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시작한 민주주의는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좌파와 우파는 제대로된 민주국가라면 어디에나 있으며 다만 그 나라의 상황에 따라 스펙트럼이 전체적으로 좌나 우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다. 오랜 사민주의 역사를 가진 북유럽 국가 및 서유럽국가라면 스펙트럼이 좌로 가있을 것이고 미국이나 일본은 우에 치우쳐져 있으며 한국은 그들보다도 더 우에 기울어져 있다. 

 이런 좌파와 우파는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된 것 같지만 실은 진화론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생각한다. 다시 말해 진화상 형성된 인간의 협력형태가 민주주의에 정치적 형태로 반영된 것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처럼 집단을 이루고 살며 그로 인해 같은 종의 다른 개체들과 협력 혹은 경쟁을 하며 살아간다. 둘은 서로 다르지만 매우 중첩적이기도 하다. 다른 집단 및 개인과 경쟁하기 위해 협력을 하기도 하며 모두와 극단적으로 경쟁하는 형태는 좀 처럼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협력도 다른 개체와 평등한 수평적 협력이 있을 수 있고, 한 개인이나 소수에 많은이들이 종속되어 착취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수직적 협력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중 경쟁은 우파와 협력은 좌파와 주로 관련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책 '나는 진보엔에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는 진보와 보수의 특성과 한 개인이 어떻게 해서 진보적 성향, 혹은 보수적 성향을 갖게 되는지 설명한다. 이 책에 의하면 보수는 엄격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사람에 갖는 성향이다. 아버지는 가정의 수장으로 합법적 권위를 가지며 권위에 대한 도전을 허락치 않는 존재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수평적 존재라기보다는 아버지위 권위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는 존재에 불과하다. 아버지에게 이런 수직적 권위가 부여되는 것은 바깥 세계가 너무나도 위험한 악으로 가득찬 경쟁적 세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버지는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식들이 이런 세계에서 경쟁하여 승리자가 될만한 역량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절제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강한 상벌을 한다. 즉, 보수의 세계관은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보다는 경쟁을 크게 강조하며 여기에 승리자가 되어야 하는 가치관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진보는 자애로운 부모의 양육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갖는 성향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자애롭게 베풀고 개인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 모두를 강조한다. 부모는 특정성공의 강조나 승리보다는 개인적 탁월함을 강조하며 이를 위해 자녀 스스로 꿈을 좇도록 위임한다. 타인과의 관계도 경쟁보다는 협동을 중시하고 타인에게 감정이입하고 그들을 이해하여 타인의 눈으로 세계를 보게 한다. 즉, 다른 사람과의 경쟁보다는 협동을 중시하는 세계관인 셈이다.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에서는 좌파와 우파를 좀 더 한국적 상황에서 살펴본다. 유시민은 우파를 산업화 세력으로 규정하고 좌파는 민주화 세력으로 규정한다. 사실 우파는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민주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법과 질서를 강조하지만 한국의 우파는 외세에 기대었고, 산업화와 독재를 위해 민족주의를 이용했기에 산업화 세력이란 표현이 걸맞다. 반면 좌파는 이에 반대하여 사회적 약자를 챙기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우파가 챙기지 못한 자국의 민족 이익을 우선하였기에 민주화 세력이란 용어로 표현될수 밖에 없었다. 

 책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에는 한국이 외세에 의해 독립되지 않고 분단되지 않았다면 집권하여 나라를 운영하였을 만한 정통 우파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열거한다. 이들은 구한말 조선왕조로부터 외면받아 외래 문물에 많은 영향을 받았던 서북면 출신이고 구한말엔 실학, 개화기엔 기독교와 서구문물을 가장 먼저 전래받았던 사람들이다. 여기에 한국전쟁 이전부터 북한 공산주의로부터 공격을 받아 전쟁이전부터 철저한 반공정신을 가졌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제대로된 우파사상을 가졌지만 외세에 의존적인 한국 독재세력의 선택을 받지 못함으로써 정통적 우파로 자리잡지 못한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의 정치적 상황이 매우 우로 치우치게 되고, 그로 인해 좌파가 우파가 했을 역할을 해야하는 촌극이 빚어지는 상황을 연출한 계기이기도 하다.

 책 '좌우파 사전'은 좌파와 우파의 특성을 살리고 한국의 좌파와 우파가 여러 사회적 현안에 대해서 어떤 위치를 취하고 있는지에 대해 살핀 책이다. 무려 10년전 책이라 우파가 한나라당에 좌파가 민주당,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으로 등장하며 대통령도 이명박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여기서 저자들이 지적하는 좌파와 우파의 특성들은 지금과 놀랍게 일치한다. 이들이 한치도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단 좌파와 우파라는 용어는 프랑스 대혁명시기 제헌의회에서 출현하였다. 순전한 우연에 의해서 국회의장이 보기에 급진파과 왼편에 보수파가 우에 앉았을 뿐인데 이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급진파를 좌파, 보수파를 우파로 방향성 있는 용어로 칭하게 되었다. 우파는 초기 민주주의 보다는 왕정에 기대는 사람들이었고 신분제 유지와 기독교회의 교권확립을 목표로 했다. 반면 좌파는 전제정치에 반대하고 시민의 권리를 확립하고 다원제 입법부, 선출에 의한 사법부 구성, 입법부의 우위, 1인1표의 참정권등 보다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왕정이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어느정도 당연시 되면서 양쪽의 중심축은 이동한다. 우파는 전통의 유지와 질서, 권위의 보존, 민족주의를 중시하게 되었고 좌파는 노동자 계층 남성의 선거권 확보 등 사회적 약자 계층으로의 민주주의 확산에 신경쓰게 되었다. 여기에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가 태동하면서 우파는 기존 입장에 재산권 옹호와 경제적 자유신장을 핵심 강령으로 삼게 되었고 좌파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는 사회주의적 입장을 띄게 되었고 사회적 차별, 극단적 빈부격차,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요청하게 되었다. 본래 좌파의 가치였던 자유주의는 민주주의가 자리 잡음에 따라 우파의 가치로 자리잡았는데 우파의 자유주의는 분화하여 보수적인 일각은 극단적으로 우경화하였다. 권위와 질서를 강조하고 민족조의를 절대화하였는데 그래서 나타난 것이 독일과 일본의 극우 파시즘이나 군국주의다. 

 미국에서는 좌파가 자유주의를 지칭한다. 미국에서는 좌파가 평등주의를 앞세워 사유재산권의 철폐나 제한을 주장하지 않는다. 이는 미국이 건국초기부터 자산을 소유한 소생산자들의 평등주의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사유재산권이 국민 개개인의 기본권으로 매우 신성시 되고 이를 비판하는 좌파는 쉽게 뿌리를 내릴 수 없었다. 때문에 미국은 세계적 기준에서 매우 정치가 우편향되어 있으며 상당히 급진적 좌파여도 사회적 자유주의를 강조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은 이보다 더 우편향화되어 있는데 이는 한국전쟁과 전쟁 이전엔 갈등으로 남한지역에서 좌파가 사실상 소멸한 것과 관련한다. 한국의 민주당은 친일지주와 민족주의 우파가 묘하게 결합한 한민당에서 유래했다. 그 결과 현재의 한국 민주당은 세계적으로 보면 좌파라고 칭하기가 무색하게 우파에 가까운 성향을 갖게 되었는데 실제 민주당에는 보수주의자에서 사회적 자유주의자 수준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한국 우파에 의해 좌파 혹은 공산주의적 세력으로 까지 불리지만 실질적으론 민족주의 우파에 가까운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국민의 힘은 우파세력으로 과거 독재시절에 비해서는 극우적 성향이 약화되었으니 일관되게 우파 보수주의를 표방한다.

 현대 좌파와 우파는 여러 면에서 중복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데 구별기준이 있다.

- 좌파는 평등의 지속적 확대를 주장하는 반면 우파는 불평등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옹호한다.

 좌파는 모든 선천적 불평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불평등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고 이를 사회적으로 교정하려 한다. 하지만 우파는 이를 피할수 없는 것으로 보며 어떻게 보면 개인의 경쟁과 노력에 의한 산물로 보아 정당화하기도 한다. 


- 좌파는 직접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우파는 간접민주주의를 옹호한다.

- 좌파는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제한해야 사회공동체의 이익이 증대한다고 보지만 우파는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최대한 보자하고 사회공동체의 이익이 증대한다고 본다. 좌파는 정치, 사회적으로도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옹호하지만 우파는 기존의 위계-전통-권위를 옹호한다. 우파는 위계화한 사회질서를 옹호하고 해당 공동체의 전통을 고수하고자 한다. 도덕적 권위를 내세워 좌파가 좋아하는 문화적 혁신도 경계한다. 최상위 공동체로 국가의 가치를 강조하며 개인의 존재가치도 질서-전통-권위 속에서만 인정한다.


- 좌파는 사회구성원간의 연대를 강조하나 우파는 통합을 강조한다. 연대는 기본적으로 당사자간의 수평성과 탈중심성을 의미하나 통합은 수직성과 중심성을 강조한다. 


- 좌파는 사회질서의 변화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나 우파는 사회질서의 자연적-필연적 성격을 믿고 변화에 부정적이다. 

 이처럼 좌파와 우파는 상당한 성향차이를 보이지만 결국은 경쟁과 협력 중 어느것을 더 중시하느냐 그리고 경쟁의 결과 발생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 평등적 태도를 취하느냐 불평등적 태도를 취하느냐 마지막으로 현 질서에 대해 옹호 또는 개선에 초점을 두느냐로 갈린다고 볼수 있다. 우파의 기본입장은 경쟁적 입장을 토대로 한다. 개인간의 불평등은 사회의 질서와 규칙에 의거하여 서로 공정하게 경쟁한 결과로 발생한 것이기에 이는 안타깝지만 정당하고 마땅한 것이다. 때문에 부유층과 상류층은 그들을 적극 돕고 기부하며 자선하며 이는 그들의 의무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사회적 약자를 대등한 존재로 보지 않는다. 이런 불평등은 공정한 규칙에 의한 노력과 경쟁의 결과이기에 정부가 함부로 이를 수정하려는 것은 정의에 반하는 행동이며 오히려 사회적 약자와 부자의 역량을 떨어뜨려 사회적 이익을 저해하는 행위가 된다. 

 반면 좌파는 협력을 기본 토대로 불평등은 사회적으로 공정한 것이 아니며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공정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한다. 연대의 대상으로 사회적 약자를 대등하게 바라보며 이들의 실패가 사회구조에 의한 공정하지 못한 행위로 발생한 것인만큼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교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행해야만 사회의 공동이익이 발전할 것으로 생각한다.  

 다음으로 좌우파 사전에서 다루는 몇몇 사안에 대한 좌파와 우파의 입장을 정리해보겠다.


1. 법치주의

 한국에서 법치주의는 독재정권에 의한 무법천지시절 좌파가 주장하던 가치였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법치주의는 좌파보다는 우파가 강조하는 부분이 되었다. 우파는 툭하면 여러 사안에 대해서 법과 질서에 의해서....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우파는 민주화 이후 사회 여러 계층이 자신들의 억눌렸던 권리 보장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려는 여러 의도를 큰 사회 위협으로 파악한다. 때문에 그들은 이를 억누르기 위해 법치주의를 강조하며 이에 충실할때 국익이 최대화 한다고 본다. 민주화 이후 최종심판관으로서 사법부가 내리는 판결을 존중하며 우파의 이런 인식에는 기본적으로 다수 대중의 비합리성과 이에 영합하는 좌파 정치 엘리트에 대한 불안 및 비판의식이 자리한다. 우파는 법을 강조하면서도 시장주의에 순응하여 재벌이나 자본의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경우에 대해서는 그것의 불법성보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더 중시한다. 한국에서 재벌총수의 불법행위마다 사법부가 솜방망이 처벌을 하며 그들의 사회적, 경제적 영향력을 운운하는 이유다. 

 반면 좌파는 약자가 권리를 침해받고 있을 때 침묵하던 법이 견디다 못한 약자가 그것을 세상에 알리고 바로 잡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순간에 뒤늦게 작용하여 약자만을 처벌한다고 본다. 법은 기본적으로 사회 질서 유지가 아닌 약자의 자유를 확대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는게 그들의 생각이며 기본적으로 법이 자유로운 동의가 아닌 기득권자의 편의에 따라 자의적 적용이라고 파악한다. 그래서 법질서에 대한 저항권을 중시하며 정부가 자의적으로 시민을 지배하려할때 저항할수 있는 합법도 불법도 아닌 제3의 공간을 중시한다. 좌파는 사법부 역시 민중이 그곳의 최종결정자가 되어야 한다고 보기에 배심원제나 사법관료의 선출을 중시한다. 


2. 대북관

 우파는 대북관계가 적대적인 국가 관계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안보가 제일의 가치이며 상대방을 힘으로 눌러 순응시키려 한다. 그래서 북한의 군사력을 위협적으로 여기며 북핵의 해결이 관계 개선을 위한 최우선의 전제조건이 된다. 반면 좌파는 북한을 적대관계라기보다는 같은 민족으로 생각한다. 북핵도 남에 대한 위협이라기 보다는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체제를 보장 받기 위한 시도라 보며 그렇기에 북핵이라는 위협과는 별도로 개성공업지구, 금강산 관광도의 상호협력이 가능하다. 


3. 경제정책

우파는 일반적으로 규제 완화를 추구한다.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의 비용이 줄어들고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라 강한 기업이 약한 기업을 축출하여 사회적 효율을 제고한다고 본다. 우파는 민영화도 지지하는데 자본의 활동영역을 확대시켜 수익이 나는 부분을 민간의 획득하여 효율을 놓인다는 것이다. 우파는 시장개방에도 적극적이다. 다만 그 개방의 범위가 자본에게 이익이 되는 범위내에서만이다. 좌파는 자본에 대한 민주주의적 견제라는 점에서 규제를 지지한다. 민영화에 대해서도 소극적이며 시장개방에 대해서도 마차가지다. 이는 양자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데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우파는 세금에 있어서도 낮은 세율을 선호한다. 세금 인하가 개인의 근로의욕과 기업의 투자 욕구를 고취키기 때문이다. 우파는 그래서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도 반대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출을 주로 반대하지만 정부가 자본을 위해 지출하는 것에는 찬성한다. 좌파는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조세를 더 거두어 들여 공공서비스를 증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세는 복지재원을 압박하여 사회적 약자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이므로 이에 반대한다. 

 우파는 고용정책에 있어서도 고용유연화를 선호한다.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가 노동시장을 왜곡하여 비정규직을 과도하게 사용되는데 오히려 원인을 제공한다고 본다. 좌파는 정규직이 정상적 근로형태고 비정규직의 고용은 이를 정당화할만한 사유가 있을때만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되어야한다고 본다. 

 우파는 소득불평등에 대해서는 이를 인정하나 경제 성장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 성장과 분배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도 자유화나 개방에 기초하여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여 그로 인한 낙수효과로 성장과실이 전체적으로 확대하여 소득불평등은 완화할 것으로 본다. 좌파는 소득분배 불평등에 초점을 두며 이를 방치하면 장기적 경제성장이 침체할 것으로 본다. 평등한 분배를 단기적으로는 내수의 확대, 중장기적으로는 교육과 투자의 증대로 생산성을 향상시켜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여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는게 좌파의 관점이다. 


4. 교육

우파의 기본 관점은 교육에 시장원리를 적극 도입하여 격렬한 경쟁을 유도해야 경쟁력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대학등록금 자율화, 대학의 수익사업 허용, 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 학교별 학업성취도 공개, 고교평준화 폐지 및 특목고 자율형사립고의 확대, 우열반 허용, 국제중 설립이 그들이 지지하는 구체적 정책들이다. 현 고교 평준화 정책은 능력주의의 근간을 부정하는 것으로 지역간 고교간 학업성취도가 다른 현실에서 우수한 학생이 피해를 보는 제도다. 평준화가 폐지되어도 성취도가 낮은 학생의 피해는 없다고 보며 학교성적 공개, 우열반 편성등을 통해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은 오히려 그 수준에 맞는 교육기회를 제공할수 있어 혜택을 줄수 있다고 주장한다.

 좌파에게 공교육은 시장 원리에서 보호해야하는 것이다. 경쟁을 통한 승자패자구분이 아닌 개개인의 다양한 잠재력을 개발하는 것이 교육의 기본 목표다. 시장 원리에 입각하면 교육은 승자독식의 게임이 되므로 공정한 경쟁을 위한 최소한의 출발선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교육의 본질은 학생의 현재능력 평가에 따른 선발이 아닌 개개인의 잠재능력을 키우는 것이며 교육을 복지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5. 수도권 집중현상

우파에게 수도권 규제는 지방 분산이 아니라 자본의 소멸이나 국내 자본의 해외 유출로 이어지는 행위다. 이는 국내 고용시장 악화와 내수시장 침체로 귀결되며 수도권의 생산이 활발해지면 지방생산이 증가하여 지방경제가 활성화하고 지방의 일자리도 늘어난다고 본다. 좌파에게 수도권 집중은 망국적 현상이다. 이미 수도권은 과밀로 인한 비용증가가 집적에 의한 비용하락과 생산성 증가를 넘어섰다. 즉, 과밀에 대한 이득보다 손실이 더 큰 시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거기에 수도권 집중은 불공정하기 까지 하다. 이는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서 각 지역들이 공정하게 경쟁한 결과가 아니라 정치권력이 희소한 자원을 수도권을 중심으로 배분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방소재 대학과 기업, 지역민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결과를 가져왔기에 해소되어야 하는 문제라고 본다.


6.생태주의

우파는 생태 위기의 징후들을 개별적으로 분리하고 이들 하나하나를 개별적으로 해결할수 있다고 본다. 즉, 온난화, 산성비, 대기오염등을 개별 문제로 파악하고 개별해결책을 제시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분리된 문제들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극복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생태위기는 인간의 성장에 장애로 작용하는 것이므로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며 자본주의 질서를 생태위기를 극복하는 작동원리로 파악한다. 생태위기에 관해서는 좌파도 사실 인간중심적인데 양자 모두 성장주의 및 산업주의를 공유하고 과학기술로 인한 자연정복이라는 계몽주의적 사고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태주의에 관해서는 녹색담론이 우파에 맞선다. 녹색담론은 인간사회의 자연적 한계를 인정한다. 그리고 근대 서구의 과학주의적 세계관에 비판적이며 근대과학기술 및 계몽주의적 기획에 비판적이다. 그리고 자율적인 공동체와 결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7. 범죄

우파는 범죄에 있어 합리적 인간을 전제한다. 범죄로 얻는 이익 및 쾌락이 그로 인한 손실보다 크다면 사람은 범죄를 저지른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우파는 손실을 크게 하기 위해 엄격한 형벌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경찰과 검찰의 인력 확충, CCTV등 검거율을 높이는 장치의 도입 등을 통해 처벌을 피할수 없다는 인식을 넓히려고 한다. 좌파는 범죄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라고 보며 주로 불평등이 범죄를 만드는 요인이라고 본다. 여기에 사법체계는 계급 계층에 따라 불평등하게 작용한다고 본다. 상층계층의 절도는 전문적이어서 발견도 어렵고 설사 발견되어도 그 범죄의 피해에 비해 처벌이 약하다. 하지만 하층계층의 절도는 일차원적이어서 발견되 쉽고 그 피해에 반해 처벌수위가 높다. 그래서 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불평등을 완화하고 소외된 이들을 살펴야 한다고 본다. 


8. 소수자 인권

우파에게 동성애는 생물의 근본인 이성애를 부정함으로써 사회의 수많은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인 빈민은 자선의 대상이지만 성적 소수자는 세상 질서의 파괴자이므로 부정의 대상이 된다. 반면 좌파는 성소수자의 욕구와 정체성이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으므로 사회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우파는 다른 소수자인권에 대해서는 직접 부정하기보다는 경제력을 키운 후 보호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보수적 입장에서 소수자를 우대하는 것은 오히려 공정하게 경쟁하고자 하는 다른이들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본다. 이는 우파가 개인주의적 인권을 옹호하기 때문인데 그들은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발전시키고 다른 개인이나 국가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할 권리가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수자에게 특별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평등과 보편성이라는 인권의 근본원리에서 벗어나는 행위가 된다. 

 좌파는 사회적 소수자들이 보이지 않는 인간으로 배제되고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다고 본다. 그래서 차별을 보상하고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위해 할당제나 가산점등의 제도를 도입한다. 좌파는 개인주의적 인권은 사회적 강자의 지배와 약자들의 종속을 은폐하려는 거짓된 보편주의라고 본다. 


9. 친일협력행위

 우파는 친일 협력에 대해 그것이 시대적으로 불가피한 행동이란 점을 강조한다. 그래서 친일 중 악질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오히려 민족의 실력을 키우기 위한 선각자로 보아야 한다고 한다. 실제로 해방 후 많은 친일 세력들이 건국과 발전에 이바지했다. 그들은 후 세대에 태어나 친일을 강요받지 않은 수 있는 상황에 놓였던 자들이 그 이유만으로 친일 세력을 단죄할 자격이 있는지 묻는다. 그래서 친일을 개인의 악이라기보다는 시대적 불행으로 취급한다.

 하지만 좌파에게 있어 개인의 친일은 역시 중요한 문제다.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면 그런 선택을 강제한 식민지배라는 구조를 외면하게 된다. 하지만 시대적 상황로만 돌리기엔 상당히 적극적으로 친일을 시도한 자들이 있으며 이들이 훗날 진정한 민족세력을 탄압하고 독재정권과 결탁하여 나라를 흐린 것은 상당한 문제라고 본다. 특히, 건국의 공으로 인해 이들의 해가 역사적으로 기록되고 제대로 단죄받지 못한 것 역시 문제라고 본다.


 정리하면 우파는 진화상 생존의 원리로 경쟁을 강조하는 부분이 정치사회적 작동원리로 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쟁을 강조하기에 그 경쟁의 토대가 되는 공정한 질서를 강조하며 이에 입각한 결과를 매우 중시한다. 그리고 사회질서를 흔드는 여러 행위는 이러한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는 행위이기에 부정적으로 여긴다. 권력자 및 부유층은 이러한 공정한 경쟁의 승자로 그 역량과 노력이 뛰어났기에 이런 권력을 얻은 것이다. 때문에 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자유를 주는 것이 사회공동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며 정부가 규제를 하거나 증세를 하는 행위는 이를 저해하는 옳지 못한 행위다. 패자들은 공정한 경쟁에서 이탈한 자들로 승자들의 자선과 보살핌의 대상이되며 승자가 자신의 역량을 자유롭게 발휘하는 환경이 조성될수록 그들에 의한 떡고물이 이들에게도 떨어져 불평등이 개선되게 된다. 

 좌파는 진화상 생존의 원리로 협력을 강조하며 이것이 정치사회적으로 발현된 집단이다. 사회에 법이나 경제적, 정치사회적 측면에서 구조적인 불평등이 자리하며 이로 인해 공정하지 못한 규칙과 구조속에서 승자와 패자가 형성된다. 때문에 사회공동체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이런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정부 및 권력기관이 권력자들의 사유재산과 자유를 규제할 필요가 있으며 증세와 각종 정책등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의 처지를 개선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만 사회가 활력을 갖고 잠재적 성장률을 높여나갈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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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앵글의 심리 - 피해자, 가해자, 방관자의 마음으로 읽는 학교폭력
이보경 지음 / 양철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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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서 말하는 트라이앵글은 정확하게 나와 있지는 않지만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 및 교사의 심리를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책은 학교폭력과 관련하여 이들의 심리와 그렇게 된 생리적 또는 성장환경등을 언급한다. 

 학생들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부모나 교사에게서 벗어나 집단을 이루고자 한다. 때문에 무리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공포도 상당해진다. 그래서 서로 간의 결속을 위한 희생양을 찾거나 함께 괴롭히기도 하는데 이게 학교폭력이 되기 쉽상이다. 그리고 집단이 요구하는 것이라면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역할을 수행하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내가 아픈 관계더라도 내가 그 집단에 속할 수 만 있다면 그 안에서의 어떤 수치나 치욕도 참아내며 나쁜 짓을 하게 된다. 

 착한 교사의 역설이란게 있는데 교사가 착하고 허용적이면 오히려 적절한 지도를 하지 못해 아이들이 악해지는 현상이다. 학급이 붕괴되는 현장의 패턴을 살펴보면 교사에게 욕하고 고함치는 학생들을  통제하지 못할 때다. 교사는 공격적인 아이에 대해 침착하고 단호하게 원칙대로 대해야 하며 그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교육하는 일련의 절차를 보여야한다. 그리고 그걸 본 아이들은 정의라는 것을 학습하게 된다. 

 대부분의 학교폭력이론은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아이와 그 관계하는 사람, 그리고 사회를 가리킨다. 아이는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게 자라야 한다. 그리고 이 울타리는 아이를 감시하는 역할도 한다. 광대한 세계에서 어른들은 아이들 각자가 경계를 세우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경계가 있어야만 자신을 지키고 넘어서는 안될 것을 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허용적인 부모아래에서 자란 아이들은 경계를 모르고 타인을 침범하여 타인에게 함부러 하게 되는 충동적이고 자기 관리가 안되는 성향으로 자라나게 된다. 

 사랑과 엄격함이 함께하는 부모, 부모로서의 역할을 자기 인생의 아름다운 의무로 생각하는 부모는 아이들이 적절한 울타리 안에서 자유롭게 탐색하는 것을 돕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아이는 경계를 세우고 넘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된다. 교실에서 자기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없으면 학생은 그 안에서 다양한 권력 구조를 형성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공격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즉, 남의 잣니의 울타리를 지키고자 남의 울타리를 넘는 행동인 학교폭력을 자행하게 된다는 뜻이다. 때문에 학교현장에서도 교사, 혹은 방관자가 아닌 다른 학생들의 울타리 지키기 노력이 중요하다. 

 학교폭력을 다루거나 촉법소년을 다루는 법관도 그들이 쓴 거짓 반성문에 휘둘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인데 그들에게 요구하는 반성문이 형식적이고 무작적 반성을 강요하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도 인식하지 못한채 습관화된 방식을 지속하게 하여 더 큰 잘못으로 이어지게 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해자를 다루는 과정이 중요한데 책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제시한다.

 1. 친구를 괴롭힌 배경을 함께 찾아본다.

 2. 도입과 원인을 파악하는 질문을 던진다.

 3. 내면화 하게 한다.

 4. 공감하게 한다.

 5. 직면하게 한다.

 6. 교사도 자기를 노출한다.

 7.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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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대중에게 유명한 정재승의 책이다. 워낙 잘 알려져서 책을 많이 쓴 느낌인데 과학콘서트, 그리고 진중권과 같이 쓴 크로스 시리즈, 이 책 열두발자국 정도가 전부라기에 좀 의외였다. 책은 강연을 엮은 책이라 가벼우면서도 인간의 성향에 대한 재밌고 유익한 사실이 많아서 아쉬우면서도 좋았다.

 인간은 90%이상의 확신이 들어야 선택하고 실행한다. 생존을 위해 실패하지 않으려는 당연한 성향때문인데 문제는 90%정도까지 확실할만한 일이 무척 드물다는 것이다. 정보가 지나치게 많고 부족한 현대사회엔 더할 것이다. 그래서 미해병대엔 70%룰이 있다고 한다. 일단 70%정도 확신이 들면 하라는 것이다. 실제 이것이 실패보단 성공사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말콤 글래드웰의 블링크가설도 이를 뒷받침하는데 심사숙고보다는 자신의 오랜 총체적 경험으로 빠르게 의사결정할때 의외로 맞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제 사회적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매우 성실히 모은다는 것이고 이를 적절한 시기에 실행한다는 것이다. 결국 평소 많은 경험과 독서, 만남등으로 충분한 정보를 모아놔야 빠른 의사결정이 성공으로 이어질수 있다는 셈이다. 

 결핍은 용어자체가 부정적이지만 사람에게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결핍의 긍정적 효과로 우선 마감효과가 있다. 하기싫어 미루던 것이 마감이 다가오면 갑작스레 엄청난 효율과 집중력으로 해치워 결과가 좋아지는 효과다. 또한 결핍은 동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원하는 것을 얻는 과정이 힘겨울수록 그 결핍은 오래 지속되며 갈망도 강해져 사람을 열정적으로 만든다. 돈과 사랑, 부모에 대한 인정결핍이 그것을 추동하는 강한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런면에서 요즘 청소년은 결핍이 적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자녀수가 적은 세대이다 보니 부모로부터 알아서 보호 및 여러 제공을 받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아도, 음악을 하고 싶지 않아도 부모는 알아서 미리 학원등을 보내준다. 때문에 청소년들은 어려서부터 뭔가를 스스로 하고 싶어 배우는 경우가 매우 적다. 젊은이들을 성취동기로 가득찬 이들로 성장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결핍을 느낄만한 자유로운 시간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결핍은 역시 어두운 면도 있다. 사람은 뭔가가 결핍되면 그것을 채우고 싶은 나머지 그 충족에만 급급하여 큰 것을 보지 못하는 터널 비전효과에 빠진다. 또한 결핍이 심하면 충동억제능력에 시달릴수도 있다. 돈이나 사랑에 대한 결핍이 그것을 강하게 추동하여 성추행을 하거나 절도성향으로 이어질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늘 새로고침을 갈망한다. 자신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위적으로 끊어놓은 시간단위인 새해가 되면 굳이 의미부여를 해가며 누구나 새로고침을 시도한다. 바로 새해결심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실패확률이 매우 높다. 77%가 새해결심을 1주일 유지하고, 19%만이 2년을 유지한다. 새로고침이 어려운 이유는 결국 생각과 행동을 바꾸어야 하는데 그것의 중추인 뇌가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고 행동하도록 해야하기 때문이다. 

 판단을 할때 뇌는 두 영역을 사용한다. 목표지향영역과 습관 뇌영역이다. 목표지향영역은 목표를 생각하여 가장 큰 보상을 주는 선택지를 찾는 것이고 습관 뇌 영역은 일상과제반복 수행에 사용되고 큰 보상보다는 인지적 노력을 줄여 통상적 보상을 얻는 방식이다. 이중 뇌에게 큰 부담을 주는 것은 당연히 목표지향 영역으로 많은 에너지 소비가 뒤 따른다. 새로고침은 목표지향 영역에 해당하고 습관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실행이 어려운 것이다. 

 인간에게는 믿음 엔진이란게 있다. 무작위적 패턴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경향이다. 음모론에 대표적인데 사건과 사건 사이의 고리를 잘 짜여진 스토리로 연결하여 인과관계를 부여하는 것이다. 인간이 무작위에 패턴을 부여하려는 성향을 가진 것은 그래야 예측이 가능하고 이를 통해 생존확률을 높일수 있기 때문이다. 

 뇌의 도파민은 전대상피질 영역에서 무작위적 패턴에서 의미있는 패턴을 찾는 역할을 한다. 도파민이 부족하면 패턴 찾기 능력이 약해지며 반대로 과다하면 지나치게 패턴을 찾으려고 한다. 도파민이 과다하다면 음모론이나 미신, 징크스등을 믿기 쉬워진다는 말이다. 이처럼 미신과 징크스는 미래를 통제하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되나 미래를 통제하는 것은 결코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회의주의적 삶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능이 높으면 대개 창의성도 높다고 생각하지만 둘은 상당히 다른 편이다. 지능은 기존 지식과 절차를 빠르게 습득하는 것과 관련하지만 창의성은 기존 지식과 절차를 사용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창의성은 흔히 은유와 많이 관련하는데 은유가 전혀 상관이 없어보이거나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두 가지를 연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만들어 질 때 평소 신경 신호를 주고 받지 않던 상당히 멀리 떨어진 뇌의 영역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 받는 것이 관찰된다. 이 과정에서 전두엽, 측두엽, 후두엽, 두정엽등이 서로 신호를 주고 받는데 이는 창의성이 뇌의 전 영역을 두루 사용해야 생성되는 것이며 전두엽같은 고등사고 영역에서만 산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창의적이 되려먼 문제를 굉장히 다양하고 이질적인 각도에서 바로보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지적인 대화를 하고 영향을 주고 받으며 지식을 섭취 흡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창의성을 생활에서도 길러지는데 운동과 수면, 독서, 여행, 사람만나기가 창의성에 필요하다. 운동을 하면 신경세포를 자극하여 뇌세포가 늘어나게 되며 독서는 평소의 경험과 학습을 재구성한다. 그리고 독서와 여행, 사람 만나기를 새로운 환경과 생각, 자극, 경험을 얻게 하는 것이다. 

 창의성은 교육환경과도 관련하는데 층고가 중요하다. 보통 교실이나 아파트는 층고가 낮은 편인데 창의성은 층고가 높은 환경에서 잘 양성된다. 층고가 2.4미터이면 통상적인 단순 문제를 풀이하는데 좋은 성과가 나타난다. 하지만 층고가 3.3미터에 달하면 창의적인 수행능력에 좋은 성과가 나타나게 된다. 

 창의성은 한 가지 문제에 천착하면 나타나기 쉽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창의적인 사람은 대부분 멀티태스킹에 능숙하며 순간적인 전환이 빠르다. 한 가지에 오래 집착하기 보다는 이일 저일을 다루면서 서로 간의 관련성이 나타나고 생각이 전환되며 창의적인 해결책이 떠오르게 된다. 여러모로 갖추기 힘든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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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4-09 0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닷슈 2022-04-11 15:0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힐링하면서.

이하라 2022-04-09 0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닷슈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닷슈 2022-04-11 15:07   좋아요 1 | URL
매번 감사합니다.

꼬마요정 2022-04-09 0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잘나고 싶은(지능도 높고 창의성도 높고) 마음과 현실 사이에서 저는 그냥 생긴대로 살려구요. 꼭 다 잘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서 이것 저것 해 봅니다. ㅎㅎㅎ 믿음 엔진을 잘 가동하면 삶이 더 풍족해질까요^^

닷슈 2022-04-11 15:08   좋아요 1 | URL
믿음 엔진 가동하면 풍족해지리라 믿습니다. 아무리 대단해도 자기가 만족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죠. 감사합니다.
 

 지난 3월 9일엔 대선이 있었고 알다시피 윤석렬이 승리했다. 표차는 겨우 0.7%정도로 역대 가장 적은 박빙의 승부였다. 방송3사의 디시전 K는 통상 5%면 당선 유력. 20%면 당선 확실을 예측하는데, 이번 경우 개표가 거의 80%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당선 유력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만큼 이긴 측엔 정말 짜릿하면서도 위기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승리였고 패자 쪽에게는 무척이나 아쉬움이 남는 뼈저린 패배였다. 보수계열은 징역 20년짜리 실패한 대통령을 연속 두 번이나 내세우는 실정을 저질렀음에도 5년만에 정권을 되찾아왔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1. 민주당이 진 이유

 가. 정체성이 애매하다.

 사실 나는 보수쪽에 비해 민주당이 늘 정체성이 애매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는 한국의 정치적 상황 때문인 것 같은데 야당으로써 보수와 대결할때는 진보적인 시각과 사회적 약자를 많이 고려하며 정치개혁도 늘 염두에 두지만 정작 여권이 될 경우 좀처럼 이를 실행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실제 민주당은 좌파로 여겨지지만 그 안에는 언제든 보수로 넘어갈수 있는 인사와 중도, 그리고 일부 좌파로 구성되어있다. 그리고 한국은 정치 스펙트럼이 세계적으로 볼 때 우편향 되어 있어 실제 한국의 민주당은 진보라기보다는 중도우파나 잘해봐야 중도좌파정도로 분류된다. 사실 스펙트럼상 좌파는 정의당 계열이다. 

 이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세 정권에 모두 해당이 되며 특히나 이번엔 지난 보수 정권 10년으로 쌓인 게 많았던 터라 이런 부분에서의 강한 해소가 필요했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상황, 사회적 약자의 권리 해결, 정치개혁등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으며 이는 실제 민주당이 이런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라는 강한 의구심이 들게 만들었다. 정의당이 유독 이번 정권에서 민주당에 반감을 갖고 나왔던 것은 이런 것에 대한 실천의지에 강한 의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 결과 대선토론과정 내내 정의당 대선 후보는 대척점에 있는 보수후보보다 오히려 민주당쪽 후보를 더 많이 공격했다. 이렇게 된데는 비례대표사건이 무엇보다 더 컸었다고 본다


 나. 청년을 빼았겼다.

 2000년대 초반 보수진영은 처음으로 정권을 빼앗기고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 20-30대 젊은 층에서 큰 폭의 패배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들은 젊은층의 지지를 되찾지 못하면 결국 당이 사라질 것으로 파악했다. 나이든 사람은 결국 늙어서 사라지고 젊은 층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기에 매우 당연한 예측이었다.(물론 실제론 그렇지 않다. 사람은 나이들면 보수화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보수계열은 정말 오랜만에 젊은 층에서 사실상 승리를 거두었다. 이전처럼 젊은 층에서 지지를 얻었다면 승리는 진보쪽이었을 것이다. 여기엔 이준석 대표가 시작한 젠더갈라치기가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렇다할 국회의원자리 하나 없이 방송계를 떠돌며 이리저리 전전하던 이준석은 사실 여러차례 남여논쟁에 패널로 등장한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남성의 입장을 강하게 대변하곤 했는데 이 때문큼은 진보성향의 남성조차도 이준석을 지지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곤 했다.

 아마 여기서 힌트를 얻지 않았는가 싶다. 그는 남여차별이 구조적으로 존재하는 나라에서 성차별해소를 위한 시도를 역차별로 몰아갔고 이 틈새공략이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 덕에 그는 최연소 당대표가 될 수 있었고, 아마 국회의원 자리도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 젊은 남성들은 성차별을 쉽사리 경험하지 못한다. 어려서부터 그렇고 남여평등적 교육 및 집안환경에서 자라왔을 가능성이 크며 대학진학이나 취업에서 여성보다 이득을 경험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하지만 그들은 군대라는 큰 차별을 경험해야하며 사회에 존재하는 유리천장이라는 것은 사회상층정도로 진입해야만 느낄수 있는 것들이다. 아직 그들은 그럴만한 나이도 경험도 갖고 있지 못하기에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현정권의 노력이 강하게 역차별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들을 어루만졌어야만 했다.

 

 다. 반면 여성의 집결은 너무 늦었다.

 매우 불리한 구도속에서 그래도 박빙의 패배를 거둘수 있었던 것은 막판 젊은 여성의 표심집결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의견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일주일 정도만 선거가 늦춰졌어도 결과는 알수 없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너무 늦은 아쉬움은 여성들에게 이재명에 대한 강한 향수와 애착현상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이미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격이다. 

 하지만 여성의 늦은 결집은 역시 결국 민주당의 탓이다. 남성 입장에선 민주당은 여성친화적 정권으로 느껴지지만 실제 여성들에겐 그렇지 않았다고 본다. 박원순, 오거돈, 안희정으로 이어지는 핵심 여권 인사들의 성추행 사건들 그리고 그 후속 조치들은 여성들에게 강한 반감을 가져왔을 것이며 민주당에 대한 의심을 하게 했을 것이다. 

 때문에 여성들은 보수진영이 초반부터 강하게 반여성적으로 움직였음에도 집권이 가능한 현실적 대안세력에게로 빠르게 결집하지 못했다. 일부 민주당, 일부 정의당, 일부 국민의 당 쪽으로 흩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안철수의 단일화, 그리고 패배를 막기 위해 막판에서야 어쩔수 없이 민주당 쪽으로 움직인게 아닌가 싶다. 좀 더 정략적으로 빠르게 판단하고 민주장 쪽에 힘을 싫어 초반부터 지지율을 대등하게 끌어올려주었다면 다른 결과를 도출할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라. 대통령의 답답한 인사

 문재인 대통령은 상당히 온화한 성품으로 원칙주의자로 보인다. 민주당 계열 대통령이 그렇듯 강한 리더쉽보다는 수평적이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이는 옳은 방향이지만 이번 정권 내내 민심을 이반시킨 여러 인사를 고집하는 패착을 나았다고 본다. 우선 조국이다. 개인적으로 조국을 옹호하고 그가 저지른 여러 흠에 비해 개혁반대세력에 의해 테러에 가까운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수진영과 보수언론은 한국인이 가장 민감한 입시사건으로 조국에 치명상을 입혔다. 그 박근혜 마져 무너뜨린 것은 최순실의 다른 엄청난 비리가 아닌 그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사건이었다는 것을 감안했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정략적으로 대통령의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고 본다.

 인사를 고집한 패착은 국토부장관 김현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보수언론과 야당의 공세가 옳건 그르건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실패로 국민들에게 여겨져왔고 폭등하는 집값에 악화하는 여론에 대해 뭔가 조치가 필요했다. 김현미 장관의 경우 필요 이상으로 오랜 임기를 보장했고 사실 그 대가로 얻어낸 것도 없었다. 

 윤석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추미애 윤석렬 갈등이 불거진 시점부터 빠르게 대통령이 둘을 동시 해임하는 결과로 문제를 마무리 했어야 한다. 필요이상으로 임기를 오래 보장하며 윤석렬을 키웠고 그 결과는 정권을 빼앗기는 것이었다. 

 물론 대통령의 입장은 이해가 가는 측면이 많다. 원칙을 지키고 싶었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보장하고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그것을 보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하고 싶었던 탈원전, 검찰개혁은 이루지 못했고 결과는 참담하다. 무척이나 아쉬운 측면이 아니랄수 없다.


마. 부동산 폭등

 한국의 부동산은 정권과 역방향으로 흘러왔다. 역사적으로 우파는 시장주의자들이기에 부동산에 대한 규제를 가급적 풀고 상승을 유도하는 정책을 많이 사용한다. 반면 좌파는 평등주의자들이기 불로소독이자 계급적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부동산에 대해 강한 규제와 세금을 부여하곤 한다. 하지만 부동산가격은 이런 정부정책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세계적 흐름을 탄다. 미국이 양적 완화를 한 2000년대 초중반 부동산은 크게 올랐고, 경기가 쇠퇴한 2010년대 중반은 하락했으며 다시 양적완화를 크게 시도한 2010년대 후반에서 2020년대 초반 크게 올랐다. 

 역설적이게도 한국의 경우 상승기엔 김대중 노무현이 하락기엔 이명박 박근혜가 다시 상승기엔 문재인이 다시 오고 있는 하락기엔 윤석렬이 대권을 잡았다. 때문에 부동산은 결국 정부의 정책탓을 하기엔 어려운 면이 있다. 그져 애써 물살에 따라 크게 움직이는 방향키를 애써 반대방향으로 잡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의지와 방향성에서 모두 아쉬움이 남는다. 

 적어도 시장에 강한 규제 신호를 주고, 부동산에 대해 공적인 역할을 많이 강조하며 더불어 과감하게 공급을 하고자하는 시도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이는 가장 큰 패착으로 사실상 정권이 넘어가는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바. 한국의 고령화

 언급한 것처럼 20년전 한국의 보수진영은 젊은 층의 이탈을 가장 큰 문제로 여기고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 노인을 결국 나이들어 사라지고 그 자리를 꾸준히 공급되는 청년층이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진영은 당시 진보성향을 가진 젊은이들이 많아지면 이들이 나이 들어서도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보수화되기 때문이다. 이는 노인도 청년처럼 공급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 2000년대 초반 김대중 노무현에게 표를 던진 40대들은 지금 60대가 되었고 이들은 강력하게 보수를 지지한다. 이는 과거 보수정권이 예측하고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초고령화하는 한국사회의 유권자층이 앞으로 보수에 유리하게 흐를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젊은 연령층은 그 수가 적고 이념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이 약화하고 있으며 반면 보수성향을 가진 노인층은 다수의 인구가 향후 수십년간 꾸준히 공급될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이것이 아주 큰 영향력을 미치진 않았지만 앞으로 두고 봐야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모든 악재로 인한 강한 정권 교체여론에도 불구하고 민주진영은 약간의 차이로 패배했다. 물론 여기엔 전문가들이 언급한 것처럼 정치초보이고 그에 걸맞게 무수한 실수를 저지른 윤석렬에 비해 도덕적으로 흠결이 많았지만 실력있어 보이는 이재명쪽이 인물에서 크게 앞섰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번에도 보수와 진보는 총집결하여 사실상의 양자대결을 펼쳤는데 박근혜 문재인 때는 진보가 총집결했음에도 과반을 넘지 못하고 패배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정의당의 표를 진보로 받아들인다면 진보가 얻은 총 지지는 과반을 살짝 넘게된다. 어찌보면 진보진영이 패배했음에도 역사상 처음으로 과반의 득표를 얻은 첫번째 선거가 아니었나 싶다. 그만큼 한국사회가 보수가 매우 유리한 구도에서 서서히 진보가 유리한 구도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란 생각이다. 때문에 패배했음에도 이번 선거는 진보쪽에 의미있는 선거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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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설계자들 - 학병세대와 한국 우익의 기원
김건우 지음 / 느티나무책방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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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하지만 당시 현정부는 야당과의 분쟁을 피하고 정치적 개혁과제의 원만한 수행을 위하여 건국 100주년 기념을 대대적으로 하지 않고 비교적 조용히 지나갔다. 이는 헌법에 대한민국의 정부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세력이 국내에 상당함을 보여주는 반증이었다.

 이를 반대했던 세력은 현 한국사회의 우익세력인데 상당히 아이러니 한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좌파가 아닌  반공, 기독교, 민족주의 특징을 지닌 전형적인 우익세력이 중심인 집단이었다는 점이다. 현 한국의 우익세력이 대한민국의 건국을 굳이 1919년이 아닌 1948년으로 잡고 싶은 것은 1948년의 정부세력이 전통적인 관점의 우파세력이라기 보다는 냉전질서에 기초해 당시 한국에 강한 세력을 행사하던 친미, 친일에 기초한 집단이었기 때문이며 이들이 현 한국 우익의 조상격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현 한국 우익세력은 우익임에도 불구하고 사상의 중심에 자국 민족주의가 최우선이 아닌 친미 친일에 기초한 외교관계나 그들에 대한 의존이 더 우선시 되는 경향이 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과거 이런 의존이 그들 집단의 생존과 권력을 보장해주었기 때문이다.

 책 '대한 민국의 설계자들'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 후, 남한 사회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진정한 보수우익들에 대해 살핀 책이다. 이들은 사상적으로 반공, 기독교, 반일, 민족주의에 기초한 당시의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이지만, 해방 후엔 미국과 연합한 친일 세력 중심의 이승만 정권, 그리고 이후엔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정권의 주류세력에 편입되지 못함으로써 한국 우익의 적장자들이 되지 못했다. 이는 한국사회의 안타까운 대목으로 아직도 진정한 민족주의의 실현의 어려움과(과거 독재정권과 지금의 보수는 민족주의를 매우 강조하지만 이는 독재 및 정권을 연장하기 위한 수단, 다수의 시민을 경제적으로 희생시켜 상위층이 주로 이득을 향유하는 불공평한 경제성장을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되어왔다) 한국사회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다른 나라에 비해 우측으로 지나치게 편향되는 불균형성을 야기하였다.

 책이 주목하는 초기 우익들은 주로 평안도와 황해도에 근거하는 우익 기독교인들로 이들은 대개 지주나 상공인 출신이었다. 분단과 함께 진영재편이 이뤄지면서 탄압을 받은 이들은 일찌기 공산주의의 좋지 못한 점을 경험하고 한국전 이전에 이미 반공정신을 투철하게 갖게 된다. 이들은 일제 시기 평양을 근거로 하는 도산 안창호의 실력 양성론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들 중 여러가지 이유로 일제에 협력하지 않은 이들이 이후 건국의 주체로써 떠오르게 된다. 평안도에 기독교가 광범위하기 퍼져있었던 것은 이 지역이 조선시대 내내 차별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중국과 연결되어 있어 조선후기 실학이 꽃피던 시절부터 외부세계의 문명이 들어오는 입구로 작용하였다. 이로 인해 서북은 일찍이 상공업이 발달했고 ,개화 계몽기에는 기독교가 빠르게 수용되었다. 기독교를 통한 서북의 개화는 사립학교의 대거 설립으로 이어졌는데 일제 말 각종 사립학교의 70% 이지역에 집중하였다. 서북인들은 과거 조선과는 다른 새로운 국가를 꿈꾸었고 이것이 이들이 발빠르게 개화한 주 이유였다. 

 책은 이런 인사들로 정치쪽에서는 장준하, 김준엽, 서영훈, 장기려, 선우휘, 김성한, 양호민, 류달영을 꼽는다. 그리고 종교인으로는 김수환, 지학순을 문인으로는 조지훈, 김수영을 언론인이나 학계에선 천관우, 이기백을 종교사상가로는 류영모, 함석헌, 김재준을 꼽는다. 이들은 일제말 제국의 학문을 접할수 있었던 매우 소수 엘리트로 1917-1923년 정도에 출생하여 학병으로 강제징집되는 나이대의 인물이었다. 어렸기에 친일을 강요당하거나 친일을 할만한 기회가 없었고 이로 인해 깨끗하고 주체적인 건국세력으로 물망에 오르는게 가능했다.  

 장준하는 학병으로 징집되어 탈출 후 대한광복군에 들어갔다. 박정희와 대립하며 자신의 광복군 출신임을 자랑했던 그였지만 당시엔 광복군의 현실에 적잖이 실망하였다. 광복군은 말로만 군대였지 훈련 및 시설이 매우 열악하여 제대로된 군사훈련을 커녕 도수제련이 고작인데다고 미약한 세력임애도 3개의 지대가 서로 파벌싸움을 하고 있었다. 장준하는 반공정신을 가진 인물로 이 중 김원봉이 이끄는 제1지대에 대해서 상당한 경계심을 갖고 있었다. 

 장준하는 백범 김구계로 알려져있지만 사실 이범석 계로 실제 그는 이범석이 해방 후 귀국하여 조선민족 청년단을 조직하자 여기에 합류한다. 장준하는 반공정신이 강했기에 통일정부를 구상한 김구와는 다르게 남한의 단독 정부수립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하지만 이런 장준하의 생각은 박정희의 독재와 1960년대 중반부터 함석한과 한국신학대학 계열 인사들과 교류하며 바뀌게 된다. 1972년 7.4남북 공동선언 때에 이르면 장준하는 중도통일 노선을 표명하고 한국사회의 모든 적폐와 문제점은 분단에서 기원함을 주장하고 이로인해 남북 통일을 민족 최대의 지상과제로 주장할 정도로 바뀌게 된다.  

 장준하가 한국사회에 기여한 큰 공로는 사상계의 출간이다. 사상계는 1950-60년대 대한민국의 싱크탱크 역할을 한 지식인 잡지로 1952년 4월 장준하와 서영훈이 '사상'을 출간하며 시작되었다. 사상의 발간에는 미국 공보원이 후원할 정도였는데 서북세력을 경계하던 이기붕과 박마리아에 의해 견제받아 폐간된다. 하지만 장준하의 은사 백낙준이 사상에 이은 사상계를 출간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백낙준은 한국사회에 뿌리 깊은 족적을 남겼는데 현재까지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교육 목표인 홍익인간의 이념이 그의 작품이다. 홍익인간은 민족을 넘어선 세계주의적, 보편주의적 가치관을 표방하는 것이다. 그는 도마다 1개의 국립대학을 설치하는 정책을 추진하여 실현시키기도 했다. 

 사상계는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전성기엔 발행부수가 1만부에 달하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말기까지 주요 인사가 서북출신에 편중되었다는 한계가 있었다. 사상계의 편집 방향은 다섯 갈래로 민족의 통일, 민주사상, 경제발전, 새로운 문화창조, 민족적 자존심이었다. 이는 한국사회의 총체적 근대화 방향을 제시한 것이었다. 이들은 국가이념의 모델로 서구자유주의를 설정하였으며 이는 이들 지식인들이 미국식 자유주의에 다소 경도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상계는 박정희 군사정부와 날을 세우게 되었고 군사정부는 세무사찰과 반품작전으로 이들을 압박하였다. 결정적 타격은 주로 대학교수였던 편집위원들을 압박하여 이들을 이탈시킨 것이었는데 이는 당시 한국사회에서 교수들의 역할이 변하던 흐름과 맞물리기도 한다. 1960년대 이전의 대학교수들은 실천적 지식인에 가까웠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정부가 급여이외에도 연구비를 지급하기 시작하면서 연구자로써 그리고 정부정책을 옹호하고 따르는 집단으로 변모하게 된다.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는 이런 실천지식인들에게 처음엔 환영받았다. 1960년대의 우익 지식인들은 이승만 정부를 구태세력으로 보았다. 그럴만도 한것이 그 중심세력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세력에 국가를 잘못 경영하여 후배들에게 망국에서 자라나는 아픔을 선사한 망국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시의 우익 지식인들은 새롭게 등장한 정치세력이 근대화를 열망하는 자신들과 결합하여 민족 근대화를 이뤄야한다고 생각했다. 무력을 가진 고려말 이성계와 신진사대부의 결합이 생각나는 지점이다. 때문에 당시 그들은 5.16을 무려 4.19의 연장선으로 바라보았다.

 사상계의 경우에서 언급했던 해방후 1950년대의 우익 지식인들은 근대화를 서구의 것을 따라가야하는 것으로만 파악하는 경향이 있었다. 망국의 아픔과 설움이라는 시대상황 속에 가질 수 밖에 없는 배경이었다. 하지만 이후 1960년대에는 근대화를 민족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변화가 생겨난다. 근대화의 맹아를 무조건 서구에서 찾기보다는 우리 본연에도 그러한 것이 있음을 바라보게 된것이다. 역사시간에 흔히 배우는 조선 후기 실학에서 자주적 근대화의 요소를 학습하게 되는 것은 이시기에 이뤄진 성과다. 

 한국우익 중에서는 무교회주의자들도 깊은 족적을 남겼다. 이들의 사상적 근원은 일제시대 일본학자 우치무라 간조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치무라 간조는 무교회주의 창조자로 천황에 대한 교육 칙어 불경사건과 러일전쟁 반대로 일본사회에서 찍힐대로 찍힌 인물이었다. 훗날 한국의 잡지 성서조선의 김교신, 양인성, 함석헌, 류석동, 정상훈, 송두용등이 그의 제자였다.

 성서조선은 한국 기독교 정신주의의 가장 비타협적 지점에 위치한다. 이들은 기독교 신앙을 바탕하면서도 자신의 삶 전체를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자 했다. 제도권 기독교와는 갈등관계였는데 그럴만한 것이 이들은 신앙공동체 자체를 교회로 파악하여 성직 제도나 예배당을 불필요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류달영은 5.16군사정부에서 국민재건운동을 이끌었다. 그는 덴마크 모델에 기초한 국민교육, 농수로 제작과 농지개간을 하는 향토개발, 주택과 식생활과 환경을 개선하는 생활혁신, 도농자매결연, 결식아동급식등의 사회협동을 주장했다. 그는 가정의례준칙을 수립하고 각종 의식을 간소화했다. 무척 길던 결혼 예식을 지금수준으로 30분정도로 줄인 것은 그가 한 일이다. 그의 이런 사상은 훗날 박정희 정권의 새마을 운동의 모델이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달영은 국가주의자들과 사상적으로 부딪혀 정권에서 밀려나게 된다. 그는 마을금고라는 이름의 신용조합을 만들어냈고 평생교육이라는 개념도 최초로 사용한다. 

 이찬감은 1958년 충남 홍성 홍동면에서 지금도 매우 유명한 풀무학교와 풀무공동체를 설립한 사람이다. 풀무공동체는 무교회주의자들의 세계관 가치관 방법론을 집약한 곳으로 녹슨 쇠붙이를 녹이고 정련해 새로운 농기구를 만든다는 뜻으로 '풀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우치무라 간조의 위대한 범인과 함석헌의 씨알 개념을 사용하여 위대한 평민을 교훈으로 삼았다. 풀무공동체에서 학교는 하나의 마을이자 생활의 공동체로 이는 지금 한국 혁신 교육의 마을교육공동체와 이론적 실천적으로 연결된다. 지금은 유명한 유기농 역시 이 집단에서 시작되었다.

 함석헌은 우치무라보다 류영모에게 영향을 받았다. 류영모는 노자를 예수만큼 중시했는데 그는 참된 삶이란 신앙적인 진리 정신과 서민적인 근로정신이 일치해야 한다고 보았다. 함석헌의 씨알도 류영모에게 온 것으로 씨는 생명, ㅇ은 하늘, ㅏ는 극소이자 소우주인 자아, ㄹ은 활동양태다. 즉. 씨알은 우주의 생명의 내려와 인간의 얼이 된 존재다. 

 한국천주교는 개신교보다 그 역사가 오래됨에도 사회적 영향력이 미비했다. 이는 개별 교회가 각자 따로 노는 개신교에 비해 천주교가 로마바티칸을 중심으로 강한 통일성과 방침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즉, 지역성을 갖기 어려웠던 셈인데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로마교회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현대세계에 발맞춰 변화를 선택하면서 상황이 변하게 된다. 이 회의에서 기존 성직자 중심을 평신도 중심으로 이동시키고 미사에서 라틴어 외에 모국어도 사용하게 하였다. 이러한 변화를 김수환과 지학순은 사회 참여로 이해하였다. 

 김수환은 독일 요제프 회프너에게 기독교 사회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이런 학문적 배경을 바탕으로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한다. 김수환은 1968년 세계 최연소로 추기경이 되었으며 1972년 미사생중계때 정부의 국가호위 특별 조치법을 대놓고 비판함으로써 정부의 눈밖에 나게 된다. 하지만 추기경이라는 막강한 위치덕에 군사정권도 그를 어찌하지 못했는데 그 덕에 명동성당은 민주화 운동 인사들의 일종의 피난처 역할을 하게 된다. 김수환은 1972년 남북이 야합한 공동성명에 대해서도 남북의 정권을 연장하고자 하는 적대적 공존 수단으로 파악하여 비판하였다. 김수환은 자연법을 근거로 유신을 비판하였는데 자연법은 신적 정치에 기초해 모든 실정법 위에 존재하는 원리로 국가의 법이 이에 비치되면 그것은 악법이자 무효가 되는 것이었다. 김수환은 반공주의자로 민주화 운동 인사였음에도 공산주의에 대해 경계하는 발언을 하였다.

 지학순은 카톨릭이 평신도 위주로 가야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1966년 원주에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하는데 이것이 지금도 존재하는 한살림의 전신이다. 그는 197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을 수용하였으며 1974년엔 최초로 유신헌법에 대항해 최초의 양심선언을 한다. 양심선언은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그로부터 2개월후 지금도 존재하는 천주교의 정의구현사제단이 결성된다. 

 천관우는 1954년 한국일보 논설위원, 1958년 조선일보 논설위원이자 편집국장, 1963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 활약할 만큼 젊어서부터 언론인으로 성공했다. 그는 자유언론의 전통을 세웠는데 언론 자율과 자유 수호를 매우 중시했다. 그는 1960년대 중반 정권에 대한 날을 세우다 밀려났는데 이는 당시 일련의 흐름과 관계한다. 1950년대만 해도 언론에서는 언론을 만들어내는 기자나 편집인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부터 언론이 대형 기업화하면서 경영진이나 소유주가 편집인보다 우위에 서기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정권은 언론의 통제를 기존 기자통제에서 경영진을 통제하는 형태로 구조변경을 시도한다. 이런 언론 권력의 변화흐름에서 천관우는 힘을 잃는다.

 천관우는 뛰어난 언론인이기도 했지만 우수한 역사학자이기도 했다. 그의 학부 졸업논문이 실학의 개념과 발전과정을 최초로 이론화한 것인데 이는 세계사적 근대화의 맹아가 조선말 외래 유입에서 온 것이 아닌 자생적으로 생겼음을 주장하는 최초의 패러다임 변화였다. 언급한 것처럼 1960대는 학계에서 자생적 발전론에 주목하기 시작했는데 이른 당시 한일 협정이라는 사회적 반감과도 관련한다. 

 책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은 언급한 사람들 외에도 사상적 흔적과 업적을 남긴 다양한 전통 우파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들은 현재 우파의 적장자가 되지 못해 크게 잊혀진 존재로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들에 대한 배경과 업적에 대해 많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이들이 성공하여 현재 우파의 사상적 직계 조상으로 자리매김했다면 지금의 한국사회가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해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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