꼴이다. 이러다보니 일본이 이 치열한 동북아에서 겪은 외침이란게 13시 여몽연합군의 실패한 정벌이 고작이다. 그래서 외부충격이 역사상 페리 제독 이에는 사실상 없었고 이로 인해 사회구조의 급격한 변화와 지배층의 전면적 교체도 없었다. 

 그 상징이 일본의 덴노다. 만세일계라 할 정도로 지배구조가 변하지 않는다는 강고한 역사적 경험이 있기에 기존 위계질서가 철저히 내면화 되어 있다. 

 여기에 도쿠가와 막부의 봉건제가 이를 더욱 강화했다. 막부는 기득권 유지를 위해 반란과 하극상을 막기 위해 사회 전체를 엄격한 위계구조로 만들었다. 사농공상의 신분제로 사무라이, 농민, 공인, 상인의 계급이 철저했다. 그리고 지방 다이묘 통제를 위해 매우 정교한 통치시스템을 고안했으니 그것이 참근교대다. 이는 다이묘가 격년으로 자신의 영지와 막부가 있는 에도를 오가며 거주하는 것이다. 이는 다이묘에 경제적 부담을 지우고 그 처자식을 에도에 사실상 인질로 잡아두는 제도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다이묘들에겐 이 참근교대의 규모가 자신의 세를 과시하는 장이 되어 어처구니 없게도 막부는 참근교대 인원을 제한하는 법까지 제정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런 강고한 신분체계가 260년간 지속되다보니 일본 사회는 상하관계가 생존의 제 1원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변하지 않는 사회의 수직체계와 자신의 소속의 강고함이 내부 집단에서의 수직체계를 고수하고 그것을 내면화하는 방향으로 고착한 것이다.

 일본의 집단주의는 때로는 상당히 잔혹한 방향으로 작동한다. 막부는 5가구를 하나의 단위로 몪눈 고닌구미를 시행했는데 이는 상호감시와 연대책임의 원리다. 납세, 범죄, 종교 문제등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연대책임이 발생한다. 이는 매우 잔혹한 처벌이었기에 사람들은 자발적 내부통제를 강화했다. 그래서 지금도 일본의 집단은 현재의 집단 평화를 깨는 자에게 매우 가혹하다. 코로나 19 요코하마항에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호가 정박하지 못하고 연안을 겉돌았다. 코로나 19 집단 감염이 선내에 창궐했기 때문인데 당시 의료진은 격리된 배안에서 필사의 사투를 벌였다. 이중 한 간호사가 감염되었는데 그 공로와 노고에도 그는 지역사회에서 큰 비난을 받았다. 가족이 따돌림 받았음도 물론이다.

 코로나 19기간 일본 사회에서는 일종의 자경단 같은 것이 존재했는데, 외부인이나 외부 차량 번호가 발견되면 그 차량에 돌아가라는 욕설이나 심지어 타이어 펑크, 사이드 미러 파괴등이 자행되었다. 고닌구미의 현대적 재현인 셈이다. 

 일본 사회에서 집단주의는 평소에는 질서와 조화로 작동하지만 이처럼 위기시 자신들의 집단 보호를 위해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이나 .위해를 가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과도하고 가혹하며 매우 배타적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지역에 대단한 살인자라도 발생하면 무관한 그 가족을 공격하고 집등을 테러하며, 집에 살인자의 집이라는 구호등을 붙이는 일이 자행되는 것이다. 

 일본의 내집단에 대한 강박은 국기 스모에서도 드러난다. 스모에서 이기는 방법은 다소 특이하게도 상대를 눕히거나 때려 제압하는 것이 아닌 경기장에서 밀어내는 것이다. 이는 한 사람을 내집단에서 밀어내는 것을 상징한다. 즉, 내집단에서 밀려나는 것이 패배인 것이다. 

 이러한 동조압력은 개인의 창의성과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억압하고 사회 전체를 경직되게 만든다. 특히 사회 전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 브레이크는 사실상 사라지고 엑셀만 존재한다. 군국주의 일본이 딱 그러했다.

 이는 일본인의 도덕관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국인의 도덕에는 성리학적 가치관이 깊게 자리한다. 인간으로 지켜야할 도리가 마땅히 있고, 이런 도덕률은 절대적인 윤리로 외부 시선이나 상황에 따라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개인의 내면에 확고히 자리하며 그래서 한국인에겐 지조 있는 행동이 중요하다. 그래서 부정을 저지르면 깊은 죄의식을 느끼고 반성과 참회, 자신의 양심을 회복하려 한다. 반면 일본은 상대적의적 도덕이다. 이들은 도덕의 기준점이 내가 아니고 타인이다. 이는 집단에서의 소속과 그들이 나를 바라보는 것이 생존에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은 수치문화가 발달했다. 개인이 부정을 저지르면 내면적 참회보다는 행동, 성과로 타인에게 뭔가를 보여야 한다. 그래서 사회적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집중한다. 그리고 이게 불가능하다 판단되면 그래도 외부에 자신의 결의를 보여야 하며 그것이 극단적 할복이다.


3. 개성적 문화의 근원

 이런 강직함에도 일본엔 세계인을 사로잡은 독특한 패션, 만화, 게임, 음악, 영화 등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모순되 보이는 이런 면은 사실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막부는 사회를 엄격한 위계질서에 두었음에도 영리하게도 숨통을 트일 해방구는 마련해놨다. 그것이 문화 예술과 유흥이다. 마치 오늘날 독재정권들이 잘 써먹는 3S 정책과 유사하다. 

 계급은 통제되지만 사람들은 계급안에서의 상승과 자아실현은 만끽할 수 있었다. 유흥과 예술이 자아실현의 해방구였던 것이다. 막부시절 행정권이 미치지 못한 강변지역에 모여사는 이들이 가와라모노다. 이들은 도축, 가죽세공, 청소 등 부정한 일에 종사했다. 그리고 이들이 예능과 공연 등 유흥에 종사했다. 천민은 엄격한 규범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예술에 두각을 나타내기 좋았다. 그래서 이 계급에서 유명 가부키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출판 역시 소재가 다양했다. 폭력적이고 기괴한 소설이 많았고 노골적인 성행위가 묘사된 것도 많았다.  

 일본의 미의식은 각 시대의 지배층과 연관한다. 헤이안시대 귀족은 문학, 중세 무사는 선불교, 에도시대 상인 죠닌은 유흥문화가 중심이다. 헤이안의 미의식은 모노노아와레다. 모노는 사물이나 인간 세상이며, 아와레는 마음 깊은 곳의 감정이나 정서다. 덧없이 피고지는 벚꽃의 애틋함, 저무는 달의 쓸쓸함, 무상을 인지하는 애상적 아름다움이 모노노아와레다. 무사계급은 선불교다. 유겐은 직접 드러내지 않고 그윽하고 신비로운 아름다움이다. 화려한 외면이 아닌 사물의 감춰진 본질이다. 이는 모노노아와레를 넘어 그 감정을 마음에 삭히고 절제하여 더 깊고 상징적인 정취를 표현한다. 유겐 미학의 정점은 14세기 전통가면극 노다. 노는 배우가 무표정한 가면을 쓰고 극도로 절제도니 움직임과 상징적 동작만으로 깊은 슬픔과 고뇌를 표현한다.

 막부는 공창으로 유곽을 운영했다. 이는 풍기문란을 통제하고, 유곽에서 자금을 징세하고, 무사의 다툼 방지와 사회 불안의 해소를 위해서였다. 에도의 요시와라, 교토의 시마바라, 오사카의 신마치가 3대 유곽이다. 유곽은 담을 높게 두르고 해자까지 둘러 도시와 분리된 별도의 공간이었다. 유곽이 특별한 이유는 그곳에서만큼은 에도의 엄격한 신분제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무라이는 자신의 신분을 상징하는 두 자루의 칼을 반납하서야 유곽 입장이 허용되었다.

 그래서 유곽에서는 개인의 가치는 그가 가진 돈과 멋이었다. 여기서 빛을 발하는 것은 상인 죠닌이었다. 그들이 이 두 개를 가졌기 때문이다. 유곽에는 유조라는 유녀가 있었다. 그리고 이 유조의 시중을 드는 소녀가 가부조다. 미모, 교양, 기예를 모두 갖춘 최상급 유녀가 오이란 또는 다유라 불렸다. 아무리 손님이 대단해도 이들은 그 손님을 거부할 권한이 있었다. 

 유곽의 미의식은 스이와 츠다. 츠는 유곽의 규칙, 풍속, 인간 관계를 꿰뚫은 통달의 경지다. 그리소 스이는 츠를 갖췄음에도 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절제와 세련된 태도다. 


4. 일본의 성문화

 일본의 개방적 성문화는 이런 유곽도 있지만 건국신화부터 심상치 않다. 일본의 건국신화는 남신 이자나기와 여신 이자나미의 성교로 시작한다. 이들이 일본을 구성하는 섬들을 낳는다. 그래서 일본인에게는 다른 민족과는 달리 성이 죄악이 아닌 신성하고 강력한 힘의 원천으로 자리한다. 또한 건국 신화에서 나타나는 실패의 원인 역시 도덕적 타락이나 원죄가 아닌 단순 절차상의 오류다. 이는 성에 대한 긍정적, 자연주의적 인식의 기반이었다. 

 일본은 과거 여성의 신분이 남성에 비해 낮지 않았고, 자유와 평등을 바탕으로 이혼율도 높게 나타났다. 이것이 변한 것은 메이지 시대다. 메이지 유신 후 메이지 민법은 가장인 고슈에 절대적 권한을 부여한다. 아내를 무능력자로 규정하여 남편 동의 없이는 재산 처분, 계약, 소송등 법률행위를 못하게 만들었고, 아내의 간통은 형사처벌 대상이나 남편의 간통은 상대가 유부녀인 경우에만 문제가 되었고, 친권을 남성에게만 부여했다. 이런 차별은 미군정때가 되어서야 법적으로 해소되었다.

 일본은 성인 비디오 AV의 천국이다. 이는 1980년 VCR이 보급되며 산업으로 성장하였다. 놀랍게도 다른 나라와는 달리 AV배우는 일본에서 스타가 되어 아이돌과 비슷한 인기를 누린다. 그래서 상당수 여성이 적극적으로 이 직업에 진출했을 거란 생각이 들지만 대부분의 여성은 기만적 스카우트와 심리적 압박으로 원치않는 촬영을 강요당하며 업계에 입문한다. 대부분 길거리 캐스팅으로 처음에는 아이돌 데뷔를 약속하짐나 노출이 심한 촬영을 계약을 빌미로 강요하며 차츰 수위를 높이는 식이다. 이런 피해는 오래되었음에도 공론화 되지 않다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고발과 지원단체의 노력으로 2022년에서야  AV출연 피해 방지 구제법이 등장하게 되었다.  

 일본에서 기모노는 여성이 입는 옷이란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이는 메이지 정부와 서구오리엔탈리즘의 합작이다. 기모노는 원래 남여가 모두 입는 일본의 전통 옷이다. 하지만 메이지 정부는 1871년 일본식 상투와 칼의 휴대를 금지하고 서구식 근대 국가를 표방한다. 그리고 남성 관료와 군인에 서양 복식을 입혔는데 계급과 훈장이 드러나며 그 정점에 있는 덴노가 더욱 돋보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근대식 복식의 변화대상은 남성 뿐이었다. 여성은 심지어 왕세자비 마저 기모노를 입었다. 

 메이지 정부는 여성이 근대적 활동을 하는 양장을 입은 여성이기보다는 기모노를 입고 전통적 가치관을 지키는 수동적 존재이길 원했다. 왕실의 이런 이미지는 국가행사와 의례, 홍보사진, 우키요에를 바탕으로 널리 퍼졌다. 대외적으로도 해외박람회, 선물, 기념 엽서 등에 다양한 전시와 미디어에 기모노 입은 여성이 등장했다. 부드러운 국가이미지와 일본 상품 판매 촉진을 위해서다. 

 메이지 정부는 조직적으로 서구에 기모노는 여성이 입는 옷이라는 인식과 동양적 우아함을 상징한다는 메시지를 반복한다. 그 결과 기모노는 본래 의미와 다르게 서구에서 재해석된다. 서구의 강력한 코르셋과 다른 넉넉함, 비단 재질, 다양한 문양이 있는 기모노는 이국적 관능감과 신비감을 불러왔다. 특히 게이샤의 엽서, 사진으로 인해 기모노 입은 여성은 성적대상화까지 된다.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은 이런 이미지의 상징이다. 주인공 초초는 순수하고 헌신적이나 본처가 있는 서양 남성을 좋아하다 결국 버림받자 기모노를 입은 채 자결한다. 연약하고 수동적 존재로 그려지는 것이다. 

 전후 일본의 항공사 JAL은 광고에서 기모노 입은 여성 승무원을 등장시킨다. 서구 사회에 일본 여성에 대한 긍정적이고 특정화한 이미지를 다시 각인시킨 것이다. JAL은 일본 기모노 여성이 보살핌, 안락함, 이국적 판타지여행을 충족시켜줄 것처럼 묘사했다. 

 결국 기모노 입은 여성 이미지는 일본이 갖는 남여 차별적 시도와 서구 오리엔탈리즘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5. 일본의 건축 문화

 일본은 남북이 매우 길고 아한대와 아열대 기후가 모두 나타나나, 대부분의 인구가 거주하는 지역은 동서로 길게 누워 전반적으로 매우 덥고 습한 기후가 일반적이다. 한편 겨울에는 대륙의 한기가 뻗치나 동해를 건너며 공기가 습윤해져 다소 온난해진다. 반면 한반도의 북풍은 매우 춥고 건조하다. 

 그래서 한국의 건축은 겨울, 일본의 건축은 여름에 방점이 찍힌다. 한국의 건축은 기본적으로 남향, 온돌, 흙과 돌을 이용한 두꺼운 벽과 낮은 천정으로 겨울을 대비하는 것이 기본형이다. 다만 방과 방 사이에 마루를 두어 공간을 두어 여름을 나고, 들문으로 통기성을 높였다.

 일본의 주택은 여름용이다. 목재로 기둥을 세운 후, 일종의 탈부착식 벽으로 필요에 따라 공간을 나누고 구획힌다. 가옥의 바다을 지면에서 띄워 습기를 차단하고 통기성을 높이고 바닥을 짚으로 짝 다다미를 놓아 역시 습기를 조절하고 발바닥이 달라붙는 찜짐함을 막는다. 여기에 처마가 넓어 직사광선을 막고 집안의 정원과 연못도 공기순환을 일으켜 시원함을 가져온다. 

 다만 겨울도 만만치 않게 추워 대비가 있다. 겨울에는 마루 바닥의 일부를 뜨어내어 테두리를 두고 바닥엔 모래를 깔고 화로인 이로리를 놓는다. 이렇게 난방을 하는데 난방 후 온기가 남은 이로리 위에 덮개를 덮은 후 침구로 깔아 온기를 유지했는데 이것이 고타츠의 시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방은 역부족이라 일본은 남아도는 온천을 이용해 체온을 놓이고 잠자리에 드는 풍습이 있다. 전반적으로 일본은 겨울에 무관심하고 건축비 절감과 느슨한 법령으로 인해 창호의 단열기능이 형편없다. 일본은 고대 한반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에 한국의 온돌 풍습이 전해졌으리란 짐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온돌은 일본처럼 지진이 잦은 지역에는 적합하지 않다. 균열로 인해 시스템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국에 비해 단독주택 선호가 높다. 이는 토지 소유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고,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문화, 그리고 건물의 감가상각이 높기 때문이다. 일본의 목조 주택의 경우 내구 연한은 22년에 불과한데 그러면 가치가 제로가 된다. 그래서 땅을 소유해야 부동산 재산이 보존되는 것이다.  

 일본은 공영주택이 경제적으로 불리하다. 단독 주택인 소규모 주거 용지는 고정자산세가 1/6으로 경감되며, 주택자금은 1천만엔까지 증여세가 면제다. 반면 공동주택은 수도권의 경우 장기수선충당금이 월 11907엔에 달한다. 그리고 크기도 평균 65제곱미터로 협소하다. 그래서 일본은 대부분의 가정이 가족을 늘리면 목조주택을 마련한다. 그리고 목조주택은 지진에 강하고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어 지진이 많은 일본에 적합하다.

 일본은 임대가 활성화되어 있다. 특이한 점은 첫 임대 계약때 집주인에게 감사의 의미로 1-2월 월세에 해당하는 감사금인 레이킹을 지불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첫 입주시 목돈이 든다. 레이킹에 1-3개월 월세에 해당하는 보증금과 첫 월세, 부동산 중개비가 든다. 그리고 집에서 나갈때는 집주인은 대개 보증금에서 감가상각 비용을 감한다. 하지만 세입자의 권리도 막강하다. 세입자는 사실상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임대의 무한 갱신권을 갖는다. 


6. 동일본 대지진과 피해자 코스프레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은 무려 22325명이 사망, 실종되었다. 3개의 단층이 파괴된 진도 9이상의 기록적 지진이었다. 하지만 다른 지진과 다르게 피해가 영속적인 것은 원전의 파괴 때문이다. 원전은 대규모 냉각수를 필요로 하기에 대개 해안가에 위치한다. 다만 일본은 쓰나미가 잦음에도 이에 대한 충분한 대비를 하지 않은 것이 오늘의 결과를 낳았다. 

 후쿠시마 원전은 해일에 대비해 10m 높이의 부지에 건설되었다. 하지만 이 지역은 과거에도 15m이상의 해일이 발생한 적이 있어 그 이상의 대비가 필요했다. 또한 원전은 냉각이 필수이기에 단전이 되어도 자체 발전기가 가동되어 냉각을 유지한다. 그럼 자체 발전기는 어처구니 없게도 지하에 설치했다. 이는 미국의 방식으로 미국은 허리케인과 토네이도를 대비해 이 비상시설을 지하에 놓는데 그 방법을 어리석게 채택한 것이다. 구조상의 문제로 단 1기의 비상발전기만이 지하에 있지 않았는데 해일 후에 그것만 살아남아 원전의 생명을 다소 남아 연장시켰다. 

 사실 원전 사고 후, 원전에 바닷물을 주입하여 냉각을 유지하면 지금 같은 피해는 막아볼만 했다. 하지만 도쿄전력은 원전 장비에 집착한 나머지 바다물 주입을 금지시켰고, 이런 무리한 지시를 거부한 실무자가 바닷물을 주입해 그나마의 피해를 막았다.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는 구 소련이 체르노빌에서 그러한 것처럼 사태를 축소시키고, 피해를 과소보도했다. 그 결과 빠른 대피가 늦었고 많은 사람이 피폭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대피 반경은 2-3-10-20km순으로 확대발표했는데 이는 30시간 동안 이뤄진 조치로 매우 늦었다. 현재는 반경 20km가 법적 강제 대피선이다. 2012년 후쿠시마현 주민 16만이 피난했고, 현재 돌아온 사람은 25%에 불과하다. 

 복구 작업도 난망하다. 제염작업은 기화 한장 한장은 닦아내고, 표토와 잔디 등을 모두 갈아없애야 한다. 그 분량이 1130만제곱 킬로미터에 달한다. 그리고 원자로 과열을 막기 위해 지금도 해수를 유입시키고 있고 그 결과 막대한 오염수가 발생했다. 1046기의 오염수 저장고를 지었는데 그것이 모두 차버려 일본 정부는 무책임하게 이를 바다에 방류하고 있다. 

 이런 사상최악의 인재에도 도쿄전력 관계자들은 재판에서 모두 무죄처분을 받았다. 업무상 과실 치사로 기소되었으나 재판부는 쓰나미는 예상할 수 없는 것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무죄를 선고했다. 결국 이들에게 주어진 처분은 사과와 급여삭감이 전부다. 

 일본은 원전반대 집회와 원전 정책을 반대한 배우 야마모토타로를 TV드라마에서 퇴출시켰다. 또한 정부에 불리한 인터뷰를 진행한 구니야 히로코를 NHK 프로그램에서 하차시켰다. 그는 그 프로를 23년간 진행했었다. 또한 가수 사이토 가즈요시가 반원전 노래를 공개하자 해당영상을 비공개처리하고 지상파 출연을 배제한다. 공산주의 중국 뺨치는 수준이다.

 그리고 일본은 불만을 누르고 지역 주민의 숭고한 희생에 감사해야 한다는 정서적 연대 캠페인을 벌인다. 후쿠시마 농수산물 사먹기 운동, 종이학 접어 보내기 운동등이 그 예다. 동정심과 희생에 대한 부채감을 강조해 피해 서사 확산을 시켰는데 이를 통해 분명한 피해-가해 관계를 흐리고 피해자에 대한 정서적 연대감만 남기게 된다. 이는 피해자들로 하여금 치유받지 못한 상태를 유지시켜 세습적 희생자를 만들게 한다. 

 일본은 어처구니 없게도 오염수를 방류하며 자신들의 사고의 최대 피해자라며 이를 정당화한다. 분명한 가해자가 피해자 행세를 하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실수로 집에 불이 나서 이웃집까지 번졌는데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이웃에 내가 최대 피해자라며 항변하는 형국과 같다.

 일본의 이런 행태는 과거에도 있었다 .바로 2차 대전과 식민 지배에 태도가 그러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명백한 가해자임에도 2차 대전, 특히 핵무기에 의한 최대의 피해자라는 태도를 내세운다. 과거 한 프로에서 일본의 핵피해자는 미국의 과학자를 초청해 사과를 요구했는데 합리적으로 올바른 미국의 과학자를 이를 단호히 거부하는 좋은 예를 보였다. 


7. 일본의 종교

 일본에는 수많은 신사와 사찰, 종교의 영향이 담긴 시설이 많지만 정작 일본인들은 대부분 자신이 종교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일본이 다종교와 실용적 신앙자세를 갖고 있고, 관습 중심의 문화속에서 생활의 일부로 종교가 포섭되었으며, 과거 2차대전 때 국가신토의 강요로 인한 거부감이 있어서다. 

 일본인은 특정 종교에 잘 귀속하지 않고, 필요한 시기 적절한 신을 선택하는 실용적 종교관을 보인다. 애가 100일이 되면 신토식 행사를 하고 결혼은 기독교 식이며, 장례를 불교식으로 한다. 일본은 문화의 변방으로 불교가 538년 백제로부터 전래된다. 이후 자연신에 더해 조상이 모두 부처가 된다는 식의 사고로 신이 더욱 분화하고 다양해진다. 이처럼 일본은 종교가 침투해도 이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이식 보다는 기존의 것에 필요에 따라 융합하는 형태를 취한다. 

 신도는 교리체계가 불분명하다. 그래서 관혼 상제 같은 생활 속 의례, 가족 커뮤니티의 확장선 상에서 조상 숭배 수단으로만 작동한다. 신토와 불교는 서로 융합하였는데 메이지 일본은 신토를 국교로 삼는 과정에서 불교를 축출한다. 그래서 신불분리령을 발표하고 수천 개의 신궁사가 폐지되었으며 신사 내 불상이 철거되었다.

 도쿠가와 막부는 그동안 사쓰마, 조슈, 도사, 히젠 번을 권력에서 배제시켰는데 이들은 도요토미 편에 붙어 전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19세기 막부가 서양 열강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자 반기를 들고 상징뿐이던 덴노를 수단으로 삼는다. 덴노는 신격화와 권력의 정점화는 국민 통합과 급진적 개혁에 대한 저항을 마무시키는데 적절하기 때문이다. 덴노에 대한 충성은 국민에게 곧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덴노의 지위를 군주에게 강한 권한을 부여하는 프러시아 헌법을 참고하여 헌법을 통해 부여한다. 이로써 근대화 과정에서 국민을 자유와 평등, 권리를 법적으로 박탈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덴노는 정점으로 하는 국가이데올로기 완성을 위해 국가신토를 완성하기 위해 모든 이데올로기, 사상, 종교를 그 아래에 두었다. 모든 신사는 덴노는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디 체계로 개편되었다. 1906년 신사합병령으로 일촌 일사 정책이 시작되어 지역 주민이 대대로 모셔오던 잡다한 신사들이 철거되었다. 기독교는 유일신 사상을 갖고 있어 국가신토와 반하므로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이와 같은 경험으로 인해 현대 일본인은 종교가 국가의 하부조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반감도 심한 편이다. 

 야스쿠니는 근대국가 일본의 형성 과정에서 사망한 호국영령을 신으로 모신 사찰이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에서 사망한 246만여명의 영령이 신으로 합사되었다. 일본은 물론 한국의 현충원에 해당하는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이 따로 있다. 이것이 공식 국가기관이고 야스쿠니는 사실 일개 종교시설일 뿐이다. 그럼에도 일본 정치인들이 상징적으로 이를 방문함으로써 강압적 국가신토의 망령이 유지되고 있다.

 야스쿠니의 근본 문제는 다음과 같다. 우선 A급 전쟁범죄를 신으로 합사했다는 점이며, 침략전쟁에 강제 동원된 식민지의 국민들 역시 합사했다는 점이고, 현재 유족들이 분사를 원하고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8. 일본의 전통 예술

 일본은 전통 예술의 맥을 잘 이어가고 있는 나라다. 여기에는 이에모토가 존재한다. 이에모토는 거의 모든 예술 분야에 존재하는 것으로 단순한 도제시스템이 아니라 한 가문이 그 분야 전반의 세습문화를 관장하는 것이다. 이에모토는 권한이 막강하다. 일본은 무형문화재를 116명 선정하는데, 이 지위는 이에모토에서 거의 세습된다. 그리고 이에모토의 지위는 실력이나 신망이 아니라 역시 직계세습이다. 이에모토는 그 분야에서 해당기술을 제자에게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인 면허에 대한 발급권을 갖고 있다. 즉, 이 분야에서 먹고 사고 지위를 올리는데 이에모토는 절대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것의 순작용은 전통의 체계적이고 확실한 계승이다. 하지만 단점은 실력주의가 아닌 폐쇄적인 혈연적 세습, 그리고 창의성을 억압하는 경직화, 그리고 과도한 돈이 든다는 것이다. 

 일본의 전통예술에는 도가 많이 붙는다. 무사도, 다도, 서도 이런 식이다. 일본의 도는 한국이나 중국의 도와 다르다. 사실 이 도는 도교에서 온 것이지만 일본에서의 도는 특정 행위를 평생 반복하여 정해진 형식을 철저히 다름으로써 완벽한 기술과 더불어 인격의 완성에 도달하는 깨달음의 과정과 그 자체다. 

 도에 이르는 과정으로 중세에 슈하리 개념이 생겨난다. 슈는 스승의 가르침과 정해진 형식을 철저히 따르는 단계다. 하는 기본을 완전히 익히고, 자신에게 맞게 응용하고 기존의 틀을 서서히 깨는 단계다. 마지막 리는 스승 유파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자적 경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일본에는 무사도란게 있다. 무사도는 일본 사무라이의 역사만큼 오래된 것 같지만 사실 근대의 발명품에 불과하다.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은 덴노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강조하고, 서구에 미개하게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미화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발명한 것이 무사도다. 서구의 기사도에 해당하는 개념으로 이를 제시하고 미화한 것이다. 패전 이후에도 이는 영향력을 유지하여 7인의 사무라이, 라스트 사무라이, 고스트 오브 시네마 등의 작품이 등장한다.


9. 일본의 아이돌과 한류

 지금이야 K pop이 대세지만 과거 아시아 문화의 주류는 J pop이었다. 한국 대중가요 역시 1990년대만 해도 일본의 J pop을 베껴낸 곡과 댄스, 스타일 등이 수두룩했다. 일본의 아이돌은 1970년대 컬러 티비의 보급으로 본격 등장한다. 생동감 있는 화면을 통해 아이돌이 스타로 다가온 것이다. 당시 야마치 마리, 미나미 시오리, 코야나기 루미코 같은 신인 3인방이 등장해 큰 인기를 끌었고, 이어서 3인조 캔디즈, 2인조 핑크 레이디 등이 인기를 끌었다. 이들은 가창력 보다는 앳된 이미지와 청순한 외모로 인기가 좋았고 이들의 미소와 노래는 전후 경제성장의 피로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했다. 

 80년대는 일본 아이돌의 황금 시대로 마츠다 세이코, 나카모리 아키나가 큰 인기를 끌었다. 90년대는 버블경제가 붕괴하며 온 국민이 하나의 스타를 사랑하던 시대가 막을 내린다. 이후 두 프로듀서가 아이돌 산업을 재편한다. 아키모토 야스시는 미숙한 소녀들을 데뷔시켜 성장과정을 대중이 함께하게 하는 AKB48을 성공적으로 데뷔시킨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아이돌이 대중 전반의 사랑을 받는게 아니라 특정 팬덤에 의존하는 하위 문화로 자리 잡게 되며 주류는 뛰어난 가창력과 자작곡 능력을 갖춘 아티스트가 차지하게 된다. 아무로 나미에, 아타다 히키루가 그들이다. 

 여자와 다르게 남자 아이돌 시장은 자니스 사무소가 오랜 기간 독식한다. 자니스는 SMAP, Tokio, v6, kinki kids, 아리시 등 굵직한 아이돌을 배출했다. 다만 이들은 BBC가 창업자 자니 기타가와가 수십년간 소속 소년 연습생을 성착취한 것이 드러나며 2023년 자니스 사무소가 문을 닫게 된다. 그간 자니스는 시장을 독점하며 특정 스타일의 아이돌만 배출하고, 반대쪽은 강한 세력으로 탄압하고 견제하여 싹을 잘라내는 방식을 취했었다.

 일본은 버블 경제가 붕괴하며 대중산업에 큰 변화가 생긴다. 티비 광고비가 크게 줄어 방송국들은 저예산 프로그램 제작과 해외 프로그램을 도입하게 된다. 과거 같은 해외 로케이션과 거대 세트를 동원한 버라이어티 쇼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 당시 해외에서 도입한 가성비 좋은 프로그램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의 '겨울연가'다. 이는 일본 NHK가 정규 편성해 더욱 화제를 끌었고, 왕이나 주군에게나 붙은 '사마'라는 표현이 남자 주인공에게 붙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겨울 연가의 순애보는 일본인에게는 매우 고전적 주제로 당시 일본 방송계나 드라마에서 거의 다루지 않는 것이었다. 이것이 일본의 중장년층들에게 고전의 큰 향수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K pop은 일본의 청년을 사로잡았다. 일본은 21세기 들어서도 저작권 보호를 위해 음악 영상을 유튜브나 인터넷에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일본 아이돌과 문화의 확산과 접근을 저해하는 측면이 있었다. 한국은 정반대로 영상을 인터넷에 쉽게 올렸고 이를 통해 세계로 빠르게 퍼질 수 있었다. 일본의 아이돌은 트렌드가 미숙한 상태로 데뷔를 시켜 팬들과 함께 성장서사를 그려나가는게 일종의 공식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아이돌은 전혀 달랐다. 철저한 트레이닝으로 거의 완벽한 모습으로 데뷔했고, 이들의 보이는 완벽한 비주얼과 압도적 퍼포먼스는 동경의 대상으로 일본 청년층을 매료시켰다. 

 이처럼 일본에서의 한류의 성공은 버블 이후 일본이 겪은 구조적 균열과 정서적 공백을 한국이 뛰어난 실력과 콘텐츠로 파고든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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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만난 국어
고정욱 지음 / 책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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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방 들어주는 아이'로 유명한 고정욱 작가의 작년 신간이다. 요즘 공부를 멀리하고, 책을 안 읽는 아이들을 위해 '어쩌다 수학', '어쩌다 국어'연작을 냈다. 내가 본 것은 '어쩌다 국어'다. 

 주인공은 중학교 3학년 4인이다. 세인, 준표, 정식이다. 세인이는 요즘 여자아이처럼 뷰티에 관심이 많고, 준표는 의기 있지만 아직 꿈이 없고, 정식이는 방정식이 이름인 것처럼 수학 천재다. 셋의 공통점은 국어를 못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점은 잘 의식하지 못한다. 서로 의사소통하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 이들은 우연히 전작에서 불상을 주운듯 한데, 이것이 워낙 귀한 보물인지라 국가에서 무려 4억의 포상을 받게 된다. 아이들은 아이답게 이 중 1억을 기부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로로 방송 출연이 성사된다. 그런데 이들은 대본을 사전에 받았음에도 아나운서의 질문에 단답으로 대답하며 방송을 망친다. 

 상심한 아이들의 학교에 성운이가 전입온다. 성운은 첫날부터 자신이 보육원 출신임을 밝히고 달변으로 자기 소개를 마무리한다. 국어가 배우 고팠던 아이들의 관심을 차지했음은 물론이다. 이들은 국어선생님 박청강 작가를 만나며 책읽기 동아리를 만나며 명작을 읽고 인생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한편 이들은 자신의 동아리 활동을 유튜브로 제작한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인기가 없었다. 그러다. 성운이의 보육원 촬영을 시작했는데 솔직한 내용이 인기를 끌게 된다. 성운이는 부모님을 찾고 싶어하고 이들은 단서 확보를 위해 몰래 성운이가 보육원에 들어올 때 작성된 카드를 몰래 보기도 한다. 성운이는 우리 말 퀴즈 대회에도 나가게 되고 2위를 하게 된다. 거듭 높아진 유튜브 인기로 이들의 활동에는 악플리 달리게 되고, 성운이의 어머니를 자처하는 수 많은 가짜들도 나타나게 된다.

 이야기는 결국 아름답게 끝난다. 이 책에 나오는 애들은 그래도 요즘 애들 같으면서도 요즘 애들같진 않았다. 요즘 애들은 이렇게 진지하지도 순수하지도 않다. 그래서 좀 위화감이 들긴 했는데 작가님은 아이들이 이렇게 되기를 희망하는 것 같다.

 요즘 애들이 이 요즘 애들 같지 않은 아이들을 보며 발전하고 느끼는 바가 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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