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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어떻게 ‘일본’이 되었나 - 새로운 세대의 일본 문화 디코딩
김유영 지음 / 브라운출판사 / 2026년 3월
평점 :
한국와 일본, 중국은 지리적으로 인접하나 매우 다르다. 그리고 여기에는 지리적 환경과 그것과 상호작용하며 스스로 빚어낸 정치, 사회, 문화 등의 인문적 요소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책은 일본인의 정신과 사회문화적 요인을 빚어낸 지리, 역사문화적 요소를 깊고 흥미롭게 잘 풀어낸다.
1. 일본인은 청결하다?
한국인은 일본인이 매우 청결하고 궁중도덕 의식이 높다고 여긴다. 지금은 우리도 상당히 깨끗해져 그런 의식이 좀 옅어졌으나 과거에는 상당했다. 아마 지금은 중국인이 한국인과 일본인을 그리 여기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이를 일본의 민도라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한국의 경우처럼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일본은 도쿄올림픽 이전 공중도덕과 거리의 청결도가 엉망이었다. 1950-60년대 길거리를 쓰레기로 가득했고, 지하철이나 수도권행 기차는 새치기에, 먼저타기 등등 공중도덕 의식이 영 엉망이었다. 이런 일본이 바뀐 것은 우리와 같다. 올림픽이다. 일본은 1964년 동경올림픽을 계기로 대대적인 도시환경미화와 공중도덕 의식 캠페인을 벌이며 이것이 먹힌다. 공공장소에 쓰레기통을 만든 것도 놀랍게도 이때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 길을 걸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대대적 거리 미화와 공중도덕 함양 캠페인이 이뤄졌다. 애국주의, 민족주의와 결합행 강한 압박으로 이것이 사회에 자리잡았다. 결국 일본과 우리 사이엔 개발의 올림픽이라는 계기의 시간차만 있었을 분이다. 중국도 모르긴 몰라도 아마 2008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공중도덕 민도라는 것이 많이 올라가지 않았을까 싶다.
2.안과 밖이 다른 이중성
일본인의 행동을 지배하는 강한 두 축이 있다. 다테사회라고 불리는 수직 사회의 위계질서와 동조압력은 우치와 소토로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분하는 성향이다. 일본은 수평적 요소인 자격보다는 수직적 요소인 인간관계가 자신을 규정하는 핵심원리다. 그래서 일본 사회는 독특한 패션 문화와 서브컬쳐 등 강한 개성을 드러내고 허용하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상 매우 보수적이고 수직적 사회다.
그래서 일본 만화나, 드라마, 영화에서 머리는 원색으로 물들이고 놀고 방탕한 주인공들도 웬지 가업을 이끌게 되거나 취업을 하게 되거나 사회로 진출하면 놀랍게 머리를 깎고 검게 만드는 모습을 보이는데 실제 사회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한국도 다소 그런 경향이 있지만 일본에 비할바는 아니다.
이는 강한 위계와 강한 동조압력 때문이다. 일본의 우치는 내집단으로 가족, 회사, 동료, 동창이다. 그리고 소토는 외집단으로 고객, 타사직원, 타인이다. 일본은 극진한 예의, 오모테나시 문화는 소토를 대함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외부를 존중하기보다는 그들과의 마찰을 피해 내부의 안녕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개인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정해진 형식에 맞는 진중함을 보인다. 하지만 소토라도 우리 내부를 위협할만한 것이 아닌 만만한 대상은 극진한 예우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만만한 어린 아이나, 만만한 국력의 외국인에 대해서는 갑질과 무시가 자행된다.
일본어에서 주다는 아게루다. 우치에서 우치, 우치에서 소토, 소토에서 소토간에는 아게루라는 동사를 쓰지만 유독 소토에서 우치는 쿠레루라는 다른 표현을 쓴다.
일본이 이렇게 된데는 섬이라는 지정학적 요건이 크다. 일본은 과거부터 동북아 문명의 종착지로 가장 문명이 들어오는 시점이 늦었다. 그리고 중국과는 멀리 떨어져있고 한반도는 일본보다 작은데다 중국과의 대결에 나라를 지키는데 급급해 삼국시대 외에는 일본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어찌보면 막강한 대륙 및 북방세력을 한반도가 막아준 꼴이다. 이러다보니 일본이 이 치열한 동북아에서 겪은 외침이란게 13시 여몽연합군의 실패한 정벌이 고작이다. 그래서 외부충격이 역사상 페리 제독 이에는 사실상 없었고 이로 인해 사회구조의 급격한 변화와 지배층의 전면적 교체도 없었다.
그 상징이 일본의 덴노다. 만세일계라 할 정도로 지배구조가 변하지 않는다는 강고한 역사적 경험이 있기에 기존 위계질서가 철저히 내면화 되어 있다.
여기에 도쿠가와 막부의 봉건제가 이를 더욱 강화했다. 막부는 기득권 유지를 위해 반란과 하극상을 막기 위해 사회 전체를 엄격한 위계구조로 만들었다. 사농공상의 신분제로 사무라이, 농민, 공인, 상인의 계급이 철저했다. 그리고 지방 다이묘 통제를 위해 매우 정교한 통치시스템을 고안했으니 그것이 참근교대다. 이는 다이묘가 격년으로 자신의 영지와 막부가 있는 에도를 오가며 거주하는 것이다. 이는 다이묘에 경제적 부담을 지우고 그 처자식을 에도에 사실상 인질로 잡아두는 제도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다이묘들에겐 이 참근교대의 규모가 자신의 세를 과시하는 장이 되어 어처구니 없게도 막부는 참근교대 인원을 제한하는 법까지 제정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런 강고한 신분체계가 260년간 지속되다보니 일본 사회는 상하관계가 생존의 제 1원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변하지 않는 사회의 수직체계와 자신의 소속의 강고함이 내부 집단에서의 수직체계를 고수하고 그것을 내면화하는 방향으로 고착한 것이다.
일본의 집단주의는 때로는 상당히 잔혹한 방향으로 작동한다. 막부는 5가구를 하나의 단위로 몪눈 고닌구미를 시행했는데 이는 상호감시와 연대책임의 원리다. 납세, 범죄, 종교 문제등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연대책임이 발생한다. 이는 매우 잔혹한 처벌이었기에 사람들은 자발적 내부통제를 강화했다. 그래서 지금도 일본의 집단은 현재의 집단 평화를 깨는 자에게 매우 가혹하다. 코로나 19 요코하마항에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호가 정박하지 못하고 연안을 겉돌았다. 코로나 19 집단 감염이 선내에 창궐했기 때문인데 당시 의료진은 격리된 배안에서 필사의 사투를 벌였다. 이중 한 간호사가 감염되었는데 그 공로와 노고에도 그는 지역사회에서 큰 비난을 받았다. 가족이 따돌림 받았음도 물론이다.
코로나 19기간 일본 사회에서는 일종의 자경단 같은 것이 존재했는데, 외부인이나 외부 차량 번호가 발견되면 그 차량에 돌아가라는 욕설이나 심지어 타이어 펑크, 사이드 미러 파괴등이 자행되었다. 고닌구미의 현대적 재현인 셈이다.
일본 사회에서 집단주의는 평소에는 질서와 조화로 작동하지만 이처럼 위기시 자신들의 집단 보호를 위해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이나 .위해를 가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과도하고 가혹하며 매우 배타적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지역에 대단한 살인자라도 발생하면 무관한 그 가족을 공격하고 집등을 테러하며, 집에 살인자의 집이라는 구호등을 붙이는 일이 자행되는 것이다.
일본의 내집단에 대한 강박은 국기 스모에서도 드러난다. 스모에서 이기는 방법은 다소 특이하게도 상대를 눕히거나 때려 제압하는 것이 아닌 경기장에서 밀어내는 것이다. 이는 한 사람을 내집단에서 밀어내는 것을 상징한다. 즉, 내집단에서 밀려나는 것이 패배인 것이다.
이러한 동조압력은 개인의 창의성과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억압하고 사회 전체를 경직되게 만든다. 특히 사회 전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 브레이크는 사실상 사라지고 엑셀만 존재한다. 군국주의 일본이 딱 그러했다.
이는 일본인의 도덕관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국인의 도덕에는 성리학적 가치관이 깊게 자리한다. 인간으로 지켜야할 도리가 마땅히 있고, 이런 도덕률은 절대적인 윤리로 외부 시선이나 상황에 따라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개인의 내면에 확고히 자리하며 그래서 한국인에겐 지조 있는 행동이 중요하다. 그래서 부정을 저지르면 깊은 죄의식을 느끼고 반성과 참회, 자신의 양심을 회복하려 한다. 반면 일본은 상대적의적 도덕이다. 이들은 도덕의 기준점이 내가 아니고 타인이다. 이는 집단에서의 소속과 그들이 나를 바라보는 것이 생존에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은 수치문화가 발달했다. 개인이 부정을 저지르면 내면적 참회보다는 행동, 성과로 타인에게 뭔가를 보여야 한다. 그래서 사회적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집중한다. 그리고 이게 불가능하다 판단되면 그래도 외부에 자신의 결의를 보여야 하며 그것이 극단적 할복이다.
3. 개성적 문화의 근원
이런 강직함에도 일본엔 세계인을 사로잡은 독특한 패션, 만화, 게임, 음악, 영화 등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모순되 보이는 이런 면은 사실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막부는 사회를 엄격한 위계질서에 두었음에도 영리하게도 숨통을 트일 해방구는 마련해놨다. 그것이 문화 예술과 유흥이다. 마치 오늘날 독재정권들이 잘 써먹는 3S 정책과 유사하다.
계급은 통제되지만 사람들은 계급안에서의 상승과 자아실현은 만끽할 수 있었다. 유흥과 예술이 자아실현의 해방구였던 것이다. 막부시절 행정권이 미치지 못한 강변지역에 모여사는 이들이 가와라모노다. 이들은 도축, 가죽세공, 청소 등 부정한 일에 종사했다. 그리고 이들이 예능과 공연 등 유흥에 종사했다. 천민은 엄격한 규범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예술에 두각을 나타내기 좋았다. 그래서 이 계급에서 유명 가부키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출판 역시 소재가 다양했다. 폭력적이고 기괴한 소설이 많았고 노골적인 성행위가 묘사된 것도 많았다.
일본의 미의식은 각 시대의 지배층과 연관한다. 헤이안시대 귀족은 문학, 중세 무사는 선불교, 에도시대 상인 죠닌은 유흥문화가 중심이다. 헤이안의 미의식은 모노노아와레다. 모노는 사물이나 인간 세상이며, 아와레는 마음 깊은 곳의 감정이나 정서다. 덧없이 피고지는 벚꽃의 애틋함, 저무는 달의 쓸쓸함, 무상을 인지하는 애상적 아름다움이 모노노아와레다. 무사계급은 선불교다. 유겐은 직접 드러내지 않고 그윽하고 신비로운 아름다움이다. 화려한 외면이 아닌 사물의 감춰진 본질이다. 이는 모노노아와레를 넘어 그 감정을 마음에 삭히고 절제하여 더 깊고 상징적인 정취를 표현한다. 유겐 미학의 정점은 14세기 전통가면극 노다. 노는 배우가 무표정한 가면을 쓰고 극도로 절제도니 움직임과 상징적 동작만으로 깊은 슬픔과 고뇌를 표현한다.
막부는 공창으로 유곽을 운영했다. 이는 풍기문란을 통제하고, 유곽에서 자금을 징세하고, 무사의 다툼 방지와 사회 불안의 해소를 위해서였다. 에도의 요시와라, 교토의 시마바라, 오사카의 신마치가 3대 유곽이다. 유곽은 담을 높게 두르고 해자까지 둘러 도시와 분리된 별도의 공간이었다. 유곽이 특별한 이유는 그곳에서만큼은 에도의 엄격한 신분제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무라이는 자신의 신분을 상징하는 두 자루의 칼을 반납하서야 유곽 입장이 허용되었다.
그래서 유곽에서는 개인의 가치는 그가 가진 돈과 멋이었다. 여기서 빛을 발하는 것은 상인 죠닌이었다. 그들이 이 두 개를 가졌기 때문이다. 유곽에는 유조라는 유녀가 있었다. 그리고 이 유조의 시중을 드는 소녀가 가부조다. 미모, 교양, 기예를 모두 갖춘 최상급 유녀가 오이란 또는 다유라 불렸다. 아무리 손님이 대단해도 이들은 그 손님을 거부할 권한이 있었다.
유곽의 미의식은 스이와 츠다. 츠는 유곽의 규칙, 풍속, 인간 관계를 꿰뚫은 통달의 경지다. 그리소 스이는 츠를 갖췄음에도 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절제와 세련된 태도다.
4. 일본의 성문화
일본의 개방적 성문화는 이런 유곽도 있지만 건국신화부터 심상치 않다. 일본의 건국신화는 남신 이자나기와 여신 이자나미의 성교로 시작한다. 이들이 일본을 구성하는 섬들을 낳는다. 그래서 일본인에게는 다른 민족과는 달리 성이 죄악이 아닌 신성하고 강력한 힘의 원천으로 자리한다. 또한 건국 신화에서 나타나는 실패의 원인 역시 도덕적 타락이나 원죄가 아닌 단순 절차상의 오류다. 이는 성에 대한 긍정적, 자연주의적 인식의 기반이었다.
일본은 과거 여성의 신분이 남성에 비해 낮지 않았고, 자유와 평등을 바탕으로 이혼율도 높게 나타났다. 이것이 변한 것은 메이지 시대다. 메이지 유신 후 메이지 민법은 가장인 고슈에 절대적 권한을 부여한다. 아내를 무능력자로 규정하여 남편 동의 없이는 재산 처분, 계약, 소송등 법률행위를 못하게 만들었고, 아내의 간통은 형사처벌 대상이나 남편의 간통은 상대가 유부녀인 경우에만 문제가 되었고, 친권을 남성에게만 부여했다. 이런 차별은 미군정때가 되어서야 법적으로 해소되었다.
일본은 성인 비디오 AV의 천국이다. 이는 1980년 VCR이 보급되며 산업으로 성장하였다. 놀랍게도 다른 나라와는 달리 AV배우는 일본에서 스타가 되어 아이돌과 비슷한 인기를 누린다. 그래서 상당수 여성이 적극적으로 이 직업에 진출했을 거란 생각이 들지만 대부분의 여성은 기만적 스카우트와 심리적 압박으로 원치않는 촬영을 강요당하며 업계에 입문한다. 대부분 길거리 캐스팅으로 처음에는 아이돌 데뷔를 약속하짐나 노출이 심한 촬영을 계약을 빌미로 강요하며 차츰 수위를 높이는 식이다. 이런 피해는 오래되었음에도 공론화 되지 않다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고발과 지원단체의 노력으로 2022년에서야 AV출연 피해 방지 구제법이 등장하게 되었다.
일본에서 기모노는 여성이 입는 옷이란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이는 메이지 정부와 서구오리엔탈리즘의 합작이다. 기모노는 원래 남여가 모두 입는 일본의 전통 옷이다. 하지만 메이지 정부는 1871년 일본식 상투와 칼의 휴대를 금지하고 서구식 근대 국가를 표방한다. 그리고 남성 관료와 군인에 서양 복식을 입혔는데 계급과 훈장이 드러나며 그 정점에 있는 덴노가 더욱 돋보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근대식 복식의 변화대상은 남성 뿐이었다. 여성은 심지어 왕세자비 마저 기모노를 입었다.
메이지 정부는 여성이 근대적 활동을 하는 양장을 입은 여성이기보다는 기모노를 입고 전통적 가치관을 지키는 수동적 존재이길 원했다. 왕실의 이런 이미지는 국가행사와 의례, 홍보사진, 우키요에를 바탕으로 널리 퍼졌다. 대외적으로도 해외박람회, 선물, 기념 엽서 등에 다양한 전시와 미디어에 기모노 입은 여성이 등장했다. 부드러운 국가이미지와 일본 상품 판매 촉진을 위해서다.
메이지 정부는 조직적으로 서구에 기모노는 여성이 입는 옷이라는 인식과 동양적 우아함을 상징한다는 메시지를 반복한다. 그 결과 기모노는 본래 의미와 다르게 서구에서 재해석된다. 서구의 강력한 코르셋과 다른 넉넉함, 비단 재질, 다양한 문양이 있는 기모노는 이국적 관능감과 신비감을 불러왔다. 특히 게이샤의 엽서, 사진으로 인해 기모노 입은 여성은 성적대상화까지 된다.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은 이런 이미지의 상징이다. 주인공 초초는 순수하고 헌신적이나 본처가 있는 서양 남성을 좋아하다 결국 버림받자 기모노를 입은 채 자결한다. 연약하고 수동적 존재로 그려지는 것이다.
전후 일본의 항공사 JAL은 광고에서 기모노 입은 여성 승무원을 등장시킨다. 서구 사회에 일본 여성에 대한 긍정적이고 특정화한 이미지를 다시 각인시킨 것이다. JAL은 일본 기모노 여성이 보살핌, 안락함, 이국적 판타지여행을 충족시켜줄 것처럼 묘사했다.
결국 기모노 입은 여성 이미지는 일본이 갖는 남여 차별적 시도와 서구 오리엔탈리즘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5. 일본의 건축 문화
일본은 남북이 매우 길고 아한대와 아열대 기후가 모두 나타나나, 대부분의 인구가 거주하는 지역은 동서로 길게 누워 전반적으로 매우 덥고 습한 기후가 일반적이다. 한편 겨울에는 대륙의 한기가 뻗치나 동해를 건너며 공기가 습윤해져 다소 온난해진다. 반면 한반도의 북풍은 매우 춥고 건조하다.
그래서 한국의 건축은 겨울, 일본의 건축은 여름에 방점이 찍힌다. 한국의 건축은 기본적으로 남향, 온돌, 흙과 돌을 이용한 두꺼운 벽과 낮은 천정으로 겨울을 대비하는 것이 기본형이다. 다만 방과 방 사이에 마루를 두어 공간을 두어 여름을 나고, 들문으로 통기성을 높였다.
일본의 주택은 여름용이다. 목재로 기둥을 세운 후, 일종의 탈부착식 벽으로 필요에 따라 공간을 나누고 구획힌다. 가옥의 바다을 지면에서 띄워 습기를 차단하고 통기성을 높이고 바닥을 짚으로 짝 다다미를 놓아 역시 습기를 조절하고 발바닥이 달라붙는 찜짐함을 막는다. 여기에 처마가 넓어 직사광선을 막고 집안의 정원과 연못도 공기순환을 일으켜 시원함을 가져온다.
다만 겨울도 만만치 않게 추워 대비가 있다. 겨울에는 마루 바닥의 일부를 뜨어내어 테두리를 두고 바닥엔 모래를 깔고 화로인 이로리를 놓는다. 이렇게 난방을 하는데 난방 후 온기가 남은 이로리 위에 덮개를 덮은 후 침구로 깔아 온기를 유지했는데 이것이 고타츠의 시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방은 역부족이라 일본은 남아도는 온천을 이용해 체온을 놓이고 잠자리에 드는 풍습이 있다. 전반적으로 일본은 겨울에 무관심하고 건축비 절감과 느슨한 법령으로 인해 창호의 단열기능이 형편없다. 일본은 고대 한반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에 한국의 온돌 풍습이 전해졌으리란 짐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온돌은 일본처럼 지진이 잦은 지역에는 적합하지 않다. 균열로 인해 시스템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국에 비해 단독주택 선호가 높다. 이는 토지 소유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고,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문화, 그리고 건물의 감가상각이 높기 때문이다. 일본의 목조 주택의 경우 내구 연한은 22년에 불과한데 그러면 가치가 제로가 된다. 그래서 땅을 소유해야 부동산 재산이 보존되는 것이다.
일본은 공영주택이 경제적으로 불리하다. 단독 주택인 소규모 주거 용지는 고정자산세가 1/6으로 경감되며, 주택자금은 1천만엔까지 증여세가 면제다. 반면 공동주택은 수도권의 경우 장기수선충당금이 월 11907엔에 달한다. 그리고 크기도 평균 65제곱미터로 협소하다. 그래서 일본은 대부분의 가정이 가족을 늘리면 목조주택을 마련한다. 그리고 목조주택은 지진에 강하고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어 지진이 많은 일본에 적합하다.
일본은 임대가 활성화되어 있다. 특이한 점은 첫 임대 계약때 집주인에게 감사의 의미로 1-2월 월세에 해당하는 감사금인 레이킹을 지불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첫 입주시 목돈이 든다. 레이킹에 1-3개월 월세에 해당하는 보증금과 첫 월세, 부동산 중개비가 든다. 그리고 집에서 나갈때는 집주인은 대개 보증금에서 감가상각 비용을 감한다. 하지만 세입자의 권리도 막강하다. 세입자는 사실상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임대의 무한 갱신권을 갖는다.
6. 동일본 대지진과 피해자 코스프레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은 무려 22325명이 사망, 실종되었다. 3개의 단층이 파괴된 진도 9이상의 기록적 지진이었다. 하지만 다른 지진과 다르게 피해가 영속적인 것은 원전의 파괴 때문이다. 원전은 대규모 냉각수를 필요로 하기에 대개 해안가에 위치한다. 다만 일본은 쓰나미가 잦음에도 이에 대한 충분한 대비를 하지 않은 것이 오늘의 결과를 낳았다.
후쿠시마 원전은 해일에 대비해 10m 높이의 부지에 건설되었다. 하지만 이 지역은 과거에도 15m이상의 해일이 발생한 적이 있어 그 이상의 대비가 필요했다. 또한 원전은 냉각이 필수이기에 단전이 되어도 자체 발전기가 가동되어 냉각을 유지한다. 그럼 자체 발전기는 어처구니 없게도 지하에 설치했다. 이는 미국의 방식으로 미국은 허리케인과 토네이도를 대비해 이 비상시설을 지하에 놓는데 그 방법을 어리석게 채택한 것이다. 구조상의 문제로 단 1기의 비상발전기만이 지하에 있지 않았는데 해일 후에 그것만 살아남아 원전의 생명을 다소 남아 연장시켰다.
사실 원전 사고 후, 원전에 바닷물을 주입하여 냉각을 유지하면 지금 같은 피해는 막아볼만 했다. 하지만 도쿄전력은 원전 장비에 집착한 나머지 바다물 주입을 금지시켰고, 이런 무리한 지시를 거부한 실무자가 바닷물을 주입해 그나마의 피해를 막았다.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는 구 소련이 체르노빌에서 그러한 것처럼 사태를 축소시키고, 피해를 과소보도했다. 그 결과 빠른 대피가 늦었고 많은 사람이 피폭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대피 반경은 2-3-10-20km순으로 확대발표했는데 이는 30시간 동안 이뤄진 조치로 매우 늦었다. 현재는 반경 20km가 법적 강제 대피선이다. 2012년 후쿠시마현 주민 16만이 피난했고, 현재 돌아온 사람은 25%에 불과하다.
복구 작업도 난망하다. 제염작업은 기화 한장 한장은 닦아내고, 표토와 잔디 등을 모두 갈아없애야 한다. 그 분량이 1130만제곱 킬로미터에 달한다. 그리고 원자로 과열을 막기 위해 지금도 해수를 유입시키고 있고 그 결과 막대한 오염수가 발생했다. 1046기의 오염수 저장고를 지었는데 그것이 모두 차버려 일본 정부는 무책임하게 이를 바다에 방류하고 있다.
이런 사상최악의 인재에도 도쿄전력 관계자들은 재판에서 모두 무죄처분을 받았다. 업무상 과실 치사로 기소되었으나 재판부는 쓰나미는 예상할 수 없는 것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무죄를 선고했다. 결국 이들에게 주어진 처분은 사과와 급여삭감이 전부다.
일본은 원전반대 집회와 원전 정책을 반대한 배우 야마모토타로를 TV드라마에서 퇴출시켰다. 또한 정부에 불리한 인터뷰를 진행한 구니야 히로코를 NHK 프로그램에서 하차시켰다. 그는 그 프로를 23년간 진행했었다. 또한 가수 사이토 가즈요시가 반원전 노래를 공개하자 해당영상을 비공개처리하고 지상파 출연을 배제한다. 공산주의 중국 뺨치는 수준이다.
그리고 일본은 불만을 누르고 지역 주민의 숭고한 희생에 감사해야 한다는 정서적 연대 캠페인을 벌인다. 후쿠시마 농수산물 사먹기 운동, 종이학 접어 보내기 운동등이 그 예다. 동정심과 희생에 대한 부채감을 강조해 피해 서사 확산을 시켰는데 이를 통해 분명한 피해-가해 관계를 흐리고 피해자에 대한 정서적 연대감만 남기게 된다. 이는 피해자들로 하여금 치유받지 못한 상태를 유지시켜 세습적 희생자를 만들게 한다.
일본은 어처구니 없게도 오염수를 방류하며 자신들의 사고의 최대 피해자라며 이를 정당화한다. 분명한 가해자가 피해자 행세를 하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실수로 집에 불이 나서 이웃집까지 번졌는데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이웃에 내가 최대 피해자라며 항변하는 형국과 같다.
일본의 이런 행태는 과거에도 있었다 .바로 2차 대전과 식민 지배에 태도가 그러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명백한 가해자임에도 2차 대전, 특히 핵무기에 의한 최대의 피해자라는 태도를 내세운다. 과거 한 프로에서 일본의 핵피해자는 미국의 과학자를 초청해 사과를 요구했는데 합리적으로 올바른 미국의 과학자를 이를 단호히 거부하는 좋은 예를 보였다.
7. 일본의 종교
일본에는 수많은 신사와 사찰, 종교의 영향이 담긴 시설이 많지만 정작 일본인들은 대부분 자신이 종교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일본이 다종교와 실용적 신앙자세를 갖고 있고, 관습 중심의 문화속에서 생활의 일부로 종교가 포섭되었으며, 과거 2차대전 때 국가신토의 강요로 인한 거부감이 있어서다.
일본인은 특정 종교에 잘 귀속하지 않고, 필요한 시기 적절한 신을 선택하는 실용적 종교관을 보인다. 애가 100일이 되면 신토식 행사를 하고 결혼은 기독교 식이며, 장례를 불교식으로 한다. 일본은 문화의 변방으로 불교가 538년 백제로부터 전래된다. 이후 자연신에 더해 조상이 모두 부처가 된다는 식의 사고로 신이 더욱 분화하고 다양해진다. 이처럼 일본은 종교가 침투해도 이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이식 보다는 기존의 것에 필요에 따라 융합하는 형태를 취한다.
신도는 교리체계가 불분명하다. 그래서 관혼 상제 같은 생활 속 의례, 가족 커뮤니티의 확장선 상에서 조상 숭배 수단으로만 작동한다. 신토와 불교는 서로 융합하였는데 메이지 일본은 신토를 국교로 삼는 과정에서 불교를 축출한다. 그래서 신불분리령을 발표하고 수천 개의 신궁사가 폐지되었으며 신사 내 불상이 철거되었다.
도쿠가와 막부는 그동안 사쓰마, 조슈, 도사, 히젠 번을 권력에서 배제시켰는데 이들은 도요토미 편에 붙어 전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19세기 막부가 서양 열강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자 반기를 들고 상징뿐이던 덴노를 수단으로 삼는다. 덴노는 신격화와 권력의 정점화는 국민 통합과 급진적 개혁에 대한 저항을 마무시키는데 적절하기 때문이다. 덴노에 대한 충성은 국민에게 곧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덴노의 지위를 군주에게 강한 권한을 부여하는 프러시아 헌법을 참고하여 헌법을 통해 부여한다. 이로써 근대화 과정에서 국민을 자유와 평등, 권리를 법적으로 박탈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덴노는 정점으로 하는 국가이데올로기 완성을 위해 국가신토를 완성하기 위해 모든 이데올로기, 사상, 종교를 그 아래에 두었다. 모든 신사는 덴노는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디 체계로 개편되었다. 1906년 신사합병령으로 일촌 일사 정책이 시작되어 지역 주민이 대대로 모셔오던 잡다한 신사들이 철거되었다. 기독교는 유일신 사상을 갖고 있어 국가신토와 반하므로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이와 같은 경험으로 인해 현대 일본인은 종교가 국가의 하부조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반감도 심한 편이다.
야스쿠니는 근대국가 일본의 형성 과정에서 사망한 호국영령을 신으로 모신 사찰이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에서 사망한 246만여명의 영령이 신으로 합사되었다. 일본은 물론 한국의 현충원에 해당하는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이 따로 있다. 이것이 공식 국가기관이고 야스쿠니는 사실 일개 종교시설일 뿐이다. 그럼에도 일본 정치인들이 상징적으로 이를 방문함으로써 강압적 국가신토의 망령이 유지되고 있다.
야스쿠니의 근본 문제는 다음과 같다. 우선 A급 전쟁범죄를 신으로 합사했다는 점이며, 침략전쟁에 강제 동원된 식민지의 국민들 역시 합사했다는 점이고, 현재 유족들이 분사를 원하고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8. 일본의 전통 예술
일본은 전통 예술의 맥을 잘 이어가고 있는 나라다. 여기에는 이에모토가 존재한다. 이에모토는 거의 모든 예술 분야에 존재하는 것으로 단순한 도제시스템이 아니라 한 가문이 그 분야 전반의 세습문화를 관장하는 것이다. 이에모토는 권한이 막강하다. 일본은 무형문화재를 116명 선정하는데, 이 지위는 이에모토에서 거의 세습된다. 그리고 이에모토의 지위는 실력이나 신망이 아니라 역시 직계세습이다. 이에모토는 그 분야에서 해당기술을 제자에게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인 면허에 대한 발급권을 갖고 있다. 즉, 이 분야에서 먹고 사고 지위를 올리는데 이에모토는 절대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것의 순작용은 전통의 체계적이고 확실한 계승이다. 하지만 단점은 실력주의가 아닌 폐쇄적인 혈연적 세습, 그리고 창의성을 억압하는 경직화, 그리고 과도한 돈이 든다는 것이다.
일본의 전통예술에는 도가 많이 붙는다. 무사도, 다도, 서도 이런 식이다. 일본의 도는 한국이나 중국의 도와 다르다. 사실 이 도는 도교에서 온 것이지만 일본에서의 도는 특정 행위를 평생 반복하여 정해진 형식을 철저히 다름으로써 완벽한 기술과 더불어 인격의 완성에 도달하는 깨달음의 과정과 그 자체다.
도에 이르는 과정으로 중세에 슈하리 개념이 생겨난다. 슈는 스승의 가르침과 정해진 형식을 철저히 따르는 단계다. 하는 기본을 완전히 익히고, 자신에게 맞게 응용하고 기존의 틀을 서서히 깨는 단계다. 마지막 리는 스승 유파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자적 경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일본에는 무사도란게 있다. 무사도는 일본 사무라이의 역사만큼 오래된 것 같지만 사실 근대의 발명품에 불과하다.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은 덴노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강조하고, 서구에 미개하게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미화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발명한 것이 무사도다. 서구의 기사도에 해당하는 개념으로 이를 제시하고 미화한 것이다. 패전 이후에도 이는 영향력을 유지하여 7인의 사무라이, 라스트 사무라이, 고스트 오브 시네마 등의 작품이 등장한다.
9. 일본의 아이돌과 한류
지금이야 K pop이 대세지만 과거 아시아 문화의 주류는 J pop이었다. 한국 대중가요 역시 1990년대만 해도 일본의 J pop을 베껴낸 곡과 댄스, 스타일 등이 수두룩했다. 일본의 아이돌은 1970년대 컬러 티비의 보급으로 본격 등장한다. 생동감 있는 화면을 통해 아이돌이 스타로 다가온 것이다. 당시 야마치 마리, 미나미 시오리, 코야나기 루미코 같은 신인 3인방이 등장해 큰 인기를 끌었고, 이어서 3인조 캔디즈, 2인조 핑크 레이디 등이 인기를 끌었다. 이들은 가창력 보다는 앳된 이미지와 청순한 외모로 인기가 좋았고 이들의 미소와 노래는 전후 경제성장의 피로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했다.
80년대는 일본 아이돌의 황금 시대로 마츠다 세이코, 나카모리 아키나가 큰 인기를 끌었다. 90년대는 버블경제가 붕괴하며 온 국민이 하나의 스타를 사랑하던 시대가 막을 내린다. 이후 두 프로듀서가 아이돌 산업을 재편한다. 아키모토 야스시는 미숙한 소녀들을 데뷔시켜 성장과정을 대중이 함께하게 하는 AKB48을 성공적으로 데뷔시킨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아이돌이 대중 전반의 사랑을 받는게 아니라 특정 팬덤에 의존하는 하위 문화로 자리 잡게 되며 주류는 뛰어난 가창력과 자작곡 능력을 갖춘 아티스트가 차지하게 된다. 아무로 나미에, 아타다 히키루가 그들이다.
여자와 다르게 남자 아이돌 시장은 자니스 사무소가 오랜 기간 독식한다. 자니스는 SMAP, Tokio, v6, kinki kids, 아리시 등 굵직한 아이돌을 배출했다. 다만 이들은 BBC가 창업자 자니 기타가와가 수십년간 소속 소년 연습생을 성착취한 것이 드러나며 2023년 자니스 사무소가 문을 닫게 된다. 그간 자니스는 시장을 독점하며 특정 스타일의 아이돌만 배출하고, 반대쪽은 강한 세력으로 탄압하고 견제하여 싹을 잘라내는 방식을 취했었다.
일본은 버블 경제가 붕괴하며 대중산업에 큰 변화가 생긴다. 티비 광고비가 크게 줄어 방송국들은 저예산 프로그램 제작과 해외 프로그램을 도입하게 된다. 과거 같은 해외 로케이션과 거대 세트를 동원한 버라이어티 쇼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 당시 해외에서 도입한 가성비 좋은 프로그램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의 '겨울연가'다. 이는 일본 NHK가 정규 편성해 더욱 화제를 끌었고, 왕이나 주군에게나 붙은 '사마'라는 표현이 남자 주인공에게 붙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겨울 연가의 순애보는 일본인에게는 매우 고전적 주제로 당시 일본 방송계나 드라마에서 거의 다루지 않는 것이었다. 이것이 일본의 중장년층들에게 고전의 큰 향수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K pop은 일본의 청년을 사로잡았다. 일본은 21세기 들어서도 저작권 보호를 위해 음악 영상을 유튜브나 인터넷에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일본 아이돌과 문화의 확산과 접근을 저해하는 측면이 있었다. 한국은 정반대로 영상을 인터넷에 쉽게 올렸고 이를 통해 세계로 빠르게 퍼질 수 있었다. 일본의 아이돌은 트렌드가 미숙한 상태로 데뷔를 시켜 팬들과 함께 성장서사를 그려나가는게 일종의 공식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아이돌은 전혀 달랐다. 철저한 트레이닝으로 거의 완벽한 모습으로 데뷔했고, 이들의 보이는 완벽한 비주얼과 압도적 퍼포먼스는 동경의 대상으로 일본 청년층을 매료시켰다.
이처럼 일본에서의 한류의 성공은 버블 이후 일본이 겪은 구조적 균열과 정서적 공백을 한국이 뛰어난 실력과 콘텐츠로 파고든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